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5.9. 비느하스의 열심 (민수기 25장 1-18절)

복술가 발람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하자 모압 왕은 발람에게 화가 났습니다. 이스라엘을 저주하라고 불러왔건만, 그가 저주는 안하고 백성들을 축복하고 있으니 화가 단단히 나버렸습니다. 발람은 모압 왕에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주하지 않은 자를 제가 어떻게 저주하겠습니까?” 당대 최고의 복술가로 알려진 발람이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것을 포기하자, 모압 왕은 “이제 다 틀렸구나:하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때, 발람은 모압 왕에게 매우 비밀스러운 사실 한 가지를 말해주었습니다. “왕이시여, 이스라엘을 외부에서 저주하여 파괴할 수는 없지만, 그들이 내부에서 파괴하는 한 가지 방법이 있기는 합니다.”  발람이 발락에게 전해 준 이스라엘을 무너뜨리는 방법… 그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 내용은 오늘 우리가 읽은 민수기에 나와 있지 않고, 신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 2장 14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스라엘이 스스로 하나님의 저주를 받는 방법은 바로 하나님이 아닌 다른 우상에게 제사를 드려 영적 음행의 죄를 짓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경건하고 충성스러운 동안에는 하나님께서 저들의 보호막이 되시고 방패가 되어 주셔서 결코 저주할 수 없고 멸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저들이 우상숭배를 하고 영적 음행을 저지르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스스로 멸망하게 됩니다. 발람은 모압 왕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고 음행을 행하는 것이 이 백성을 무너뜨리는 유일한 전략임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발람은 조언을 해준 대가로 모압 왕으로부터 많은 재물과 명예를 얻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는 나중에 이 조언 때문에 벌을 받고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발람의 사악한 조언을 들은 모압 왕은 그 즉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에게 제사를 드리고 영적 행음을 할 수 있도록 계략을 세웠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교묘하게 유혹하여 그들을 이방신의 제사에 참여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발락은 모압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들을 보내 이스라엘 백성들을 유혹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섬기는 바알 신의 제사에 함께 참여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모압 여인들을 따라간 이스라엘 남자들은 이방신전에서 우상에게 절을 하고 숭배를 했습니다. 모압 사람들은 신전을 섬기는 여인들이 있었고, 그곳에서 함께 음행을 저지르는 것이 하나의 종교의식이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도 결국 우상숭배와 음행의 죄를 짓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이 죄는 급속하게 퍼져 갔습니다.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바알의 신전에 들어가 우상을 숭배하고 모압 여인들과 음행을 했습니다. 결국 복술가 발람이 모압 왕에게 알려준 음모가 성공한 것입니다.

바로 얼마 전 “오직 하나님만 섬기고 살겠습니다!”하고 굳게 다짐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인데 너무 어처구니 없게 모압 여인들의 유혹에 넘어가 버렸습니다. 그 결과 복술가 발람의 말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직접 치셨습니다. 짧은 기간 동안 무려 2만 4천명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죄에 넘어갔는지 모릅니다. 죄를 짓는 것은요, 바다에 있는 생선이 조그마한 미끼를 무는 것과 같습니다. 생선이 눈 앞에서 미끼가 왔다 갔다 하니까 너무 맛있어 보이거든요? 그래서 그걸 물었어요. 그러나 그 뒤에는 생선은 그 대가로 낚시꾼에게 잡히게 됩니다. 죄의 유혹이 우리 누 앞에서 왔다 갔다 하면 참 달콤해 보입니다. 막 먹고 싶어요. 그 유혹에 넘어가면 큰일 납니다. 죄가 가지고 오는 파괴력은 무시무시합니다.

야고보서 1장 15절에 하나님께서는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욕심, 탐심이 우리에게 잠시 잠깐의 만족을 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욕심으로 인해 잉태된 죄가 장성하면 결국 사망을 낳게 됩니다. 죄의 삯은 사망 밖에는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압 여인들의 유혹에 넘어가서 그들과 함께 우상을 숭배하고 음행을 저지르는 죄악에 빠졌습니다.

이들이 저지른 죄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진영에서 무시한 염병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건으로 인해 무려 24,000명에 달하는 백성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하루 만에 2만 5천명이 죽을 정도였으니, 하나님께서 심판으로 보내신 전염병이 얼마나 무시무시 했는지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이스라엘 백성 2백만 명이 염병으로 모두 죽는 것은 시간 문제 입니다. 별 것 아닌 줄 알고 모압 여인 따라갔는데 그 죄가 이스라엘 전체를 멸망의 위기에 처하게 하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복술가 발람이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해도 할 수 없었지만, 이처럼 이스라엘 스스로 범죄하자 죄는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고 왔습니다.

4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의 두령들을 잡아 태양을 향하여 여호와 앞에 목매어 달라. 그리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리라”(4절). 하나님께서는 염병을 내리셨을 뿐만 아니라 두령들을 잡아 그들은 목매달라고 하셨습니다. 두령들이 직접 모압 여인을 따라가서 우상을 숭배한 것도 아닌데,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지도자들을 이렇게 공개적으로 교수형에 처하라고 하셨을까요? 그들은 백성들이 죄를 짓고 있음을 알고도 죄악을 방관하고 그들의 행위에 무관심한 했기 때문입니다. 이따 보겠습니다만, 모압 여인을 따라간 사람 중에는 지도자의 아들도 있었습니다. 지도자들은 백성과 자녀들이 잘못하면 꾸짖어서 바로 잡아야 하는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방관하기만 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 전부에게 책임을 물으시고, 지도자 전체를 공개적으로 교수형에 처하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5절 말씀을 보면, 모세는 이스라엘의 사사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각기 관할하는 자 중에 바알브올에게 부속한 사람들을 죽이라”고 명령 했습니다. 모세가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우상숭배의 죄를 지은 사람들을 다 죽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런 끔찍한 명령을 내리는 모세의 마음이 어찌 편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어떻게 해서든지 지금 하나님의 진노로 인해 이스라엘 진영에 퍼진 염병을 멈추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구하며 회막문 앞에 모여 울고 불며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자, 그런데 이게 웬일 입니까? 지금 모세와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발 염병을 멈추고 우리를 살려주십시오”하고 부르짖으면서 간절하게 기도하고 있는데, 이스라엘 자손 중 한 사람이 모세와 모든 회중이 보는 가운데 지나갑니다. 그런데 그는 혼자 지나간 것이 아니라, 모압 여인을 데리고 이스라엘 진영에 왔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남자들이 모압 여인들의 꾀임에 넘어가서 우상을 숭배하다가, 이스라엘 전체가 염병으로 인해 전멸할 위기에 놓였고, 그로 인해 모세와 온 백성들이 울면서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하는 판국에 그 모든 심판의 원흉인 모압 여인과 손을 잡고 자기 집으로 들어가고 있으니 이 얼마나 한심한 일입니까? 이 사람은 누구였습니까? 바로 이스라엘의 지도자 살루의 아들 ‘시므리’였습니다.

 

이 같은 상황을 목도하자 분연히 일어난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대제사장 아론의 손자요, 엘르아살의 아들인 비느하스였습니다. 사람들은 시므리에게 분을 내고 있었지만, 그가 지도자 살루의 아들이므로 함부로 건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비느하스는 달랐습니다. 그는 우상을 숭배하고 이방여인과 행음을 한 배교 행위를 참을 수 없었습니다. 비느하스는 창을 들고 시므리와 모압 여인이 들어간 장막을 좇아 들어 갔습니다. 그리고는 창을 찔러 두 사람을 죽여 버렸습니다. 비느하스는 시므리가 아무리 지도자의 아들이라고 해도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는 것은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거룩한 분노를 냈습니다. 성경은 이 사건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퍼진 염병을 멈추시고 하나님의 진노를 제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11절 말씀입니다.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의 노를 돌이켜서 나의 질투심으로 그들을 진멸하지 않게 하였도다”(11절)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주님을 위한 열심을 냈던 비느하스의 행동을 선하게 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위한 비느하스 한 사람의 열심이 결국은 망해가는 국가를 살려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님을 위해서 열심의 자세를 가진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도 열심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잃어버린 영혼들을 구원하고 죄악에 빠진 사람들을 건져내는데 최고로 열심 있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사도 바울에게도 그런 열심이 있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절에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 했습니다. 비느하스도 하나님의 열심을 가지고 이스라엘을 멸망에서 건져 내었습니다. 비느하스의 열심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이었습니다. 13절 후반에 “그가 그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속죄하였음이니라” 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바로 하나님을 위한 열심입니다. 비느하스는 바알 숭배에 대항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예배를 바로 세우고자 했습니다. 또한 음행에 대항해서 하나님의 법을 세우고자 했습니다. 비느하스는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이스라엘의 우유부단에 대항해서 진리에 대한 단호함을 보여 주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비느하스의 열심이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갈라디아서 4장 18절에서 “좋은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음은 내가 너희를 대하였을 때뿐 아니라 언제든지 좋으니라”고 했습니다. 좋은 일에 열심을 내는 것은 언제나 유익하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비느하스의 열심에 대해서 두 가지 유익을 주셨습니다. 첫째, 이스라엘을 국가적 진멸의 위기에서 구원을 받게 하셨습니다. 국가가 위기에 처한다면 누구나 걱정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열심을 가지면 하나님은 위기에서 건져 주십니다. 사회의 위기를 보면 늘 정치가나 지도자들을 비판하기도 하지만, 사실 근본 잘못은 우리 성도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망하게 된 것도 백성들의 죄와 죄에 대한 무관심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위기의 상황에 직면할 때, 다른 사람을 비판할 것이 아니라 비느하스처럼 하나님의 열심을 품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교통하는 자로서 맡은 바 책임을 다하고 사회적인 죄악을 방관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열심을 품고 기도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