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7.16.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요나 2:1-10)

 

지난 주 우리는 물고기 뱃속에 들어간 요나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는 니느웨로 가서 회개의 메시지를 선포하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피해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가다 풍랑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된 요나로 인해 이 재앙이 찾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선원들은 요나를 배 밖으로 던졌습니다. 요나는 깊은 바다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강한 비바람이 몰아치고, 파도가 일렁이고, 풍랑이 몰아치던 깊은 바다에 빠지던 요나는 이제 곧 자신이 죽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먼저 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2:3]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에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요나는 파도와 큰 물결이 자신을 둘러쌌다고 말합니다. 바다 속에서 눈을 떠 보니까, 요나 자신은 물결 치는 바다 표면에서 멀리 떨어져 바다 속 깊은 곳으로 빠지고 있었습니다. 5절을 봅시다. “[2:5] 물이 나를 영혼까지 둘렀사오며 깊음이 나를 에워싸고 바다 풀이 내 머리를 감쌌나이다 요나가 계속 깊은 바다 속으로 가라 앉는 장면을 상상해 보십시오. 5절에 나오는 ‘깊음’이란 단어는 깊은 바다 즉 심연을 의미합니다. 게다가 요나는 바다 풀이 자신의 머리를 감쌌다고 했습니다. 바다 밑 바닥에서 자라는 해초를 의미합니다. 또한 요나는 물이 그의 육체 뿐만 아니라 영혼을 둘러싸고 있다고 표현했습니다. 이는 자신의 생명이 다시 물 위로 나갈 수 없을 만큼 깊은 바다에 완전히 잠겨 있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6절 보십시오.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여기서 요나가 말하는 ‘산의 뿌리’라는 것은 해저 산맥을 의미합니다. 바다 바닥을 의미하는 것이죠. ‘빗장’이란 말은 옛 시대에 두 문을 닫고 잠글 때 쓰는 긴 막대기를 의미합니다. 자신이 아무리 바다 위로 올라가려고 힘을 다해도 올라갈 수 없도록 땅이 자신을 빗장치듯 막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즉 이제 요나의 목숨은 바다 속에서 수장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지난 주 요나서 1장을 통해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고 도망친 이후 그의 인생이 계속해서 내리막의 연속이었다는 것을 살펴 보았습니다. 요나서 2장에서는 그 모습이 더욱 더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이죠.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 도망친 요나는 결국 바다 밑바닥까지 내려가게 됩니다.

이 때 요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었죠? 요나서 1장 17절을 봅시다. [1:17]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밤낮 삼 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으니라하나님께서 큰 물고기를 예비하셔서 깊은 바다에 빠진 요나를 삼키게 만드셨고, 그 결과 요나는 밤낮 삼 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물고기 뱃속에 들어간 요나가 3일 뒤면 물고기 뱃속에서 나온다는 것을 다 알고 이 이야기를 보고 있지만, 요나 자신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가 어찌 3일 뒤에 물고기가 자신을 뭍 밖으로 뱉어 버릴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따라서 요나가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컴컴한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요나는 자신이 그 사방이 암흑 뿐이 춥고 으스스한 그 물고기 뱃속에서 세상 그 누구도 보지 못하는 외로운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피해 도망치는 인생의 종착점이 바로 물고기 뱃속 입니다. 요나는 자신이 갇혀 버린 물고기 뱃속을 ‘무덤’ 또는 죽은 자들이 가게 되는 ‘지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절 말씀을 잠깐 보십시오. “[2:2]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여기 중간에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라는 표현 있죠? 여기서 그가 사용한 ‘스올’이란 단어가 바로 지옥, 음부, 무덤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입니다. 물고기 뱃속에 들어간 요나는 이제 자신의 처지가 죽은 자나 다름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인생의 가장 밑바닥,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 놓여 있는 겁니다. 바로 이 시점이 정말로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누구나 살아가다 보면 인생의 밑바닥을 경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던 것처럼, 어떤 분들은 가난이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 살고 계신 분들도 있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절망에 놓여 있고, 자신의 처지가 무덤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분들도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질병이란 이름의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서 살고 계신 분들도 있습니다. 너무 통증이 아프고 아파 살아도 죽은 것처럼 살아가는 분들도 있습니다. 분쟁의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 살아가는 분들도 있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배신 당하고 미움 당하여 외로움을 느끼고 분노와 아픔과 눈물 가운데 살아가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 밖에도 우리들은 저마다 다양한 종류의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게 됩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 아직 내가 코로 호흡하며 살아 숨쉬고는 있지만, 물고기 뱃속의 요나의 고백처럼 “이미 나의 삶은 스올의 뱃속에 있다. 즉 무덤 속에 들어가 있는 존재나 다름 없다. 살아 있어도 매일매일이 지옥이다.”라고 느낄 만큼 인생의 절망적인 순간을 맞이한 분들도 있을지 모릅니다. 지금 그렇게 느끼고 계시다면 오늘 말씀은 바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시는 메시지 입니다.

내가 지은 커다란 죄로 인해 물고기 뱃속에 들어오신 분이거나, 자신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경위로 인해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물고기 뱃속에 들어와 계신 분이 어도 상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물고기 뱃속에 있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선택의 자유가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선택입니까? 내 주변 상황과 환경에 대한 내 자신의 반응의 선택입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태계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학자인 [빅터 프랭클]은 독일 나치 시절 유태인 수용소에 갇혀 비참한 일들을 경함하게 됩니다. 그의 가족들과 아내가 수용소에서 가스실로 보내져 죽게 되고, 그 자신도 언제 가스실로 보내질지 모르는 극한의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말 그대로 죽음을 앞두고 있는 그 공포스럽고 두려운 순간 속에서도 빅터 프랭클은 나치가 자신에게서 빼앗아 갈 수 없는 ‘인간이 가진 마지막 자유’라고 불리는 한 가지 상태를 지각하게 됩니다. 아무리 독일 나치 군사들이 그의 주변 환경 전체를 통제하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그의 육체를 다룰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빅터 플랭클 자신의 생각까지는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죠. 즉 인간이 가진 생각의 영역은 나치도 강압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것이며, 따라서 나치 수용소의 비인간적이고 끔찍한 살육 속에서도 자신은 이 자극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의 자유가 주어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빅터 프랭클]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 공간이 있다. 그 공간에는 자신의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힘이 있다. 그리고 우리의 반응에 따라 우리의 성장과 행복이 좌우된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어떤 극적인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그 상황과 환경에 대해서 내 자신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에 대한 주도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그 선택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인생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1800년대에 미국에서 태어난 [일라이어어스 하우]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매우 가난한 방앗간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넉넉치 않은 가정 형편 때문에 그가 6살이 되자마자 부모님을 도와 일을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태어날 때부터 병약했고 힘든 일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성인이 되어도 공장에 나가 일을 하고 싶었으나, 건강 악화로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와 함께 살아야 했습니다. 그는 21살에 결혼했고, 자녀 셋을 낳았습니다. 나이는 젊었으나 병든 남편으로 인해 그의 아내는 가족들을 먹여 살리느라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은 시간까지 바느질을 해야 했습니다. 자기 자신의 신세가 너무 처량한 거에요. 태어날 때부터 가난한 가정, 병약한 몸으로 일자리도 얻지 못하고, 아내와 자녀들도 삶이 어렵습니다. 그러던 중 하루는 하우가 침대에 누워 아내가 천천히 바느질 하는 모습을 지켜 보게 됩니다. 그는 힘들게 가족을 위해 바느질 하는 아내를 보며 속으로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손으로 바느질 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바느질 할 수 있는 기계가 발명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하우는 몇 시간 동안이나 바느질 하는 아내의 손을 지켜 보았습니다. 그 후 그는 끊임 없는 도전과 실패를 거듭하여 결국 바느질 하는 기계를 발명하게 됩니다. 바로 ‘재봉틀’을 만들게 된 것이죠. 병약하여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있던 남편이, 자신과 세 아이를 먹여 살리기 위해 하루 몇 시간 동안 바느질 하느라 지친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서 고민하던 남편이 만든 기계가 바로 재봉틀 입니다. 재봉틀을 발명한 [일라이어스 하우]라는 사람의 일화 입니다. 그는 가난, 질병, 낮은 교육 수준이란 여러가지 악조건들 속에서도 인생의 아름다운 꽃을 피워낸 것이죠. 이처럼 인간은 힘들고 어려운 상황과 환경 속에서 살아간다고 무조건 다 ‘악화일로’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일라이어스 하우의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이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전혀 다른 반응을 통해 자신의 삶을 바꾸어 간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가난의 물고기, 질병의 물고기, 관계 속 불화의 물고기, 외로움의 물고기 등 여러가지 인생의 어려움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어떠한 반응을 보이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반응을 보이기를 원하실까요?

 

  1. 물고기 뱃속에서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의 밑바닥을 경험했을 때, 내 삶의 가장 낮고 절망적인 자리에 처했을 때, 혼자라고 느껴지는 그 순간에도 여전히 우리는 하나님을 찾고 또 찾을 수 있습니다. 1-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2:1-2] 1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2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앞서 제가 2절에 나오는 ‘스올’이 히브리어로 무슨 뜻이라고 했죠? ‘스올’은 ‘무덤’ 또는 ‘지옥’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인생은 이미 끝이라고 생각했어요. 아무도 자신을 도울 수 없고, 이제는 이렇게 실패자로서 쓸쓸하게 허무하게 끝나는 것이 자신의 인생이라 생각했을 겁니다. 어쩌면 물고기 뱃속 요나의 두 눈에서는 외로움과 두려움 황망함에 눈물을 왈칵 쏟고 울고 있었는지도 몰라요.

그러나! 그 어두 컴컴한 물고기 뱃속에 있던 요나는 어떠한 반응을 보였습니까? 성경 가지고 계신 분 요나서 2장 1절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밑줄 그으십시오. 2절에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밑줄,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밑줄! 기도하여/불러 아뢰었더니/부르짖었더니 다 같은 말입니다. 요나가 하나님을 찾고 또 찾았다는 것입니다. 저를 한 번 따라해 주시겠습니까? “물고기 뱃속에서도 기도할 수 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기도하지 못할 종류의 물고기 뱃속은 없습니다. 우리가 어떤 종류의 고난에 처해 있다하더라도, 어떤 절망적인 순간을 마주하고 있을지라도 여전히 우리는 하나님을 찾고 또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못할 상황은 없습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때, 자신의 영적 상태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봅시다.  7절 입니다. “[2:7]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사람이 육신이 피곤하면 잠을 많이 자면 됩니다. 몸이 아프고 괴로우면 맛있는 음식 많이 먹고, 쉼을 가지면 회복 됩니다. 그런데 몸이 아니라 영혼이 피곤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러분 여기서 영혼이 피곤하다는 표현은 숨 쉴 수 조차 없을 정도로 힘든 상황을 의미합니다. 어린 시절 수영장이나 목욕탕 같은 곳 가서 친구들 하고 누가 더 오래 숨 참나 잠수 대결 해 보신 적 있으십니까? 물 속에 들어가서 숨을 참고 있다가 “이제 더 이상 못 참겠다”하고 물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순간 있죠? 그 때 누군가가 갑자기 내 머리와 어깨를 꽉 누르고 못 나가게 하려고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살고자 몸부림 치지 않겠습니까?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라는 말이 그런 상황입니다. 질식해버릴 것처럼 숨 막히고, 눈 앞이 아찔한 절망적인 상황입니다. 그 절박한 심정 속에서 요나는 하나님을 찾고 또 찾았습니다. 오늘 인생이 숨막힐 정도로 힘들다고 느껴지시는 분 계십니다. 물 밖으로 나가고 싶은데, 인생의 짐이 자꾸만 나를 짓눌러 나가지 못하고 몸부림치고 계신 분 있으십니까? 바로 지금이 여호와 하나님을 찾고 또 찾을 때 입니다. 인생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절망적인 순간일지라도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야 말로 가장 지혜로운 길입니다.

 

  1. 고통 가운데 주님을 찾으면 주님께서 응답하십니다.

요나가 이렇게 지옥 같은 상황, 죽을 것 같은 처지에서 하나님을 찾고 주님께 부르짖으며 기도하자 어떠한 일이 벌어졌습니까? 2절 말씀 다시 봅시다. “2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을 불렀더니, 응답하셨습니다. 스올의 뱃속, 무덤 속에 갇힌 것 같은, 지옥 같은 상황 속에서 주님을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요나의 음성을 들으셨습니다. 기도하기에 너무 늦은 순간은 없습니다. 7절도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2:7]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너무 힘들고 지친 그 순간, 인생이 나를 목조여 오는 듯한 그 긴박한 순간에 요나가 여호와를 생각하고 주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을 찾았을 때, 그의 기도가 주의 성전에 도달하게 됩니다.

성경의 개념으로 보면, 7절에서 말하는 “주의 성전”은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임재하고 계시는 하늘 성전 입니다. 즉 개념적으로 보면,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곳이 주님의 성전입니다. 지금 요나가 어디 있죠? 바다 가장 깊숙한 곳, 맨 밑바닥을 돌아 다니는 큰 물고기 뱃속에 있습니다.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 내려간 상황이며, 물고기에게 삼킴을 당한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그의 기도는 이 세상 가장 높으신 곳에 계시는 하나님의 하늘 보좌까지 닿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드리는 기도까지도 들어 주십니다. 우리가 주님께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어 버렸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 드리는 기도까지도 다 들어 주십니다. 우리의 기도가 진실하기만 하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가장 낮은 곳인 바다 밑 바닥에서, 기도가 올려지지 않을 것 같은 물고기 뱃속이란 상황 속에서 기도했는데, 가장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의 보좌에 기도가 이르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기도는 모든 상황과 공간을 초월하여 역사 합니다.

 

  1. 주님께서 깊은 바다 속에서 생명을 건져 주십니다.

[욘2:6]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욘2:10]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말씀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

[욘2:9]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하니라

위의 말씀들은 우리가 가장 깊은 나락에 빠졌을 때, 우리의 상황이 갇히거나 사방이 막혔다고 느낄 때에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능히 구원해 주신다 것을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께서 물고기에게 요나를 뭍으로 뱉어내라고 명령 하셨던 것처럼, 전능하신 하나님은 언제든지 우리의 상황을 변화 시키실 수 있습니다. 우리의 역할은 하나님 아버지를 찾고, 찾고, 또 찾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