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29 그리스도의 교훈을 따르는 삶 (요한2서 1장 7-13절)

오늘날에는 신학교를 졸업한 전문 목회자들이 각 지교회를 담당합니다. 그러나 초대 교회 시절에는 그와 같이 교육과 훈련 받은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각 지역을 순회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명 ‘순회 전도자’들이 지교회를 방문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거짓 교사들은 이것을 악용하여 거짓 가르침을 교회 안에 퍼트렸습니다. 그들은 복음과 전혀 상관 없는 그리스철학이나 하나님의 말씀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세상 가르침과 교훈을 교회 안에 전했습니다. 이 당시 가장 큰 이단 세력이 바로 ‘영지주의’였습니다. 이들은 물질과 육체를 악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이에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님까지도 부인했습니다. 이로 인해 교회는 큰 혼란에 빠지게 되었고, 사람들은 예수님의 성육신과 십자가 죽음, 부활 사건에 대해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의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교회를 올바르게 세우기 위해서 사도 요한은 편지를 쓰게 된 것입니다. 7절에 나오는 사도 요한의 권면을 들어봅시다. “미혹하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라” 거짓 이단인 영지주의는 ‘영혼은 선하고 육체는 악하다’는 이원론적인 사고를 주장하며 예수님의 성육신과 십자가를 부인했습니다. 심지어 이들은 육체는 중요하지 않음으로 성적으로 문란한 삶을 살아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식으로 가르쳤습니다. 또한 성도 간에 필연적으로 나누어야 하는 사랑의 계명까지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식으로 말씀을 왜곡하고 교회를 타락시켰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처럼 예수님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가 바로 이단의 특징이며, 이러한 가르침으로 교회를 미혹하는 자들이 바로 ‘적그리스도’라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놀라운 성육신 사건을 부인하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사건을 부인하는 영지주의자들은 명백하게 적그리스도입니다. 여기서 ‘적그리스도’란 [거짓 메시아]라기 보다는 예수가 메시아라는 진리를 부인함으로 교회를 어지럽히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사도 요한은 이러한 잘못된 가르침을 전파하는 자들이 이미 세상에 많이 있다는 것을 언급하며, 그들의 가르침에 넘어가지 않도록 주의할 것을 경계하였습니다. 8절에 “너희는 스스로 삼가 우리가 일한 것을 잃지 말라”고 권면했습니다. 사도 요한과 같은 복음의 일꾼들이 그들에게 열심으로 전해 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말씀입니다. 만일 성도들이 미혹하는 이단들의 꾀임에 빠져 들어가게 되면, 사도들이 피땀 흘려 전한 복음의 수고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사도 요한은 그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주의하고, 복음을 끝까지 간직하여 온전한 상을 받으라고 권면했습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온전한 상이란 궁극적으로 영원한 생명, 영생을 의미합니다. 거짓 교사들의 잘못된 가르침에 미혹되지 아니하고 끝까지 복음을 간직하고 신앙을 지킨 자들이 얻게 될 온전한 상이 바로 구원이요 영생입니다.

9절에 “지나치다”라는 말은 ‘앞서 버리다’, ‘어기다’, ‘범하다’란 뜻으로 뒤에 있는 그리스도의 교훈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과 동일한 뜻입니다. 그들은 곧 하나님을 모시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즉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으로부터 나오지 않은 자들은 하나님을 모시지 못한 자들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모시지 못했다’는 말은 ‘하나님을 소유하지 못했다’는 뜻도 되지만 ‘하나님과 교제하지 못한다’라는 말도 됩니다. 죄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통해서만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으며, 오직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를 통해서만 하나님과 교제가 가능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성육신과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사건을 부인하고 거절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과의 교제가 불가능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모시지 못합니다.

사도 요한은 만일 누구라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를 입고 오신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부인하는 자들은 집에 들이지도 말고 심지어 인사도 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11절을 봅시다. 그와 같은 이단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라고 말하여 이단과의 교제를 엄격하게 금지하였습니다. 어찌 보면 “‘인사도 하지 말라’는 말은 좀 너무한 것 아닌가?”하는 생각도 듭니다. 당시 거짓 이단들도 순회 전도 사역을 하면서 성도들의 가정을 방문했는데,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대함 같이 그들에게도 잘 대접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단들에게만큼은 그렇게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악수도 하지 말고, 환영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당시 이단들은 교회 내에서 은밀하게, 교묘하게 성도들과의 친분 관계를 형성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성도들이 이단들에게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 이단 교리에 현혹될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단과의 교제를 아예 금할 것을 강력하게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단들과 교제할 경우 그들의 영적 부패가 성도들에게까지 급속히 전염될 것을 우려하였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진리와 함께 해야 합니다. 거짓을 사랑해서는 안됩니다. 불의를 사랑해서도 안 됩니다. 거짓 교사들에게는 교제의 기회도 제공하지 말고 심지어 인사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사랑은 진리로 분별하는 것과 반드시 함께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랑이 모든 것을 다 감정적으로 사랑하는 모습은 아닙니다. 진리로 분별해야 사랑이지, 진리로 분별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진리라는 터 위에서 인격적으로 표현되는 열매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진리 위에 지어져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쓸 것이 많지만 종이와 먹으로 하지 않고 대면해서 전하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직접 성도들과 만나 교제하기를 소망했고, 또한 거짓 교사들의 위험을 이길 수 있도록 바른 가르침을 직접 전하여 성도들을 보호하기를 원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성도들에게 기쁨을 더해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하며, 진리 위에 세워진 사랑이 우리를 기쁘게 합니다.

갈수록 이 시대에 수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비웃고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진리임을 믿습니다. 우리는 그 진리 위에 우리 삶을 세우고 사랑하며 살아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을 따라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