2024.1.3. 하나님의 은택을 잊지 말라 (시편 103편 1-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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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친구가 나란히 사막을 여행하던 중 문제가 생겨 다투게 되었습니다. 한 친구가 다른 친구의 뺨을 때렸습니다. 뺨을 맞은 이는 아무 말도 하지 모래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내 가장 친한 친구가 내 뺨을 때렸구나.” 때린 이는 여전히 화가 나 있고, 맞은 이는 여전히 마음이 풀리지 않아 두 사람은 오아시스가 나올 때까지 말 없이 여정을 이어갔습니다. 마침내 오아시스에 도착한 두 사람은 그곳에서 목욕을 했습니다. 앞서 뺨을 맞은 친구가 목욕하러 들어가다 그만 늪에 빠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다행히도 나머지 친구가 구해 줍니다. 늪에서 빠져 나오자 그는 이번에 돌에다가 이렇게 글을 새겼습니다. “내 가장 친구가 내 생명을 구해주었구나!” 옆에서 이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친구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어봅니다. “내가 너를 때렸을 때는 모래에다가 적더니, 왜 이번에 내가 너를 구해준 후에는 돌에다 적고 있니?” 친구가 대답합니다. “누군가가 우리를 괴롭혔을 때에는 그 사실을 모래에 적어야지. 그래야 용서의 바람이 불어와 그것을 지워 버린단 말야. 그러나 누군가가 좋은 일을 했을 때는 그 사실을 돌에 기록해야 한다네. 그래야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테니까.”
우리나라 말에도 “원수는 물에 새기고 은혜는 돌에 새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이들이 이와는 반대로 행할 때가 많습니다. 잊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은혜는 물에 새겨 금방 잊어버립니다. 마음에서 버려야할 원수는 돌에 새겨 두고두고 기억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성도님들의 마음에는 무엇이 새겨져 있습니까? 버려야할 원수 입니까? 아니면 잊어서는 안 되는 은혜 입니까?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시편 103편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향해 베푸신 사랑과 긍휼을 찬양하는 시입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는 이 권면을 시의 시작과 마지막에 배치함으로 “여호와를 찬양”이라는 시의 주제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시편 103편의 저자 다윗은 무엇을 찬양하고 있을까요? 그는 개인적인 고난과 힘겨운 상황 속에서 자신의 죄를 용서하시고, 병을 고쳐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 103:3)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사실 다윗은 젊은 시절 갖은 고생을 다 겪은 사람입니다. 산전수전 다 겪었습니다. 가난한 집안의 막내아들로 태어나서 십대 때부터 들판에 나가 밤낮으로 양을 돌보던 사람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가정 형편이 여의치 않아 고등학교 때부터 패스트푸드 식당 가서 알바하던 사람입니다. 그러다가 장인 어른인 사울에게 미움을 받아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워야 할 20대 내내 광야와 동굴에서 도망자의 신분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사울이 이스라엘 전국에 지명수배를 내려놓고 누구든지 다윗의 목을 가지고 오는 사람에게는 큰 상까지 주기로 선포했으니, 그를 죽이려는 자가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사방이 적이고, 안팎으로 살인과 위협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시편을 보면 다윗은, 하나님을 향해 감사하고 찬양하는 일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는 힘들고 어려운 날은 물에 새겨 흘려 보내고, 하나님의 은혜만을 그의 가슴에 새긴 것이죠. 그래서 지금 과거를 떠올리며 하나님께서 “나 같은 죄인을 어떻게 구원해 주셨는지? 내가 아플 때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치료해 주셨는가?”하는 은혜만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4절을 보겠습니다. “(시 103:4)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수많은 원수들이 다윗을 죽이려 했으나 하나님은 그의 목숨을 늘 지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놀라운 사랑과 자비를 그에게 베푸셨슴을 기억합니다. 다윗은 5절에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시 103:5)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지금 시편 103편은 다윗이 독백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마치 거울을 보며 스스로에게 이야기 하듯이, 자기 영혼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죠. “다윗, 내 영혼아 너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절대 잊지 말아라! 하나님이 너가 지은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셨지. 네 모든 질병을 고쳐 주셨지. 네 생명을 원수들로부터 보호해 주셨지. 게다가 좋은 것으로 너의 소원을 들어 주셨어!”
다윗의 위대함은 여기 있습니다. 참 힘들고 어려운 시절을 보낸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베푸신 은혜만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잊지 않고, 마치 오래된 일기장을 다시 꺼내어 읽어보듯이 그것을 하나하나 나열하며 자기에게 놀라운 은혜 베푸신 하나님을 계속해서 찬양하는 것이죠. 2절에 나오는 ‘은택’이라는 단어를 한 번 보겠습니다. ‘은택’이란 자격 없고 무가치 한 자에게 하나님의 긍휼과 인자를 베풀어 주신 풍성한 사랑을 가리킵니다. 찬송가 410장의 가사처럼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 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인 거에요. “하나님 이스라엘에 저 보다 더 뛰어난 사람도 많은데, 어찌 하나님께서 이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시골 목동을 선택해주시고 그로 하여금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으로 세워 주셨습니까? 하나님 이것은 은혜 아니면 말로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한 순간도 살 수 없는 존재임을 고백하며 가난하고 연약한 사람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택을 마음껏 찬양하고 있습니다.
사실 다윗도 우리처럼 실수가 많은 사람이었어요. 그도 평생 잊지 못할 실수를 저질렀었죠? 밧새바와 동침한 사건 입니다. 또한 밧새바의 남편이자 자신의 충성스런 부하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죽게 만들었습니다. 다윗이 간음죄와 살인죄를 지은 것이죠. 엄청난 죄 아닙니까? 한 사람의 신앙인으로서 그는 끝난 것이나 다름 없어요. 하나님께 버림 받아야 마땅합니다. 이스라엘 왕으로 자격이 없어요. 백의종군해서 시골에 돌아가서 남들 눈에 안 뛰게 농사나 짓다가 삶을 조용히 마감해야 할 지경입니다. 다윗도 자기 죄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의 삶에 나타난 하나님의 놀라운 성품을 경험하게 됩니다.
바로 8-9절 말씀 입니다. “(시 103:8)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시 103:9) 항상 경책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다윗은 무엇보다 죄인을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 꾸짖으시고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또한 하나님은 자비로우시고 은혜로우셔서 죄를 징계하시되 항상 징계 하시지는 않으셨어요. 10절 말씀에 하나님께서 죄인에게 베푸신 은혜가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갚지 아니하셨습니다.” 세상에 죄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세상에서 훌륭하다고 추앙 받는 성인들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진노 앞에서는 멸망할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아니었다면 우리 중에 하나님의 심판을 견디고 존재하고 있을 사람은 그 누구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 반드시 경책하시고 징계하십니다만, 죄를 진심으로 회개한 자에게는 한 없이 용서해 주시고, 12절 말씀처럼 죄인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완전히 격리하고 제거해 주셨습니다.‘
다윗은 오늘 이 시편을 통해 죄 사함이야말로 죄인이 누리는 최고의 복임을 고백했습니다. 또한 자신과 같은 죄인을 용서하시고 도리어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끝없는 인자하심을 찬양하고 예배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윗이 하나님께 받은 이 사랑과 은혜는 우리의 삶에도 동일하게 역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놀라운 은택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시고, 그의 십자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지은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택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죄를 사해 주시고, 질병을 고쳐 주시고, 날마다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은혜를 돌에 새기라”는 말처럼 우리 삶에 베풀어 주신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의 마음 판에 새기시고,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양과 예배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