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6.8. 죄를 깨닫게 하는 율법 (로마서 7:1 – 7:13)

율법에는 두 가지의 기능이 있습니다. 첫째로 율법에는 죄를 깨닫게 하는 기능이 있고, 둘째로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 기능을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율법을 ‘거울’과 ‘몽학선생’으로 비유해서 설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율법은 거울과 같습니다. 거울은 우리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비춰줍니다. 거울을 보기 전까지는 내 자신의 얼굴이나 머리에 뭐가 묻어 있는지 잘 알 수 없습니다. 만일 거울이 없었다면 우리의 일상은 많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아침을 먹다 턱밑에 묻은 밥풀을 하루 종일 붙이고 다닐 수도 있습니다. 두 이 사이에 낀 고추가루나 이에 김 조각이 붙어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사람들을 보며 환하게 웃는 일이 일어날수도 있겠지요. 아침에 자고 일어나서 머리가 얼마나 헝클어졌는지, 간밤에 얼마나 큰 까치집이 지어졌는지 알 수 없을 것입니다.

다행이 우리에게는 거울이 있습니다. 우리는 거울을 통해 비쳐진 내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얼굴이나 옷에 묻은 이물질을 발견하게 되고, 그것을 띄어 내거나 물로 씻을 수 있습니다. 또한 거울 속에 비췬 헝클어진 머리를 본 후 말쑥하게 빗으로 정돈할 수 있습니다.

거울이 없으면 우리 자신의 모습을 올바르게 판단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율법이 없을 때는 죄를 지으면서도 죄가 죄인지, 자신이 죄인이지 잘 모르는 상태에 머물게 됩니다. 그러나 이제 율법을 깨닫게 되면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바를 알게 되어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양심의 가책을 받게 됩니다. 거울이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얼굴이나 몸에 더러운 이물질이 묻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해주듯이, 율법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로마서 7장 7절과 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롬 7:7)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롬 7:9)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율법이 죄를 깨닫게 해주는 기능이 있다고 해서 율법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거울을 보기 때문에 우리 모습이 더러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거울은 우리의 있는 모습을 그대로 비춰줄 뿐입니다. 율법도 마찬가지 입니다. 율법은 우리에게 죄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에게 있는 죄를 보여주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우리가 이침에 일어나서 거울을 보고 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우리 머리와 얼굴이 깨끗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거울은 그저 우리의 현재 상태를 비춰줄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해주는 기능은 가지고 있습니다만, 그 이상의 일, 즉 우리를 깨끗하게 하는 일은 하지 못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주신 율법처럼 제사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은 죄를 용서해 주시는 방법을 주셨습니다만, 이는 임시방편적인 요소로 지은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한 처방이었을 뿐, 죄를 이길 수 있는 힘은 율법 안에 주어져 있지 않습니다. 이러한 면에서 율법이 가진 기능은 거울과 매우 유사합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통해 죄로 인해 더러워진 자신의 영혼의 상태를 깨닫게 됩니다.

둘째로, 율법은 몽학선생(초등교사)과 같습니다. 몽학선생이란, 어린아이를 돌보고 보호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1세기 로마 사회에서는 지체 높은 사람의 경우 자기 자녀를 가르치기 위한 가정 교사를 따로 두었습니다. 몽학선생은 어린 아이에게 초등학문을 가르치며 옷 입는 법, 식사 예절, 사람 관계에서 지켜야하는 예의를 가르쳤습니다. 비록 직책은 스승이지만, 그는 아버지와 같은 권위를 가지고 아이를 양육하고 훈계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가 말을 안 들으면 혼을 내기도 했습니다. 몽학선생은 어린아이가 올바르게 성인으로서 자랄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는 길라잡이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흘러 그 아이가 성인으로 자라게 되면 이제 몽학선생은 더 이상 아이에게 아무런 권한을 갖지 못하게 되고, 아이는 성인으로서의 삶을 살게 됩니다. 갈라디아서 3장 24-2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갈 3: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갈 3:25)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 율법은 몽학선생과 같이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함으로써 우리의 영혼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길라잡이의 역할을 해 줍니다. 그러나 아이가 자라나면 더 이상 몽학선생이 아이를 훈육하거나 어떻게 살라고 지시할 수 있는 권한을 갖지 못하게 되는 것처럼, 율법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지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이 되면, 더 이상 율법의 지배 아래 놓이지 않게 됩니다.

이처럼 율법에는 두 가지 기능이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각 기능은 ‘거울’과 ‘몽학선생’으로 비유 해 볼 수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율법이 가진 두 가지 기능을 정리해볼까요? 첫째로 율법은 거울처럼 우리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해 줍니다. 둘째로 율법은 몽학선생처럼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해 줍니다. 율법의 기능을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율법의 두 가지 기능은 율법이 가진 한계와도 연결 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거울의 비유를 생각해 봅시다. 거울이 사람의 모습은 비쳐도 그 거울 속 사람을 깨끗하게 만들어 줄 수 없듯이 율법은 인간에게 자유를 주지 못합니다. 단지 율법은 우리의 현재 상태만을 깨닫게 할 뿐입니다.

범죄한 사람에게 율법은 말합니다. “당신은 이런이런 일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죄 입니다. 따라서 당신은 죄인 입니다.” 율법은 우리에게 죄를 알려줌으로써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는 해줍니다. 그러나 율법은 우리에게 죄를 이길 힘은 공급해 주지 못합니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우리가 죄를 짓지 않고 율법의 요구대로 살려고 애를 쓸수록 더욱 죄 앞에서 무력한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마치 급속도로 떠내려가는 조류와 같은 방향으로 수영을 할 때는 물결이 얼마나 거센지 잘 깨닫지 못하다가, 조류를 거슬러 올라가려 할 때는 그 조류가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 비로서 깨닫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 입니다. 율법을 통해서 죄를 깨닫기는 해도, 결국에는 그 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 드렸듯이, 거울을 본다고 해서 사람이 더 더러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거울은 단지 그 사람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나타낼 뿐 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율법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율법은 단지 우리 영혼의 현 실태와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줄 뿐 입니다. 그러나 율법을 통해 자신의 죄인 됨을 깨닫게 된 인간은 아무리 자기 스스로 죄로부터 벗어나려고 애를 써도 죄를 이길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깊은 고통과 절망을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율법은 우리에게 복음의 필요를 깨닫게 하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율법 자체에는 죄를 이길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율법은 죄의 사슬에 매여서 죄의 노예로 살아가는 우리를 죄로부터 해방시켜 자유케 할 그 어떤 힘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그리하여 율법은 우리에게 구원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만들어줍니다. “그래 나 혼자서는 이 무거운 죄를 이겨낼 수 없구나. 이 죄에서 나를 건져 주시고 구원해 주실 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없다.” 율법은 우리로 하여금 죄 앞에서 자신의 무력함을 고백하게 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의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율법은 죄의 지배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영원토록 죄로부터 자유 할 수 없는 것일까요? 율법이 줄 수 없었던 죄로부터의 참 자유를 무엇이 우리에게 줄 수 있을까요? 이 세상에서 우리를 죄로부터 자유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고 그 죽음 이후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으며, 이후에 하나님께서 정하신 날에 이 땅에 다시 도래하실 것이란 역사적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또한 이 역사적 믿음을 기초로 예수님께서 나의 영혼의 유일한 구원자가 되시고 내 모든 삶의 주인 되신다는 이 신앙고백이 있을 때 우리는 이것을 가리켜 복음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복음에 대한 인간의 믿음은 그의 영혼을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든 죄로부터 자유케 하고, 천국에 이르게 하는 구원을 주신다는 것이 바로 복음의 실체 입니다. 바로 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우리에게 참된 자유를 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대속하심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우리가 참 자유를 얻도록 성령을 주셨습니다. 그로 인해 우리를 지배하던 죄의 절대적인 지배는 끝이 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