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04 호세아 시리즈 (2) 공허한 약속들 (호세아 6장 1절 – 7장 2절)


영국의 작가 윌리엄 세익스피어의 희곡 [줄리우스 시저]를 보면 로마 황제인 줄리우스 시저가 그를 반대하는 무리에게 암살당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때 그를 죽인 무리 중에는 줄리우스 시저의 친구였던 ‘브루투스’도 함께 있었습니다. 이에 죽어가던 줄리우스 시저가 자신의 친구를 보고 외쳤습니다. “브루투스 너마저?” 자신이 가장 총애하고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당하고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이 줄리우스 시저의 죽음을 더욱 비극적으로 보이게 합니다. 이 세상 모두가 변해도 사랑과 우정, 이 두 가지만은 변치 않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변치 않는 진정한 사랑과 우정을 갖고 싶어합니다. 친구를 사귀어도 마음이 변하지 않는 친구를 기대합니다. 약속을 잘 지키고, 믿을 수 있고, 예의 바르고, 친절한 친구를 원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람을 대할 때 원하고 기대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우리에게 그와 같이 변치 않는 마음을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에게 늘 변함없으신 분이셨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주의 약속을 지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도 마음이 변치 않기를 기대하십니다. 하나님은 충성스럽고, 믿을 수 있고,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을 원하십니다. 애석하게도 우리들의 마음은 하나님 앞에서 일관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다 가도, 죄악에 빠져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멀리하고 세상과 벗하며 살았습니다.
이처럼 자신에게 불성실하고 하나님을 떠나 배신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주님의 성실함을 나타내기를 원하셨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선지자 호세아에게 부정한 여자와 결혼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호세아는 부정한 여인 고멜과 결혼하였고, 호세아와 고멜 사이에서 세 명의 부정한 자녀들이 나오게 됩니다. 첫째 아들 이스르엘, 둘째 딸 로루하마, 셋째 아들 로암미 입니다. 이 세 자녀의 이름은 각각 “하나님께서 흩으신다”, “내가 불쌍히 여기지 않겠다”, “내 백성이 아니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버리고 마음이 변하여 우상을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성실함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의 메시지였습니다.
피고인의 죄목들을 상세하게 고발하는 검사처럼 하나님은 주님을 버린 이스라엘의 변질된 마음과 불성실한 삶의 모습에 대한 불쾌함을 호세아서에 기록해 두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이 땅에는 더 이상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랑도 없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려고 하는 마음도 없었습니다. 호세아서 4장 1-2절 말씀을 우리말성경 번역으로 함께 읽겠습니다. “(호 4:1, 우리말)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이스라엘 자손들이여, 여호와께서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시비를 가려 주실 것이다. “이 땅에는 진리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다. (호 4:2, 우리말) 저주와 거짓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만 있을 뿐이다. 그들이 폭력을 사용해 피가 피를 부르게 한다.” 호세아서 4-5장은 하나님을 배신하고 떠난 이스라엘의 불성실함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올바르게 인도해야 할 제사장들도 돈만 좇고 있었고, 쾌락에 눈이 멀어 있었습니다. 영적 지도자들이 그러하다 보니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 뒤를 따랐습니다. 백성들은 산 꼭대기에 우상에게 제사를 드리는 산당을 설치하여 두고 풍요와 다산을 약속하는 우상들을 섬겼습니다. 이러한 일이 전국적으로 유행했습니다. 제사장들은 사욕에 눈이 멀어 옳은 것은 나쁜 것이라 하고, 나쁜 것은 옳은 것이라고 잘 못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먹잇감을 삼키려고 움츠려 준비하고 있는 사자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달려가서 그들을 심판하고 전쟁 포로로 끌려가게 할 것을 경고하셨습니다. 호세아 4-5장과 7장은 모두 이스라엘의 불성실함과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의 부패함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호세아 6장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서로 합심하여 회개할 것을 부르짖고 있습니다. “심판하시나 돌이키면 구원하신다!”는 이 희망의 선포야 말로 이스라엘에 대한 호세아 선지자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먼저 호세아서 6장 1-3절 말씀을 다시 한번 함께 읽겠습니다. “(호 6:1, 개정)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호 6:2, 개정)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호 6:3, 개정)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1-3절 말씀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 변화는 바로 이스라엘이 여호와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만일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의 죄악과 우상을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면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치료와 회복의 일들을 실행하실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주님께로 돌아온 백성들의 상처를 치료하실 것입니다. 이 상처는 다름 아닌 하나님에 의해 생긴 상처들입니다. 1절 말씀을 보면,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찢으셨다는 것은 여호와께 징계를 받았음을 의미합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징계들은 전쟁, 기근, 지진, 전염병과 같이 큰 고통을 동반하는 것이었습니다. 혹시 우리 삶에 큰 고통과 환난이 찾아왔다면, 이것이 내 죄 때문은 아닌지 점검해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께 받은 징계로 찾아온 고통이라면 호세아 선지자의 경고처럼 하루 속히 여호와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징계의 본래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악을 회개하고 여호와께로 돌아오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비록 여호와께서 우리를 징계하셨으나 우리가 우상들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가면 우리를 낫게 하실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길 때 받은 징계가 얼마나 무서운지요, 사자가 그 먹잇감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으로 옮겨 놓듯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원수들의 칼에 넘기사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음에 이르게 하셨고, 또한 전쟁의 포로로 끌려가거나 기근과 가난과 병으로 인해 큰 슬픔과 극심한 고통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바로 이 상처들이 하나님의 징계였으며, 하나님의 징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통 가운데 그들의 죄악을 회개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찾도록 인도하게 된 계기가 됩니다. 이 내용이 호세아서 5장 14-15절에 있습니다. “(호 5:14, 우리말) 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사자같이 되고 유다 족속에게는 젊은 사자같이 될 것이다. 바로 내가 그들을 찢을 것이다. 아무도 내 입에서 빼내 구해 줄 사람이 없을 것이다. (호 5:15, 우리말) 내가 내 자리로 돌아가서 그들이 죄를 뉘우치고 나를 찾을 때까지 기다릴 것이다. 그들이 고통 속에서 나를 간절히 찾을 것이다.” 우리가 죄악을 행하고 여호와를 떠나서 살아가려고 하면 하나님께서 사자 같이 우리 인생을 갈갈이 찢어 버리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을 다시 찾을 때까지 기다리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간절히 찾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징계가 가진 참된 목적은 우리가 주님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주님께 돌아간다면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우리의 상처를 낫게 하실 것입니다. 1-2절 말씀을 다시 봅시다. “(호 6:1, 개정)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호 6:2, 개정)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상처만 낫게 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살리십니다. 징계가 얼마나 컸는지 거의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고통이었는데, 여호와께로 돌아가니 죽음에서 벗어나도록 다시 살려 주십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하나님 앞에서 살도록 허락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죄를 회개하고 돌아온 주의 백성들의 죄를 용서하실 뿐만 아니라 다시 한번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누리도록 회복하십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가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타국에 가서 흥청망청 살던 탕자가 집에 다시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다시 그를 아들로 받아주고 자신의 집에서 살게 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고 주님께 다시 돌아온 백성들로 하여금 여호와 앞에서 다시 살아가도록 허락하십니다. 하나님과의 완전한 관계 회복이야 말로 우리 죄인들에게 주어진 가장 큰 은혜입니다.
“여호와께 돌아가자”고 권고하는 호세아 선지자는 힘써 여호와를 알자고 초청합니다. 3절을 다시 한번 봅시다. “(호 6:3, 개정)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우리 마음이 여호와께 돌아가는 것과 그를 힘써 알아가는 것은 이스라엘을 새로운 날로 이끌 것입니다. 오랜 시간 동안 가뭄이 이어져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지고 풀 하나 돋지 않았던 메마른 땅에 내리는 비처럼 하나님의 은혜가 죄악으로 인해 메말라 죽어가던 우리 영혼을 생명의 단비로 살리십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음을 꾸짖었습니다. 즉 그들은 마치 하나님께서 존재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이나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삶에 대해서 무지했습니다. 3절 말씀에서 호세아 선지자는 여호와의 나타나심은 “새벽빛 같다”고 선포했습니다. 매일 새벽이 되면 동쪽에서 확실하게 만물을 밝게 비추는 해가 돋는 것처럼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 가운데 계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님의 임재에 대해서 알지 못했고, 자신들이 원하던 대로 죄악을 행하며 살아갔습니다. 따라서 호세아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를 힘써 알아가고 그에게로 돌아갈 필요가 있음을 언급한 것입니다.
여태까지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어떤 모습으로 살아갔는지 4-5절에 더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호 6:4, 개정)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호 6:5, 개정) 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그들을 치고 내 입의 말로 그들을 죽였노니 내 심판은 빛처럼 나오느니라“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주님에 대한 성실함이 조금 있다 사라지는 아침 구름 같고, 쉽게 없어지는 아침 이슬 같다고 묘사했습니다. 이들이 이전에도 수없이 하나님께 돌아가겠다고 거짓 약속하고는 다시 죄악으로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반짝 회개하고 다시 죄악으로 돌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호세아가 보고 아침 구름, 아침 이슬 같다고 표현한 것이죠. 4절에 나오는 하나님 아버지의 탄식 소시를 들어보십시오. “내가 너게 어떻게 하랴.”, “내가 네게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부모에게 반항하고 부모 말에 거역하는 자녀에 의해서 부모 가슴이 찢어지듯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반항하고 주님의 명령에 거역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고 한숨을 짓고 계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도 회개하고 돌아가겠다고 말만 하고 반짝 회개하고 다시 돌아서기를 반복하니, 5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로 그들을 치셨고, 주님의 말씀으로 백성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호세아는 하나님의 진심이 무엇인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회개하는 척하고 눈물 콧물 쏟는 위선적인 예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껍데기 신앙은 하나님께 아무런 기쁨이 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러한 모습은 하나님을 더욱 화나게 합니다. 겉으로 드려지는 제사나 값비싼 제물을 바쳐 드리는 것보다,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마음이 있느냐가 핵심이었던 것입니다. 6절 말씀을 봅시다. “(호 6:6, 개정)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이스라엘아 내가 원하는 것은 제사가 아니라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야! 내가 원하는 것은 값비싼 제물이 아니라 나를 더욱 알아가고자 하는 너희의 진실함이야!” 이렇게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신 것이죠. 하나님은 종교적 의식보다 하나님과의 진실한 관계를 더욱 중요시하심을 보여줍니다. 예배의 형식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마음이 빠진 예배는 무의미합니다. 신약시대 때 일주일에 2번 금식하고 철저하게 십일조하고, 금욕하며, 성경 연구과 기도에 매진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모습이 얼마나 큰 귀감이 되는지 백성들에게도 존경을 받았습니다. 겉으로 보면 대단히 거룩한 사람들이죠? 이들이 바로 바리새인들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오늘 호세아 6장 6절을 인용하며 말씀하셨습니다. “종교적 의식만을 형식적으로 지키는 바리새인들아, 하나님은 제사가 아니라 사랑을 원하신단다. 너희가 제사는 드리면서도 세리들이나 죄인들을 깔보고 미워하면 어찌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의 모습이 되겠니? 또한 너희가 아무리 금식하고 기도와 율법연구에 힘쓴다 해도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와 사랑이 없으니 그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니?” 하나님께서는 종교 의식보다 하나님 앞에서 변함없이 충실되이 살아가는 삶을 더 가치 있게 평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종교적 의식만을 형식적으로 지키는 사람들과의 관계보다 죄악을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죄인들과의 관계를 원하셨습니다.
여호와께로 돌아가겠다고 다짐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공허한 약속들은 결국 다시 여호와에 대한 충성을 깨는 것으로 이어졌고, 이는 다시 하나님의 심판으로 이어졌습니다. 호세아 6장 7절부터 7장 2절까지 이 내용입니다. “너희가 아담처럼 나와 맺은 언약을 어기고 나를 반역했다! 너희가 사는 마을은 악을 행하는 자들의 고을이 되었다! 너희 성에 피의 발자국이 가득하다. 강도 떼가 사람을 기다림 같이 너희 제사장들도 죄악을 행하려고 사악하게 계획을 꾸미고 있구나! 너희가 가증한 짓 하는 것을 내가 다 봤다. 우상에게 제사 드림으로 음행 하여 더럽혀지는 것을 내가 다 봤다. 유다야 내가 너를 심판할 것이다!” 하나님은 호세아서에서 이처럼 그의 백성을 심판할 것을 예고하셨습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이들은 하나니의 말씀대로 적군에게 패하여 나라가 멸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멸망은 백성들을 치유하기 위한 하나님의 징계였습니다. 하나님은 이 징계 가운데서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진심으로 하나님께 돌아오면 다시 그들을 치유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만일 이들이 죄악으로 인해 스스로 멸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하나님을 찾지 않으면, 죄악 가운데 아무런 소망도 없이 멸망으로 끝나 버릴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가겠다고 약속했지만, 계속해서 죄악을 좇아가는 삶을 살았고, 예배 전체가 거짓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드린 회개의 약속은 공허한 약속, 거짓된 약속이었습니다. 우리는 진정한 회개를 통해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께 예배 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 역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실패할 것이란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더욱 힘들게 노력하거나 더 잘하려는 것은 매번 실패할 것입니다. 오히려 열심히 살아도 바리새인처럼 위선자가 될 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할까요? 바로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 앞에 돌아가고 싶으나, 여전히 끊임없이 우리를 놓아주지 않는 이 죄악의 문제를 가지고 우리의 중보자 되시는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여 주시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이 필요함을 겸손하게 인정하고, 예수님을 의지하십시오. 그분만이 우리를 새롭게 하시며 예수님만이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살 수 있도록 하실 수 있음을 신뢰하십시오. 그러나 예수님을 신뢰한다는 것이 가만히 있는 것과는 다릅니다.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시는 일을 예수님만이 100% 감당하실 수 있음을 고백하십시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의 약속이 공허한 약속이 되지 않도록 우리들도 100% 최선을 다해서 예수님을 찾고 의지하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길은 우리 스스로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수도 없이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오직 중보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아가는 길 밖에는 없습니다. 우리의 구원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그 분께 우리의 모든 죄를 고하고 진심으로 여호와께 돌이킴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린 징계를 거두시고, 우리를 치료하시고, 우리 상처를 싸매 주시고, 다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는 귀한 밤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