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29. [교회창립 13주년] 예수 그리스도-모퉁이 돌 (에베소서 2장 19-22절)

본문: “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모퉁이 돌’ 되신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 교회의 이름인 ‘코너스톤’이 나왔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삶의 시작점 되시며, 내 모든 삶의 중심이 되신다’는 신앙고백을 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인 공동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기초가 되시는 모퉁이 돌이십니다. 교회 안에 예수님이 없으면 우리는 더 이상 교회로 남아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 안에서 생활하며 서로 함께 교회로 세워져 가는 과정 중에 있습니다. 교회 창립 13주년을 맞이하는 오늘 이 기념비적인 날, 저는 오늘 우리 코너스톤장로교회가 어떤 모습의 공동체로 세워져 가야할 지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 교회의 본질적인 모습 세 가지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첫째로, 교회는 서로 사랑하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둘째로, 교회는 서로 섬기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셋째로, 교회는 함께 예배하는 성령의 전입니다. 교회의 이 세가지 모습을 가슴에 새김으로써 우리 앞에 놓인 새로운 10년을 향해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된 교회의 모습으로 함께 세워져 가기를 소망합니다.

 

  1. 서로 사랑하는 하나님의 가족’ (Family of God: Love one another)

       첫째로 교회는 서로 사랑하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에베소서 2장 19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19절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19절 마지막에 사용된 ‘권속’이란 단어는 한 집에서 함께 사는 식구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권속’이란 말을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의 식구” 곧 “하나님의 가족”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교회는 하나님 식구들 곧 하나님의 자녀들이 함께 모여 함께 살아가는 곳입니다.

우리가 처음부터 하나님의 가족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19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을 믿기 전 우리 모두는 천국과 상관 없는 외인이었고, 나그네였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대신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치루어야 하는 죄값을 다 지불하셨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이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 바로 나와 같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한 죽음임을 고백하며, 자신의 모든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 고백하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주어집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가족이 됩니다.

사랑하는 코너스톤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바로 여러분의 죄를 위해 죽으신 것을 고백하십니까?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 고백하며 살아가고 계십니까? 본래 천국은 죄가 없고 완벽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천국에 계신 하나님께서 죄가 없으신 거룩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 중에 자신의 의로움으로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 많으신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친히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모든 죄값을 대신해서 죽으셨고, 이제 예수님의 완전하신 의로움이 예수를 구원자로 믿는 모든 자에게 주어집니다. 그로 인해 이제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은 천국과 상관 없는 외인이나 나그네가 아닙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모두 다 천국 시민권을 소유한 자요, 하나님의 자녀요 가족 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을 무엇이라고 부릅니까? 혹시 우리 중에 하나님을 “아버지”가 아니고 “아저씨”라고 부르는 분 계십니까? 우리들은 모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즉 우리 모두는 한 아버지를 둔 가족입니다.

육신의 부모로부터 같은 피를 이어 받은 사람은 혈육의 가족이지만,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 받은 사람은 모두 다 천국 가족 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서로 하나의 가족이 되게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라고 부르신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다는 것은 한 아버지 밑에서 서로 사랑하고 배려하는 공동체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는 성품을 닮아 우리들도 서로 사랑하고 깊이 배려하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완벽한 교회는 없습니다. 그 이유는 교회를 구성하는 우리에게는 죄성과 육체의 욕망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죄성을 가진 불완전한 성도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성령을 따라 살면 좋겠습니다만, 여전히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살아가는 경향이 남아 있기에 교회 안에 이따금씩 분쟁과 싸움이 일어납니다. 초대 교회를 보십시오. 사도행전을 보면, 바울 목사님과 바나바 목사님도 서로 다투고 싸웠습니다. 빌립보서를 보면, 유오디아 권사님과 순두게 권사님도 다투었습니다. 고린도전서를 보면 성도들이 바울 목사님파, 베드로 목사님파, 아볼로 목사님파로 파벌이 형성 되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먹을 것 때문에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헬라파 과부들이 자기들이 구제에서 배제 된다고 불만을 터트렸습니다. 이처럼 신약성경을 자세히 보니 문제가 없었던 교회가 거의 없습니다. 싸움이나 다툼도 교회 안에서 자주 일어났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세상에 완벽한 교회는 없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코너스톤장로교회도 완벽한 교회가 아닙니다. 우리 안에도 분쟁이 있고, 다툼이 있습니다. 우리 안에도 미움과 시기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같은 연약한 교회에 소망이 있는 것은, 여전히 우리 모임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서 분쟁과 분열이 일어나는 일은 없을 수 없지만, 그 가운데서도 끝까지 서로를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것! 하나님께서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셨기에 우리들도 서로를 끝까지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이 아닐까요? 포기하지 말고 용서하고 끝까지 사랑하자!”

22절 말씀을 봅시다.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앞서 19절에서는 분명하게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서 이야기 하며 이미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되었다고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22절 말씀을 보면 우리가 아직도 완전하지 않은 교회라고 이야기합니다. 즉 건물로 말하면 아직 공사중인 상태 입니다. 하나님께서 거하실 처소가 되도록 거룩한 존재가 되기 위하여 함께 지어져 가는 상태라고 이야기 합니다. 분명 우리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천국 시민권자가 되었고,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22절에 “함께”라는 단어에 주목해 보십시오. 벽돌 하나만 쌓아 놓고 건물이라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 개의 벽돌들이 함께 어울려 쌓여 있으면 벽이 되고, 그 벽들이 또 사방으로 이어지면 하나의 건물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는 한 사람이서 세울 수 없습니다. 저 탁월한 사도 바울도 결코 홀로 사역하지 않았습니다. 바나바, 디모데, 실라, 디도, 누가, 에바브로디도, 아리스다고, 브리스길라 아굴라 등 여러 성도들과 함께 신앙생활 했습니다.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도 제자들과 함께 생활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가족들이 있습니다. 사랑과 우애가 있는 가정도 있고, 서로 다투고 싸우는 가정도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숙한 사람들이 많은 교회는 사랑이 깊고 우애가 넘치고 균형이 잡혀 있습니다. 어린아이 같이 미숙한 성도들이 있으면 매번 싸움이 나고 분쟁이 일어납니다. 그럼 교회에 다툼이 일어나고 분쟁이 일어나는 미숙한 교회들, 상처 입은 교회들은 아무런 소망이 없는 것일까요? 오늘 말씀 22절을 다시 한 번 보십시오.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이 말씀에서 교회를 지어가는 주체는 성도들이 아닙니다. 교회가 우리들의 결심이나 힘만으로는 지어져 갈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오늘 말씀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간다”고 표현했습니다. 20-21절 말씀을 봅시다.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예수님이 건물의 모퉁잇돌 즉 코너스톤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삶의 기초가 되고, 기준이 되고, 중심이 될 때 비로소 교회는 세워지게 됩니다. 즉 오직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스도 예수께서 내 인생의 주인 되시는 참된 삶을 살아갈 때 교회는 그러한 성도들의 만남을 통해서 함께 세워져 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본래 사람이란 철저하게 나 중심으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 아버지를 모시고, 영적인 형제 자매들과 함께 사랑하는 법을 배우며 살아가는 곳이 교회입니다. 여기에 아주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더 깊이 헌신하고, 우리 모두가 성숙해야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이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우애를 나누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가족마다 특징이 있습니다. 콩가루 같은 가족도 있고, 성숙한 가족도 있습니다. 모습은 다르지만, 가족은 다 가족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코너스톤장로교회가 서로 사랑하고 배려하는 하나님의 가족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1. 서로 섬기는 그리스도의 몸’ (Body of Christ: Serve one another)

       둘째로, 교회는 서로 섬기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이 세상에 문제가 없는 교회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신약성경에 나오는 초대교회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초대교회가 가진 심각한 문제는 교회가 유대인과 이방인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사람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이 볼 때 할례를 받지 않은 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었고, 구원받지 못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차별했습니다. 물과 기름 같이 섞일 수 없는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는 거대한 벽이 있습니다. 아무도 허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그 큰 벽을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허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원수와 같이 갈라져 있던 두 그룹 사이에 있던 막힌 담을 허무심으로 말미암아, 두 그룹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유대인과 이방인, 절대로 하나가 될 수 없을 것 같았던 두 그룹이 그리스도의 몸으로 하나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이 하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 코너스톤장로교회도 다양한 사람들이 있으나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었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었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의 유기체라는 의미입니다. 즉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를 하나의 공통된 머리로 가지고 있는 몸입니다. 제 몸은 제 머리의 명령에 의해 움직입니다. 하나의 유기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 머리가 다른 사람의 몸을 움직이지는 못합니다. 반대로 다른 사람의 머리가 제 몸에게 어떻게 행동하라고 명령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같은 유기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몸은 반드시 우리들의 머리의 지시를 받습니다. 우리 몸과 머리는 하나로 연결된 유기체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바로 이러한 유기체입니다. 머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동체가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는 머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공동체입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머리 되시는 예수님께서 지시하고 명령하시는 말씀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교회가 서로 사랑하는 것, 특별히 서로 섬기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실 이 세상은 그 가운데 구멍이 뻥 뚫려 있는 것처럼 공허하고 허무합니다. 개인도, 가정도, 사회도 공허와 허무로 구멍이 뻥뻥 뚫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통하여 이러한 구멍들을 채우시고 회복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생의 참된 의미와 목적을 부여하심으로써 깨지고 상한 세상을 회복시키십니다. 머리 되시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그의 몸인 교회에게 서로 사랑하고 서로 섬기며 살아가라 말씀하셨습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뜻에 잘 순종하여 서로 사랑하고, 서로 섬기며 살아가게 될 때, 우리 개개인의 삶이 회복됩니다. 우리 가정이 되살아납니다. 더 나아가 사회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세상을 회복시키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 교회인 우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써 주님의 그 일에 동참해야 합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나 하나만 관심 갖고 살아왔습니다. 내 개인의 행복과 가정의 행복만을 위해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에 속함으로써 그리스도께서 하고자 하시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교회로서 서로 사랑하며 서로 섬기는 것입니다. 코너스톤장로교회가 서로 섬기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의 몸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1. 함께 예배하는 성령의 전(The temple of the Holy Spirit: Worship with one another)

       셋째로, 교회는 함께 예배하는 성령의 전입니다. 성전은 본래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예배를 드리는 장소입니다. 성전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입니다. 교회는 이와 같이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이 임하시는 처소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에베소서 2장 22절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은 교회가 “하나님의 처소가 되기 위해서 지어져 간다’고 현재 진행형을 쓰고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가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살아감으로 예배가 완전하게 될 그 날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성령께서 우리 안에 내주 하십니다만, 마지막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완전하게 우리와 영원토록 거하시는 그 날이 올 것입니다. 천국에 가면 우리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성전’입니다. 왜 천국에는 성전이 없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거하시기 때문에 성전이 따로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교회는 바로 이 완전한 하늘의 예배를 드리기 위해 이 땅에서 지어져 가고 있는 성령의 전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는 하나님의 가족, 그리스도의 몸, 성령의 전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것이 미래에 될 일이 아니라 이미 우리 가운데 이루어진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미숙해도 이미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세상 방식으로 살아가려는 옛 습관이 남아 있어 분쟁도 있으나 이미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아직 어린 아이처럼 떼쓰고 문제를 일으키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할지라도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어려움과 불완전한 요소들이 많다 할지라도 이미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령의 전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들을 하나님의 가족, 그리스도의 몸, 성령의 전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코너스톤 교회의 ‘시작점’ 되시고 ‘중심’이 되시는 ‘모퉁이 돌’ 되십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서로 섬기고, 함께 하나님 아버지를 예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앞에 펼쳐질 시간들을 통해 우리 코너스톤장로교회 공동체가 더욱 더 온전한 ‘하나님의 가족’, 그리스도의 몸’, 성령의 전’으로 함께 세워져 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