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8.19. 자유로우신 하나님 (예레미야 18장 1-12절)

 

하나님은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레미야는 토기장이 집에서 하나님께서 주실 교훈이 무엇일까 기대하면서 주님의 명령을 따라 토기장이 집으로 내려갑니다. 예레미야가 도착했을 때, 때마침 토기장이는 한참 토기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2-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18:2-3] 2 너는 일어나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라 내가 거기에서 말을 네게 들려 주리라 하시기로 3 내가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서 본즉 그가 녹로로 일을 하는데3절에 나온 “녹로”란 도자기를 만들 때 쓰는 회전하는 원반을 의미합니다. 자동차 엑셀과 같은 판을 토기장이가 발로 밟으면 원반이 회전하게 되고, 그 원반 위에서 토기장이가 진흙을 원하는 그릇 모양으로 빚는 것이죠. 4절 이어서 봅시다. “[18:4]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터지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토기장이가 진흙을 가지고 그릇을 만드는 도중 그가 의도하지 않은 대로 진흙의 형상이 바뀌어 버렸습니다. 그러자 토기장이가 어떻게 합니까? 그 진흙을 뭉개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자신이 원하는 그릇의 형태로 빚어갑니다. 토기장이가 진흙을 가지고 주둥이가 긴 병을 만들든지, 납작한 그릇을 만들든지 다 토기장이의 마음입니다. 누가 그를 보고 왜 그릇을 그렇게 만드느냐고 뭐라고 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토기장이가 진흙을 가지고 자기의 의도대로 이런 모양, 저런 모양으로 만들기도 하고, 진흙 모양이 잘못되면 다 뭉개도 처음부터 다시 하는 것은 다 그의 재량입니다.

하나님은 토기장이가 진흙으로 그릇을 빚는 작업을 예레미야가 지켜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제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18:6]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토기장이가 하는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손에 있느니라 토기장이 비유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토기장이는 누구를 상징합니까? 하나님입니다. 진흙은요? 이스라엘 입니다. 예레미야가 지켜본 대로 토기장이는 진흙을 가지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다. 토기장이는 진흙을 가지고 자신이 원하는 그릇을 만들죠? 진흙은 아무것도 주장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이와 같습니다. 토기장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진흙과 같은 이스라엘을 그 분의 뜻대로 행하실 수 있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범죄하면 그들을 멸하실 수 있는 권세도 있으시고, 그들이 죄를 회개하고 돌이키면 언제라도 다시 일으켜 세우실 수 있는 권한이 있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주인, 주권자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 내용이 7-10절 내용입니다. 눈으로 한 번 말씀을 보세요. [18:7-10, 새번역] 7 내가 어떤 민족이나 나라의 뿌리를 뽑아내거나, 그들을 부수거나 멸망시키겠다고 말을 하였더라도, 8 민족이 내가 경고한 죄악에서 돌이키기만 하면 나는 그들에게 내리려고 생각한 재앙을 거둔다. 9 그러나 내가 어떤 민족이나 나라를 세우고 심겠다고 말을 하였더라도, 10 백성이 나의 말을 순종하지 않고, 내가 보기에 악한 일을 하기만 하면, 나는 그들에게 내리기로 약속한 복을 거둔다.’” 토기장이가 진흙을 다루는 장면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의 절대 주권]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죄악에 대하여 심판을 내리실 수도 있고, 그들이 죄를 회개하고 돌이키면 심판을 취소할 수도 있는 절대 주권을 갖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라를 건설하거나 심을 수도 있으시고, 뽑거나 파괴하거나 멸하실 수도 있으십니다. 따라서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 앞에서 “하나님 왜 이렇게 하세요?”하고 감히 대들 수 없습니다. 우리는 토기장이의 손에 붙들린 진흙일 뿐임을 겸손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 같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다음과 같이 표현 했습니다. “[10:15, 새번역] 도끼가 어찌 찍는 사람에게 뽐내며, 톱이 어찌 켜는 사람에게 으스대겠느냐? 이것은 마치 막대기가 막대기를 잡은 사람을 움직이려 하고, 몽둥이가 나무 아닌 사람을 들어 올리려 하는 것과 같지 않으냐!” 도끼나 막대기나 몽둥이가 그것을 잡아 들어 쓰는 사람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의 피조물인 우리들이 창조주 되시는 하나님께 함부로 입을 열 수 없습니다. 또한 이사야 선지자도 예레미야 선지자와 같이 토기장이 비유를 들어 말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토기장이 되시는 하나님을 마치 진흙처럼 여겼다고 고발했습니다. “[29:16] 너희의 패역함이 심하도다 토기장이를 어찌 진흙 같이 여기겠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어찌 자기를 지은 이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나를 짓지 아니하였다 하겠으며 빚음을 받은 물건이 자기를 빚은 이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총명이 없다 하겠느냐 인간이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 잘 모르시네, 어쩜 이렇게 하세요? 이렇게 하셨어야죠!” 이렇게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어불성설인지, 그리고 그와 같은 태도가 하나님을 향한 모욕이고 큰 죄악임을 고발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토기장이의 모습을 보게 하심으로써 이사야 선지자의 메시지와 같은 메시지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달하게 하신 것입니다. 1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11 그러므로 이제 너는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보라 내가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며 계책을 세워 너희를 치려 하노니 너희는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키며 너희의 길과 행위를 아름답게 하라 하셨다 하라이제 예레미야 선지자가 이스라엘에게 전달할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진흙 같은 이스라엘이 토기장이 되시는 하나님 앞에서 순종하고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면 하나님께 복을 받아 번성하고 형통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토기장이 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불순종하고 배역의 길을 걸어가게 되면 진흙인 이스라엘은 재앙을 받아 뽑히고, 깨뜨려지고, 멸망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 입니다. 예레미야는 이와 같이 삼척동자도 이해할 수 있는 진리를 유다 백성들에게 전해주었습니다. “이제 진흙인 유다 백성들아, 너희는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키라! 토기장이 되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라! 너희의 길과 행위를 아름답게 하여라!” 그러나 유다 백성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했습니다. 예레미야의 메시지에 냉담하고 강팍하게 대답했습니다. “12 그러나 그들이 말하기를 이는 헛되니 우리는 우리의 계획대로 행하며 우리는 각기 악한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하리라 하느니라“그럴 필요 없소. 우리는 지금 이대로 우리 생각대로 살아갈 것이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악한 마음에서 나오는 고집대로 행동하겠소!” 12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레미야의 메시지를 듣고 “이는 헛되다”고 반응합니다. 이 말은 ‘소망 없는 말이다’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산다고 해서 무슨 소망이 있습니까?”, “도대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이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이렇게 반응했다는 겁니다. 이와 같이 반응하는 동족 남방 유다 백성들을 보며 선지자 예레미야는 깊은 절망감에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우리 영혼과 삶에 유익하다는 것을 믿음으로 시인하고 받아들이며, 정말 말씀을 듣고 그대로 순종하여 살아가려고 애쓰고 있습니까? 아니면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도대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간다고 해서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하고 속으로 반응하며 여전히 자신의 고집대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진흙입니다. 진흙은 토기장이 되시는 하나님의 뜻에 거부하게 되면 다시 뭉개집니다. 심판과 벌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진흙인 우리가 토기장이 되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의도대로 살아갈 때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빚어지게 됩니다. 이와 같이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날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갈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