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02. 세 친구에 대한 욥의 대답 (욥기 27장 1-23절)

예수님께서는 하늘을 나는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일어나지 아니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하나님의 통치 아래서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 무엇도 하나님의 통치 밖에서 일어나는 일은 없습니다. 그와 같은 시각으로 볼 때 우리가 인생 속에서 겪고 있는 고통과 고난 역시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일어날 수 없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욥의 세 친구들은 하나님께서 욥의 인생에 엄청난 재앙을 허락하신 이유는 그가 사악한 죄악을 저질렀기 때문이라고 단정지었습니다. 그러나 욥은 매우 억울했습니다. 자신은 일평생 동안 죄를 멀리했고, 그 누구보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왔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게 살아가려고 부단히 노력해왔습니다. 그런 자신에게 엄청난 재앙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의도를 욥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욥과 같이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는 날을 혹시 경험해 보신적은 없으십니까? “하나님, 어째서 저렇게 엉터리로 신앙생활하고, 다른 성도들에게 말과 행동으로 상처 주고, 비양심적으로 비지니스 하는 저 김 집사님보다, 이렇게 새벽부터 열심히 기도하고 교회에서도 남들보다 오후 늦은 시간까지 봉사하고 섬기는 제 인생이 더 힘듭니까? 이것은 부당합니다!”. “하나님 제가 이토록 열심으로 주님을 섬기고 있는데 제 자녀들은 책임져 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제 비지니스는 제 노후는 책임져 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어찌 하나님도 모르고 평생 주일에 놀러 다닌 제 친구가 저 보다 더 나은 삶,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일하심이 이해되지 않는 날, 하나님의 선하심이 의심스러운 날을 혹시 경험한 적은 없으십니까? 우리는 이러한 순간들이 찾아올 때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욥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가장 먼저 욥은 정직하게 반응했습니다. 욥은 자신의 마음에 솔직했고, 하나님 앞에 자신의 감정을 하나도 속이지 않았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나의 정담함을 물리치신 하나님, 나의 영혼을 괴롭게 하신 전능자의 사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욥은 하나님을 향해 다음과 같이 불렀습니다. 첫째로 “나의 정당함을 물리치신 하나님!” 둘째로 “나의 영혼을 괴롭게 하신 전능자” 입니다. 이 두 가지를 합쳐 보면 욥은 분명 자신의 의로움을 외면하고, 오히려 악인들이 당해야 하는 고난을 자신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이시며, 자신의 영혼을 괴롭게 하고 계시는 분이 다름 아닌 하나님이심을 이야기 했습니다. 이는 아주 대단히 정직하고 솔직한 반응이었습니다. “하나님! 하늘을 나는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안 된다면서요? 그렇다면 지금 제 삶에 일어나는 이 엄청난 고통과 재앙도 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 아닙니까? 제가 얼마나 열심히 하나님을 섬겨 왔는데 왜 저를 이렇게 부당하게 대해 주십니까? 전능자 하나님 왜 저를 이토록 괴롭히시고 못 살게 구십니까?” 지금 이와 같은 목소리 톤으로 욥은 말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욥이 말하고 있는 대상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에 대해서 험담하면 신성모독이 되고 모욕이 되겠습니다만, 욥은 지금 자신이 하나님에 대해서 느끼고 있는 바를 정직하게 하나님께 기도로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 도대체 왜 그러셨어요?”

그와 동시에 욥은 결코 세 친구들의 부당한 지적과 책망에 대해서 인정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하니다. 4절 봅시다. “4 결코 입술이 불의를 말하지 아니하며 혀가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리라 5 나는 결코 너희를 옳다 하지 아니하겠고…” 욥의 세 친구들은 그를 추잡한 죄악을 저지른 사악한 죄인 취급하며 어서 빨리 죄를 회개하라고 부추겼습니다. 그러나 욥은 고난과 재앙이 찾아왔다고 해서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일들에 대해서 했다고 거짓을 말함으로 불의를 저지르지 않겠다고 대답했습니다. 또한 세 친구들이 주장하는 인과응보 원리처럼 욥이 잘못을 저질렀고 죄를 지었기에 재앙과 고통을 겪고 있다는 친구들의 주장이 옳다고 인정하지도 않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세 친구들에게 대답하는 욥의 모습을 통해서 본문 속 욥 자신도 온 세상을 다스리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자신에게 엄청난 고통과 재앙을 허락하셨는지 그 목적과 의미를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해되지 않는 때! 하나님이 낯설게 느껴지는 날! 바로 이 지점이 매우 중요합니다. 신앙의 분기점입니다. 이 지점을 잘 넘어가면 신앙이 크게 성숙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걸려 넘어지면 신앙이 와르르 무너집니다.

한 때 교회를 열심히 다니시던 분들이 교회를 떠나는 가장 큰 세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공동체에 대한 실망입니다. 교회에서 성도들끼리 싸우거나 다투는 모습을 보거나, 목회자의 성적 타락 등 교회에 대한 실망에서 비롯된 마음입니다. “교회도 별 것 없구나? 교회도 세상과 똑같다! 하나님 믿어도 아무런 소용이 없구나? 저렇게 서로 주먹 다짐 하고 싸우는데 교회가 다 무슨 소용이냐?” 하며 기독교와 교회에 대해서 실망해서 교회를 떠납니다. 두 번째 원인은 지적인 걸림돌 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기적이나 초자연적인 일들이 믿어지지 않는 겁니다. “어떻게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수 있지? 어떻게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이 먹고 열 두 광주리가 남을 수 있지? 왜 그럼 지금은 그런 기적들이 안 일어나고 있지?” 성경에 대한 지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교회를 떠나는 분들도 더러 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부분은 실존적인 문제 때문입니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던 어느 집사님께서 너무 사랑하던 초등학생 8살 막내 딸이 어느 날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랑하는 딸의 장례를 치르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방문을 닫아 놓고 엉엉 울고 있습니다. 자신을 향해서 아직도 방긋 웃으며 미소 짓고 있는 사진 속 딸 아이의 모습을 보고 눈에서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집니다. 가슴에 대못을 박아 놓은 듯이 아픕니다. “하나님! 차라리 저를 데려가셨어야죠? 왜 우리 예쁜 예은이를 데리고 가셨어요?” 집사님은 하나님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라는 이 모든 기독교의 진리가 다 무슨 소용인가? 아무런 위로도 되지 않았고, 기독교가 한낱 꿈과 달콤한 거짓말처럼 느껴졌습니다. 바로 이 실존적인 문제 때문에 한 때 교회를 열심히 다녔던 분들 가운데 지금도 신앙을 포기하고 교회를 떠나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 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이해되지 않는 날! 하나님이 낯설게 느껴지는 그 날! 과연은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욥도 그가 가진 지혜와 경험으로 도저히 자신에게 이 엄청난 고통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은 그 믿음의 자리에 머물기로 결정합니다. 6절 봅시다. “[27:6] 내가 공의를 굳게 잡고 놓지 아니하리니 마음이 나의 생애를 비웃지 아니하리라욥은 여태까지 자신이 살아온 길,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여 살아온 자신의 공의를 잡고 놓지 않기로 다짐합니다. 그는 자신의 마음이 자신이 지난 날 살아온 생애를 비웃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말을 거는 순간이 있잖아요? “영목아! 너 봐봐! 너가 이토록 하나님 열심히 섬겼는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니? 하나님은 너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으셔. 하나님은 너를 복 주실 계획이 없으셔. 너가 속은거야.” 이처럼 우리 마음이 우리가 살아온 생애를 비웃을 수 있짆아요? 욥은 자신의 마음이 그와 같이 어리석은 일을 하지 않겠다고 결단하고 있는 겁니다. 왜 그렸을까요? 욥에게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내가 하나님께서 내 인생에 하시는 일을 다 이해할 수 없을 지라도, 하나님이 나에게 낯설게 느껴지는 그 순간을 맞이했다 할지라도, 여전히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다! 하나님은 정의로우시다! 그 분은 완벽하신 공의와 정의로 이 온 우주와 내 인생을 다스리고 계시다!” 그래서 욥은 비록 지난 날 하나님을 열심으로 섬겨 온 모든 날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질만큼 큰 고난과 형용할 수 없는 엄청난 재앙 속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태까지 자신이 살아온 삶의 모습 곧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의인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유지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래서 7절부터 욥은 자신이 가진 신념! 즉 하나님께서 반드시 정의와 공의를 행하사 악인들에게는 심판과 벌을 내리실 것과 악인들의 최후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지금 잠시 세상에서 악인들이 번영하고 잘 되는 것처럼 보여도 막판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최후 심판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7-9절 봅시다. “[27:7-9] 7 나의 원수는 악인 같이 되고 일어나 나를 치는 자는 불의한 같이 되기를 원하노라 8 불경건한 자가 이익을 얻었으나 하나님이 그의 영혼을 거두실 때에는 무슨 희망이 있으랴 9 환난이 그에게 닥칠 때에 하나님이 어찌 그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랴 8절 보십시오. 악인들은 이익을 얻으나 죽으면 그 재물이 그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9절 그들이 환난 중에 하나님을 불러도 듣지 않으십니다. 14절 그의 자손은 번성해도 결국 다 죽음을 향하고 있습니다. 16절 그가 쌓은 값비싼 금과 은, 화려한 옷들 다 티끌 같이 사라질 겁니다. 그들이 평생 땀 흘려 일구어 놓은 재산을 하나님은 다른 사람들이 누리게 하실 겁니다. 19절 밤에 잘 때는 부자로 잠자리에 들지만 다음 날이 되어 눈을 뜨면 아무 것도 소유한 것이 없는 자가 되어 버립니다.

지금 사실 욥이 언급하고 있는 이 모든 악인들이 당해야 하는 고통과 재앙을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욥은 마침내 하나님이 악인들을 치고, 자신의 억울함을 들어 주실 것이라 확신합니다. 하나님이 이해되지 않는 고통과 고난을 허락하시는 날! 내 삶에 일어난 큰 아픔이 믿음으로 다 해석되지 않는 당황스러운 날!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사실 이 질문은 욥기 전체의 주제와 같습니다. “재물도 사라지고, 건강도 사라지고, 심지어 우리 삶의 모든 것이 다 사라진 그 순간에도 여전히 하나님만을 온전히 사랑하고 변함없이 주님을 섬길 수 있는가?” 인생의 아무런 대가 없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가? 이것이 욥기의 주제입니다. 왜 욥이 이처럼 큰 재앙을 당했습니까? 사탄이 말했습니다. “하나님! 욥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것들 때문이라고. 그러자 하나님은 욥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를 포함하여 온 세상에서 주님을 섬기는 모든 자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욥과 같이 전 재산을 잃어버리고, 열 자녀들을 모두 잃어 버리고, 건강상태가 최악이고, 심지어 사랑하는 가족과 아내와 자녀들과 친지들이 다 떠나고, 친구들도 다 등을 돌린 그 인생의 가장 밑 바닥의 순간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고백하십시오. 하나님의 선하심을 고백하십시오. 하나님의 완벽하신 통치하심을 고백하십시오. 공의롭고 선하신 하나님께서 그 완벽하신 통치하심으로 이 세상과 우리 인생을 다스리고 계심을 믿음으로 고백하십시오. 그리할 때 하나님은 마침내 우리 인생을 욥의 인생과 같이 회복하시고 갑절의 복을 주실 겁니다. 주님을 끝까지 믿고 공의의 길을 선택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