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1. 5. 욥에게 찾아온 고난 (욥기 1:1-12)

[핵심 메시지] 하나님은 의로운 성도에게도 고통을 허락하실 때가 있습니다. 고통 속에서만 깨닫는 인생이 있고, 고통 속에서만 보이는 하나님과 얼굴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의미 없는 고통은 없습니다.

1. 우스 사람 욥을 소개합니다.(1-5절)
1) 욥은 어떤 사람입니까? (1절)
욥기는 구체적으로 어느 시대에 쓰여진 책인지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욥은 창세기의 아브라함과 같은 족장 시대 인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성경책을 보면 비록 욥기가 성경 중간에 위치하고 있고, 열왕기상하, 역대상하 뒤인 포로 시대 이후에 자리 잡고 있어서 성경을 읽는 분들은 대부분 ‘욥은 다윗 시대 이후의 사람이 아닐까?’하고 생각하고 성경을 읽습니다. 그러나 욥기를 보면 그가 가정을 대표하는 제사장 역할을 수행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그의 자녀들의 죄를 속하기 위해서 제사장을 찾아간 것이 아니라 가장인 자신이 직접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는 출애굽기에 나오는 모세 이전 시대, 즉 아브라함과 같은 족장 시대 모습의 특징입니다.
오늘 성경은 바로 이처럼 족장 시대에 살았던 욥이란 사람에 대한 소개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욥1:1] 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욥기의 배경이 되는 ‘우스’ 땅은 지금도 정확히 어느 곳인지 알지 못합니다. 다만 이 책에 등장하는 이들의 말투나 풍습으로 미루어 보면 아라비아 사막 북부 지역 즈음 이라고 예상합니다. [욥]이라는 이름에는 ‘환난’, ‘재앙’ 또는 ‘재난을 당한 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야기 속 주인공 욥이 당한 여러가지 환난들을 생각해 보면 가장 잘 어울리는 이름을 가진 사람입니다.
1절을 다시 보십시오. 욥에 대한 소개가 아주 대단합니다. 욥을 4가지로 소개 합니다. 먼저 욥은 ‘온전한 사람’입니다. 이는 도덕적으로 온전하다는 말입니다. 그가 아무 죄가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그가 훌륭한 도덕적 자질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삶의 모든 면에서 하나님 보실 때에 어긋나는 행동들은 일체 하려 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양심에 따라 살아가는 아주 모범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성경은 욥을 ‘정직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정직하다’라는 말은 ‘휘어지지 않았다’, ‘일직선으로 되어 있다’라는 뜻입니다. 즉 그의 인품은 옳은 것을 향해 나아갈 때 좌우로 치우치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즉 그 어떤 반대가 있어도, 모두가 아니라고 반대해도 옳은 길을 걸어가는데 타협하지 아니하는 강직한 그의 성품을 의미합니다. 때로는 잘못된 선택임을 알면서도 사람들 눈치 보고 옳은 것을 선택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또한 옳은 길을 알지만 손해볼 것을 알기에 잘못된 길을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욥이 “온전하고 정직했다”는 소개는 그가 그와 같이 세상이나 상황과 타협하며 살지 않고 강직하게 선함과 옳음을 추구했음을 보여줍니다. 분명 이 세상은 정직하게 살아가려고 하다 보면 때때로 손해도 봐야 하고, 인간 관계에서 원수들도 생기기 마련입니다. 욥도 왜 그것을 몰랐겠습니까?
그렇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이 그렇게 살아가려고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1절에 이어지는 욥에 대한 소개를 보면 그 답이 나와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경외했기 때문입니다. 1절 말씀에 나오는 욥에 대한 소개는 총 4가지 인데, 앞에 두 가지는 수평적인 관계 인간적인 관계, 사회생활을 보여주고, 나머지 뒤에 두 개는 수직적인 관계 즉 욥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나타냅니다.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정말 올바른 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다라는 표현은 여러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욥이 항상 그의 삶에서 하나님을 중심에 놓고, 하나님을 기준으로 사리를 분별하고, 의사를 선택하고, 언행을 결정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욥에 대한 매우 긍정적인 표현은 8절에서도 다시 한 번 반복 됩니다.
“[욥1:8]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매우 흥미롭게도 8절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욥을 사탄에게 소개하고 계신 장면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욥을 평가하신 내용이 1절과 같습니다. 그는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 입니다. 즉 욥은 하나님께서 보실 때나 사람들이 볼 때 흠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높은 도덕적인 삶과 고상한 인품을 가진 정말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8절에 하나님께서 욥과 같은 자는 세상에 없다고 인정하실 정도였으니,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2) 욥의 자녀는 몇 명이고, 그의 재산은 어느 정도입니까? (2-3절)
욥에게는 총 10명의 자녀들이 있었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아들이 일곱 명이고 딸이 세 명입니다. 성경에서 7과 3은 아주 좋은 숫자 입니다. 숫자 일곱은 완전수 입니다. 특별히 성경에서 욥의 아들이 일곱이라고 표현한 것은 욥이 하나님으로부터 부족함 없는 축복을 받았다는 느낌을 갖게 만들어 줍니다. 또한 숫자 3은 거룩한 숫자 입니다. 따라서 아들이 일곱이고 딸이 셋이다라는 표현에는 언어 유희가 담겨 있습니다. 욥은 완전하고 거룩한 삶을 살았고, 또한 완전하고 거룩한 자에게 주어지는 복을 받았음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이와 같이 하나님의 확실한 축복을 받은 욥을 숫자로 설명하는 모습을 3절에서도 이어서 볼 수 있습니다. 3절 보여주십시오. 양이 몇 마리 입니까? 철천 마리입니다. 낙타가 몇 마리 입니까? 3천 마리 입니다. 아들 일곱, 딸 셋에서 보았던 숫자 7과 3이 또 반복되서 나오죠? 이는 욥기를 기록하고 있는 저자가 욥이 누리고 있는 이 모든 것이 우연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의 결과라는 사실을 강조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나 살아가고, 온전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이처럼 놀랍고 풍성한 복을 내려 주십니다.

3) 욥이 자녀를 위하여 한 일은 무엇입니까? (5절)
여기서 욥기의 저자는 우리에게 욥이란 사람이 얼마나 흠이 없고, 거룩한 사람이었는가를 더 잘 보여주기 위해서 한 가지 일화를 그려줍니다. 욥의 일곱 명의 아들들은 서로 생일이 되면 각각 자기 집에서 잔치를 베풀고 나머지 여섯 형제들과 세 명의 누이들도 다 청하여서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자녀가 열이면 서로 다투고 싸울 법도 한데, 얼마나 가정도 화목했던지 욥의 자녀들은 불화도 다툼도 없습니다. 욥의 자녀들은 서로 사이가 돈독 합니다 .이 모든 것 또한 하나님께서 욥의 가정에 주신 축복입니다. 그런데 한 번 아들들의 생일 잔치가 끝난 이후 욥의 행동을 주목해 봅시다. 5절 입니다. “[욥1:5] 그들이 차례대로 잔치를 끝내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하게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위가 항상 이러하였더라” 욥은 혹시 지난 날 생일 잔치 때 아들들이 죄를 범하지는 않았을까, 혹 말이나 행동으로 죄를 짓지 않아도 마음 속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지는 않았을까 염려하며 하나님께 자녀들의 죄를 용서해 주실 것을 구하며 제사를 드렸습니다. 본래 제사란 죄를 실제로 지었을 때 그것을 용서 받기 위해서 드리던 것이었는데, 욥은 혹시 자녀들이 마음으로 라도 알게 모르게 죄를 지었을지도 모르니 제사를 지낼 정도로 하나님 앞에서 완벽에 가깝게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요즘 한국에서는 어떤 분야에서 실력이 높거나 정도를 뛰어 넘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사람들을 가리켜서 ‘끝판왕’이라고 부릅니다. 거룩함, 경건, 열심, 성실함, 정직함 이 모든 것을 합하여 욥을 평가하자면, 그는 정말 신앙생활의 끝판왕 입니다. 욥과 같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은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적용 1] 욥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이라는 평가를 하나님으로부터 친히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코너스톤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아침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평가하신다면 어떻게 말씀하실 거라고 생각합니까? 오늘 1절과 8절에서 하나님께서 욥을 평가하실 때 4가지로 말씀하셨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은 두 가지 기준을 가지고 욥을 평가하셨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떠한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자! 인간 관계 또는 사회생활은 어떠한가? 도덕적으로 온전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자! 욥을 평가하셨던 하나님께서는 우리들도 바로 이 두 가지 영역에서 판단하고 계시지 않겠습니까?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내 삶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십니까?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 중심으로 내 삶이 움직이고 있습니까? 내가 돈과 시간을 사용하는 그 동기와 인생의 선택의 기준이 하나님 입니까?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기반을 두고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단순히 이 세상에서 내가 원하는 그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서 예를 들면 돈, 명예, 편안한 노후,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 위대한 업적, 성취감, 소속감과 같은 것을 위해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말씀과 기도가 삶 속에서 나타나고 있습니까?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기도하는 가운데 내 뜻이 아닌 것이 드러난 사안에 대해서 과감히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가는 순종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러한 것들로 하나님은 우리들을 판단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외모로 우리들을 판단합니다. 즉 겉으로 보이는 요소들로 우리를 판단합니다. 재산은 얼마나 있는가? 좋은 학교를 나왔는가? 차는 무슨 차를 타고 다니는가? 얼마 자리 집에 사는가? 연봉은 얼마나 되는 직장을 다니고 있는가? 세상이 이처럼 사람들을 외적인 요소들로 평가하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것들이 전부인줄 알고 집착에 가깝게 앞에서 제가 말씀 드린 것들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해서 미친듯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보지 않으십니다. 성경을 보면 우리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고 하셨습니다. “누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살아가는가?”, “누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이것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판단하시는 관점입니다. 천지만물을 지으신 분이 하나님이신데, 그가 초가산간에 살던, 궁궐 같은 맨션에서 살든 그것이 무엇이 중요하겠습니까? 이 세상 모든 것을 소유하신 주인이신 하나님이신데 그 사람이 재산이 많든 적든 그것이 하나님께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원하시면 페르시아의 2인자라고 자부하던 하만과 같은 부자도 하룻밤 사이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만드시고, 하나님이 원하시면 요셉과 같은 지하 감옥 죄수도 하룻밤 사이에 나라의 2인자로 만드실 수 있으십니다. 중국 최대 부동산 기업 헝다 그룹의 쉬자인 회장은 아시아에서 2번째로 큰 부자였습니다. 그가 가진 자산이 약 90억 달러 입니다. 그러나 최근 중국 부동산 시장이 무너지면서 6년 만에 쉬자인 회장은 추정해 보니 재산의 약 93%가 증발했습니다. 블룸버그 통신은 그가 부와 영향력 그리고 모두를 잃었다고 보도 했습니다. 외적인 것들은 언젠가는 다 부질 없이 사라집니다. 그러니 외적인 것들에 너무 집착하며 살아가지 맙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외적인 것들이 아니라, 우리 내면에 무엇이 있나를 보십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들을 평가하시면서 어떻게 평가하고 계십니까? 만일 이 질문에 대해서 내 스스로 생각해도 그 대답이 부끄럽다면, 지금부터 새롭게 시작하면 됩니다. 아직도 늦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다시 시작하십시오. 사실 우리 중 욥처럼 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아마 한 사람도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러나 좌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욥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완벽한 삶을 살아가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음심은 그의 완벽하신 의로움으로 우리를 덧입혀 주시기 위함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완벽하신 의로움으로 옷 입으십시오. 예수님께 내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내 죄가 사함 받았음을 고백하고, 예수님을 내 영혼의 구원자로 고백하십시오. 그러면 우리들의 모든 죄는 다 사함 받고, 예수님의 완벽하신 의로움이 우리의 것이 됩니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보실 때 이제 더 이상 죄인이나 원수처럼 보지 않으시고, 예수님의 완벽하신 의로움으로 덧입힌 바 된 우리들을 하나님의 의로운 백성이요, 거룩한 자녀로 보와 주십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거저 받은 것이니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입니다. 또한 그 은혜를 받았으니 이제 남은 삶을 또한 예수님처럼 욥처럼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고 거룩하게 살아가기를 위해 힘써야 합니다. 의로워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죄가 사함 받고 의로운 자가 되었기에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입니다. 그와 같이 살아가려고 힘쓰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복과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적용 2] 욥은 자신의 자녀들의 신앙도 살펴주었습니다. 혹시 그들이 죄를 지었을지도 몰라 욥은 자신의 자녀들을 위해 번제도 드렸습니다. 우리들은 가정을 죄로부터 지키기 위해서 어떤 일들을 행하고 있습니까?
믿음의 부모는 각 가정의 제사장입니다. 혹시 남편은 교회 안 다니십니까? 아내가 예수님 안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이 여러분 가정의 제사장입니다. 욥의 모습을 보면 자녀들의 신앙생활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성경은 가장 먼저 자녀의 믿음생활에 있어서 가장 큰 책임은 바로 부모에게 있음을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식은 여호와께서 부모에게 주신 기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녀의 육신을 잘 돌보고 양육할 책임을 주신 것처럼, 부모에게 자녀들의 영혼을 돌보고 그들의 마음 밭에 믿음을 심어주며, 이 세상에서 성결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우리에게 부모의 지위를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곧 부모가 자녀들에 대하여 수행해야 할 제사장적인 직무 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 시대를 보면 제사장적 역할이 사라진 가정을 많이 보게 됩니다. 자녀들의 학교 성적, 좋은 직장, 좋은 배우자, 사회적 성공에 대해서는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만, 정작 자녀들의 영혼의 상태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가정이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자녀들이 학교에서 수학 시험, 영어 시험 잘 못 보거나 성적이 떨어진 것에 대해서는 난리를 치면서도, 정작 아이들이 기도를 할 줄 모르고, 말씀을 멀리하고, 예배에 빠져도 나 몰라라 하고 전혀 무관심한 믿음의 부모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사랑하는 가족들과 자녀들에게 믿음을 물려주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무엇입니까?욥이 자녀들을 위해 하나님께 제사 드린 것과 같이 여러분이 가정의 제사장임을 기억하십시오.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예배를 가르치고, 찬양과 감사와 주일 성수와 기도를 가르치십시오. “(잠언 22장 6절)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2. 사탄이 하나님 앞에서 욥을 고소할 구실을 만듭니다.
욥기는 이제 우리를 아주 흥미로운 일이 벌어지고 있는 천상의 한 장소로 데리고 갑니다. 천사들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서 있고, 사탄이 그들 가운데 찾아 왔습니다! 왜 사탄이 하나님과 천사들이 있는 곳에 왔을까요? 사탄이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요한계시록 12장 10절을 보면 사탄을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는 자”,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라고 소개합니다. 여기서 ‘참소’란 남을 헐뜯어서 죄가 있는 것처럼 꾸며 윗사람에게 고하여 바치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목사님, 있잖아요! 저 집사님이 글쎄 지난 주에 친교 시간에 이렇게 이렇게 했어요! 저 집사님 혼줄을 좀 내주세요!” 이렇게 상대방의 실수를 보고하여 벌을 받도록 만드는 행위가 참소입니다.
사탄이 하는 일이 뭐에요? 밤낮 참소하는 자 입니다. “하나님, 글쎄 저 집사님이 지난 주에 이런 이런을 했습니다! 저런 사람이 무슨 구원 받은 사람입니까? 저런 사람이 어떻게 천국 갑니까?” 이렇게 우리들의 잘못을 하나님 앞에서 고발하고 고소하는 일을 하는 자가 사탄입니다. 성경에 ‘마귀’라는 단어가 헬라어로 ‘디아볼로스’인데, 이 단어가 바로 ‘참소하는 자’, ‘비방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욥기 1장은 사탄이 또 다시 사람들의 죄를 고발하고 정죄하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나온 것을 보여줍니다.
1) 하나님은 사탄에게 욥을 어떤 말로 자랑하십니까? (8절)
그런데 이 때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욥에 대해서 직접 그의 이름을 거명하시며 그를 칭찬하신 거죠! 앞서 8절 봤죠? [욥1:8, 새번역] “사탄아, 너는 내 종 욥을 잘 살펴 보았느냐? 이 세상에는 그 사람만큼 흠이 없고 정직한 사람, 그렇게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을 멀리하는 사람은 없다.” 여러분 우리들의 이름도 욥과 같이 하나님께서 직접 거명 되는 이름이 되며, 주님께서 천상의 회의에서 칭찬하실 수 있는 복된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사탄은 욥에 대해 무엇이라 말하며 하나님을 자극합니까? (9, 11절)
사탄이 하나님께서 욥에 대해서 칭찬하시자, 욥이 반발합니다. “하나님, 욥이 뭐 하나님 좋아서 그렇게 하는 줄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그에게 복을 많이 주시니 누구라도 욥처럼 하나님을 잘 섬기지 않겠습니까?” 9-10절을 읽겠습니다. [욥1:9-10] 9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10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의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의 소유물이 땅에 넘치게 하셨음이니이다” 사탄은 욥이 온전하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삶을 살아가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넘치는 복을 주셨기 때문이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즉 한 마디로 사탄은 욥의 거룩한 삶은 ‘하나님께 받을 복을 전제로 한 가짜’라고 이야기 한 겁니다. 9절에 사탄은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하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까닭 없이”라는 말은 “대가 없이”, “보수 없이”라는 뜻입니다. 즉 사탄은 욥이 그렇게까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유는 떨어지는 콩고물이 달콤하기 때문에 즉 하나님을 섬기는 자에게 주어지는 축복과 보수를 바라보고 그렇게 하는 것 아니냐며, 그렇게 섬기는 것은 결국 하나님이 아닌 물질이나 다른 것을 섬기는 것 아니냐며 자신의 논치를 펼쳐 나가고 있는 것이죠.
실제로 신앙생활이 미숙할수록 하나님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마치 어린시절 밤 늦은 시간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아버지 보다도 아버지 손에 들려 있는 맛있는 통닭에 눈이 더 가는 아이들처럼, 신앙생활도 처음에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보다는 ‘하나님의 손에서부터 나오는 복들을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받을 수 있을까?’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성숙한 자녀일수록 아버지의 손에 들린 통닭 보다는 아버지의 이마와 눈 밑, 그리고 손 등에 늘어가는 주름, 삶의 무게에 짓눌린 두 어깨, 피곤한 손과 점점 작아져 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마련 입니다.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아버지와의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며 아버지와 보내는 하루하루를 소중하고 감사하게 여기며 살아갑니다.
오늘 예배 드리는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무언가를 기대하며 교회에 왔습니까? 아니면 하나님 그 분 자체를 만나기 위해서 예배에 나아 왔습니까?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도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내가 원하는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한다 해도 지금과 같이, 한결 같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가?”, “하나님, 저 지금처럼 가난해도 주님 끝까지 사랑할 겁니다!”, “하나님, 저 지금처럼 병들어 살아도 주님만을 끝까지 찬송할 겁니다!”, “하나님 지금처럼 제 인생에 고난이 찾아와도 저는 주님 버리지 않을 겁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입니까? [합3:17-18]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복이나 보상 때문에 기뻐하고 즐거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그 분 한 분만으로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사탄이 바로 이 지점을 걸고 넘어집니다! 사탄이 하나님께 하는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11절 입니다. “[욥1:11]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사탄은 욥의 신앙은 보상을 기대하는 조건적인 신앙이기에 진짜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가 가진 모든 복이 사라지면 욥은 분명 하나님을 버릴 것이라고 욥의 신앙을 무시하고 그의 온전함과 정직함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제가 장담 합니다. 욥의 비지니스가 망하게 해
사실 욥기서 전체가 우리에게 이야기 하는 질문이 이것입니다! “금과 은이 없어도 주님을 사랑할 수 있는가?”, “건강과 성공이 없다 해도 주님을 사랑할 수 있는가?”, “남들이 다 가진 것 나에게 하나 없어도 여전히 주님을 변함 없이 사랑하고 섬길 수 있는가?”, “그대의 믿음은 어떤 믿음인가?” 욥기는 이 질문은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습니다.

3) 사탄의 도발에 하나님은 어떻게 대응하십니까? (12절)
이 때 하나님은 어떻게 사탄에게 말씀하셨습니까? “[욥1:12]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탄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 하나님은 욥의 온전함을 칭찬하셨고, 사탄은 오히려 욥의 온전함은 보상을 바라는 조건적인 신앙이라고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사탄에게 욥을 시험하도록 하시되 제한적으로 허용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우리가 겪는 모든 고난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다스림 안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놀라운 사실을 알려줍니다. 하나님은 욥과 같이 의로운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도 고통을 허락하실 때가 있습니다. 고통 속에서 우리의 믿음은 보상이나 댓가를 바라는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 한 분만 바라고 사모하게 되는 순결한 정금과도 같은 믿음으로 연단 되고 자라나기 때문입니다. 물론 믿음의 성장이라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우리가 모든 고통과 고난의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의로운 삶을 살아가는 성도의 삶에도 고통은 허락되며,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삶에 찾아오는 고난들 가운데 의미 없는 고난은 없다는 것을 우리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삶에 일어나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다스리고 계시고 통제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적용 3] 욥과 같이 의로운 사람에게도 고통은 시작 되었습니다. 이 사실이 우리에게 고통에 대해서 어떤 통찰을 줍니까?
하나님께서 천상의 회의에서 직접 거명하시고 칭찬하신 욥도 그의 삶에 고난이 찾아 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을 시험의 자리에 두심으로 말미암아 욥의 신앙을 연단하시고 그의 믿음이 더욱 성숙하게 자라나고, 그의 믿음이 더욱 높은 단계로 끌어 올라가도록 이 시험을 사용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인정 받은 의로운 자들의 삶에도 고난은 일어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의미 없는 고난은 없습니다. 사탄도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할 수 없고, 철저히 허용된 범위 안에서만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을 보았듯이, 우리 삶은 결국 하나님의 선하시고 전능하신 손 안에 있습니다.
우리 죄를 짊어지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제 우리는 욥과는 비교할 수 없는 완벽한 예수님의 의로움을 옷 입은 자들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의로운 자들이 되었기에 그에 걸맞게 온전하고 정직하게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 살아가야 합니다.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삶에도 고난이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나 그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우리의 모든 순간을 붙들고 계심을 끝까지 믿음으로 고백하며 고난 속에서도 더욱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자랑이 되며 칭찬 받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