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1. 불확실한 상황 속 주어진 확실한 약속 (창세기 12장 1-20절)

혹시 학창시절에 시험을 볼 때 이런 경험을 해 보신적 있으십니까? 시험지에 적힌 문제를 풀면서 “다른 건 몰라도 내가 이 문제 답만큼은 확실히 알고 있지!”하고 확신을 가지고 자신 있게 문제 답을 시험지에 썼습니다. 시험이 다 끝나고 채점을 하는 시간을 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이 오답인 겁니다. “아이고, 내가 잘 못 알고 있었구나?”하고 뒤 늦게 자신의 생각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는 비단 학교 시험 볼 때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닙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며 우리는 이따금씩 내가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 어떤 결정을 내리는 것이 옳을 지, 잘 안다고 생각하며 선택 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후에 그 때 내 선택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뒤 늦게 깨닫기도 합니다. 물론 아무리 골몰해 봐도 답을 전혀 알지 못하는 시험 문제처럼, 아무리 고민해봐도 답을 알 수 없는 상황들도 있지요.

오늘은 우리 삶에 있는 [불확실함]이란 주제에 대해서 한 번 이야기 해 보려고 합니다. ‘지금 내가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해서 하나님은 어떻게 역사하고 계신 것일까?’, ‘하나님은 왜 나를 이 상황 속에 두신 것일까?’, ‘왜 하나님은 나를 치료해 주시지 않을까?’, ‘왜 하나님은 우리 가족의 병을 그냥 두시는 것일까?’, ‘왜 우리 가정에 일어나고 있는 폭풍 같은 문제들을 잠재워 주지 않으시는 것일까?’ 등등 우리 인생에는 하나님에 대한 불확실한 상황들에 놓일 때가 있습니다. 불확실함은 우리 마음에 불안을 가져다 줍니다. 그리고 이 불안은 다시 두려움과 하나님에 대한 불신을 야기 합니다. 사실 우리 중에 내일 일어날 일을 다 알고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불확실함은 모든 인간이 가진 인류 전체의 경험이고, 그로 인해 발생한 불안과 두려움 역시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감정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금 내 인생에 대해서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시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일하고 계신 지 알고 싶어 합니다. 마치 집을 새로 짓기로 결정한 주인이 공사 현장에 찾아가 현장 감독에게 궁금한 것들을 일일이 물어보며 공사가 어디까지 진행 되었는지, 또 앞으로 얼마나 공사가 더 걸릴 것인지, 사고는 없는지, 추가적으로 들어갈 비용은 없는지 등 자신이 알고 싶어하는 정보들을 다 추려내듯이, 우리들도 내 삶에 대한 하나님의 구체적인 계획들을 다 알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과정, 절차, 방법을 모두 다 보여주지는 않으십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역사는 신비의 영역이라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어떻게 일하고 계신 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나를 지금 이런 상황에 두셨는지 알 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한 가지만은 분명하게 약속합니다. 그 모든 불확실함 속에서도 하나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한 치 앞을 모르는 불확실한 인생을 살고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겠다고 말씀 하신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을 붙들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죠.

오늘날의 우리처럼 당장 내일 일을 알 수 없었던 불확실한 상황 가운데 있었던 성경 속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의 삶 가운데 역사하셨는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루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너는 네가 살고 있는 땅, 너의 아버지 집을 떠나서 내가 너에게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 오늘날에는 이사 가는 일이 흔한 일이지만, 농경사회였던 고대 사회에서는 땅과 사람은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 였습니다. 지금 아브라함이 살고 있던 곳은 그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며, 그의 일가와 친척 모두가 함께 모여 살고 있던 그에게는 말 그대로 가장 친숙하고 정겨운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 정든 고향을 떠나라고 말씀하셨을 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75세 입니다. 사람 나이 일흔 다섯이면 인생의 황혼기 아니겠습니까? 위험하고 피곤하고 끝을 알 수 없는 장거리 모험을 떠나기 좋은 나이는 분명 아닙니다. 오히려 예측 가능한 하루들을 마음 편안히 보내며 사랑하는 가족들, 자식들, 손주들, 친구들과 오순도순 맛있는 식사를 함께 나누며 즐겁게 시간 보내는 것이 최고의 행복일 것입니다. 또한 평생 한 지역에서 살아가며 쌓인 수많은 추억과 정든 고향을 뒤로 하고 떠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습니까? 미국에 40-50대 이민 오는 분들도 자주 하는 말이, 내가 10-20대 왔었으면 영어를 지금보다 더 잘했을탠데, 늦게 못 온 것이 너무 아쉽고, 관공서에 가서 일을 보거나 미국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그들의 문화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매우 낯설게 느껴집니다. 하물며 일흔 중반의 나이에 다다른 백발의 아브라함이 자신에게 평생 익숙한 지역을 떠나 언어도 문화도 전혀 다른 새로운 지역으로 이민 간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선택이었을 겁니다.

왜 하나님은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고향 땅을 떠나라고 하셨을까요? 사실 아브라함이 살던 갈대아 우르 땅은 우상숭배로 가득 하였습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아버지 데라 곁을 떠나지 않는다면 그 자신도 아버지 데라처럼 거짓 우상들을 숭배하며 평생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위한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갈대아 땅에서 꺼내어 그를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도록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땅에 가게 된다면 그로 큰 민족을 이루고, 그에게 복을 주고, 그의 이름을 크게 떨치게 하고,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매우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들은 순종하라는 하나님의 명령과 언제나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명령에 순종하면 약속 된 축복이 주어지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축복은 주어지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아브라함은 그의 인생을 가르는 가장 큰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고향 땅 갈대아 우르를 떠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선택이고 모험입니다. 하나님을 믿을 것인가? 아니면 세상의 가치관을 고수할 것인가? 그리고 그 선택에는 분명한 대가가 주어집니다. 하나님을 믿기로 선택하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풍성한 은혜와 복을 주십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무시하고 세상이 추구하는 것을 따라가는 자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무엇을 따라 갔습니까?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갔습니다. 4-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12:4-5]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5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나안 땅까지 왔으니, 이제 그의 앞에는 좋은 날만 펼쳐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를 복의 근원으로 삼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으니, 그가 가는 곳곳마다 승승장구하고, 그가 손대는 일마다 형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우리가 고개를 갸우뚱하고 볼 수 밖에 없는 한 가지 사실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목숨을 걸고 이민해 온 가나안 땅에 극심한 가뭄이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10절 입니다. [12:10]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이상하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가나안 땅까지 왔는데, 분명 하나님께서 주님의 약속을 믿고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면 그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고, 그의 이름을 존귀하게 만들어 주고, 그를 복의 근원으로 삼아 주겠다고 약속하셨는데! 그 약속이 하나도 지켜지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오히려 상황은 최악으로 다다랐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온 그 땅에 심한 기근이 찾아왔습니다. 비가 내리지 않아 농사를 지을 수가 없는 상황에 이르렀고, 그 결과 먹을 것이 없어 살 수 없는 땅이 되어 버린 것이죠. 이해 하기 쉽게 설명하면 아브라함이 하나님 말씀에 따라 미국에 이민 왔다면, 그가 오자 마자 미국 경제 대공황이 터진 겁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한국으로 이민 갔다면 그가 가자마자 IMF 가 터진 겁니다. 일자리도 없고, 먹을 것도 부족하여 입에 풀칠하고 살아갈 수도 없는 절망적인 상황 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나안 땅에 온 아브라함, 그러나 가나안 땅에 찾아온 극심한 기근!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바로 이 지점이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한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대부분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는 고난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 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갔다가 고난이 찾아오면, 낙담하고 좌절하는 경우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하나님, 제가 고향 친척 집을 떠나 이렇게 죽을 각오 하고 목숨을 걸고 가나안 땅에 왔는데 어떻게 이 땅에 가뭄이 찾아왔습니까? 하나님 어쩜 제게 이렇게 가혹하실 수 있으세요? 하나님, 이제는 제 삶을 인도하지 않으십니까?”

그러나 기억하십시다. 내 삶에 지금 큰 어려움과 고통이 있다 해서 하나님께서 내 삶을 인도하지 않으시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일하고 계십니다. 요셉이 애굽에서 노예로 살아가며 고난을 겪을 때 하나님은 그의 곁에 없으셨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요셉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지하 감옥에 갇혀 죄수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요셉을 떠나셨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야곱이 자신의 품삯을 열 번이나 속인 삼촌이자 장인어른인 라반을 위해 들판에서 밤낮 고생하며 양들을 돌 볼 때 하나님은 야곱 곁에 없으셨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인생을 눈 여겨 보고 있었습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부재의 증거가 아닙니다. 내가 지금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내 삶을 버리시거나 나를 인도하지 않으시는 것은 아닙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부재의 증거가 아닙니다. 고난 당하는 우리들을 하나님은 보호하고 계시고, 또한 이 고난을 끝까지 인내하고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도록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십니다. 다윗이 고백합니다.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다윗의 고백에서 알 수 있듯이 내 인생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가고 있다고 해서 하나님이 일하지 않으시는 것은 아닙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부재의 증거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약속은 우리에게 고난이 없는 삶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는 자는, 그의 인생 길에 어려움과 고난이 있다 할지라도 여전히 그와 함께 하고 계신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럼 왜 하나님은 그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가는 자들의 삶에서 고난을 제거해 주지 않으시는 것일까요? 이것은 고난에 숨어 있는 순기능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 보면, 하나님은 오히려 이 고난을 통해서 우리들의 믿음을 연단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계심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속 아브라함은 기근이란 고난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가나안 땅을 떠나 먹을 것을 찾아 애굽으로 이사를 가야 했습니다. 가나안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또 애굽으로 이사간 거죠. 이사를 자주 간다는 것은 그 만큼 경제적으로 삶이 안정 되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흔 다섯이나 되는 아브라함 입장에서 보면 장래가 불투명한 얼마나 불안한 삶입니까? 이 뿐만이 아닙니다. 애굽에 다다른 아브라함은 자신의 부인 사라를 아내 삼으려고 하는 애굽 왕 바로에 의해 큰 곤경에 처하게 됩니다. 위기의 연속이었습니다. 상황이 꼬여도 어쩜 이렇게 최악으로 다다를 수 있을까요? 이 정도 위기면 아브라함도 속으로 “하나님, 정말 저를 보호해 주고 계신 것 맞습니까?”하는 의심이 들 정도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모든 상황 가운데서도 아브라함과 함께 하고 계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어려운 고난을 통해서 아브라함이 하나님만을 더욱 더 신뢰함으로써 그의 믿음이 자라나게 하셨습니다.

기근으로 인해 애굽으로 온 아브라함의 이야기 중에는 그가 여호와 하나님께 도움을 간구 했다거나 하나님을 의지하거나 신뢰했다는 믿음의 표현이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12장 17절에 하나님께서 위기에 처한 아브라함을 돕기 위해 바로의 집 안에 큰 재앙을 내리신 일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12:17]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이 일을 통해서 바로는 아브라함에게 그의 아내 사라를 다시 돌려 주었고, 게다가 가뭄 때를 버틸 수 있는 경제적인 자금도 마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가야 했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지팡이와 막대기로 보호해 주셨던 것이죠. 이를 통해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가뭄 속에서도, 애굽 왕 바로의 강압 속에서도 그를 보호해 주셨고, 구원해 주셨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도 확실하게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향한 그의 믿음이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겠죠?

우리들의 믿음도 언제 성장 합니까? 고난의 터널을 주의 은혜로 통과 하게 될 때 우리 믿음은 자라나게 됩니다. 성경 속 기록된 사람들의 인생을 한 번 주의 깊게 살펴 보십시오. 고난이 없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모세는 40년 동안 바로 왕을 피해 광야에서 도망자로 은둔 생활을 했습니다. 다니엘은 나라가 멸망하여 바벨론의 노예로 끌려갔고, 거기서 사자굴 속에까지 들어가야 했습니다. 다윗은 십 수년 넘게 광야에서 도망자로 살아야 했습니다. 야곱은 애굽 왕 바로 앞에서 자신의 인생을 이야기 하며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고 까지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중 제가 지금 언급한 사람들 중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고난은 하나님의 부재를 증명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우리 삶 속 고난 중에서도 함께 하시고, 우리가 그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심으로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이 자라나게 하십니다.

그렇다면 요즘 우리 성도님들의 삶 가운데서 [불확실성]이 가장 크게 드러나는 지점은 무엇입니까? 내 신상의 문제 입니까? 가족의 문제 입니까? 내 자녀의 문제 입니까? 은퇴 후 내 노후가 불확실해 두렵습니까? 건강이 어찌 될지 몰라 불안 합니까? 우리는 삶의 불확실성 속에서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역사가 보이지 않고, 하나님의 도우심이 느껴지지 않아 좌절하고 낙담하고 계시진 않습니까? 내가 하나님을 믿을 수 없는 바로 그 지점에서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역사하고 계심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코로나로 팬데믹이 한창일 때 우리는 코로나로 죽어가는 주변 이웃들의 소식에 얼마나 가슴 아프고 어려운 시간을 지나왔습니까? 혹 나 자신이나 사랑하는 가족들이 코로나에 걸리지는 않을까 염려하고 두려워 하기 까지 했습니다. 그러다가 코로나 백신이 개발 되자, 우리에게는 한 줄기 희망이 생겼습니다. 이제 병원이나 근처 관련 기관에 가서 백신을 맞았습니다. 그런데 한 번 돌이켜 보십시오. 백신을 맞으면 맞았다고 증명서는 주는데, 막상 거울 속 비취는 우리들의 모습이 슈퍼맨처럼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백신을 맞기 전이나 맞은 후 우리들의 겉모습은 똑같습니다. 그러나 이 백신으로 인해 우리 몸 안에서 코로나 병균과 싸워 이겨낼 수 있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사실 코로나 병균에 걸렸을 때 우리 몸 속에서 백신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그 힘을 발휘하는 지 다 이해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백신이 코로나를 이길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큼은 알고 있습니다. 물론 최근에도 코로나 변이가 다시 유행하고 있고, 주변에 걸리시는 분들도 계십니다만, 이제는 코로나를 별로 두려워 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백신이 있기 때문이죠.

하나님의 은혜도 이와 비슷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기 전에는 고통과 어려움이 우리에게는 슬픔과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를 구주로 고백하고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 삶과 영혼에 구원이란 백신을 넣어 준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지금 우리들의 겉모습이나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이나 별 다를 것은 없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가 어떻게 우리가 고난을 이길 수 있는 힘을 공급해 주는지 다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 어려움과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구원을 베푸실 것을 확신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약속은 우리에게 쉬운 길, 고난이 없는 길을 보장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과 약속을 따라 살아가며 주님을 더욱 의지하는 삶을 살아가라고 권면하고 있으며, 그 길을 걸어갈 때 우리에게 놀라운 주님의 은혜가 우리들을 고난 속에서도 지키고, 보호하고, 이겨낼 수 있는 힘과 지혜를 공급해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