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25. 내가 말한 후에 조롱하리라 (욥기 21장 1-16절)

오남매 중에 유일하게 교회 다니는 박 집사님이 있습니다. 박 집사님은 정말 신실하게 신앙생활 했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참 좋은 그리스도인 입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그렇게 여유 있는 삶은 아니었습니다. 하루는 명절이 되어서 가족들과 형제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교회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형제들이 비난하듯 말을 꺼냅니다. “교회 뭐하러 가? 가서 헌금 내야지, 십일조 내야지. 그거 다 목사들 좋으라고 하는 거 아니야? 교회 가면 떡이 나와 밥이 나와? 내 시간하고 돈 만 뺏기지. 난 교회 절대 안 간다.” 그러자 박 집사님이 형제들에게 온유한 목소리로 대답합니다. “형님들, 저도 병든 교회가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모든 교회가 다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교회 가운데는 건강한 교회도 있습니다. 불우한 이웃들을 돕고, 고아와 가난한 자들을 섬기는 교회들도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무엇보다 교회에서 가장 큰 복은 예수님 믿고 구원 받는 겁니다. 형님들도 올해에는 꼭 예수님 믿으시기 바랍니다. 큰 복을 받을 겁니다.” 그러자 형제들 중에 가장 잘 나가고 재산이 많은 둘째 형이 코웃음을 치며 이야기 합니다. “동생아, 내 말대로 예수님 믿으면 복 받는다고 치자. 그럼 왜 너가 믿는 예수는 왜 이렇게 너를 힘들게 하니? 왜 너가 그렇게 경제적으로 힘들게 사는데 네가 믿는 예수님은 왜 가만히 계시니? 나는 예수도 안 믿고 부처도 안 믿고 아무것도 안 믿는데, 나 봐라. 얼마나 잘 사니? 나는 몸도 건강하고, 우리 아이들도 다 명문대 가고, 좋은 집안에 장가 시집 가고, 우리 집안은 평안하다. 그런데 예수 믿는다고 하고 교회에서 하루 종일 사는 너는 어떠니? 너는 지금 몸에 병 때문에 매달 병원에 왔다 갔다 하지, 아이들 취직 안 되서 맨날 걱정이지, 돈이 없어 맨날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시달리지, 그런데 무슨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고 하니?” 형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박 집사님의 자존심도 상했습니다. 물론 형님 앞에서 신앙에 대해서 더 할 수 있는 말이 있었지만, 말해도 형님이 이해할 수 없을 것을 알고 있고, 명절에 형제들 사이에 분위기만 더 어색해질 것 같아 더 이상 이야기하지 못했습니다.

어느 한 가정에서 일어난 일화입니다만, 사실 이 장면은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겪고 있는 실존적인 고민을 담고 있습니다. “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믿지 않고, 부정직하게 편법을 행하고, 교묘하게 남들을 속이거나 죄를 짓고 악하게 살아가는 저 악인들이 더 행복하고 잘 사는 걸까?”, “왜 교회에서 신앙생활 열심히 하는 저 장로님은 자동차 사고가 나서 병원에 입원했고, 누구보다 착한 우리 권사님은 암에 걸려 괴롭게 살아가고 계시고, 누구보다 열심으로 교회를 섬긴 저 착한 집사님 가정은 맨날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어야 하는가?” 이것이 바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겪는 딜레마입니다. 분명 우리는 교회에서 ‘하나님께서 악인들은 벌 주시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의롭게 살아가는 자들에게 상과 복을 주신다’고 배웠습니다. 그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라 배웠습니다. 그런데 막상 현실에 들어오면 전혀 다른 세상을 마주하게 됩니다. 악인들이 번영하고, 의인들이 고통 당하는 세상입니다. 악인들은 갈수록 더 잘 살고 아무 고통 없이 행복해 보이고, 의롭게 살아가려고 하는 이들은 억울한 일 당하고, 병들고, 사고 당하고, 일도 잘 풀리지 않아 보이는 불합리한 세상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이 가운데 정의로우신 하나님은 살아 계신 걸까요?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하나님은 직무유기 중이신가요? 곧 하나님은 두 손 놓고 아무런 일도 안 하고 계신 걸까요? 오늘 본문이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주고 있습니다.

욥기 20장까지 욥의 친구들은 끊임없이 욥을 괴롭혀 왔습니다. 욥의 친구들은 세상을 아주 단순하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인과응보의 세상! 악인은 벌을 받고, 의인은 상과 복을 받는 세상이다! 이것이 그들이 세상을 이해한 원리였습니다. 그래서 욥의 세 친구들은 고난 당하는 욥을 보고 그가 분명 끔찍한 죄악을 저질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이토록 벌하시고 심판하시는 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세 친구들은 욥에게 “어서 빨리 자네 죄를 회개하게나! 도대체 자네가 얼마나 큰 죄를 지었길래 하나님께 이렇게 나 자네에게 큰 재앙과 화를 내리셨는가? 욥 자네는 분명 크나큰 죄인이고 악인이로구만!” 이런 식으로 욥을 정죄하고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평생을 정직하고 의롭게 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온 욥은 자신이 이와 같은 큰 재앙을 당할만큼 나쁜 죄를 저지른 적이 없다고, 자신은 억울하다고, 이와 같은 상황 속에 자신이 놓인 것은 매우 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2절을 봅시다. ”[21:2] 너희는 내 말을 자세히 들으라 이것이 너희의 위로가 될 것이니라 욥은 세 친구들에게 더 이상 자신을 죄인이라 정죄하지 말고, 조용히 자신의 사연과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호소합니다. 그것이 정말 자신에게 필요한 위로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3절에서 욥은 자신에게도 말할 기회를 달라고 요청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다 들은 후에 자신을 조롱하라고 말합니다. 즉 지금까지 세 친구가 욥에게 했던 모든 말들은 위로의 말이 아니라,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 같이 아픈 조롱처럼 느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4절을 봅시다. “[21:4] 나의 원망이 사람을 향하여 하는 것이냐 내 마음이 어찌 조급하지 아니하겠느냐 욥은 자신이 지금 조급해 보이고, 초조해 하는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는 지금 단지 썩어질 육신을 두고 사람에 대해서 논쟁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욥은 지금 하나님께 대하여 논쟁하고자 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분명 악인들은 심판하고 벌 주시고, 의인들은 상과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잖아요? 그런데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불의와 부당함이 있다는 것이 욥의 주장입니다. 7절부터 욥이 이야기하는 이 세상의 실상을 자세히 한 번 들여다 봅시다. 7-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21:7-8] 7 어찌하여 악인이 생존하고 장수하며 세력이 강하냐 8 그들의 후손이 앞에서 그들과 함께 굳게 서고 자손이 그들의 목전에서 그러하구나

 

7절, 어찌하여 악한 자들이 잘 살죠? 어찌하여 그들이 늙도록 오래 살면서 번영을 누리죠? 8절 어찌하여 악한 자들이 자식을 낳고, 자손을 보며, 그 자손이 성장하는 것까지 본다는 말입니까? 즉 악한 자들이 평안히 살며 장수한단 말입니까? 9절 이어서 보세요. 심지어 악인들의 가정도 재난이 없고 늘 평화가 깃들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매를 들지도 않으시고 채찍으로 그들을 치지도 않으십니다! 10절 심지어 그들의 가축들도 불임하는 것이 없습니다. 낙태하는 일도 없습니다. 이 당시 가축은 비지니스를 말합니다. 그니까 악인들이 손으로 하는 일들까지도 다 잘 된다는 말입니다. 악인들이 맨날 하는게 뭐에요? 11-12절 파티 여는 겁니다. 돈 많죠, 부유하죠, 건강하죠, 자녀들 다 잘 되죠, 비지니스 다 잘 되죠. 맨날 노래하고 피리 불고, 춤추며 잘 삽니다. 그럼 우리 생각에는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겠지? 죽을 때는 내장이 터지고 대장이 땅에 떨어져 피를 한바탕 뿌리고 아파하며 죽겠지? 그게 그에게 내릴 심판이겠지?’ 생각할 수 있잖아요? 아니요. 욥이 본 세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13절, 악인들이 이 세상에서 일생을 아주 행복하게 잘 살다가 죽을 때에도 아무런 고통이 없이 죽습니다. 14절 보세요. 심지어 이 사람들은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을 무시하며 살았습니다. 14절 읽어 봅시다. “[21:14] 그러할지라도 그들은 하나님께 말하기를 우리를 떠나소서 우리가 주의 도리 알기를 바라지 아니하나이다 “하나님이 누구냐? 나를 좀 내버려 두라! 하나님이 누구길래? 내가 그의 뜻을 알 필요가 있는가?” 15절, “전능하신 분이 누구길래 내가 그를 섬겨야 하며, 그에게 기도한다고 해서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이처럼 교만한데,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지 않으셨다는 겁니다.

이 정도 되면, 욥이 지금 하나님께 세상이 부당합니다!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러나 사실 욥은 지금 인과응보, “악인은 심판 받고, 의인은 상을 받는다”는 한 가지 프레임(고정관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세 친구들에게 “너희들이 말하는 것처럼 세상은 단순하게 흐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즉 이처럼 불의하고 부당한 세상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고, 그러하기에 욥 자신도 무슨 큰 죄를 지어서 이런 고난을 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말하며, 자신의 억울함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동시에 욥은 이 가운데서도 여전히 역사하고 계신 하나님의 존재를 잊지 않았습니다.

16절 봅시다. “[21:16] 그러나 그들의 행복이 그들의 손 안에 있지 아니하니 악인의 계획은 나에게서 멀구나 욥은 아무리 악인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망각하고 마치 오직 자신들의 손으로 행복을 일군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또한 그러한 악인들의 계획은 자신의 생각과 전혀 다르다고 주장합니다. 욥은 지난 날 자신이 풍족한 생활을 살아간 것이 결코 악인들처럼 어떤 죄악이나 속임수로 이룬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아울러 욥은 비록 자신이 의롭게 살아간 것에 대하여 보상 받지 못하고 있고, 도리어 고난 당하는 처지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악인들의 계획대로 살아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천명합니다. 이것은 비록 욥이 말로 다 할 수 없는 엄청난 고난 가운데 있었으나, 여전히 그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았고, 선하고 정의로우신 하나님께 자신의 모든 소망을 걸고 있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프레임], 한국 말로 [고정관념]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가 하면요, 온 세상을 내 [프레임]으로만 보면 내가 다 옳은 줄로만 착각합니다. 또한 [프레임]을 벗어나 행동하는 모든 사람들은 다 악인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프레임은 다 한계가 있습니다. 운전할 때 우리 시야에 보이지 않는 사각(blindsight)에 숨어 있는 자동차가 존재하는 것처럼, 우리가 가진 프레임이 모든 것을 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물며 유한한 우리가 어찌 무한하신 하나님의 지혜로 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원리를 완전히 다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욥의 세 친구들은 자신들이 가진 [인과응보]란 프레임을 통해서 하나님의 통치하시는 원리와 세상의 작동 이치를 다 알고 있다고 착각했습니다. 그러나 욥이 가진 프레임도 온전하지는 못합니다. 욥기 결말부에 가면 하나님께서 욥도 온 세상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이치를 다 알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해 주십니다. 그 누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다 알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섭리는 그 분에게 수종 드는 하늘의 천사들도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욥과 같이 우리가 머리와 가슴으로 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더라도, 신실하신 하나님, 선하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께 우리의 온전한 소망을 둘 수 있도록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결국 욥이 하나님께 걸었던 소망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그의 삶은 회복 되었고, 그의 몸은 치유 되었고, 그의 영혼은 구원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도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우리의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대상을 하나님께로 향할 수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