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4.23. [빌립보서 강해] 시리즈 (4) 살아도 죽어도 그리스도 (빌립보서 1장 19-26절)

 

서론. [가마솥 김치 볶음밥 푸드트럭] 이야기

지난 2017년 1월 25일, KBS TV 프로그램인 [사람과 사람들]에서 40대 초반의 한 부부의 일상이 소개 되었습니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임진영씨는 소위 말하는 잘 나가는 직장인이었습니다. 그녀는 대학을 졸업한 뒤 곧바로 드라마 제작 회사에 입사하여 기획과 판매를 담당했고, 디즈니와 소니 등 한국에 진출한 외국 영화사에 스카우트 되어 억대 연봉을 받는 제법 괜찮은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남편도 외국계 금융회사에서 성실하게 일하며 돈을 잘 벌고 있었기에, 겉으로 볼 때는 남들 부러울 것 없는 행복한 가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삼십대 중반을 넘어선 36살의 임지연 씨 마음 구석 한 켠에는 마음이 늘 불편했습니다. 그녀의 마음에 떠 오르는 한 가지 질문 때문이었습니다. “진짜 인생을 걸 만한 일을 하고 있는 걸까?” 남들이 볼 때는 다 알아주는 직장에 다닙니다, 부부가 돈도 잘 벌죠, 뭐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에는 “이렇게 사는게 맞는 걸까? 이렇게 사는 것이 정말 후회 없는 삶일까?” 하는 질문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그러던 지난 2012년 우연히 남편과 함께 노량진 학원가를 갔다가 당시 인기였던 ‘컵밥’을 보게 되었습니다. 순간 그녀의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아, 그래 이거다! 한국 음식을 푸드트럭을 통해 전세계에 전파해 보자!” 자신 안에 사라져 버린 줄로만 알고 있었던 꿈이 꿈틀거리자, 가슴이 뛰기 시작합니다. 남편에게 이야기하자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고 합니다. 메뉴는 가마솥에서 바로 볶은 김치 볶음밥으로 정했습니다. 가장 한국적인 음식 중 하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 회사를 다니며 짬짬이 김치볶음밥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묵은지도 써 보고, 막김치도 넣어보고, 소스도 이것 저것 사용해 보고, 식재료를 볶는 순서도 바꿔보고, 버터도 기름도 바꿔보고 골고루 해 봤습니다. 김치 볶음밥 위에 올리는 토핑을 번데기도 올려보고, 생선회도 올려보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해봤습니다. 2014년 연말 드디어 임진영 씨는 직장에 사표를 내고 2015년 3월부터 길거리에 나섰습니다. 아내가 푸드트럭을 시작하자, 외국계 금융회사에 다니던 남편도 발 벗고 함께 나섰습니다. 그러나 남편을 빼고 모든 사람들이 다 말렸습니다. “아이도 있는데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둔다고? 세상이 얼마나 냉혹한 곳인데? 꿈은 꿈으로만 남겨둬. 취미로 해.” 가족들도, 친구들도, 지인들도 다 반대했습니다. 실제로 편하게 사무실에서 일하다 직접 온몸으로 세상에 부딪치는 것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습니다. 겨울에는 추위와 여름에는 더위에 싸워야 했고, 푸드트럭 한다/음식장사 한다는 사회의 멸시, 냉정함, 가혹함을 온 몸으로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그러나 임지연 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행복감을 느낍니다. 세계로 진출하겠다는 꿈이 있고, 매일 만나는 인연을 통해 그 꿈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기 때문이에요!” 이제는 [강남 신세계 백화점]에서도 엄청난 인기와 판매를 기록했고, 손예진, 한지민, 이승기, 정해인 등 유명 연예인들도 줄 서서 먹는 김치볶음밥으로 유명새를 타고 있고, [서울 밤 도깨비 야시장]에서 4년 연속 최고인기메뉴로 인정 받게 되었습니다.

TV 프로그램은 단순히 직장을 그만 두고 푸드트럭을 시작한 부부의 일상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직장 생활 속에서 “참된 행복”, “가치와 의미”를 고민하고 살아가는 수많은 현대인들에게 이 프로그램은 “당신은 정말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당신은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져주었습니다. 우리 중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모든 사람들은 참으로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고 싶어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러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 속에서는 바로 이와 같은 삶을 살아간 한 사람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1. 인생의 최고의 가치 예수 그리스도

오늘 본문 속 사도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는 죄수 입니다. 쇠사슬에 손과 발이 꽁꽁 묶인 죄수가 뭐 그리 행복할 일이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말씀에서 바울은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이야기합니다. 바울은 자기 최면을 걸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마음 속으로는 불행한데도 사람들 앞에서 마치 행복한 것처럼 연기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진심으로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감옥에 갇힌 죄수가 행복하다고 고백할 수 있었던 근거가 무엇이었을까요? 바울이 행복했던 이유는 딱 한가지 입니다. 그는 자신이 살아가야 하는 확실한 이유를 발견했고, 감옥 안에서도 여전히 그 이유를 따라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삶이 가치 있는 인생임을 확신할 수 있었기 때문 입니다.

오늘날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왜 살아가십니까?”라고 물어본다면, 뭐라고 대답하겠습니까? “죽지 못해 살지요…”, “자식들 때문에 삽니다”, “돈 벌기 위해 삽니다”, 이런 형식적인 답변들 말고 나는 정말 이것 때문에 산다고,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은 내 삶을 참으로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고 정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참 가치 있는 무언가를 발견하신 분 계십니까? 그것을 발견한 사람이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바로 그와 같은 영원히 변치 않는 가치가 있는 존재를 발견했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이 찾은 인생의 가장 귀한 보물은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바울은 날 때부터 당시 전 세계를 지배하던 로마 제국의 시민권을 갖고 태어난 사람입니다. 미국에서도 시민권 이나 영주권 갖고 계신 분들은 잘 못 느끼지만, 없는 분들 입장에서 보면 그것 없이 미국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많은 제한과 어려움이 있는지 모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 시민권를 가진 사람입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특혜를 가진 사람입니다. 게다가 그는 오늘날로 말하면 하버드대, 예일대, 옥스퍼드 대학교 같은 당대 최고의 학벌인 가말리엘 학파 출신입니다. 바울은 그가 원하면 얼마든지 부귀영화를 누리며 명예와 권력을 소유하고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이 모든 것을 다 내려 놓았습니다. 돈도, 명예도, 권력도, 부귀영화도 다 포기할 만큼 더 상위가치의 존재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에게는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예수님을 발견하고 나니 이전에 자신이 이 세상에서 소중하게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다 배설물처럼 보일 만큼 하찮게 느껴졌다고 말했습니다.

그럼 도대체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시길래 바울은 이처럼 그의 인생의 최고의 가치가 되신다고 고백하고 있는 걸까요? 온 우주의 시작점이 되는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에덴 동산에 두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선악과를 먹음으로 죄를 지었습니다. 이후 태어난 모든 인류는 죄로 말미암아 고통 당하다가, 죄의 저주로 사망에 이르게 되었고, 죽음 이후에는 지옥에 들어가 영원한 고통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사랑하사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이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은 것이 그의 죄를 대신한 것임을 믿고, 예수께서 부활하셨고, 장차 이 세상에 다시 오셔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할 분이심을 믿고, 그가 곧 우리의 구원자요, 주인 되심을 믿는 자들에게는 죄사함을 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사람이 온 천하를 얻은 들 자기 목숨을 빼앗기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바울은 그 분을 믿는 자마다 그들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야 말로 온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존재임을 발견했습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가깝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 나라!”)

MBC TV 시트콤 [거침 없이 하이킥]에 출연하여 많은 인기를 받았던 서민정이라는 배우가 있습니다. 이 분은 본래 예수님을 전혀 안 믿는 분이었습니다. 가족 중에도 크리스찬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자신이 진행하고 있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가수 이수영씨가 게스트로 초대 되었습니다. 이수영씨가 너무 예뻐 보여서 그 비결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이수영씨가 대답하기를 “하나님께서 다 하셨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웬만하면 이 즈음에서 대화가 끊길만도 한데, 진지하게 그 비결이 궁금해서 이것저것 물어보니 “함께 교회에 가자”는 권유에 분당지구촌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막상 교회에 가보니 목사님 설교 내용이 귀에 들어오지를 않습니다. 사람들이 손을 들고 찬양하는데 그 모습이 어색하고 무섭게도 느껴져서 그 뒤로 이수영씨랑 연락을 끊었습니다.

그러던 중 [사랑과 야망]이라는 드라마 촬영 중 신앙 좋기로 소문 난 정애리 권사와 이유리 동갑내기 크리스천 배우를 만나게 됩니다. 특히 배우 이유리씨는 바쁜 촬영 중에도 노란 포스트잇에 기도하는 법, 아침에 일어나서 묵상하면 좋은 말씀, 저녁에 기도하는 법, 마음에 상심이 될 때 좋은 말씀, 소망이 있을 때 좋은 기도 말씀을 가득 적어서 대본에 끼워놓을 만큼 신실한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이유리씨가 수요일, 금요일이 되면 서유리씨 집 앞까지 운전해 와서 예배를 드리러 같이 갔습니다. 처음에는 잘알지도 못하는 사이고, 친하지도 않은 사람이 왜 이렇게까지 할까 무서웠습니다. 그러나 같이 울며 기도하는 가운데 서서히 예수님을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이유리씨가 문자로 보내주던 성경 말씀만 읽었는데, 부족하다고 느껴서 난생 처음으로 성경을 구입하고, 신앙서적도 구입해서 같이 읽으며 하나님을 알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기쁨이 너무 큰 거에요. 스물 여섯 살의 나이에 그렇게 뒤늦게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지난 26년간 자신이 그 동안 신앙생활에서 놓친 것이 얼마나 많을까 하는 생각으로 주일이 되면 1-4부 예배를 각각 다른 교회를 찾아다니면서 말씀을 들을 정도로 열심히 신앙생활 했습니다. 그리고 행복했습니다. 새벽예배를 다니기 위해서 운전면허도 땄습니다. 자신이 예수 믿고 보니까 너무 좋은 거에요. 하나님을 알아가는 기쁨과 즐거움이 너무 컸습니다. 새벽예배를 드리며, 전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버지와 어머니 전도를 위해서 새벽마다 기도했습니다. 처음에는 교회 가자는 말을 하니 반응이 좋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집안은 불교라 어릴 때부터 가족 모두 절에 다녔습니다. 계속 기도하던 어느 날 아버지가 새벽예배 가는 길을 차로 데려다 주겠다고 하셔서 교회를 같이 가게 되었다. 그렇게 1주일간은 아버지가 교회 주차장에서 딸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에는 밖에서 기다리면 춥다며 같이 안으로 들어가보자고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절대 예수 안 믿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새벽예배에서 흐느끼며 울고 계신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두 분다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이죠. 그렇게 살아가다가 김병욱 감독에게 연락이 와서 맡게 된 작품이 [거침없이 하이킥]이었습니다. 작품은 기적처럼 잘 되었고, 엄청난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서민정씨가 하는 말이 “자신의 인생의 클라이막스는 주님을 만난 것”이라며 너무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셨습니까? 빵집은 빵을 주고, 꽃집을 꽃을 줍니다. 교회가 여러분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다른 것은 없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십시오. 이전에 즐기던 세상 일들이 얼마나 덧 없는 것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을 만나게 될 때 우리 인생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기쁨과 즐거움으로 변화하는 놀라운 행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1. 일관된 삶을 살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배우 서민정씨는 이후에도 한결같이 새벽기도를 드리며 가족전도, 친척 전도에 심혈을 기울이게 됩니다. 이처럼 사람이 무언가 자신의 인생에서 가치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 인생이 그 가치를 중심으로 일관되게 변화하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돈이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경우에도 돈을 위해서 살아가는 일관된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만, 물질을 최우선의 가치로 두고 살아가는 인생은 비인간적인 삶으로 귀결됩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한 자신의 삶이 가지는 일관성이 죽음을 초월하여 유지된다고 고백합니다. “(1:26)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바울은 자신이 왜 살아가고 있는지 그 이유를 명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그리스도 일평생 예수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이제 만일 예수님을 위해서 사형에 처하여 죽게 되는 일이 일어난다 해도 여전히 자신에게는 유익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죽음이 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23절을 보면, 바울은 “자신이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고백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죽으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토록 천국에서 살게 될 것을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살아도, 죽어도 변치 않는 영원한 가치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일관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1.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예수 그리스도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우리 인생의 가치 뿐만 아니라 의미가 부여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의미가 없는 인생을 반복해서 사는 것만큼 생지옥도 없습니다. 러시아의 대문호인 토스토에프스키가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형벌은 무엇일까요?” 그가 대답합니다. “한 번은 일너 생각이 머리 속에 떠올랐다. 만일 누군가를 완전히 파괴하고 짓밟아 버리고 싶다면, 그 사람에게 끔찍한 벌을 주고 싶다면, 극악한 살인자도 잔뜩 겁을 먹고는 몸을 벌벌 떨게 할 정도로 벌을 주고 싶다면, 완전히 전적으로 무의미하고 쓸모 없는 노동을 시키는 것으로 충분하다.” 무슨 말입니까? 무의미한 인생을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만큼 인간에게 지독한 형벌이 없다는 겁니다. 왜 살아가는지 모르는 사람, “내가 지금 죽으나 사나 무슨 의미가 있나?” 이 질문에 답을 내리지 못하는 사람이 가장 불행한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말 그대로 죽지 못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영화 [라스트 케슬]을 보면 무의미한 노동이 얼마나 인간을 미치게 만들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영화 속 주인공 유진 어윈 중장은 무리한 작전으로 8명의 군인들을 사망에 이르게 한 책임으로 10년 중형을 선교 받게 됩니다. 그가 수감된 군 교도는 죄수들의 몸과 마음을 심하게 학대하는 곳이었습니다. 심지어 교도관들이 죄수들을 몰래 죽이기도 했습니다. 정의감이 강한 어윈 중장은 이 모습을 지켜 보기 힘들어 하며 결국 교도소장에게 저항합니다. 이에 교도소장은 불복종을 명분으로 엄청나게 크고 무거운 많은 바위들을 옮기도록 그에게 벌을 내립니다. 바위는 너무나도 많았기에 아무도 어윈 중장이 그 바위들을 혼자서 다 옮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몇 시간 동안 어윈은 홀로 바위를 힘들게 옮겼습니다. 젖 먹던 힘까지 짜내며 마지막 바위까지 옮겼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동료 죄수들이 크게 환호합니다. 이 순간 어윈은 자신이 교도소장에게 굴복하지 않고, 이겼음을 느꼈을 겁니다. 그런데 불과 몇 초 뒤 교소도장은 어윈에게 아직 벌이 끝난 것이 아니라고 말하며, 이제 바위들을 원위치 시키라고 명령합니다. 그가 지난 몇 시간 동안 온 힘을 다해서 이루어 낸 노동의 가치를 한 순간에 완벽하게 파괴해 버렸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글을 쓰는 작가라고 한 번 상상해 봅시다. 상사가 여러분에게 연필을 던져 주며 기사와 글을 쓰라고 일을 시켰습니다. 성심을 다해 자료를 조사하고 열심으로 글과 단어들을 신중하게 수정해 가며 기사를 다 썼습니다. 그런데 이제 상사가 지우개를 던져주며 이제는 그 글을 다 지우라고 말한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또 만일 다음 날에도, 또 그 다음 날에도 상사가 그러한 일을 반복해서 강요한다면 어떤 심정일까요? 나의 땀, 나의 시간, 나의 노동이 모두 쓸모 없어지고 무의미해지는 것은 인간을 극심한 고통에 빠지게 하고, 견디기 힘든 고문이 되어 그를 미치게 만듭니다. 인간은 ‘무의미’함 속에서 살 수 없습니다. 어떤 한 학자가 현대인의 무의미한 역설적인 삶을 다음과 같이 한 문장으로 정리 했습니다. “젊어서는 돈을 벌기 위해 젊음을 쓰고, 나이 들어서는 젊음을 되찾기 위해 번 돈을 쓰는 것이 현대인의 역설이다.” (어떤 사람은 이를 시지푸스의 저주라고도 부릅니다.)

결국 내가 하는 일이 가치와 의미가 있으려면, 영원해야 합니다. 바닷가에 있는 모래를 가지고 성을 짓는 일처럼 잠시 있다가 사라져 버릴 것에 인생을 거는 사람은 매우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한시적인 것에 목숨을 거는 이는 불쌍한 사람입니다. 지금 당장은 가치 있어 보일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갈 수록 자신이 쏟은 땀과, 시간, 노동과 헌신이 모두 쓸모 없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원한 것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은 다릅니다. 그의 땀, 그의 시간, 그의 노동은 모두 다 영원히 그 가치가 보존되게 됩니다. 인생은 영원한 것을 위해서 살아갈 때 비로서 가장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영원한 분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와 그 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없습니다. [13:8, 새번역]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한결같은 분이십니다. ([Hebrews 13:8, ESV] Jesus Christ is the same yesterday and today and forever.) 영원토록 변함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살아가는 자만이 인생의 참된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느 한국 청년이 전 국가대표 축구선수인 이영표 선수에게 삶의 행복과 만족의 기준을 묻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러자 이영표 선수가 대답했습니다. “저의 꿈은 축구선수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또 국가대표가 되고, 유럽에서 선수 생활을 하며 성공하는 것, 또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인기도 얻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힘들어도 이 고통만 견뎌내면 내가 원하는 꿈을 이루게 되고, 정말 행복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 생각이 제가 힘들고 어려운 길을 이겨낼 때 엄청나게 동기부여가 됐습니다. 그리고 실제 제가 기대했던 모든 꿈을 이뤘습니다. 그러면 행복해야 하는데, 잠깐의 만족감은 주지만 지속적인 행복감은 제가 원하는 것을 소유하는 데서 오지 않았습니다.”

그 때부터 이영표 선수는 진정한 인생의 행복이 어디 있는지를 고민했고, 아주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영표 선수가 고민하던 중 [오스카 와일드]라는 사람의 글을 읽게 됩니다. “인간에게는 두 가지 비극이 있다. 한 가지는 내가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갖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지는 게 그 인생의 목적이 됐을 때 그것이 얼마나 그 자신에게 큰 비극인지를 알게 됐기 때문에 그 문구가 그에게 너무나 다가왔습니다. 내 삶의 주인이 나 자신이 되는 순간 성공해도 비참해지고, 실패해도 비참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톨스토이는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책에서 세 가지 질문을 합니다. “인간에게는 무엇이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사랑이 있다”고 대답합니다. “인간에게는 무엇이 없는가?”라는 질문에 “지혜가 없다”고 대답합니다. 마지막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에 “인간은 사랑으로 사는 존재”라고 정의합니다. 이영표 선수의 간증을 들어 보면, “인간의 삶은 자기가 원하는 꿈을 이루고 소유함으로써 행복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대로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를 위하고 용서할 때만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이야기 합니다.

오늘 저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 하고 싶습니다. 인간은 자신을 창조하고 구원한 신을 사랑할 때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 분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만이 가장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를 만나고, 예수를 나의 구원자와 주인으로 모셔 들이고, 살아도 예수님을 위해 살고, 죽어도 예수를 위해 죽는 일관된 삶을 살아감으로써 가장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