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2.26.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는 방법] 시리즈 (4) 하나님의 성품과 일치하는가? (출애굽기 34장 1-9절)

 

포인트: 하나님은 우리가 주님의 성품에 위배되는 것을 행하도록 명령하지 않으십니다.

누군가를 알아가고 이해하는 것은 어렵고 지속적인 과정일 수 있습니다. 시간과 노력,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진정한 관심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새로운 도시로 이사를 가서 친구를 새롭게 사귀는데, 상대방을 알아 가고 싶다고 가정해 봅시다. 상대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누군가를 알고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그 사람과 좋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둘 다 좋아하는 활동에 참여하거나, 함께 식사를 하거나, 단순히 대화를 나누는 것 등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 또한 상대방의 말투, 어조, 몸짓에 주의를 기울여 상대방의 말에 적극적으로 귀를 기울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사려 깊은 질문을 통해 상대방의 경험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누군가를 진정으로 알고 이해하려면 그 사람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적극적으로 경청하며, 사려 깊은 질문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떨까요?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어떻게 알고 이해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하나님과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적극적으로 귀를 기울일 수 있을까요? 다행히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는 기도와 예배를 통해 주님께 더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주님에 대해서 더 잘 알아갈 수 있도록 자신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을 읽음으로써 하나님에 대해서 알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은 주님의 성품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선포하십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말씀을 읽음으로써 우리는 주님의 성품을 배우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출애굽기 말씀을 통해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새롭게 배우게 됩니다.

출애굽기 32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또한 금송아지 우상에 엎드려 경배했습니다. 이로써 백성들은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보실 때 가장 역겹고 혐오스러운 일인 우상숭배의 죄를 범했습니다. 모세가 진영에 다다랐을 때 금송아지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 앞에서 춤추며 경배하는 모습을 보자, 그는 크게 화가 났습니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하나님께 받은 두 돌판을 집어 산 아래로 던졌습니다. 두 돌판은 산산조각 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두 돌판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에 맺어진 언약의 상징물이었습니다. 따라서 돌판이 깨졌다는 것은 백성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도 깨졌다는 것을 상징했습니다.

모세는 레위 사람들을 풀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섬긴 죄에 대한 형벌로 약 3천명이나 죽게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인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하는 끔찍한 죄를 저질렀습니다. 하나님은 크게 진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천사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보내겠다고 말씀하셨지만, 동시에 하나님 자신은 그들과 함께 가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 많은 백성들과 단 한 순간이라도 동행하면 그들이 멸망할 것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하지 않으시면 이 백성에게 아무런 미래가 없다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그들의 유일한 희망은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그들과 맺은 언약을 새롭게 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께 간절하게 중보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실까 두려웠습니다. 모세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용서를 구했습니다. 모세의 기도의 결과는 무엇이었을까요?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용서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모두 멸망시킬 수도 있으셨지만, 대신 그들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1절에서 주님은 모세에게 새 돌판 두 개를 가져오라고 명하셨습니다. 출애굽기 34장 1절을 읽어 봅시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돌판 둘을 처음 것과 같이 다듬어 만들라 네가 깨뜨린 처음 판에 있던 말을 내가 판에 쓰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석판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맺은 언약을 상징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두 돌판을 새로 가져오라고 명하셨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죄를 용서하셨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끔찍한 실수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들과 언약 관계를 맺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또 한 번 자비와 은혜를 베푸십니다. 오늘 우리는 이 성경 이야기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 숭배란 엄청난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이 자비롭고 인자하신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서 가르쳐주는 사건들과 선언으로 가득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어 감으로써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더 명확하게 알게 되는 것이죠. 특별히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님의 성품에 대해서 직접 말씀해 주셨습니다. 출애굽기 34장 6-7절을 읽어 봅시다. “6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7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출애굽기 33장까지만 해도 하나님은 강력하고 의로운 하나님으로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여전히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은 낯선 존재였고, 그들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기에 막연한 신비로운 분이셨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 우상 숭배의 죄를 지었을 때, 그들은 자신들의 죄와 실수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반응하실 지, 어떻게 처분하실 지에 대한 자료가 충분히 없었습니다. 다만, 이 죄가 하나님 앞에서 죽을 죄라는 것 하나만은 확실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숭배하는 죄를 지었을 때, 지도자 모세 역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심판하고 죄인을 벌하시는 거룩한 하나님으로서의 성품을 드러내실 것이라고 예상했을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을 만들어 하나님께 진노를 일으켰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을 것이라고 예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오늘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용서해 주신 것입니다. ‘이게 뭐 대단한 일인가?’ 싶지만, 세상 다른 모든 종교를 찾아보십시오. 이처럼 인간의 죄를 용서해 준 신은 찾기가 어렵습니다. 늘 세상은 “심은 대로 거둔다.”, “죄를 지으면 이에 응당한 벌을 받아야 한다.”를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자신들이 지은 죄가 죽을 죄란 것을 너무도 알기에 시내산 밑에서 하나님 앞에서 받을 형벌만 기다리며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이처럼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부정한 이스라엘을 용서해 주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또한 이 가운데 하나님은 주님의 성품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포해 주셨습니다. 이로써 백성들은 그들이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서 새롭게 배우게 되었습니다. 자, 그렇다면 본문에 나타나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첫째, 하나님은 자비로우신 분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백성들의 어리석고, 고집스러운 반역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을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완전하신 하나님은 연약하고 죄 많은 피조물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베풀어 주는 사랑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빚진 것이 없으시지만 우리에게 엄청나게 관대하십니다. 또한 사랑 받을 자격이 없는 우리에게 주님의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셋째,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 하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며 주님의 의가 심히 도발 당했을 때만 노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주님의 성품의 정도를 드러내고자 하셨습니다. 주님은 자비롭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신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이 성경 구절을 읽으면서 우리는 이미 우리 하나님이 자비롭고 은혜로우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주님은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변함없는 사랑과 신실함이 풍성하십니다. 주님은 수천 년 동안 변함없는 사랑을 지키시며 우리의 죄와 실수를 용서해 주십니다.

1990년대에는 ‘교환 일기’가 한국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었습니다 ‘교환 일기’란, “두 사람 이상이 함께 쓰고 읽는 일기입니다. 두 사람이 번갈아 가며 이전 일기에 답장할 수도 있고, 새로운 내용을 일기에 적는 방식입니다. 교환 일기는 절친한 친구나 동급생 간의 비밀스러운 교환을 위해 고안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하루나 활동 또는 어떤 생각에 대해 쓸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상대방이 쓴 글을 읽음으로써 그 사람에 대해 배울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도, 페이스북도, 인스타그램도 없던 시절,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글을 읽을 수 있는 방법은 별로 없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일기를 쓰신 적이 없습니다. 대신 주님은 우리에게 주님의 생각과 뜻과 계획이 담긴 책, 성경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음으로써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서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친히 주님의 성품을 선언하십니다. 6절을 보세요. 여기서 ?하나님은 자비롭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고 변함없는 사랑과 진실이 많은 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죄악과 허물을 용서하시며 수 변함없는 사랑을 지키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비록 짧은 본문이라도 성경을 읽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알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은 주님의 성품을 알도록 주님의 백성을 초대하십니다.

​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주님의 성품과 마음과 길을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모세에게 시내산으로 새 돌판을 들고 오라고 초대하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셨습니다. 이 초대는 단순히 율법 석판에 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우리를 초대하여 하나님을 친밀하고 인격적으로 알고, 주님의 성품을 알고, 우리 삶에서 주님의 사랑과 자비를 경험하도록 하십니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을 알기 위해 이스라엘까지 비행기​ 표를 사서 모세처럼 시내산 정상까지 올라갈 ​필요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미 성경에 하나님이 누구신지, 주님의 개인적인 성품이 무엇인지 기록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개인적인 속성을 배울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에 대해 알게 해줄 뿐만 아니라, 우리가 배운 그 하나님을 경험하도록 도와줍니다. 성경을 토해 하나님께서 용서하시는 하나님임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주님의 용서를 경험할 기회를 갖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의 하나님 되심을 알게 될 때, 우리는 주님의 능력을 경험할 기회를 갖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현재 상황과 필요에 맞는 말씀들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니아 연대기]라는 책을 쓴 C. S. 루이스는 유명한 작가이자 교수였습니다. 그는 평생 무신론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인생 후반에 깊은 회심을 경험하고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회심의 핵심 요인 중 하나는 하나님의 성품과 세상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감각이 커진 것이었습니다. C. S. 루이스가 신앙을 향한 여정에서 특히 의미 있고 하나님의 성품을 깨닫는 데 도움이 되었던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로마서 1장 20절은 “[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루이스는 하나님의 본성과 성품이 자연 세계의 아름다움과 다양한 특성들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는 생각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우리 주변의 세계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증거를 제공하고 주님의 성품을 드러낸다고 믿었습니다.

루이스는 그의 저서 ‘예기치 못한 기쁨’에서 자신이 보고 만질 수 있는 것 이상의 것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점차 깨닫게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는 주변 세계에서 아름다움과 의미를 보기 시작했고, 이것이 자신의 감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 너머에 더 깊은 현실이 있다는 증거라는 것을 인식했습니다. 루이스는 이 생각을 더 깊이 탐구하면서, 이 깊은 실재가 바로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연 세계와 인간 관계, 그리고 자신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특히 하나님이 각 개인을 깊이 돌보시는 인격적인 존재라는 생각에 끌렸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1장 20절은 루이스에게 하나님의 성품과 본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구절이었고, 신앙의 여정으로 이끄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가 주님이 누구인지 알도록 초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주님의 성품, 마음, 계획을 배우기를 원하십니다.

 

  1.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성품에 부합하는 것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나님의 성품을 선포하셨을 때, 모세는 재빨리 땅을 향해 머리를 숙이고 주님께 경배했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하나님께서 조금 전 선포하신 내용을 바탕으로 기도했습니다. 모세의 기도는 하나님의 성품과 일치했습니다. 출애굽기 34장 8-9절을 읽어 봅시다. “ 8 모세가 급히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9 이르되 주여 내가 주께 은총을 입었거든 원하건대 주는 우리와 동행하옵소서 이는 목이 뻣뻣한 백성이니이다 우리의 악과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주의 기업으로 삼으소서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때문에 진노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더 이상 그들과 함께하실 수 없다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모세는 기도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목이 뻣뻣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했음을 인정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하나님께 그들의 죄악과 죄를 용서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어떻게 모세는 이와 같이 용기를 내어 하나님께 용서를 구할 수 있었을까요?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자비롭고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그들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들의 모든 필요를 공급해 주시는 엄청난 축복을 받았다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비롭고 은혜로우신 분임을 계시하시자,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하나님의 임재와 인도하심을 호소했습니다. 모세 기도의 근거는 무엇이었나요? 하나님은 자비롭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분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속성을 깨달은 모세는 죄를 용서해 달라고 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성품과 일치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구한 것을 들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을 용서하시고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에 응답하고 하나님의 성품에 따라 기도함으로써 백성들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오직 하나님의 성품과 일치하는 것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복수의 기도, 다른 사람에게 복수하거나 해를 입히려는 기도는 하나님의 성품인 사랑, 용서, 자비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에게 해를 입히도록 기도하는 것은 마태복음 5장 44절에서 원수를 사랑하고 우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자신의 필요와 욕구에만 초점을 맞춘 기도는 사랑, 연민, 이타심이라는 하나님의 성품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항상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성품과 뜻에 맞춰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근거한 다윗 왕의 기도를 들어보세요. 시편 51편에서 다윗은 회개의 기도를 드리며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를 구합니다. “[51:1]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여기서 우리는 다윗이 하나님의 성품에 부합하는 것을 위해 기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기도는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과 풍성한 인자하심과 일치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결코 우리에게 주님의 성품을 벗어난 일을 하라고 부르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주님의 속성에 어긋나는 삶을 살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과 일치하지 않는 것을 기도하거나 구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하나님의 성품과 반대되는 행동, 말 또는 결정을 촉구하는 내면의 목소리가 있다면, 우리는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라고 100% 확신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듣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성품이 어떤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실 때 자비와 은혜, 신실한 사랑의 마음에서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소망은 우리가 주님을 알고 주님과 순종적으로 동행하여 주님의 축복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완전하고 변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의 말씀은 수세기 전에 모세에게 계시하셨던 것처럼 항상 주님의 성품을 반영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더 많이 배우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읽고 묵상합시다. 그리고 주님의 성품과 일치하는 길만 따르도록 합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선한 목자의 음성을 분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