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2.4 하나님 나라의 원형이 드러나다 (마태복음 8장 1-13절)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셨다는 소문과 이야기들을 들었습니다. 몇몇의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시는 현장에서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둘러싼 이 수많은 무리들을 향해 다가오는 하나의 검은 그림자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 둘 그를 보고 기겁했습니다. 그는 바로 “문둥병자” 였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나병에 걸린 사람은 부정한 사람이며, 또한 율법은 누구든지 저에게 몸이 닿는 사람 역시 부정해진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나병에 걸린 사람은 길을 걸을 때, “부정하다! 부정하다!”하고 소리치며 걸어가므로 사람들이 그를 피해가도록 해야만 했습니다. 예수님을 향해 걸어오는 문둥병자를 보고 아마도 무리들은 너도나도 자리를 피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직 한 분 예수님은 그 자리에 머물러 계셨습니다.

2절 말씀을 함께(8:2) 읽겠습니다. “한 문둥병자가 나아와 절하고 가로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2절에 보면 ‘나아와’란 단어가 나옵니다. 아마도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해 나아오는 이 나병환자를 보고 겁에 질려 길을 터주었을 것입니다. 나병은 저주받은 병이며 전염성이 있기에 나병환자는 사람들로부터 격리되어 살아가야 합니다. 안 그래도 지금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이토록 많은데 나병환자가 되어 사람들이 보는 환한 대낮에 무리 속으로 뛰어든 것은 돌에 맞을 위협을 무릎 쓰고 나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나병환자가 이토록 담대한 자세로 예수님께 나아올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본문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원하시면 저를 깨끗이 고치실 수 있습니다.” 이 나병환자는 예수님이라면, 자기의 병을 고치실 수 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의 믿음이 그에게 용기를 준 것입니다. “그래! 저 분이라면! 예수님이라면! 이 저주받은 나병도 고치실 수 있을거야!” 그는 이런 믿음이 있었기에 담대하게 수많은 무리를 헤치고 예수님께로 나아왔습니다. 그는 예수님꼐 나아와 말할 때, “예수님 할 수 있으시면….고쳐주세요…”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미 주님께서 능력이 있으신 분이란 믿음을 가지고 나아왔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떻게 물어봅니까? “주님… 주께서 무엇 하시면요?” “주께서 원하시면” 그의 언어에는 이미 예수님께서 이 질병을 고치실 수 있다는 믿음이 전제 되어 있습니다. 주위에서 이 장면을 곁에서 보고 있던 무리들은 숨죽이고 예수님과 나병환자를 번 갈아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과연 예수님이 이 사람을 고치 실수 있을 것인가?’ 나병환자로 인해 예수님 역시 부정케 된다면 이분은 결코 메시아일수 없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온 신경을 모아 이 장면을 멀리서나마 지켜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바로 그 때 모두를 경악케 하는 장면이 그들의 두 눈 앞에 벌어졌습니다.

3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8:3)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즉시 그의 문둥병이 깨끗하여진지라” 앞서 언급하였듯이 율법에 따르면 부정한 것을 만지는 자는 누구든지 부정해집니다. 여기서 부정한 것은 시체도 포함됩니다. 죽은 자의 시신을 만지면 그 역시 그 부정함이 전해집니다. 나병환자를 만지면 그의 질병이 만진 사람에게 전이 되는 것으로 전염되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렇기에 여태까지 아무도 이 나병환자의 손을 잡아준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 누구도 그의 어깨를 감싸주고 안아준 사람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그의 가족도 그의 형제도 그의 친구들도 그를 만질 수 없었습니다. 그는 부정한 자요, 버림받은 자요, 저주받은 자요, 소외 받은 자요, 외로운 삶을 살아가는 자였습니다. 사람에게 버림받은 자라 스스로를 여기던 이 나병환자, 그는 얼마나 쓸쓸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갔을까요? 오늘 이 외롭고 가여운 문둥병자에게 예수님께서는 그의 손을 내미셨습니다. 그리고 3절에 보니 손을 어떻게 하십니까?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아무도 건들 수 없었던 그의 삶, 아무도 감싸주지 않으려 않았던 그의 인생, 주님께서는 그분의 손을 내미셨고 또한 그의 몸에 직접 그 손을 얹으셨습니다.

저는 예수님의 손이 문둥병자의 몸에 닿는 이 대목에서, 아마 나병환자 스스로도 깜짝 놀랐을 거라 생각합니다. “여태까지 다들 날 피하고 나로부터 도망쳤는데… 이분은 나를 부정하게 여기지 않으시는구나…다른 사람은 다 날 외면해도 이분만큼은 내 모습 이대로 날 받아주시는구나…” 너무도 오래간만에 느낀 따뜻한 손길에 또르르 눈물을 흘리진 않았을까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더럽고 추악해도 예수님은 여전히 우리에게 다가와 주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에게 손을 내밀어 주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의 어깨를 감싸 주시고 우리를 감싸 안아주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이 초대는 우리와 같은 죄인을 부르시는 예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크신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이 나병 환자의 몸에 손을 대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원한다. 네 몸이 깨끗하게 낫기를 내가 원한다.” 나병환자가 자신의 몸이 깨끗이 낫기를 간절히 원했던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그의 삶에 치유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원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셨습니다. “자, 깨끗하게 되어라!” 오늘 성경은 예수님의 이런 말씀이 있은 후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나병환자가 그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쏟았을까요?그러나 나병은 치료법이 없습니다. 수많은 의사들도 약사들도 이 질병 앞에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아무리 많은 돈을 가지고 있어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그 어느 누구도 해결하지 못하던 바로 그 문제, 평생 아무도 해결해주지 못하던 그 문제가 예수님을 만나자 ‘즉시’ 해결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능력 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한 사람의 인생이 변화합니다. 치유를 경험합니다. 능력이 나타납니다. 바로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나아갈 때 소망이 있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어떠한 문제라도, 어떠한 고난과 슬픔과 어려움일지라도 다 그분께 가지고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낫기를 원하는 것처럼 예수님도 우리의 삶이 회복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분은 또한 우리를 다시금 일으켜주실 것입니다. 우리 함께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갑시다. 그리고 그분께 우리의 필요를 구합시다.

이후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도착하셨습니다.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본거지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많은 사역을 하신 장소입니다. 바로 이 가버나움에 계신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한 백부장이 그를 찾아왔습니다. 백부장은 로마 군대의 장교이며, 100명의 군사를 다스리는 사람으로서, 오늘날로 말하면 중대장 즘 되는 사람입니다. 우리나라 민족이 일제시대 때 일본순사들을 혐오했듯이, 유대인들이 매우 적대시했던 사람들이 바로 로마군사들 입니다. 바로 그런 로마군사의 장교인 백부장이 예수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6절 말씀을 보니까 백부장이 예수님을 찾아온 이유가 나와 있습니다. (8:6) “가로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백부장에게 중풍병에 걸린 하인이 한 사람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 그 하인이 보통 괴로운 정도가 아니라, 몹시도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이 백부장은 자신의 하인을 위해서 예수님께 직접 나왔습니다. 이것으로 보아 이 백부장은 매우 겸손한 자세로 예수님께 나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로마군사가 가진 권세로 따지면 유대인들을 짐꾼처럼 부릴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누가 너희로 오리를 가자 하면 십리를 가라”고 말씀하신 것은 로마군사들이 유대인들에게 자신의 짐을 지고 오리를 같이 걸어가자 하면 그 사람은 반드시 그 명령을 이행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만약 백부장이 자기 하인을 시켜서 어느 유대인을 소환했다면, 그 유대인은 백부장에게 반드시 가야만 했습니다. 그런 권력의 중심에 서 있는 로마군대의 장교였던 백부장이 예수님께 직접 나아왔습니다. 아마 이 장면을 주위에서 지켜보던 사람들도 의아해 했을 것입니다.

왜 백부장이 예수님께 나아왔습니까? 비록 이방인이었으나, 백부장은 그의 하인이 당한 중풍병을 예수님께서 치료해주실 수 있을 거란 믿음으로 나아온 것입니다. “주여, 제 종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자, 예수님 주변에 있는 무리들이 예수님의 행보에 주목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언약 밖에 있는 ‘이방인’이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이방인과 함께 식사자리도 하지 않을 만큼 이방인들을 멀리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베드로가 백부장 고넬료의 집에 들어가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10:28)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이렇게 이방 사람과 교제하거나 방문하는 것은 우리 유대 사람으로서는 율법에 어긋나는 행동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 이방인과 교제하는 것도 금지 된 것인데 더군다나 그의 집에 들인다는 것은 부정해지고 더러짐을 의미합니다. 가능하면 이방인들을 피하는 것이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이방인과 함께한다는 것 역시 부정한 자가 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과연 예수님이 가실까?” 모두가 숨죽여 지켜보는 이 대목에서 오늘 본문 7절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라사대 내가 가서 고쳐주리라” “백부장아, 네가 가서 네 하인을 이리로 데리고 와라. 너도 잘 알다시피 네가 가면 부정해지잖아. 그러니까 네가 그 하인을 좀 이리로 데리고 와.”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내가 직접 가서 고쳐주겠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전 문맥에서 나병환자에게 손을 내미시고 직접 그의 부정한 몸을 만지신 것처럼 이번에도 예수님은 부정한 이방인이었던 백부장의 집에 직접 가시기로 결정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놀라운 은혜를 하나 발견할 수 있습니다. 율법은 부정한 자를 가까이하면 그 사람 역시 부정해진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부정한 자가 예수님을 가까이하면 주님의 정한 것을 통해 그 사람도 깨끗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삶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도 해결할 수 없었던 죄로 가득한 내 삶, 아무도 도와줄 수 없었던 비참하고 눈물로 점철되어 있는 인생이 주님을 만나는 순간 변화됩니다. 슬픔이 변화여 기쁨이 되고, 눈물이 변하여 노래가 됩니다. 바로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선택은 유대인들에게 있어 파격적인 행보였습니다. 그러나 백부장은 이에 대하여 더욱더 놀라운 대답을 합니다. 8-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8:8) “백부장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8:9)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예수님, 직접 오실 필요 없습니다. 나 같은 지휘관도 말로 부하들을 부르면 오고 말로 가라 하면 가는데, 예수님같이 능력이 계신 분께서 말씀으로 나으라 하시면 내 하인이 낫지 않겠습니까? 그저 나으라는 말씀 한 마디만 해주십시오. 그러면 제 하인이 나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 10절 말씀을 보니 이 말을 들은 예수님께서 기이히 여기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백부장의 큰 믿음을 보고 놀랍게 여기셨습니다. 인간의 종교성이란 뭔가 행위를 통해 치유 받는 것을 전제할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구약성경에 나오는 아람의 나아만 장군도 엘리사가 나와서 머리에 안수라도 하고 기도라도 해줘야 그의 질병이 나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종교를 행위로 이해할 때가 많습니다. 물론 그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백부장은 종교적 행위가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이 가진 권세와 능력을 믿었습니다. 삶의 기적은 종교적인 행위들로 비롯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 있는 말씀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주님, 주께서 말씀만하셔도 그 말씀의 능력으로 제 하인이 나을 것입니다!” 하고 백부장은 믿음의 고백을 하였습니다.

1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8:13)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시로 하인이 나으니라” “Go! 가라! 네 믿음 대로 될지어다!” 예수님은 백부장의 믿음의 고백대로 말씀으로 역사해 주십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임하는 순간 하인의 중풍병이 나음을 받게 됩니다. 백부장은 그의 믿음 대로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마지막 구절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삶은 우리의 믿음 대로 됩니다.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언약 밖에 살아가던 이방인일자라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주님 말씀만 하옵소서. 그리하면 내 하인이 낫겠나이다.” 오늘 이 새벽 주님의 말씀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백부장의 믿음으로 나아갑시다. 주께서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우리의 “믿음 대로” 역사해 주실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