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6.10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들 (로마서 8장 1-17절)

 

성령을 의미하는 ‘보혜사’란 단어는, “우리 옆에서 변호해주는 대변자, 상담자, 돕는 자”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가시며 우리에게 보내주신 보혜사. 그 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이 본문을 통해 예수님께서 보내주신 보혜사 성령 하나님께서 하시는 사역들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대변자 (Advocator):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심 (v15-16)

첫째로, 성령님은 ‘대변자’(Advocator)로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십니다. 1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8:16)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우리 모두는 법정에 서 있는 피고인과도 같습니다. 사단은 냉혈한 검사가 되어 우리를 고소합니다. 그가 들고 있는 서류에는 우리가 지난 날 지은 죄들이 조목조목 적혀 있습니다. 사단은 이 죄들을 하나하나 읽어가며 우리가 결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고 정죄합니다. 그는 우리가 죄를 지은 죄인이란 사실을 계속해서 부각시킵니다. 이런 사단의 공격을 듣다 보면 우리 마음에 정죄의식이 떠오릅니다. 정죄의식이란, 스스로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너, 그런 죄를 짓고도 어떻게 네가 하나님의 자녀일 수 있느냐? 네가 어떻게 그리스도인이냐?” 사단은 우리에게 이러한 정죄의식을 심어줍니다.

사단의 날카로운 공격을 우리 스스로 변호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 재판장에 우리의 변호를 맡아주고 계신 대변인이 있습니다. 그가 바로 보혜사 성령님이십니다. 성령께서는 사단의 정죄의식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시고 또 변호해 주십니다. “아무개 집사가 죄를 지은 것은 맞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그 죄값을 대신 치르었으므로 그를 결코 정죄할 수 없다.” 이 얼마나 든든한 대변인입니까?

이 대변인의 입장을 잘 나타내고 있는 본문이 바로 로마서 6장 14절 말씀입니다.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사단은 항상 ‘법’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하나님의 은혜’를 말씀합니다.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법으로 대하시지 않고 은혜로 대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그의 죄 때문에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지 않아도 됩니다. 이제 더 이상 정죄의식의 포로가 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버림 받을 이유가 결코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법 아래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은혜 아래 있습니다.

우리가 만약 율법 아래 있었다면 우리는 율법의 저주를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될 때 일어나는 놀라운 사건이 바로 우리가 더 이상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이 바로 로마서 8장 1-2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어떤 사람에게 정죄함이 없습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 없습니다. 그들은 ‘죄와 사망의 법’ 즉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생명의 성령의 법’ 즉 ‘은혜’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는 것은 마치 우리 가정의 자녀들이 부모의 법 아래 살고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살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만일 자녀들이 ‘법’ 아래 살고 있다면 그들은 잘못했을 때마다 법대로 처벌받아야 합니다. 법에는 결코 용서가 없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자녀들을 대할 때 법대로 합니까? 은혜로 대합니까? 은혜로 대합니다. 그래서 자녀들이 실수해도 부모님은 이해해 줍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은혜 아래에 살고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용서해줍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게 될 때 일어나는 사건이 바로 이것입니다. 법 아래에 있던 우리가 이제는 은혜 아래로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는 죄로 인한 정죄함에서 해방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법으로 정죄하시지 않으시고, 은혜로 대해주십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단은 거짓의 아비이기 때문에 우리를 자꾸만 속입니다. “너는 아직 법 아래 있다!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다! 하나님 아버지도 너를 원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오늘 본문16절 말씀처럼 성령은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십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변해 주십니다. “아니다. 너는 내 아들이다.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이처럼 성령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해 주십니다. 성령님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해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부를 수 있는 새로운 호칭이 하나 있습니다. 15절 말씀을 보니,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우리는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릅니다. 우리가 보는 한글성경에는 아버지란 단어가 쓰여있습니다만, 원래 아람어에는 높임말이 없습니다. 우리 말의 아빠와 똑같습니다. 양자의 영을 받은 우리가 하나님을 뭐라고 부릅니까? “아빠”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대단한 사건입니다. 본래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 황송한 일이라 생각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도 않았습니다. 심지어 전승에 의하면 성경을 기록하는 서기관들도 하나님의 이름을 종이에 기록할 때에는 목욕을 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황송한 일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감히 부를 수 없어서 ‘여호와’라고 부르지 않고 ‘아도나이’ 라고 바꾸어 불렀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우리가 더 이상 종의 영이 아니라 양자의 영을 받았기에, 성령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해주심으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을 ‘아빠’라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주기도문이 어떻게 시작됩니까? “하늘에 계신 우리” 뭐에요? 아버지여… 그런데 이 표현도 우리나라말로 바꿔서 아버지여입니다. 원래 예수님께서 사용하셨던 아람어의 표현을 그대로 번역하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빠” 입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전지전능, 영생불멸, 무소부재하신 이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 이것은 엄청난 특권입니다. 바로 보혜사 성령께서 ‘대변자’가 되어 우리가 이 놀라운 특권의 주인공인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해주십니다.

 

  1. 상담자(Counselor): 우리의 삶을 인도하심 (v14)

성령님께서 하시는 사역 두 번째, 보혜사 성령님은 상담자로서 우리의 삶을 인도해 주십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일이 있고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의 시작이 다 우리의 생각에서부터 비롯됩니다. 그래서 마음과 생각을 지키는 것이 생명의 근원입니다. 그러나 죄악 된 우리의 본성은 자꾸만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이것이 바로 육신의 생각입니다. 우리 본문 6-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육신의 생각은 사망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해야 이 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영의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까? 바로 9절에 그 답이 나와 있습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께서 육신의 생각에서 영의 생각으로 인도하십니다. 그 결과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죄악 된 삶을 멈추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님께서 하시는 사역입니다.

보혜사란 단어는 또한 Counselor 상담자란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을 때 찾아야 할 상담자가 바로 상담자 성령님이십니다. 14절 말씀을 보니 (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영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삶의 순간순간마다 성령님께서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해 주시기를 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상담자이신 성령님께서 우리의 삶을 복된 길로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 중 분명 기도는 하는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못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서 이런 인도를 못 받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아무리 그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라 해도 육신의 생각에 사로 잡혀 있으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합니다. 육신의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없습니다.

라디오가 고장 나지 않아도 잘못된 주파수를 맞춰놓으면 방송을 들을 수 없습니다. 시끄러운 잡음만 들립니다. 마찬가지로 죄로 인하여 영적 주파수가 어긋나면 우리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듣지 못하게 됩니다. 그럼 우리가 다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영적 주파수를 다시 맞추어야 합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영적 주파수를 맞출 수 있습니까? 한 번 따라 해 보시겠습니다. “영혼의 호흡”

영혼의 호흡은 더러운 죄를 내뿜고 깨끗한 것을 들이마시는 일로서 믿음으로 끊임없이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체험하는 운동입니다. 우리가 호흡을 어떻게 합니까? 내쉬고 또 들이마십니다. 영혼의 호흡도 똑같습니다. 먼저  내쉬는 일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죄를 고백하는 것이 바로 내쉬기 입니다. 나의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용서하심에 감사하고, 회개로 태도와 행동을 바꾸는 일이 바로 내쉬기 입니다. 이제 내쉬는 일을 했으면 들이마시는 일을 해야 합니다. 들이마시는 일은 우리의 마음과 삶을 주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성령 충만을 구하고, 성령께서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고 능력 주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죄의 고백을 통한 내쉬기와 성령을 구하는 들이쉬기 이것이 바로 “영혼의 호흡”입니다. 물고기가 물에서 숨을 쉬지 않고 살 수 없듯이, 그리스도인 역시 영혼의 호흡 없이 영적인 생활을 살 수 없습니다. 혹시 아무리 기도해도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는 분 계십니까? 우리의 기도가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기도의 주파수가 잘 못 맞춰져 있어서 그런 것입니다. 이 영혼의 호흡을 하십시오. 죽은 영혼을 깨우십시오. 그럴 때 다시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성령님은 상담자가 되셔서 우리의 삶을 인도해 주십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넘어져도 실수해도 비난하거나 책망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오히려 우리를 격려하시고 위로하시며 우리의 연약함을 안타까워하시는 마음으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고 계십니다. 이 분이 바로 우리의 연약함을 돕는 자 보혜사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을 떠나시며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성령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시며 또한 영원토록 함께하십니다. 성령님은 대변자로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십니다. 성령님은 상담자로 우리의 삶을 인도해주십니다. 성령님은 돕는 자로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성령께서 지금도 우리 속에 내주하고 계시며, 늘 우리와 함께하심을 기억하시고 보혜사 성령 하나님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가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