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8.5. 거절하시는 하나님 (예레미야 14장 1-12절)

 

부모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자녀들을 향해 인자하고 너그럽게 대하는 모습은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그런 부모라 해도 자녀가 올바르지 못한 방향으로 나아갈 때는 매를 들어 손바닥이나 종아리를 때리기도 하고, 크게 혼을 내기도 하고, 벌을 세우기도 합니다. 잘못을 반성하라는 의미로 용돈을 줄이는 부모님이 있는가 하면, 사회 봉사나, 집안 일을 시키는 부모님들도 있습니다. 자식의 입장에서는 몸으로는 고생하겠지만, 그 고통 가운데 마음 속에서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결국에는 올바른 길로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는 것이 모든 부모님들의 간절한 마음입니다. 자식이 미워서 때리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다 자식들 잘 되라고, 나쁜 길 가지 못하도록 올바른 사람 되라고 매를 드는 것이죠.

우리 하나님은 그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매우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무시하고 그 분을 떠나 우상을 섬기려 했던 이스라엘의 고집은 꺾일 줄 몰랐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여러 가지 재앙과 벌을 내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변에 인접한 국가들을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을 침략하게 하셔서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죽음에 이르는 벌을 주셨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내에 전염병이 돌아서 수많은 사람들이 괴로움과 고통을 받게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런 무시무시한 재앙과 벌 중 가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도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불순종 하자 하나님께서 비를 땅에서 그치게 하시고, 물이 마르게 하셨습니다.

사람의 인체는 70%가 물로 구성 되어 있습니다. 물이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이스라엘을 향한 물 공급을 왜 중단하셨습니까? 이를 통해 목마름 가운데 자신들의 죄악을 깨닫고 헛된 우상들을 버리고 생수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 생명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께 다시 돌아오라는 메시지를 주고 계신 것이죠. 가뭄으로 인해 이스라엘이 고통 당하는 모습을 봅시다. 2절 입니다. “2 유다가 슬퍼하며 성문의 무리가 피곤하여 위에서 애통하니 예루살렘의 부르짖음이 위로 오르도다2절의 유다는 남유다 왕국을 의미합니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 왕이 죽은 이후 이스라엘은 두 개로 나라가 분단 됩니다. 북방 이스라엘과 남방 유다 입니다. 이 중 북방 이스라엘은 예레미야 시대 이전에 이미 우상을 섬기다가 하나님께 심판을 받아 멸망 했습니다. 남방 유다 왕국도 북방 이스라엘과 똑같이 우상을 숭배한 이유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기 직전 입니다. 2절에 “유다가 슬퍼하며 성문의 무리가 피곤하여 땅 위에서 애통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주님의 백성에게 찾아오는 것은 무엇입니까? 슬픔, 피곤함, 애통 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물 공급을 중단하셨다고요? 그들이 생수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 생명의 근원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2장 11-13절 말씀을 함께 찾아 읽어 봅시다. “[2:11-13] 11 어느 나라가 그들의 신들을 아닌 것과 바꾼 일이 있느냐 그러나 나의 백성은 그의 영광을 무익한 것과 바꾸었도다 12 하늘아 일로 말미암아 놀랄지어다 심히 떨지어다 두려워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3 백성이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것인데 그것은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13절을 보니 이스라엘 백성들의 두 가지 죄가 무엇입니까? 생수의 근원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버린 것! 그리고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 즉 하나님 외에 다른 가짜 신들 곧 우상들을 제작하고 섬긴 죄 입니다. 그로 인해 가뭄과 기근의 재앙이 찾아 온 것이죠.

다시 예레미야 14장 3절로 가 봅시다. “3 귀인들은 자기 사환들을 보내어 물을 얻으려 하였으나 그들이 우물에 갔어도 물을 얻지 못하여 그릇으로 돌아오니 부끄럽고 근심하여 그들의 머리를 가리며 이스라엘의 귀족들, 권력층, 부유층들이 가뭄 때에 물을 얻기 위해 자기 종들을 우물이 있는 모든 동네로 파견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 어느 누구도 물을 얻지 못해 빈 통을 들고 돌아가야 했습니다. 최근에 남미 지역들, 특별히 아르헨티나의 인플레이션 문제가 심각합니다. 작년에 비하면 올해 물가 상승률이 벌써 약 150%나 되었습니다. 웬만한 돈 가지고는 물건을 살수가 없습니다. 식료품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유층과 권력층들은 부정부패로 축적해 둔 재산으로 다들 걱정 없이 먹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속 이스라엘의 부유층, 권력층들은 다릅니다. 그들이 가진 힘과 권력, 재산과 재물이 하나님의 재앙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해 주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4절 봅시다. “4 땅에 비가 없어 지면이 갈라지니 가는 자가 부끄러워서 그의 머리를 가리는도다 밭에서 추수해야 할 농부도 비가 내리지 않아, 지면에 적적 갈라진 것을 보고 괴로워 합니다. 3절과 4절에 두 번이나 반복해서 나오는 표현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그들의 머리를 가리다”라는 표현입니다. 사람이 수치를 당할 때 머리를 가리죠? 예를 들면, 왜 TV에서 범죄자들 법원에 들어가거나 나올 때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이밀면 머리를 가리잖아요? 그 느낌입니다. 자신들의 죄로 인해서 벌어진 이 재앙의 쓴맛을 경험하며 부끄러워하고, 수치를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아, 우상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는구나! 왜 여호와 하나님을 버렸을까? 이게 다 내가 잘못한 것이다…”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물을 구하지 못한 것은 치명적인 상황이라 이들이 극한 죽음의 공포와 슬픔과 좌절에 사로 잡혀 있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5-6절을 보면 들의 암사슴, 나귀들은 새끼를 낳아도 기근으로 인해 땅이 마르니 먹을 풀이 없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 헐떡이며 눈이 흐려지며 매말라 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생수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을 떠난 결과는 고통과 재난과 죽음 입니다.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선지자 예레미야, 그는 이 사태의 원인이 어디서에서부터 비롯된 것인지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아까 예레미야 2장 11-13절 읽었었죠? 생수의 근원 되신 여호와 하나님을 버린 죄! 하나님을 대체할 우상을 만들어 숭배한 죄! 바로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장 큰 죄악이었습니다. 따라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께 간절한 목소리로 부르짖으며 구했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잘못한 것 맞습니다. 이스라엘이 정말 잘못한 것 맞아요! 그러나 하나님 그래도 우리들을 불쌍하게 봐주세요! 우리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님을 섬기는 백성으로 소문이 나 있는데, 우리가 망하면 어떻게 합니까? 그러니까 하나님,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서 우리들을 버리지 말아주세요!” 이렇게 간절한 목소리로 하나님께 호소했습니다.

한 번 그 장면을 함께 살펴 볼까요? “[14:7] 여호와여 우리의 죄악이 우리에게 대하여 증언할지라도 주는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소서 우리의 타락함이 많으니이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주님! 비록 우리의 죄악들이 우리를 고발하고 있어도, 주님의 이름의 명예를 생각하시고 선처를 부탁 드립니다. 우리 이스라엘이 수없이 반역해서 하나님께 범죄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잘 해서 용서해 달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있는 겁니다. 8절 이어서 봅시다. “8 이스라엘의 소망이시요 고난 당한 때의 구원자시여 어찌하여 땅에서 거류하는 같이, 하룻밤을 유숙하는 나그네 같이 하시나이까“주님, 주님만이 우리 희망이십니다. 우리가 환난을 당할 때 구하여 주시는 분이 주님 아니십니까? 그런데 어찌하여 이 땅에서 잠시 머물다 떠날 나그네처럼 그렇게 아무런 상관도 안 하시는 것처럼 계십니까? 어찌 하룻밤만 묵으러 도시에 들린 행인처럼 그렇게 행하십니까?” 선지자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마음을 모를리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고자 이스라엘을 향한 주님의 은혜와 자비를 간구하는 것이죠. 9절 후반절을 보면 “우리를 버리지 마옵소서!”하고 간절하게 기도합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어떠합니까? “10 여호와께서 백성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그들이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여 그들의 발을 멈추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받지 아니하고 이제 그들의 죄를 기억하시고 죄를 벌하시리라 하시고하나님의 말씀의 요지가 무엇입니까? “예레미야야, 이 백성이 이리저리 방황하기를 저리 좋아하고, 나는 찾지 않는구나. 그러므로 나도 저들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겠다. 나도 저들을 좋아하지 않으니 이제 저들의 죄를 기억해서, 그들의 죄악을 다 징벌할 것이다!” 11-12절 눈으로 보세요. “너 이제 이 백성에게 은총을 베풀어 달라고 나에게 기도하지 말아라. 그들이 혹 금식해도 나 그들의 호소를 들어주지 않을 것이야. 그들이 번제물과 곡식제사 바쳐도 나 그거 안 받는다. 나는 오히려 칼, 기근, 전염병으로 그들을 전멸시켜 버릴 것이야!” 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말씀입니까? 자비와 은혜의 하나님께서 이제 더 이상 용서하지 않으시겠다니요? 그들을 위해 중보 기도 하지도 말고, 금식해도, 예배를 드려도 아 받아 주시겠다니요?

이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가 죄를 짓고 회개만 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용서가 무조건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없이는 우리의 용서는 아무런 희망도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미 셀 수도 없을 만큼 하나님께 용서 받았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수차례 얻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이제는 하나님께로 돌아올 생각조차 하지 않자, 하나님의 진노는 이제 그들을 심판하기로 결정하신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선지자 예레미야의 기도를 거절하신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여전히 어그러진 길, 죄악의 길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삶을 돌이키지 않는 자들에게 선지자의 중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우리 삶의 고통과 아픔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안에 있는 죄악을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자비와 은총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을 구하기 앞서, 먼저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는 삶이 될 수 있도록 내 자신의 죄악을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 정결하게 살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