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3.11.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 (마태복음 19:13-30절)

한 사람이 예수님 앞에 나아 왔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이 사람을 ‘청년’이라고 기록했습니다. 청년은 30세 미만을 가리킵니다. 누가복음에는 이 사람을 ‘관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관리’는 사회적으로 지위와 신분이 높은 사람입니다. 누가복음 12장 58절에서는 그의 직업을 ‘아르콘’이란 헬라어 단어를 사용했는데요. 이 단어는 ‘법관’이란 뜻 입니다. 마가복음에서는 이 사람에 대한 정보가 자세히 나와 있지 않지만, 우리는 다른 복음서에 기록된 정보들을 모아, 예수님을 앞에 나아온 이 사람이 30세 미만의 법관이 직업인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편의상 마태복음의 기록을 따라 오늘 이 사람을 ‘청년’이라고 칭하겠습니다.

오늘 그가 예수님께 나온 이유는 단 한가지 목적 때문이었습니다. 인생에서 해결해야만 하는 가장 중요한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16절에 그가 뭐라고 질문합니까?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이 청년 어려서부터 십계명에 기록된 내용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지켜 왔습니다. 부모님을 진심으로 존경하며, 부모 말에 순종하며 잘 모셨습니다. 살인, 간음, 도적질, 거짓말, 탐심 이러한 죄로부터 멀리하여 자신의 영혼을 지켜왔습니다. 그는 이러한 도덕적인 삶을 통해 천국에 들어가 영원한 생명 얻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러나 비록 어려서부터 철저하게 지켜온 율법이지만, 그것이 자신을 구원해 줄 것이란 확신은 없었습니다. “혹시 내가 구원받기 위해 더 해야 하는 일은 없을까? 천국에 가기 위해 지금보다 더욱 더 도덕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닌가?” 오늘 16절에 이 사람이 예수님께 질문한 것을 다시 보십시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이 청년은 사람이 무언가의 행동을 해야지만 천국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선행이나 구제, 나눔과 섬김 같은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행위들을 통해서 구원에 이른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이 청년은 은혜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영생’을 얻기를 간절히 소망했습니다. 평생 율법에 기록된 내용대로 살려고 애를 쓰며 십계명도 지켜왔으나, 아직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는 과연 이대로 살아도 괜찮은 것일까? 영생을 얻기 위해 무언가 더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이런 고민을 하던 차에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드디어 주님을 찾아온 것이죠. 이 청년이 영생이란 문제에 대해서 얼마나 진지한 자세를 가졌는가 하면, 오늘 본문의 병행본문인 마가복음 10장 17절을 보면 이 청년은 예수님 앞에 달려와서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습니다. “예수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 18절을 보니, 이 청년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십계명에 있는 내용들을 열거 하셨습니다. 그러자 청년은 “네, 예수님 이런 것은 제가 어려서부터 지켰습니다.”하고 아주 당당하고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에게 아직 한 가지가 부족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네에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네. 가서 자네에게 있는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게나.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물을 얻을 것이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오늘 예수님의 이 요청은 단순히 “가진 재물 다 팔고 나를 따르라”가 아닙니다. 이 질문 근저에 깔려 있는 예수님의 요청은 주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물어보셨던 질문과 같습니다. “베드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님께서 청년에게 주신 단도직입적인 질문은 이것입니다. “자네는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아니면 재물을 더 사랑하는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내려놓고 주님을 따르라는 예수님의 초청인 것이죠. 앞서 말한대로 이 청년 ‘법관’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검사’ 혹은 ‘변호사’ 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이러한 직업을 가지고 이러한 위치에 있는 사람은 경제적으로 부유합니다. 22절에도 보니 이 사람은 가진 재물이 많았다고 했습니다. 부자입니다. 그는 커다란 갈림길에 서게 됩니다. 예수님 말씀을 따르자니… 포기해야 할 재물이 너무 많은 거에요. 만일 자산이 얼마 안 되었으면 “네, 주님 뭐 이 정도야 제가 내려놓죠!”하고 예수님을 따라 갔을지도 몰라요. 그러나 이 청년은 가진 재물이 많았습니다. 예수님을 따라가자니 포기해야 하는 기회비용이 어마어마 합니다. 결국 이 청년은 예수님의 초대를 거절하고 슬픈 얼굴을 띄고 근심하며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오늘 이 청년은 얼마나 당당하게 예수님 앞에 나왔습니까? “그래 나 정도면 천국 갈 수 있지 않을까? 어려서부터 십계명도 잘 지켜왔는데? 나 정도면 괜찮은 사람 아닌가?” 그러나 예수님을 떠날 때 그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 내가 아직도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구나… 난 하나님을 최선을 다해 섬긴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내 착각이었구나. 내게는 아직도 찍어버리지 못한, 버리지 못한 재물이라는 우상이 남아 있구나…”

오늘 우리가 이 청년의 입장이었다고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예수님께 질문 드렸어요. “예수님 저 잘 하고 있나요? 예수님께서 제 삶을 보시기에 괜찮은가요? 매일 아침 단잠을 깨어 새벽예배도 나오고, 시간 되면 기도도 하고, 씀 보고 하루 시작하고…  예수님, 이 정도 저 신앙생활하고 있으면 그래도 잘 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말씀 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 우리를 보시고 사랑하는 목소리로 말씀하시지 않을까요?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구나… 너가 나보다 더 사랑하는 것… 그것이 내게 우상처럼 남아 있구나… 가서 네가 나보다 더 사랑하는 것, 하나님 보다 더 의지하는 것, 하나님 보다 더 사모하는 그것을 버려라. 그것을 정리해라. 그것을 끊어버려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여러분, 혹시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이 있지는 않습니까? 그것이 사람이거나, 감정이거나, 물건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본문에 나오는 청년처럼 우리가 하나님 보다 사랑하는 것이 재물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 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다면 내려 놓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역사에 ‘만약에’라는 가정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약에… 만약에… 이 청년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자신이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다면, 적어도 성경에서 그의 이름을 알 수 있지 않았을까요? 또한 후대에 오는 모든 사람들이 이 청년의 삶을 보며 “그래 참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참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저러한 삶의 결단과 선택이 있어야지!”하고 따를 수 있는 다가오는 모든 시대에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칭찬과 존경을 받는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만약에 이 날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랐다면 말이죠…

안타깝게도 이 청년은 포기해야 하는 재산이 너무 많았기에, 쉽게 그러한 선택을 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는 슬픈 기색을 띠며 근심하며 예수님을 두고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떠나간 청년의 그림자 조차 보이지 않는, 바로 그 시점에 예수님은 그와 함께 있던 제자들을 둘러보시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곁에서 이 말을 듣고 있던 제자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말씀하셨습니다.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바느질 해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바늘 귀가 얼마나 작습니까? 시력이 나빠진 할머니들이 바느질 하시려고 바늘귀에 실 넣으려고 하다가 몇 번이나 실패하는지 모르겠어요. 바늘귀는 그 가는 실 하나 통과 할 정도로 아주 조그마한 구멍인 거죠. 하물며 낙타 같이 큰 동물이 어떻게 바늘귀를 통과하겠어요? (낙타 크기가 평균 5.9-6.6 ft 입니다. 900-1300 Ibs) 이것은 예수님께서 과장법을 통해서 “That is impossible” 결코 불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계신 것이죠.

만일 오늘 본문에서 나오는 청년이 부자라는 이유만으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라면, 아브라함도 다윗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사유재산이 없어야 천국에 간다”, “지갑을 버려라!”, “땅문서 팔아라!” 이런 걸 요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 이 부자 청년의 마음을 꿰뚫어보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재물과 같이 세상 것에 대한 집착과 애정을 버리고 온전히 하나님만 따를 것을 요구한 것이죠. 비록 부유하게 살 수 있으나,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마음의 결단이 있는 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제자들은 너무 놀란 나머지 서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재물이 많은 자는 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니 세상에 재산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럼 도대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단 말인가?” 제자들이 서로 하는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세상 그 누구도 자신의 의지 혹은 결단으로서 그 안에 있는 욕망과 죄악을 다 내려놓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10년 동안 벽만 보고 산 속에서 살아온 도인도 그 안에 정욕과 욕심이 꿈틀거립니다. 신학자 칼빈은 “인간의 마음은 우상을 만들어내는 기계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마음은 끊임 없이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을 찾아내고 또한 만들어 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은 어떤 우선순위가 세워져 있습니까? “보소서 주님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하고 말은 하지만 여전히 하나님 앞에 내려놓지 못한 세상의 욕심, 죄악 된 삶이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을 온전히 따르는데 방해가 되는 물질의 유혹이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을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삶의 우선순위에 두고 살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