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6. 팔복 (마태복음 5장 1-12절)

마태복음 5장에서 7장까지,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 가르치신 말씀을 ‘산 위에서 가르치신 교훈’이다 해서, ‘산상수훈’ 또는 ‘산상설교’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산상수훈 가운데 가장 처음으로 등장하는 ‘팔복’에 대하여 함께 은혜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3절 말씀 읽겠습니다.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본문은 감탄하는 문장입니다. 따라서 원문에 더 가깝게 해석하면 이렇습니다. “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의 복이여! 천국이 저희 것이다!” 그러니까 본문은 슬프고 암울한 분위기의 글이 아니라, 기쁨과 전율, 설렘과 흥분이 가득 넘치는 글입니다. “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의 복이여, 천국이 저희 것이다!” 왜 이런 기쁨과 흥분이 가득합니까? 그것은 바로 저들이 받을 ‘복’ 때문입니다. 이 복은 단순한 감정적인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복입니다. 세상 행복은 끝이 있지만, 주께서 주시는 행복은 영원합니다. 이런 복이 누구에게 주어집니까?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주어집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으나 세상적인 부, 명예, 권력을 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향한 가난한 마음, 배고픈 마음, 목마른 마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심령이 가난하다”. 라는 말은 물질적 가난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모하는 굶주림을 가리킵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도 여전히 심령에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있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4절에 ‘애통’이란 단어가 등장합니다. 이 단어는 너무나도 사랑하던 이가 죽게 되었을 때 이를 위해 밤새 가슴을 치며 눈물 흘리며 아파하는 사람의 모습을 묘사할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한마디로 감출 수 없는 슬픔입니다. 그런데 오늘 주님은 이토록 슬픔과 비탄에 빠져 있는 자들에게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지 못하는 자신의 악한 모습을 보고 통회하며 회개하는 사람의 모습을 의미합니다. 그 회개가 얼마나 간절하고 진실한지 마치 장례식 때 고인을 위해 아파하는 것처럼 울며 회개하고 있는 것이지요. 죄로 인해 애통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주어질 것입니다. 내 개인의 죄 또한 내가 속한 공동체의 죄 즉 내 가정의 죄, 내 교회의 죄, 그리고 이 나라의 죄로 인해 애통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죄사함이라는 참된 위로를 주실 것입니다.

5절에 나오는 온유를 쉽게 이해하면 “겸손+굴복” 입니다. 다시 말하면,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는 것이 바로 온유 입니다. “주님, 나는 내 인생을 잘 모릅니다. 주님 하라는 대로 하겠습니다.”하고 겸손한 자세로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맡기는 자가 바로 온유한 자입니다. 겸손하게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할 줄 알고, 그렇기에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이 온유한 자에게 주어지는 복이 무엇입니까? 바로 땅을 기업으로 받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본문을 보고, “그렇구나 부동산 부자가 되는 법은 온유하게 사는 거였어!”하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본문에 등장하는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말의 의미를 오해한대서 비롯된 결과입니다.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것은 땅문서를 주신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기업을 물려받는 자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즉 온유한 자, 겸손한 태도로 하나님의 말씀에 굴복하는 자는 아브라함의 영적 자손이 되는 복이 주어집니다.

6절에 나오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하나님께 자신의 전부를 드리는 사람입니다. 월화수목금토일 모든 시간을 주님과 함께 그분의 뜻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무엇에 배고파하고 굶주리고 있습니까? 바로 ‘의’에 굶주려 있습니다. 이 의로움은 “내가 죄 좀 안 짓고 살 수 있었으면… 내가 오직 하나님 뜻대로 살 수만 있다면!” 하는 개인적인 의로움에 대한 배고픔입니다. “이 세상사람들이 죄를 짓지 않고, 도둑질 좀 안하고, 사람에 대하여 폭력을 행하지 않고, 다 한 형제자매가 되어 하나님의 사랑 안에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공동체의 의로움에 대한 목마름입니다. 억압받는 자들에 대한 정의에 대한 목마름이며, 이 세상에 불의가 사라지고 하나님 뜻이 더 이뤄졌으면 하는 갈증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해결해 줄 수 있는 갈증과 배고픔입니다. 6절은 이러한 자들에게 소망의 메시지를 전해줍니다. “그들의 배가 부를 것이다! 너희가 그토록 바라고 원하던 소원이 이뤄질 것이다.”하고 하나님은 “너희가 그토록 염원하고 희구하던 의로움이 완성될 것이다!” 하고 약속하셨습니다.

7절을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5:7) “남을 불쌍히 여기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하나님도 그들을 불쌍히 여기실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정 남을 불쌍히 여기는 사람, 긍휼히 여길 줄 아는 그 사람이 진정 행복한 사람이요 복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소나 양이나 염소를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제사가 아니라 인애를 원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교회 나아와 열심히 예배 잘 드리는 것보다, 내 형제자매와 이웃들을 사랑하고 그들이 나에게 잘 못한 것이 있으면 용서해주는 마음을 하나님이 더 기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 가슴에 아직도 용서하지 못한 사람을 품고 이 자리에 있다면 그 사람의 예배는 아무런 소용도 없는 것이라 성경은 말씀입니다. 야고보서 2장 13절 말씀을 보면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향해 긍휼히 여길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십니다.

8절에 예수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머리가 청결한 자가 아니라 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을 받습니다. 왜 그럴까요? 인간은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머리로는 알면서도 가슴은 전혀 딴 마음을 품을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성경을 많이 알아도, 그 가슴에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마음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보실 때 청결한 자가 아닙니다. 따라서 머리가 청결한 자가 아니라 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이 있습니다. 자신의 삶 속에 가득한 죄악을 깨닫고, 그 죄를 제거하기 위해 예수님께 나아가 몸부림 치는 사람, 그가 바로 이 하나님을 본다는 의미는 단순히 하나님을 본다는 의미에서 그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경험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즉 하나님은 언제나 그를 찾는 자들을 만나 주시며, 자기를 향해 부르짖는 그 기도를 들어 응답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9절에서 화평케 하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다는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화평케 하시는 일을 그대로 본받아 하는 사람을 보고 “역시 저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지”하고 인정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쉽게 말하면 “그 하나님에 그 아들이네.” 이런 칭찬을 듣는 것입니다. 화평케 하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갑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세상에 나타냅니다. 반대로 우리가 화평케 하는 삶이 아닌, 분쟁을 일으키고 문제를 일으키는 삶을 살게 되면 세상으로부터 결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을 듣지 못합니다. 우리는 화평케 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케 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목숨을 내려놓으셨습니다. 이처럼 화평케 하는 삶에는 희생이 따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처럼, 우리 역시 화평을 위한 희생과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화평케 하는 것은 우리와 원수 된 자까지 사랑할 때 이뤄집니다. 성경은 우리를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누군가 나를 괴롭히고 힘들게 하면 그 사람이 미워지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자들의 죄마저도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10절에 의를 위하여 당하는 핍박이 있을 때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지금 자기 앞에 앉아 있는 사랑하는 제자들을 보시며 이 말씀을 하고 계셨습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 베드로가 거꾸로 십자가에 달려 죽을 것이며, 마태는 창에 찔려 죽을 것이고, 야고보는 돌에 맞아 죽을 것이고, 빌립은 채찍에 맞아 죽을 것을 그 분은 알고 계셨습니다. “사랑하는 제자들아, 의를 위하여 핍박 받는 자가 복이 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크다!” 주님을 이름을 위하여 핍박 당하는 것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충성을 증명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성경은 끊임 없이 우리에게 이러한 삶을 살아가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다니엘과 같이 사자굴에 갇힐 각오로… 그의 세 친구들처럼 풀무불에 던져질지라도 말씀대로 살아가라 말씀하십니다. 하늘에 소망을 두는 자만이 두 발을 온전히 복음에 맡길 수 있습니다. 마음 속 용기를 주시는 성령님과 함께 걸어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