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8.20. [시편의 기도들] 시리즈 [3] 왕께 드리는 기도 (시편 2편 1-12절)

대부분의 TV 드라마는 매주 한 편 혹은 두 편 씩 나누어서 방영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한 회가 끝나면, 한 주를 기다리면서 ‘다음 주에는 드라마의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까?’ 궁금해하곤 합니다. 소설책도 마찬가지 입니다. 1권, 2권 등 이미 시중에 발매된 책을 다 읽고 나면, 아직 나오지 않은 책의 뒷이야기를 혼자 상상하며 기다리게 됩니다. 그런데 만일 드라마나 소설의 작가가 작품을 다 마무리 하지 못한 상태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뒷이야기가 너무나도 궁금하지 않겠습니까? 실제로 작가가 질병이나 사고로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여 작품이 미완성으로 끝나게 되는 경우들도 종종 있습니다. 또한 작품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가진 많은 팬들의 열렬한 바램을 위해 작가의 의지를 이어 받은 주변 가족들이나 동료들이 나머지 이야기들을 채워 나감으로 작품을 끝내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는 본래 작가가 쓴 글이나 작품이 아니기에, 작가 사망 이후에 나온 작품들은 대부분 정통으로 잘 인정 받지 못하게 됩니다. 본래 스토리를 시작한 작가가 쓴 글이여야 정통성이 인정 되는 셈입니다.

드라마나 소설을 기록한 작가의 이야기여야 신빙성이 있고, 정통성이 인정 되듯이, 인류의 역사도 이 세상을 이끌어 가고 계시는 신의 존재가 이야기할 때 신빙성이 있고, 정통성이 인정 될 것입니다. 성경 안에는 인류의 역사를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기록해 놓으신 이 세상의 시작과 끝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삶이야 말로 가장 흥미진진하고, 또한 올바른 이야기가 됩니다. 이에 반하는 모든 시도나 움직임들은 다 결국 허사로 돌아갈 것입니다.

드라마나 소설도 그렇죠? 작가가 쓴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이야기는 오히려 이렇게 되었어야 한다!”하는 식으로 자기 마음대로 작품의 스토리를 변경하거나 “고치려고 드는 시도들이 수도 없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불만과 시도들은 다 허튼 노력에 불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작가 자신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글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어떤 권세도 자격도 없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인류의 역사를 만드시고 인도해 가시는 하나님의 뜻과 그 분의 길을 거스르려는 시도와 행위들은 결국 허사로 돌아가 버리고 맙니다. 1절을 봅시다. “[2:1]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이방 나라들, 민족들이 하나님의 뜻에 반하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돌과 나무 금은과 같은 금속을 가지고 우상을 제작하고, 그것들을 신이라 주장하며 섬기며 살아갑니다. 또는 이 우주에는 창조주자 하나님이란 존재는 없다고 믿으며 자기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지배를 받는 것을 싫어합니다. 즉 시편 1편에서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청중하고 그 뜻대로 살아가기를 즐거워하는 자라고 했는데, 이 사람들은 그러한 삶을 매우 혐오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무슨 유익이 있느냐? 하나님을 예배하면 떡이 나오냐? 밥이 나오냐? 하나님이란 존재는 세상에 없다! 천국도 지옥도 없다! 우리는 이 세상에 잠시 잠깐 반짝하고 있다가 사라질 별과 같은 존재 들이다. 그러니 죽음 이후의 일은 걱정하지 말고, 오늘을 즐기며 살아가자!” 이것이 세상 사람들의 모토 입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의 일을 말하고, “주님의 말씀을 따릅시다”하고 가르치는 자들에게 분노 합니다. “그런 고리타분하고 쓸데 없는 말은 하지도 마시오! 하나님이 어디 있소? 있으면 한 번 눈으로 보여 주시오!” 하고 오히려 화를 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주님의 백성들을 싫어하고, 하나님께서 세상을 통치하신다는 개념에 강하게 반대합니다. 결국 눈에 보이는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하기에 이르기에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육체적 쾌락과 물질에 대한 탐욕을 채우기 위해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1절에 나오는 ‘허사’입니다. ‘허사’란 헛되고 가치 없는 일을 말합니다.

모래로 집을 짓고 있는 한 어리석은 건축가가 있습니다. 그는 태양 아래서 구슬 땀을 흘리며 모래를 가지고 집을 지었습니다. 1층 집으로도 모자라 2층 집으로 짓고, 방 하나로도 모자라 방 열 개 자리 집을 지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지은 집을 바라보며 매우 흐뭇해 했고, 이제 그는 남은 인생을 평안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2주 뒤에 비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그의 생각은 완전히 바뀌어 버렸습니다. 바람이 불자 모래로 지은 집은 벽이 날아가 버렸고, 비가 오면 천장이 다 무너져버렸습니다. 결국 모래로 지은 집은 하나의 큰 무더기가 되어 버렸습니다. 건축가의 모든 노력이 허투루 돌아가 버렸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버리고, 대신 육체의 쾌락과 위해 살아가고, 물질에 대한 탐욕을 위해서 살아가는 삶은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는 모래로 지은 집과 같이 허무한 인생으로 끝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깨닫지 못한 세상 사람들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지배를 벗어나려고 합니다. “우리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아라! 도대체 하나님이 어디 있다고 우리 보고 성경대로 살라고 말하느냐? 우리를 구속하지 말아라!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겠다!” 하고 외치며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2-3절 말씀을 봅시다. “[2:2-3] 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3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2절에 나오는 “세상의 군왕들”이란 표현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세상 사람들을 표현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 왕으로 세우신 [기름 부은 자]를 대적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왕으로 세우신 예수님의 존재를 부인하고, 그에게 매임 받는 것을 벗어 버리려고 합니다. “예수가 누구길래, 내가 그의 뜻을 배우고 또 그를 섬기며 살아야 하는가? 나는 예수랑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나는 그의 뜻을 따를 필요도 이유도 없다!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살겠다!” 이처럼 하나님을 향한 증오 감정, 예수님에 대한 혐오감이 지금도 지구상에 얼마나 가득한지 모릅니다.

한평생 교회에서 자라온 분들은 잘 느끼지 못할지 모르지만, 지금도 하나님과 예수님의 존재를 부인하고, 그분을 역사 속에서 지워 버리려고 하는 시도들이 얼마나 많은 곳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지 모릅니다. 사람들은 예수가 역사 속 실제 인물이 아니라 무슨 소설 속 주인공과 같이 허구의 인물이며, 구원자를 사모하는 사람들의 간절한 바램으로 만들어진 가상의 인물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로 말미암아 성경의 모든 가르침과 의무에서부터 끊어져서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고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려고 합니다. 지난 2008년 영국의 무신론자 단체인 ‘영국인본주의협회’가 런던 중앙을 가로 질러 달리는 한 버스에 많은 돈을 주고 다음과 같은 광고를 실었습니다. “하나님은 없을 겁니다. 이제 걱정을 그만두고 삶을 즐기십시오.” 이들의 목적은 [종교가 없는 세상을 만들자!] 입니다. 당시 BBC 인터뷰를 보면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예수님에 대한 광고를 그만 보고 싶어한다고, 실증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전도도 그만 했으면 좋겠고, 전 세계에서 종교가 다 사라져 버리면 인류가 더욱 행복할 것 같다.”고 말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아직도 세상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예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이 세상에서 예수님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실제로 이 세상에 오셨다는 역사성을 부인하기 위해서 활동하는 사람들도 꽤 많습니다. 그들은 동정녀 탄생, 성탄절 이야기, 예수님의 기적들, 가르침, 십자가 죽음, 부활, 승천 등 모든 이야기를 다 새빨간 거짓이라고 말하고 모두 부인합니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의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은 무엇입니까? 먼저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존재를 지워버리려고 하는 저들의 헛된 시도를 비웃으십니다. “[2:4]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하나님은 인간의 연약함을 누구보다 잘 아십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은혜를 주시려고 하십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러한 마음을 모른 채, 피조물로서의 자신의 위치와 한계를 망각한 채, 하나님을 넘어트리려고 시도하고, 하나님이란 존재를 지워버리려고 한 것이죠. 주님의 통치를 거부하려는 저들의 노력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은 ‘비웃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비웃음’은 분노의 예비적인 형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존재를 부인하려는 시도에 대해서 침묵하시지 않으십니다.

이제 하나님의 비웃음은 세상을 향한 분노로 이어지게 됩니다. 5절 입니다. “[2:5]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그들을 놀라게 하여 이르시기를 하나님의 진노하심은 거룩한 진노입니다. 피조물이 자신을 만든 창조주 하나님을 향하여 반역죄를 저지른 악에 대하여 하나님의 의로운 성품이 반응한 것이 바로 진노 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분노는 하나님의 의로움의 표현입니다.

가끔 하늘에서 천둥 소리라 들리면 깜짝 놀랄 때가 있습니다. 우리 앞에서 번개가 치고 벼락이 떨어지면 그 현상이 얼마나 무섭겠습니까?  하나님의 진노가 그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무시하고 예수님을 부인하려는 시도를 하는 모든 악한 세력들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멸하여 버리십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나중에 그들의 흔적을 아무리 찾아봐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하나님께서는 악의 존재를 이 세상에서 완전히 멸하여 버리십니다. 이 세상의 끝을 기록하고 있는 요한계시록은 하나님께서 그 분을 대적하는 세상의 세력을 완전히 심판하시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세상은 지금까지도 하나님께서 이루시려는 일을 무마시키려고 하고, 하나님의 계획을 넘어뜨릴 시도를 해왔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렇게 할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비웃으시고 진노하사 그들을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다스리는 왕을 하나님께서 세워놓으셨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6절 입니다. [2:6]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시온은 예루살렘을 의미합니다. 시온은 하나님께 예배 드리며 섬기는 성전이 세워진 도시입니다. 하나님은 이 곳에 왕을 세우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시고 온 세상의 왕으로 세우신 분이 바로 그의 아들 예수님이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하며, 하나님의 뜻에 대항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왕으로 세우심으로써 하나님의 존재를 확실히 증거하고 계십니다.

7절부터 9절까지는 이 왕으로 오신 분에 대한 소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먼저 7절을 봅시다. [2:7]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하나님께서 택정하신 왕은 하나님의 아들 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유일한 아들,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바로 이 세상의 왕이십니다.

8-9절을 봅시다. [2:8-9] 8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9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먼저 8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메시아 되시는 예수님께 온 세상을 그에게 다스릴 수 있는 유업으로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 끝에서 끝까지 다 소유하고 계시는 주인 되십니다. 9절을 보면, 왕의 권세를 상징하는 철로 만들어진 지팡이 곧 철장을 손에 쥐고 계십니다. 그것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원수들을 마치 질그릇 곧 유리그릇 깨트리듯이 부서버림으로 심판하십니다. 우리 구주 예수님은 이 세상에 구원주로 오셨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다시 오시는 예수님은 온 세상을 심판하시는 심판주로 오실 것입니다. 온 우주를 다스리는 권세를 손에 쥐고 계신 예수님의 힘과 권세에 대항 할 수 있는 세력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 철로 된 지팡이 앞에 사기그릇처럼 무참히 깨어져 버리고 말 것 입니다.

분명 세상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예수님을 부인하고, 주님의 뜻을 반역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세상은 하나님의 무시무시한 심판으로 인해 멸망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은 그 한이 없으신 은혜로 죄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도록 초청하고 계십니다. “[2:10-11] 10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받을지어다 11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시인은 세상의 군왕들에게 지혜를 얻으라고 초청합니다. 참된 지혜는 무엇입니까? 온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또한 그 분께서 지금도 온 우주 만물과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고 계심을 믿음으로 고백하며 그 분을 두려움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온 세상과 내 인생을 주관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 속에서 피어나는 즐거운 마음 곧 기쁜 마음으로 주님을 모시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시인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세우신 왕 곧 기름 부은 받은 자,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고 이야기 합니다. 12절입니다. “[2:12]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창조하신 것을 아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구원자로 보내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내 영혼의 구세주,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하심으로 우리가 망할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여호와를 믿고 그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택하신 방법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는 죄사함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받는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날마다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자이시며 온 세상과 내 삶을 다스리고 계시는 주인 되심을 기도 속에서 고백하며 살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