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3. 아기로 오신 메시아:예수 그리스도 (이사야 9장 1-7절)

이제 곧 있으면 성탄절입니다. 성탄절에는 뭐라고 인사하죠? “Merry Christmas!” 번역하면 “즐거운 성탄절 되세요!”란 인사입니다. 실제로 성탄절은 교회 다니는 사람이나, 안 다니는 사람이나, 예수 믿는 사람들이나, 믿지 않는 사람들이나 모두의 마음이 들떠 있고 즐거운 날입니다. 12월만 되면 길거리와 집집마다 환한 조명과 트리 장식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식당이나 도서관 쇼핑몰에 가봐도 화려한 조명과 성탄절 트리, 그리고 벽에 걸려 있는 크리스마스 장식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에도 여유가 넘치고, 얼굴에도 미소가 떠오릅니다. 마치 온 세상이 축제의 분위기가 가득 합니다.

성탄절을 맞이하여 얼마 전 미국의 한 방송매체가 사람들을 대상으로 다음과 같은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Why do you like Christmas?” (왜 성탄절을 좋아하십니까?) 이 설문조사에 대한 대답을 1위부터 3위까지를 한 번 예상해 보시겠어요? 사람들이 과연 뭐라고 대답 했을까요? 사람들은 왜 성탄절을 좋아할까요? 1위는 “Good Food” 입니다. 맛있는 음식 입니다. 크리스마스 기간이 되면 미국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들 혹은 고향에 있는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냅니다. 이 귀한 명절에 가족들과 함께 아주 흥겹고 즐거운 추억을 만들며 맛있는 음식을 먹습니다. 그것이 사람들 사이에서 좋은 추억으로 기억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성탄절을 좋아하는 이유 1위는 Good food 좋은 음식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2위는 Present/Gift 입니다. 크리마스 선물이 2위 였어요.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선물을 받고, 또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선물을 나누어 줍니다. 어떤 아이들은 1년 내내 성탄절 선물만 기다리기도 합니다. 그토록 갖고 싶었던 Puppy 혹은 장난감 선물을 받기도 합니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그 동안 가지고 싶었던 물건들을 성탄절날 선물 받기도 하고, 또 자기 자신에게 선물해 주기도 합니다. 성탄절이 좋은 두 번째 이유는 바로 선물 때문이었어요. 성탄절이 좋은 이유 3위는 크리스마스 스페셜 세일 이었습니다. 기업들마다 그 해의 판매 실적을 늘리기 위해서 한해의 마지막인 성탄절 기간에 큰 세일을 합니다. 많은 이들이 성탄절에 쇼핑몰에 가서 물건을 삽니다. 또 심리적으로 사람은 행복하다고 느낄 때 더 많은 소비를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실제로 성탄절 기간 엄청난 매출이 나오기도 합니다. 이 설문조사의 결과를 보면 사람들이 성탄절을 좋아하는 이유와 예수님의 탄생 사이에 연관성을 찾기가 참 어렵습니다.

성탄절이 분명 기쁨의 절기라는 것에는 예수 믿는 사람이나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이나 이견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탄절이 왜 기쁨의 날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의견들을 가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기독교인에게는 성탄절이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기 때문에 즐거워하고 기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구원자로 인정하지 않는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탄생을 그리 특별하게 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사할 때도 “Merry Christmas”라고 하면 불쾌감을 표시하며 대신에 “Happy Holiday”라고 대신 인사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실제로 갈수록 Merry Christmas 라고 인사하는 사람보다 Happy Holiday라고 인사하는 사람들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여 미국 방송사인 CNN/USA Today/ 갤럽에서 공동으로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보았습니다. 성탄절에 어떤 인사가 더 적절 합니까? 미국 인구 중 56% 만이 “Merry Christmas”라고 인사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는 조사가 나왔습니다. 즉 거의 절반에 가까운 41%가 “’Merry Christmas’ 보다 ‘Happy Holiday’라는 인사가 더 적절한 인사다”라고 인정한 것이죠. 다시 말하면 갈수록 성탄절을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는 날로 생각하기 보다는, 단지 연말에 찾아오는 하나의 축제의 절기 즈음으로 보는 사람들의 비중이 늘어나는 추세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갈수록 성탄절의 주인공이 예수님이 아니라, 다른 그 무언가에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는 것이죠. 오늘 우리는 다가오는 성탄절을 준비하며 왜 성탄절이 진정 기쁨의 날인지 말씀을 통해 그 의미를 되새기고자 합니다.

이사야는 예수님께서 탄생하기 약 700년 전 즈음 활동했던 선지자 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를 보내실 것을 예언 했습니다. 또한 메시아가 오면 온 나라에 큰 기쁨과 즐거움이 임할 것을 예언 했습니다.

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9:3]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하게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이사야가 살아가던 시대에 이스라엘은 앗수르 제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큰 고통과 환난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온 나라에 비명소리와 고통의 절규가 끊임없이 들려왔습니다. 바로 이런 암울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이사야는 장차 메시아가 오게 될 때 나타날 변화를 예언했습니다. 3절 말씀을 보시면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케 하신다’고 했습니다. 즉 지금은 적국과 원수들에 망해가는 이스라엘이지만, 메시아가 오시는 그 날에는은 다시금 번성케 되어 큰 민족이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다시 한 번 이스라엘에 즐거움이 찾아옵니다. 3절에 보니 이사야는 메시아가 오시는 그날에 임할 즐거움을 두 가지로 비유했습니다.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누는 때의 즐거움]입니다. 고대 사회는 농경 사회 입니다. 한 해 정성껏 땀과 수고로 지은 농사가 망하면 얼마나 마음이 낙심 되겠습니까? 그런데 실제로 관계시설이 발달하지 않은 고대 사회에서는 비가 내리지 않는 가뭄으로 인한 농작물 피해가 상당 했습니다. 또한 자주 발발하는 이웃 국가들과의 전쟁으로 이한 치안 불안으로 농사하는 일도 어려웠고 추수 때까지 밭이 아무런 해를 밭지 않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그러니 농부 입장에서 보면 한 해 동안 특별한 사건 사고 없이 지나가고 비도 때 맞게 잘 내려주어 농작물이 풍년을 맞이하여 가을에 수확하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없었습니다. 얼마나 기쁜지 농삿물을 수확하는 날에는 마을 주민들이 함께 모여 잔치를 열 정도 였습니다.

또한 3절을 보니 메시아께서 오실 때 주어지는 기쁨은 “탈취물을 나누는 때의 즐거움 같이”라고 비유적으로 말했습니다. ‘탈취물을 나눈다’는 말은 전쟁에서 승리 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목숨이 왔다갔다 합니다. 전쟁에 참전한 한 미군의 소원은 ‘살아서 내일을 맞이하는 것’이었습니다. 죽음의 두려움과 압박 속에서 전쟁의 승리의 소식을 듣게 되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탈취물을 나누는 때의 즐거움…” 바로 승리의 즐거움 입니다.

[[[우리나라 시인 중에 ‘심훈’이라는 분이 쓴 ‘그 날이 오면’이라는 제목의 시를 보면, 우리 민족이 일본의 압제에서 해방되는 그날이 오면 얼마나 기쁠지 다음과 같이 표현 했습니다. ‘그날이 오면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이 목숨이 끊어지기 전에 와주기만 한다면 광복의 소식을 알리기 위해서 종로에 위치한 종을 머리로 들이 받아 울리다가 두개골이 깨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을 것”이라고 표현 했습니다. 적군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자가 누리는 기쁨의 크기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죠.]]]

메시아가 오시는 바로 그 날 지상에서 누릴 수 있는 최상의 기쁨과 즐거움이 찾아옵니다. 비록 지금 시대적 상황은 암울하고, 현실적인 환경은 암담하지만 메시아가 오시면 이 모든 고통을 역전시키실 것입니다. 메시아가 오시는 그 날 이스라엘은 이 세상 그 어디에서도 경험해 보지 못하고 맛 볼 수 없었던 큰 기쁨과 즐거움의 날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아가 오시는 날을 “미디안의 날”로 비유 했습니다. 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9:4] 이는 그들이 무겁게 멘 멍에와 그들의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주께서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미디안의 날은 무슨 날입니까? 사사 기드온이 3백명의 군사를 데리고 가서 수 만명의 미디안 군사를 물리치고 대승을 거둔 날입니다. 무려 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미디안의 노예로 살아가며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착취와 모욕과 죽임을 당했던 이스라엘이 기드온의 승리로 역전을 맞이합니다. 미디안을 무찌르고 그들이 빼앗아간 것을 모두다 도로 찾아왔고 미디안의 것까지 빼앗아 다스리게 됩니다. 얼마나 기쁜 날입니까? 그런데 어떻게 3백명의 군사로 수 만명의 군사를 상대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것은 분명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죠. 이처럼 이사야 선지자는 장차 메시아가 탄생하실 것인데 그것은 분명 미디안의 날처럼 모든 고통과 압박, 두려움과 속박이 끊어지는 승리의 기쁨이 머무는 날이 올 것을 예언 했습니다.

심지어 그 날이 오면 메시아의 완전한 승리로 인해 전쟁을 준비하던 군인들도 할 일이 사라집니다. 5절 입니다. “[9:5]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들의 신과 피 묻은 겉옷이 불에 섶 같이 살라지리니 군인들이 요란스럽게 전쟁을 하며 신고 다니던 군화, 적들의 피로 얼룩진 군복 이것이 모두 필요 없어 이제 땔감이 되어 불에 사라집니다. 메시아께서 오시면 더 이상 전쟁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얼마나 기쁘고 좋은 날입니까? 유대인들은 이 날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날이기에 이 날은 반드시 올 것을 믿고 기다렸습니다.

온 세상이 바라고 기다리고 있는 메시아의 출현! 그로 인한 큰 기쁨과 즐거움의 승리가 한 아기의 탄생을 통해서 성취 될 것입니다. 6절을 봅시다.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이사야는 온 세상을 죄로 인한 고통과 아픔, 저주와 죽음에서 구원하실 메시아가 아기의 모습으로 탄생할 것을 예언 했습니다. 지금 이사야는 자신이 살고 있던 시대에서 무려 약 700년 뒤에 일어날 일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6절을 다시 보시면 이 예언의 내용이 ‘과거형’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신학적 용어로 ‘예언적 과거’라고 말합니다. 아직 일어난 사건이 아니며 다가올 미래에 일어날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반드시 일어날 일이기에 과거형으로 예언을 기록한 것이죠.

이러한 예언적 과거를 우리들도 일상적인 현장에서 사용할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축구장에 가서 경기를 보고 있는데, 전반전에 벌써 우리팀이 10 대 0으로 이기고 있습니다. 후반전 보지 않아도 승리는 이미 결정 된 셈입니다. 길을 지나가던 사람이 묻습니다. “누가 이기고 있습니까?” 아직 경기가 45분 이상 남았지만 누가 보아도 우리 편의 승리가 확실 하잖아요? 그럴 때 우리는 과거형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이겼어요! 이거 안 봐도 우리가 이긴 경기에요.” 왜 이렇게 말할 수 있죠? 승리가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이사야 선지자는 이 아기의 탄생이 너무나도 확실하고 반드시 일어날 사건이기 때문에 ‘예언적 과거’ 즉 과거형으로 기록 했습니다. 6절을 보시겠습니까?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과거형이죠? 그 다음,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이 역시 과거형 입니다. 여전히 다가올 사건 입니다. 그러나 이 아기는 반드시 태어날 것이고 그 아기가 탄생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크고 놀라운 기쁨이 주어질 것은 확실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지금 고통과 환난 가운데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전히 그들이 기뻐할 수 있는 이유, 바로 한 아기가 우리에게서 태어났고, 하나님은 그 아기의 몸을 통해 자신의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이라고 예언 했습니다. 왜 성탄절이 기쁨의 날입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아인 아기의 탄생 날이기 때문입니다. 이 아기의 이름이 바로 예수 입니다.

이사야 선지자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700년 전, 아직 오시지 않은 메시아가 미래에 올 것을 믿고도 기뻐 했는데, 이미 2천년 전 역사의 중심에 오신 구원자 예수를 믿는 우리들은 얼마나 떠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죄가 왕노릇 하던 이 어둠의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 주님의 탄생으로 인해 새로운 세상이 찾아 왔습니다. 누구든지 과거의 허물, 실패와 좌절 앞에 굴복하지 않아도 됩니다. 예수의 탄생으로 우리의 모든 과거는 씻어지고 이제 새로운 출발과 역전이 가능한 은혜의 시대가 도래 했습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온 세상을 구원하실 메시아 아기 예수의 탄생,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우리들은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도대체 예수님이 누구이기에? 이 기적과도 같은 기쁨이 찾아오는 것일까요? 예수님의 정체가 무엇이기에 온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고, 모든 고통과 압박, 속박과 질병과 아픔, 눈물과 저주 그리고 죽음까지도 다스리고 정복하시는 것일까요? 우리는 그 아기로 오신 예수님이 누구인지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아기의 탄생을 예언하며, 더 나아가 이 아기의 정체를 밝혀 주었습니다. 6절 말씀을 다시 한 번 함께 읽겠습니다.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아기에 대한 묘사가 5가지(4가지)로 나와 있습니다. “기묘자, 모사(기묘한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 이번 성탄절을 맞이해서 예수님에 대한 이 5가지(4가지) 소개를 외우는 기회로 삼으시면 좋겠습니다. 본래 고대 근동에는 왕을 세울 때면 왕의 본명 외에 왕의 고귀한 성품과 그의 높은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왕에게 별명과 같은 직함을 주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다윗 하면 뭡니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 다윗”, 솔로몬 하면 “지혜의 왕 솔로몬” 이런 것처럼 왕의 성품과 업적을 나타내는 직함이 따로 있었습니다. 오늘 이사야 선지자는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직함을 소개 합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한글 성경을 보면 이 아기에 대한 묘사가 5가지로 나와 있습니다만, 원문 히브리어를 보면 이것이 4가지로 되어 있습니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한글 성경처럼 5가지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성경 원문에 더욱 충실하기 위하여 오늘 이 아기 예수를 4가지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1) 기묘한 모사 Wonderful Counselor

온 세상에 놀라운 구원의 큰 기쁨을 가져다 줄 우리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첫 번째 직함은 바로 기묘한 모사 입니다. 저를 한 번 따라해 주시겠스니까? “기묘한 모사” 기묘하다는 말은 “기이하고 묘하다”는 뜻입니다. 조금 어렵죠? 그런데 영어 성경에 보면 ‘기묘하다’는 말을 우리가 잘 아는 영어 단어 ‘Wonderful’이라고 해석해 두었습니다. “기묘한 모사” 즉 “놀라운 모사”입니다. ‘모사’라는 말은 오늘날로 말하면 ‘카운셀러’입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찾아가 조언을 구하고 지혜를 구하는 대상입니다. 또한 곤경에 처하고 힘들 때다 옆에서 도움을 주는 존재가 바로 모사 입니다.

옛날에는 마을 사람들이 어디로 가서 도움을 청할지 모를 때 백성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현인이 있었습니다. 지혜로운 현인들은 그 명성이 멀리까지 퍼져 나갔으며, 사람들이 멀리서도 그를 보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성경을 보면 구스 여왕이 지혜이 왕 솔로몬을 만나 그에게 조언을 구하기 위해 멀리서 사절단을 대동하여 찾아오는 장면이 나옵니다. 솔로몬은 구스 여왕의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해 주었습니다. 어려운 문제를 놀라운 지혜와 재치 있는 답변으로 풀어주는 사람들이 바로 현인입니다. 오늘날의 대표적인 현인으로 불리는 사람이 바로 ‘오마하의 현인’ 워렌 버핏 입니다. 이 사람하고 한 끼 점심 식사하려면 몇 십 만불 줘야 합니다. 어떤 익명의 사람은 워렌 버핏하고 밥 먹기 위해서 삼십삼만달러를 냈습니다. $3.3M 달러… 참 이해가 안 되죠? 그 정도 돈 있으면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뭐가 있겠어요? 그러나 세상에는 돈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지혜가 얼마나 필요합니까? 부자도 고민이 있어요. 가진 것이 아무리 많아도, 쌓아놓은 재산이 많아도 내가 가진 지혜와 경험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어요… 바로 이런 한계를 가진 것이 우리들입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에게는 세상의 참 지혜를 알려주실 수 있는 조언자가 필요합니다.

오늘 이사야 선지자는 앞으로 탄생하실 메시아, 예수가 바로 우리가 힘들고, 좌절할 때 우리 옆에서 도움이 되시는 Wonderful Counselor 놀라운 모사가 되어 주신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주님의 지혜는 우리의 이성과 산수를 뛰어넘습니다. 놀라운 방식으로 오셔서,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구약성경의 ‘모사’라는 단어는 신약성경에 가서 ‘보혜사’라는 단어로 대치 됩니다. 보혜사란 단어는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라는 단어가 사용 됩니다. ‘파라’는 ‘옆에서’란 뜻이고, ‘클레토스’는 ‘불러냄을 입은 자’라는 뜻입니다. 보혜사, 즉 모사는 항상 우리 곁에서, 우리 인생길에 ‘카운셀러’가 되어주는 분이십니다.

세상에는 쓴 것을 단 것으로 삼고, 단 것을 쓴 것이라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고 명철하다고 판단하는 사람들… 그러나 그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전히 그 자신도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 때문에 깊이 시름하거나 고민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인간의 지혜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지혜를 주시는 분, 무엇이 참 지혜인지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Wonderful Counselor가 필요 합니다. 세상과는 다른 지혜를 가르쳐 주시는 분,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또한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가르쳐 주시는 분, “인생은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답해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알려주시는 분, 하루살이처럼 살던 인생에게, 원숭이가 내 조상이라고 믿고 세상에 태어났으니 거저 살다 거저 가자하며 방황하며 살던 이들에게 창조의 비밀과 우주의 역사의 비밀을 깨닫게 하신 분, 세상이 줄 수 없는 지혜를 주시는 Wonderful Counselor 예수 그리스도… 오늘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세상과 다른 지혜를 따라가고 있습니까? 주님의 인도를 따르고 있습니까? 주님이 진실로 우리의 ‘모사’ 되십니까? 누구의 목소리를 따라가고 있습니까? 주님의 인도와 안내를 따르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놀라운 모사가 되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 나를 생명의 길로 인도해 주시기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보내주신 이 아기가 바로 우리의 인생을 인도해 주시며 갈 길을 밝히 보여주시는 놀라운 모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2) 전능하신 하나님 Mighty God

둘째로 이 아기의 이름은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저를 따라해주십시오. “전능하신 하나님”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해산할 때가 되어 아이 낳을 곳을 찾았지만 빈 방이 없어 베들레헴 시골 동네 가축이 지내는 한 마구간의 말구유에 아기를 눕혀 두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바로 그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태어난 아기 예수가 하나님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자 그런데 오늘 본문은 하나님을 설명하며 그 앞에 형용사를 하나 더 붙였습니다. 하나님이신데 어떤 하나님이세요? ‘전능하신 하나님’ 입니다. 본래 구약성경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이란 단어를 쓸 때 히브리어로 ‘엘 샤다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한 번 즈음 들어 보셨을 거에요. ‘엘 샤다이…’ 모든 능력을 가지셨다. 지혜만 소유하신 것이 아니라, 그 지혜로운 방책을 실행하실 전능하신 능력을 소유하고 계신 것이죠. 자, 그런데 여기 한글 성경에는 보이지 않지만,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들어나는 한 가지 차이가 있습니다. 본래 전능하신 하나님 하면 히브리어로 ‘엘 샤다이’를 사용하는데, 여기서는 ‘엘 낍보르’라는 표현을 사용 했습니다. ‘엘 낍보르’는 단순히 어떤 힘과 권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히브리어로 이 말은 “시작한 일은 마무리하는 분”이라는 뜻 입니다. (시작한 일은 마무리 하는 분). 사람은 계획이 있고 그것을 실천할 의욕이 있어도 그것을 이루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능력이 없거나 상황이 안 되서 계획이 좌절되거나 실패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엘 낍보르” 전능하신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세요. 주님께서 경영하신 것, 주님께서 계획하신 것은 반드시 이뤄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시작하신 일은 반드시 마무리 하십니다. 그래서 성경에 기록된 예언의 내용은 반드시 성취되고 완성됩니다.

사람은 자신이 시작한 일들을 포기합니다. 서로 평생 사랑하기로 서약한 부부도, 중간에 포기하여 이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심지어 부모가 자기가 낳은 자녀를 키우다 포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사람에 실망하고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 당해 사람을 떠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어떠실까요? “이야… 이 놈 진짜 못 된 놈이구나? 알고보니 악질 중에 악질이네? 이야. 너는 됐다. 너는 아웃!” 하나님 이렇게 중간에 손 터시는 분이 아니세요.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계획하셨으면 주님은 반드시 그 사람을 구원하십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것을 확신하노라) 하나님은 절대로 선택하신 사람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죄인을 구원하기로 계획하셨으면 반드시 구원하십니다.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고집 센 사람들 보면 오랜 세월이 걸려도 그 사람의 고집을 꺾으셔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듬어 가십니다. 아브라함 보세요. 얼마나 사람인 믿음이 없는지 하나님이 25년간 연단하셨습니다. 모세는 얼마나 교만하고 자존심이 센 사람인지 하나님이 그 자존심 꺾는데 무려 40년 동안 연단하셨어요. 요셉과 다윗은 둘 다 약 13년 정도 걸렸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오래 걸려도 하나님은 사람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세요. 죄인을 구원하시기로 계획하셨으면 반드시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중간에 “넌 안 되겠다.”고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주께서 시작한 일은 반드시 끝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요한계시록에 자신을 소개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한글은 첫 번째 자음이 기억이고 마지막 자음이 히읏이죠? 헬라어의 첫 번째 자음이 알파고 마지막 자음이 오메가 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엘 깁뽀르’ 시작하신 일을 마무리하시는 하나님, 처음이고 마지막 되시는 하나님으로 소개하신 것이죠.

지금 전 세계는 동일한 달력을 사용 합니다. 올해가 몇 년입니까? 2023년도죠? 그러나 사실 이 앞에는 ‘주후’라는 단어가 생략된 것입니다. 주후 2023년도 즉 아기 예수 탄생하신 후 2023년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모든 인류의 역사는 B.C.와 A.D.로 나뉘지 않습니까? B.C. Before Christ 예수님 탄생하시기 전 이야기와 A.D. 라틴어로 Anno Domini, 영어로 in the year of our Lord. 한글로 ‘주님의 해’라는 뜻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온 세상의 역사가 지금 예수님의 탄생을 기점으로 움직여지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역사의 주인이심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 입니다. 어느 철학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간은 시계 속에 있지 않다.” 맞는 말이죠? 시계가 고장나도 시간은 갑니다. 온 인류의 역사는 시작한 일을 마무리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성탄절에 탄생한 이 아기 예수의 정체가 바로 전 세계의 역사를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이십니다.

 

3) 영존하시는 아버지 Everlasting Father

세 번째로 이사야 선지자는 아기로 태어나실 메시아의 정체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소개 했습니다. 저를 따라해 주시겠습니까? ‘영존하시는 아버지’ Everlasting Father. 우리는 누구에게 아버지라고 부릅니까? 우리를 낳아주신 분이 육체의 아버지 입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의 아버지세요? 우리 영혼의 창조자 되시기에 우리의 아버지 되십니다. 아기의 모습으로 태어나신 그리스도 예수가 우리를 창조하신 아버지가 되세요.

실제로 여기 본문에서 ‘아버지’로 쓰인 히브리어 단어는 ‘창조주’라는 뜻으로도 해석이 됩니다. 구약성경 욥기 38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욥에게 이런 질문을 물어보세요. “비에게 아비가 있느냐? 이슬방울은 누가 낳았느냐” 실제로 이 말의 뜻은 ‘비를 만든 창조주’가 있느냐?고 묻고 계신 것이죠. 따라서 본문에서 아기 예수가 ‘영원하신 아버지’라는 말의 뜻은, 그가 바로 영원부터 존재하신 창조주 되심을 의미합니다.

요한복음 1장에 예수님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1:1-3]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이 세상을 만드시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4) 평강의 왕 Prince of Peace

마지막 4번째로 이사야는 장차 태어날 아기의 정체를 ‘평강의 왕’으로 소개 했습니다. 저를 한 번 따라해 주시겠습니까? ‘평강의 왕’ 혹시 히브리어로 평강이란 뜻을 가진 단어를 알고 계십니까? ‘샬롬’이라는 단어 들어 보셨어요? ‘샬롬’이 바로 평강 입니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 왕의 이름도 평강이란 뜻을 가진 ‘샬롬’이란 단어에서 유래된 것이죠. 자, 그런데 히브리어에서 이 샬롬이라는 말이 가진 의미가 독특합니다. 우리가 평강이라고 하면 웬지 뒤에는 울창한 나무와 숲이 우거진 커다란 산이 있고, 앞에는 시냇물이 졸졸 흐르고 들판에 양과 염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어먹는 그런 전원적인 장면을 상상하게 됩니다. 그러나 본래 히브리어에서 평강이란 뜻은 다릅니다. ‘샬롬’의 뜻은 ‘끊어진 두 사이를 직선으로 잇는다’는 말 입니다. “끊어진 두 존재의 사이를 직선으로 잇는다.”

이 땅에는 진정 평화가 필요합니다. 우리 가정, 사회, 국가, 이웃 간에도 평화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평화는 바로 하나님과의 평화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겪는 모든 고통의 원인이 바로 하나님과의 불화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죠.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거에요. 우리가 어둠에 처한 이유도, 우리가 늙고 병들며 마침내 죽어야 하는 이유도 바로 하나님과 불화했기 때문입니다. 서로 사랑하지 못하고 가정 간에도 미워하는 이유도 하나님과 불화했기 때문입니다. 누가 이 사망의 저주에서 우리를 구원할 수 있나요? 그 누구도 할 수 없습니다. 오직 평화의 왕이신 그리스도만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끊어진 관계를 회복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들 두 사이에 끊어진 관계를 다시 연결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평강의 왕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해서 짊어지신 십자가 죽음으로 인해 하나님과 우리 사이 끊어진 관계가 다시 이어지는 ‘구원의 날’이 도래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원수 되었던 우리를 용서해 주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화해시켜 주시는 참 평강의 왕이십니다. 이것이 바로 메시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참 정체성 입니다.

성탄절에 태어나신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있는 불화를 제거하시고, 우리 삶에 평강, 회복, 그리고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래서 아기 예수의 탄생이 우리에게는 큰 기쁨과 즐거움의 소식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가오는 성탄절은 분명 온 세상에 큰 기쁨의 날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 때문에 기뻐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분명하게 알아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탄절은 우리들의 영혼을 죄의 고통과 속박에서 구원해 주시고, 영원한 승리를 주시기 위해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날 입니다. 이 예수는 기묘한 모사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이 되십니다. 다가오는 성탄절을 준비하며, 아기 예수 탄생이 가진 진정한 의미와 목적을 기억하여 하나님께 성탄을 감사하며 찬송하며 맞이 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