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26. 억울함을 풀어줄 구원자 (욥기 19장 21-29절)

[핵심 메시지] 욥이 깊은 절망에 빠졌을 때 그는 가족들과 친지들, 또한 가장. 친한 친구들에게도 버림을 받습니다. 모두에게 버림받은 그 순간, 그는 자신을 버리지 않으실 구원자를 바라봅니다. 완전한 의인으로서 고난 받고 죽으신 그리스도는 모든 고통받는 의인의 대변자가 되시는 분입니다.

1952년 케다나 마니토바(Manitoba)주 위니펙(Winnipeg) 에서 태어난 데이비드 밀가드(David Milgaard)씨는 1969년 16살의 나이에 또 다른 십대 친구 둘과 함께 차를 타고 타 주에 살고 있는 친구 집으로 여행을 가게 됩니다. 공교롭게도 친구 집 근처에서 20세 간호보조원으로 일하던 게일 밀러(Gail Miller)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의 시체가 눈더미 속에서 파묻힌 채로 발견되게 됩니다. 케나다 경찰은 밀가드를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하였습니다. 증거가 불충분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들의 강요로 거짓으로 자백하게 된 그는 결국 강간살인죄 명목으로 종신형을 선고 받게 됩니다. 이후 그는 23년이란 시간을 감옥에서 보내게 됩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와 가족들은 그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했습니다.

그러던 지난 1992년 살인사건에 대한 새로운 재판이 열리게 되었고, 그는 감옥에서 석방되었습니다. 실제 살인자는 밀가드가 찾아갔던 친구의 집 지하에서 세든 싸이코패스, 연쇄살인범이었습니다. 1997년이 되어서야 정식으로 무죄판결을 받게 됩니다. 그가 종신형을 받은 지 무려 28년이 지난 후의 사건 입니다. 그가 16살에 들어가서 23년을 보냈으니 그의 십대, 이십대, 삼십대를 다 감옥에서 보내야 했던 것입니다. 자신이 한 번도 본적 없는 사람의 살인을 뒤집어 쓰고 억울하게 종신형을 받고 감옥에서 벌을 받아야 했으니, 얼마나 억울했을까요? 심지어 감옥에 있는 동안 그는 다른 수감자들로부터 성적인 학대를 당했습니다. 너무 억울했고, 감옥살이는 견딜 수가 없어 무려 2번이나 탈옥을 시도했고, 수차례 자살을 시도하는 등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지난 30년간 세상 모두가 그를 살인마라고 정죄했고, 심지어 그들과 가까운 친구들 이웃들까지도 다 그를 혐오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가족들도 살인마의 가족이란 오명을 쓰고 사회에서 갖은 수모를 당했습니다. 이 얼마나 억울한 일입니까?

밀가드 정도는 아니지만, 우리들도 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분명 억울한 일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회사에서 열심히 일했는데, 우리가 아닌 다른 사람이 그 공로를 인정 받기도 합니다. 잘못된 정보나 오해로 인해 다른 이들에게 부당하게 비난 당하기도 합니다. 학생 중에는 자신이 하지 않은 일로 선생님에게 처벌을 받는 경우나, 오해로 인해 꾸중을 듣기도 합니다. 진짜 억울한 것은 그 누구도 우리 말을 믿어주지 않고 우리가 잘못했다고 욕할 때가 아닐까요? 무엇보다 평소에 우리와 가까 왔던 이들이 우리들의 말을 믿어주지 않고 정죄할 때 우리 마음은 참으로 억울할 겁니다.

 

  1. 욥이 자신을 정죄하는 친구들을 책망합니다. (1-20)

욥기에 등장하는 욥의 상황이 바로 그와 같습니다. 동방에서 가장 부유했던 욥이었습니다만, 지금 그는 갑자기 일어난 불상사로 인해 전재산을 다 잃었습니다. 또 같은 날 갑자기 찾아온 재앙으로 인해 열 자녀들이 다 건물 붕괴로 압사당했습니다. 이것도 모자라 그에게는 극심한 피부병이 찾아왔습니다. 온 몸에 종기가 나서 견딜 수 없는 가려움증이 그를 괴롭혔습니다. 욥의 세 친구들은 이 모든 상황들을 종합해 본 후, 이것은 분명 욥이 큰 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하나님께 책망을 받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욥이 죄인이라고 그를 정죄했습니다. 욥은 매우 억울했습니다. 왜냐하면 욥은 한 평생 그 누구보다 하나님을 열심히 섬겨왔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욥의 세 친구들은 그의 이야기를 들어줄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들을 끈질기게 욥에게 그의 죄를 어서 고백해보라고 추궁하며, 욥이 자신의 죄를 회개 해야지만 그에게 회복의 소망이 주어질 수 있다고 그를 은근히 죄인으로 몰아가며 책망했습니다. 욥의 억울함은 극에 달했습니다.

 

1) 욥은 자신을 정죄하는 친구들을 뭐라고 책망합니까? (2,3)

참다 못한 욥이 화가 나서 그의 친구들에게 어떻게 말했는지 함께 읽어봅시다. “[19:2-3] 2 너희가 내 마음을 괴롭히며 말로 나를 짓부수기를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3 너희가 열 번이나 나를 학대하고도 부끄러워 아니하는구나 욥은 큰 아픔에 빠진 자신을 위로하기는 커녕 오히려 말로 정죄하고 조롱하듯이 책망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제발 좀 멈추어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대들이 언제까지 내 마음을 괴롭히며, 어느 때까지 말로써 나를 산산조각 내려고 합니까? 이미 나를 열 번이나 모욕했거늘, 그렇게 고통에 빠진 나를 학대하고도 여러분이 나의 ‘친구’라는 사실이 부끄럽지 않습니까?”

혹시 어려움에 빠진 친구가 있습니까? 혹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친구가 있습니까? 성급하게 말로 위로하려고 하다 보면, 오히려 상대방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를 때는 가만히 입을 닫고 상대방 곁에서 함께 울어 주고, 함께 시간을 보내주는 것이 최고의 위로 입니다. 욥의 친구들은 위로한답시고, 욥에게 자꾸만 해결책을 제시했지만, 오히려 그것이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욥의 영혼을 찔렀습니다. 눈에 연기를 피우는 꼴이고, 입에 식초를 붓는 꼴이며,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꼴입니다. 욥이 친구들에게 바라는 것은 단 한가지 뿐입니다. “친구들아, 나를 그만 책망하고, 정죄하지 말아다오. 다만 나를 불쌍히 여겨주겠니?” [욥기 1920-21] 20 내 피부와 살이 뼈에 붙었고 남은 것은 겨우 잇몸 뿐이로구나 21 나의 친구야 너희는 나를 불쌍히 여겨다오 나를 불쌍히 여겨다오 하나님의 손이 나를 치셨구나 욥은 계속되는 친구들의 책망에 너무나도 지쳤습니다. 이 세상에 아무도 내 편이 없다는 그 사실이 욥의 마음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2) 욥은 자신을 정죄하면서도 구체적인 죄목을 말하지 못하는 친구들에게 뭐라고 항변합니까? (5,6)

그러나 사실 욥의 친구들은 욥을 정죄하면서도 욥이 어떠한 죄를 구체적으로 지었는지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단지 욥이 어떤 큰 죄를 지어서 하나님께 벌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추정하고 단정 지으며 그를 정죄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이에 욥은 자신을 정죄하지만, 정작 그 어떤 구체적인 죄목을 말하지 못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합니다. 5-6절 입니다. “[욥기 195-6] 5 너희가 참으로 나를 향하여 자만하며 내게 수치스러운 행위가 있다고 증언하려면 하려니와 6 하나님이 나를 억울하게 하시고 자기 그물로 나를 에워싸신 줄을 알아야 할지니라 “자네들 생각에는 자네들이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인 것처럼 느껴질 터이고, 내가 겪는 이 모든 고난도 내가 지은 죄를 증명하는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그러나 자네들이 이것만은 알아야 한다네! 나를 궁지로 몰아넣으신 분은 하나님이시고! 나를 그물로 덮어씌우신 분도 하나님이시라네!”

욥은 그의 세 친구들이 어떤 근거도 없이 그를 정죄하고 있으며, 이는 “우리는 의인이고, 욥 너는 죄인이다.”라는 식의 교만하고 자만한 행위라고 욥은 그의 친구들을 책망했습니다. 욥은 그의 친구들이 명확하고 구체적인 죄를 아는 것도 아니면서, 욥을 죄인처럼 취급하여 그를 수치스럽게 만들고 있다고 이야기하며, 이는 근거 없는 비난이고 비판이라고 항변했습니다. 욥은 친구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자신이 어떤 잘못을 저질러서 그에 대한 심판과 벌로써 이런 재앙을 당하고 있는 것은 분명히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억울한 상황 속에 집어 넣으셨고, 마치 하나님께서 사냥꾼이 펼쳐 놓은 함정에 빠진 사냥감처럼 그를 그물에 가두셨다고 말했습니다. 즉 욥은 왜 하나님께서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엄청난 죄악을 저지른 적도 없는 자신을 이와 같은 곤경에 빠트리셨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마음을 솔직하게 내비치고 있었습니다.

3) 재앙을 당한 욥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얻은 고통은 무엇입니까? (13)

사실 욥이 가진 것이 많은 부자 였을 때는 그의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가 전 재산을 잃고 큰 고난을 당하자 그의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를 외면했습니다. 욥의 형제들은 그를 떠났고, 그의 친척들은 그를 버렸고, 그의 가까운 친지들은 그를 잊어버렸습니다. 그의 남은 종들도 주인 욥을 낯선 사람 여기듯 대하고, 이제는 욥이 불러도 대답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를 완전히 무시하는 거죠. 심지어 욥기 19장 17절 말씀을 보면, 욥의 아내는 그가 살아 숨쉬는 것조차 싫어했고, 그의 친형제들은 그를 역겨워 했습니다.

“[욥기 1913-19] 13 나의 형제들이 나를 멀리 떠나게 하시니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이 내게 낯선 사람이 되었구나 14 내 친척은 나를 버렸으며 가까운 친지들은 나를 잊었구나 15 내 집에 머물러 사는 자와 내 여종들은 나를 낯선 사람으로 여기니 내가 그들 앞에서 타국 사람이 되었구나 16 내가 내 종을 불러도 대답하지 아니하니 내 입으로 그에게 간청하여야 하겠구나17 내 아내도 내 숨결을 싫어하며 내 허리의 자식들도 나를 가련하게 여기는구나 18 어린 아이들까지도 나를 업신여기고 내가 일어나면 나를 조롱하는구나 19 나의 가까운 친구들이 나를 미워하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돌이켜 나의 원수가 되었구나 무슨 말입니까? 다 욥을 떠났다는 거에요! 욥이 잘 나갈 때는 다 욥에게 붙어 있었는데, 이제 욥에게 큰 재앙이 일어나자 모두가 다 욥을 무시하고 그에게서 등을 돌렸습니다! 평상시에 우리가 가까운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 중에 우리가 고난을 당하면 이처럼 외면하고 남일인 듯 우리를 멀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고난 당하고 있을 때 비로소 누가 진짜 우리의 친구인지 깨닫을 수 있습니다. 욥 보십시오. 평생을 함께해온 아내도 그가 고난 당하자 그를 저주하고 떠났습니다. 그의 형제들, 가족들, 친지들 다 그를 외면했습니다. 욥이 부자일 때는 그의 곁에 있으려고 서로 애를 쓰더니, 이제는 남 대하듯 그를 외면합니다. 이 사람들 언제 다시 욥 곁으로 돌아가는 줄 아십니까? 욥기 42장 11절에 가서 하나님께서 욥을 모든 곤경에서 돌이키시고, 그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자 욥에게 돌아갑니다. “[42:10-11] 10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11 이에 그의 모든 형제와 자매와 이전에 알던 이들이 다 와서 그의 집에서 그와 함께 음식을 먹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내리신 모든 재앙에 관하여 그를 위하여 슬퍼하며 위로하고 각각 케쉬타 하나씩과 금 고리 하나씩을 주었더라 욥의 가족들도, 그의 형제와 자매들도! 욥이 재앙 당할 때는 그를 멀리하다가, 다시금 그가 부자가 되니까 그의 재산과 돈을 보고 그를 다시 찾아왔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인생의 고난을 당할 때 비로소 진짜 나를 위해 주는 사람이 누구인지 분별할 수 있습니다. 힘들 때, 억울한 일 당할 때 내 곁에 끝까지 함께 남아 있는 사람이 진짜 친구입니다.

그런데 욥의 처지를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가족도, 형제들도, 자매들도, 친지들도 다 떠나갔고, 오직 세 친구가 남았습니다. 7일간 한 마디도 안하고 욥과 함께 그가 당한 슬퍼하며 울어준 아주 고마운 친구들입니다. 그러나 결국 8일차부터는 욥을 맹렬하게 책망하고 비난했습니다. 욥을 정죄했습니다. 그 때 욥의 마음은 얼마나 크게 무너졌을까요? “아, 마지막 남은 너희마져도 나를 믿어주지 못하는구나?” 아마도 세상이 다 무너지는 심정이었을 겁니다. 욥은 이제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내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구나?” 욥은 깨달았습니다. 이 세상에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은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사람을 보며 세상을 볼 땐 만족함이 없었네!

나의 하나님 그 분을 볼 땐 나는 만족하였네!

저기 빛나는 태양을 보라! 또 저기 서 있는 산을 보아라!

천지 지으신 우리 여호와 나를 사랑하시니!

나의 하나님 한 분 만으로 나는 만족하겠네

 

  1. 욥이 자기 억울함을 풀어줄 구원자를 소망합니다. (21-29)

욥은 깨달았습니다. 지금 이 큰 재앙을 당하고 있는 나에게 필요한 존재는 바로 나를이 큰 재앙으로부터 건져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 바로 “구원자”이시다!

 

1) 의인 욥이 억울함 속에서도 잃지 않은 소망은 무엇입니까? (25)

그와 가장 가까운 아내도, 형제들도, 자매들도, 친지들도 다 떠났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세 친구들도 전부 욥에게 등을 돌렸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욥을 버리고 떠났을 때, 욥은 자신에게 남은 유일한 소망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바로 자신에게 아직 구원자가 계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욥기 1925-27] 25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26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27 내가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낯선 사람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내 마음이 초조하구나 비록 욥은 엄청난 재앙을 당하고 있었으나,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인정했습니다. 그는 고통 중에도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믿음으로 붙들었습니다. 비록 자신의 이 모든 아픔과 고통을 허락하신 이도 하나님이시지만, 그분은 정의로우시기에 욥은 하나님을 자신의 변호인이자 재판관으로 나오시길 요청하면서 그의 상황과 심경을 변호하시고 의롭다고 판단하실 것이라고 소망했습니다. 이처럼 욥은 자신이 당하고 있는 극심한 고통과 아픔 그리고 재앙과 문제의 해결자는 오직 하나님이심을 고백했습니다. 욥은 주님이 마침내 이 땅에 서실 것이라는 표현을 통해서 장차 하나님께서 자기를 변호하고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주시기 위해 나타나실 것이란 믿음을 굳게 붙들었습니다. 27절에 욥이 “내 마음이 초조하구나!”라고 말한 것은 그가 간절하게 그 날이 오기를 사모하고 있다는 표현입니다. “내가 심판자로 이 세상에 임하실 하나님을 직접 뵐 생각을 하니, 내 애간장이 다 녹는구나!” 이런 말입니다. 욥이 큰 절망과 낙담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고자 하는 커다란 열망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등을 돌려도, 세상 끝까지 우리와 함께하는 친구가 계십니다. 그 분이 바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예수님은 친히 우리들을 주님의 ‘친구’라고 부르셨습니다. 세상 친구들은 우리를 다 버려도, 우리의 친구 되시는 예수님은 영원토록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 분은 세상 끝까지 우리와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찬송가 가사처럼 “온 세상 날 버려도, 주 예수 안 버려, 끝까지 나를 돌아보시니…!”, “내 맘이 아플 적에 큰 위로 되시며, 나 외로울 때 좋은 친구라!” (주는 저 산 밑에 백합 빛나는 새벽 별, 이 땅 위에 비길 것이 없도다!)

욥이 그토록 간절히 찾던 대속자! 구원자! 그 분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모든 재앙과 고통과 아픔과 눈물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몸소 우리의 모든 죄악과 저주를 대신 짊어 지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이제 욥과 같이 억울한 고난을 당하는 자도, 욥의 세 친구들이 이야기한대로 죄로 말미암아 죄값으로 심판을 당하는 자들도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억울한 일 또는 고난을 겪을 때 누구를 의지하려고 합니까? 사람을 보며 세상을 보면 만족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모든 아픔을 치유하시고, 우리를 재앙과 고통으로부터 구원하실 수 있으십니다. 욥은 까닭 모를 고난을 겪으면서도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 주실 구원자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욥과 같은 모든 이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 분께 나아가십시오. 그 분의 이름을 부르고 의지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모든 억울함을 갚아 주시고, 우리를 모든 고통과 재앙으로부터 구원하신다는 벅찬 위로와 생생한 소망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