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2. 두려움 대신 용기 (마태복음 14장 22-33절)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기 위해서 아무것도 없는 벳새다 들판에 모였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지 성인 남자만 세어보니 약 5천명 정도 되었습니다. 저녁이 되자, 사람들은 허기짐을 느꼈지만, 아무것도 없는 말 그대로 들판이라 먹을 것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어린 아이가 가지고 온 도시락,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가지고 오천 명을 배불리 먹게 하는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우리에게 ‘오병이어’라고 알려진 기적이 일어난 것이죠. 생선과 빵을 먹고 배가 부른 무리들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습니다. 예수님만 함께 하시면 앞으로 먹고 사는 일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며, 자신들을 배불리 먹여준 예수님을 자신들의 왕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왕궁에서 왕좌에 앉아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무리가 자신을 억지로 붙들어 임금 삼으려 하는 줄 아시고 제자들을 재촉하사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건너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무리를 해산시키신 후, 홀로 기도하러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한편 예수님 없이 제자들만 타고 있던 배는 항해 중 거센 바람을 만나게 됩니다. 강한 역풍으로 인해 배는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했고, 이미 육지에서 출항한지 꽤 시간도 지났고, 육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돌아갈 수도 없었습니다. 갈릴리 바다 한 가운데 갇힌 제자들은 오도 가도 못한 채 홀딱 밤을 지새우며 폭풍우와 사투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14장 2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14:24)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 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 오늘 이 장면 속에 있는 제자들의 심정을 한 번 상상해 봅시다. 이미 해는 졌고, 사방이 칠흑 같은 어둠으로 덮였습니다. 바람은 갈수록 거세지고, 파도는 언제라도 배를 부셔버릴 듯한 힘으로 철썩철썩 끊임 없이 나무 배를 때리고 있습니다. 이전에도 제자들은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다가 폭풍우를 만난 일이 있었습니다. 비록 예수님께서 주무시고 계셨으나, 그래도 그 때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배에 함께 타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만 배에 태워 보내셨고, 홀로 산에 기도하러 올라가셨습니다. 제자들은 “이번에야 말로 끝이구나. 이대로 배가 바다에 가라 앉아 죽겠구나.” 하는 두려움이 들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의 눈에는 예수님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이러한 제자들의 심정을 십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우리들도 삶의 고난을 당할 때, 우리 육신의 눈에도 예수님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눈 앞에 계셨다면 고난 중에도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심을 쉽게 확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눈에 보이지 않기에 이 고난 중에 우리 홀로 버려진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예수님은 우리가 고난 당하는 중에 멀리 계신 것일까요? 우리 삶의 문제에 아무런 관심도 없으신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1. 제자들을 찾아오시는 예수님

오늘 본문과 같은 사건을 기록한 마가복음 6장에는 바로 이 점에 대해서 흥미로운 사실을 우리에게 전해 줍니다. 마가복음 6장 4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648)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 쯤에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 성경학자들에 따르면 본문 속 바다 위에서 파도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제자들은 육지에서 대략 5km(3마일) 정도 떨어져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사람이 보이지 않는 먼 거리이고, 게다가 제자들은 지금 불빛 하나 없는 밤바다 한 가운데 있습니다. 제자들이 보일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마가복음 6장 48절은 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까?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분명히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고난 당하는 상황을 다 “보고 계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 “보았다”는 말은 단지 눈으로 보다는 의미를 뛰어넘어 예수님께서 그들의 고난 당함을 이해하시고 알고 계셨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거센 폭풍과 강력한 파도와 사투를 벌이던 제자들은 아무도 자신들의 고난 당하는 형편을 모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어려움을 아실 리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5km 떨어진 빛 하나 없는 컴컴한 바다 위에서 겪고 있는 제자들이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를 젓고 있는 모습을 다 보고 계셨습니다. 또한 주님은 그들의 고충과 고난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아무도 내가 겪는 고생과 고통을 알 수 없다고 생각 되어지는 그 외로운 순간에도, 우리가 속으로 “예수님은 모르실거야”하고 생각하는 그 절망적인 순간에도, 사실 주님은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우리의 형편을 가장 잘 알고 계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우리의 고통을 아실 뿐만 아니라 공감하시며, 우리들을 도와주고 구원하기 위하여 친히 찾아오십니다. 마가복음 6장 48절 다시 한 번 봅시다. “(648)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 쯤에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48절 마지막 부분만 다시 봅시다. 분명 예수님께서 고난 당하는 제자들의 고충을 보시고 그들을 돕기 위해 다가오시는 것은 분명한데, 이상하게도 마가복음 6장 48절에는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만 해석하면 마치 예수님께서 파도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제자들에게 오셔서 “그래, 너희 고생이 많아. 수고하렴” 이렇게 말씀하시고 그냥 지나가시려고 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이는 신약성경 헬라어를 문자 그대로 해석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오해입니다. 여기서 “지나가신다”(pass by)로 해석된 헬라어 단어 “파르에르코마이”는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찾아온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고난을 당한 제자들을 그들의 고통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제자들을 찾아가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의 삶에 ‘파르에르코마이’하십니다. 즉 우리들이 겪고 있는 아픔과 눈물과 고통에서 건져 주시고,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들을 찾아오시는 주님이십니다.

 

  1.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찾아오신 시간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2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마태복음 1425)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찾아오신 시간이 ‘밤 사경’이라고 합니다. 밤 1경은 저녁6시부터 9시까지 입니다. 밤 2경은 밤9시부터 자정까지 입니다. 밤 3경은 자정부터 새벽 3시까지 입니다. 그럼 밤 4경은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일까요? 새벽 3시부터 새벽 6시까지 입니다. 제자들은 지난 날 해가 저물 때 배를 타고 출항했으니, 대략 저녁 6시 즈음 떠났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밤 4경이니 제자들은 적어도 9시간 이상 바다 위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밤 4경은 하루 중 가장 춥고 어두운 시간입니다. 밤새도록 거센 폭풍과 큰 파도와 싸운 제자들은 얼마나 피곤하고 지쳤을까요? 몹시도 배고프고 춥고 힘들었을 것입니다. 문제는 이 폭풍이 언제 그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살아 남을 수 있을지 아니면 이대로 바다에 배가 가라앉아 죽게 될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위기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극도의 스트레스, 죽음의 공포, 고난 속의 두려움이 제자들을 감싸고 있었습니다.

우리들도 살아가다 보면 밤 사경을 맞을 때가 있습니다. 내 자신이 혹은 사랑하는 가족이 큰 병에 걸리기도 합니다. 자동차 사고가 나기도 하고, 직장이나 회사에 갑자기 어려움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친했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남들에게 말하기 어려운 개인적인 아픔과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상황이 갈수록 꼬이고 또 꼬여 힘들고 어려운 형편에 처하게 됩니다. 두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멈추지 않고, 마음은 죽을 것 같이 괴롭기만 합니다. 죽음이 나로부터 한 걸음 밖에 차이가 안나는 것처럼, 말 그대로 벼랑 끝에 홀로 서 있어 누가 나를 살짝만 툭 밀어도 끝을 모르는 낭떠러지에 떨어질 것 같은 그런 절망적인 상황입니다. 이러한 때가 바로 우리들이 경험하는 밤 4경입니다. 아무도 우리를 도와줄 수 없고, 아무도 우리의 마음을 몰라주는 외롭고 괴로운 영혼의 밤이 바로 밤 4경입니다. 오늘 이 시간 혹시 영적인 밤 4경을 보내고 계신 분 계십니까? 마음이 외롭고, 괴로운 분들 계십니까?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우리의 구원자 되시는 구주 예수님께서 우리를 돕기 위해 찾아오십니다. 아니, 사실 믿음의 눈을 들어 보면 이미 주님은 우리를 돕기 위해 우리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오늘도 우리를 찾아오시는 우리를 고통과 눈물, 아픔과 괴로움 가운데 버려 두지 않으시고 반드시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찾아오시는 방법이 아주 놀랍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이 바다를 배를 타고 오신 것이 아니라, 바다 위를 걸어 오셨습니다. 세상에 그 누가 물 위를 걸어올 수 있단 말입니까? 이것은 무엇을 말해줍니까?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을 보여줍니다. 동시에 예수님께서 찾아오지 못할 우리의 그 어떤 상황도 환경도 없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아무도 찾아오지 못할 것 같은 상황, 아무도 도와주지 못할 것 같은 문제라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능히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해 주십니다.

 

  1. 바다 위를 걸어간 베드로

밤 사경, 컴컴한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도 제자들은 예수님이신지 알지 못했습니다. 세상에 새벽 어두운 시간에 예수님께서 바다 위를 걸어 왔으니 제자들이 얼마나 깜짝 놀랐겠습니까? 제자들은 놀라 “유령이다!”하고 무서워하며 소리쳤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물을 포도주로 바꾸시고,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실 수 있는 분으로는 알고 있었습니다만, 예수님을 물 위를 걸으실 수 있는 분으로는 상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보고도 예수님이신 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들도 이와 같은 생각의 한계에 갇혀 있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서 질병을 고치신 예수님, 개인의 어려운 문제와 상황들을 해결해 주신 예수님은 보고 배웁니다. 그러나 정작 내 삶 속에 일어나는 문제들을 해결해 주실 예수님은 기대하지 못하는 것이죠. 사람은 자신의 경험에 갇혀 있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홍해 앞에 선 이스라엘 백성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바다를 반으로 가르시는 하나님을 경험해본 적이 없기에 그들은 “이제 다 죽었구나”하고 생각하며 두려워 했습니다. 골리앗 앞에 선 이스라엘 백성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이들도 거인을 상대하여 승리케 하신 하나님을 경험해 본적이 없었기에 골리앗이 두려워 벌벌 떨며 바위 틈에 숨었습니다. 이처럼 사람은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이 전부인 줄 아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경험과 지혜의 수준을 뛰어넘어 일하십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이렇게 해야만 문제가 해결 될 것이라고 보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하고, 상상해 보지 못한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우리의 문제들을 해결하실 수 있으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폭풍이 몰아치는 그 컴컴한 바다 위를 두 발로 직접 걸어 오실 것이라고는 한 번도 상상해 보지 못했습니다. 주님의 지혜와 능력은 인간이 가진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고 위대합니다. 따라서 우리의 지혜와 경험과 상식으로 해결 할 수 없는 문제와 상황이라고 해서 낙심하지 말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주님은 우리의 경험과 지혜를 뛰어넘어 역사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역사하실 것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 내 주장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놀라운 방법과 위대한 능력으로 역사하실 것을 겸손하게 간구해야 합니다.

이러한 믿음의 도전을 한 사람이 바로 베드로입니다. 그는 물 위를 걸어 오시는 분이 예수님이심을 깨닫게 되자, 인간의 상식과 경험을 뛰어넘는 간구를 주님께 드렸습니다. 28절입니다. “(1428)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오늘 한글 성경을 보면 마치 베드로가 물 위를 걸어오시는 주님을 의심하는 소리처럼 들립니다. “정말 물 위를 걸어오시는 이가 주님이십니까? 주님이 맞으시면 저에게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하고 의심과 확인을 위해서 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원문을 정확하게 해석해서 보면,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이라는 이 말은 의심이 아니라 확신입니다. “과연 주님이시군요! 주님 저에게 명령하사 저로 물 위로 오라고 말씀하소서!” 베드로는 물 위에 계신 분이 주님이심을 확신하자, 자신도 예수님처럼 물 위를 걸어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베드로가 가진 신앙의 담대함을 보여줍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면 자신과 같이 평범한 사람도 얼마든지 물 위를 걸어갈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천지의 주재, 하나님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베드로의 믿음이 그의 지혜와 경험과 상식을 뛰어넘는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과 같이 물 위를 걷게 되었습니다. 29절을 봅시다. “(14:29)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만일 베드로가 주님께 요청한 것이 예수님의 능력을 시험코자 하는 불순한 의도의 것이었다면 주님께서는 ‘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주님이시라면 분명히 이와 같은 일도 하시리라’ 이와 같은 확신으로 그의 신앙고백을 나타냈기에 예수님은 베드로가 초자연적인 역사를 체험토록 허락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물 위를 걸어오시는 주님을 통해서 그가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경지의 역사를 이루어 냈습니다. 우리들도 물 위를 걸어 오시는 주님을 바라봅시다. 이후 역사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물 위를 걷는 것을 시도했지만, 하나 같이 다 실패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권능을 가지신 천지의 주재이신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이와 같이 능력과 권세가 있으신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시라면 우리의 생각과 경험을 뛰어넘어 역사하실 것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바람을 잠잠케 하신 예수님

베드로가 예수님을 바라볼 때는 물 위를 걸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못 가 베드로의 시선은 에수님에게서 멀어지고 바다로 옮겨갔습니다. 넘실대는 파도를 보며 베드로의 마음에는 두려움이 생겨났습니다. 베드로의 믿음이 약해지니 그는 바다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다급한 마음에 예수님께 소리 지르며 말했습니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이에 예수님께서는 즉시 손을 내미사 베드로를 건져 주셨습니다. 30-3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30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바다를 보고 믿음이 약해진 베드로가 물 속으로 빠져 들어가자 예수님은 즉시 손을 내밀어 베드로를 붙잡아 주시고 그를 물에서 꺼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예수님의 이 말씀을 통해 베드로가 물에 빠진 원인이 다름 아닌 믿음 부족, 의심 때문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크신 능력을 체험하는 중에도 우리들은 계속해서 큰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믿음이 부족하면 시험에 빠지고 어려움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 마음을 의심과 두려움이 지배하면 물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에 주님을 향한 믿음과 신뢰가 자리잡게 되면 물 위를 걷게 되는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후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함께 배에 오르셨습니다. 복음서의 저자 마태는 놀랍게도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던 바로 그 순간 그토록 몰아치던 바람이 그쳤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32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33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마태는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심과 동시에 바람이 그쳤다고 기록함으로써, 다름 아닌 예수님께서 그 거센 폭풍과 파도를 잠재우셨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물 위를 걸어오신 예수님, 바람과 바다를 잔잔하게 하신 예수님, 배에 있던 제자들은 이와 같은 예수님을 보고 엎드려 절하며 예수님이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폭풍과 파도를 만난 제자들에게 찾아오시고, 물 위를 걷고, 바다를 잠잠케 하심으로 그들에게 자신이 곧 참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친히 나타내셨습니다. 오늘 우리 삶 속에 폭풍우가 몰아치고 어려움이 찾아올 때에도 예수님은 여전히 우리의 삶 가운데 찾아오시고, 역사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폭풍과 파도 같은 어려움 속에서 건져 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의 구원자 되심을 깨닫게 됩니다. 바다를 바라보면 두려움이 떠오릅니다. 그러나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면 용기가 떠오릅니다. 어떠한 역경과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의 시선을 주님께만 고정합시다. 우리의 지혜와 경험과 상식을 뛰어넘어, 우리가 감히 상상하지 못한 방법으로도 역사하실 수 있는 위대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붙들고 살아감으로써, 우리 삶에 찾아오시는 위대한 구원자 예수의 크신 은혜와 능력을 풍성하게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