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28 호세아 시리즈 (1) 부정한 신부 (호세아 1장 1-9절)

최근 한국을 뜨겁게 달군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일명 [가평 계곡 살인 사건]입니다. 지난 2019년 6월 30일 경기도 가평의 용소폭포에서 아내 이은해와 내연남 조현수가 같이 놀러 온 이은해의 남편 윤상엽씨를 물놀이 도중 죽게 만든 사건입니다. 사건 발생 초기에는 이들이 단순히 물놀이를 하다가 사고로 윤상엽씨가 사망한 것처럼 보였습니다만, SBS [그것이 알고 싶다] 프로그램에서 사실 관계를 취재하고 이은해씨의 행적에 대한 방송을 보도하면서 사건이 재수사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보험금을 타낼 목적으로 수용을 못하는 피해자를 계속에 강제 다이빙하게 만들어 숨지게 하였습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 사건이 있기 한달 전에도 경기도 용인시의 어느 낚시터에서 일부러 물에 빠뜨리기도 하고, 펜션에서 복어 독을 먹여 살해하려 한 혐의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가평 계곡 살인 사건]은 가장 믿고 사랑하는 관계여야 하는 아내가 내연남과 함께 보험금을 타기 위해 남편을 물에 빠트려 죽인 사건으로 전 국민을 큰 충격에 빠트렸습니다. 사람이 용서하기 가장 어려운 감정들 중 하나가 바로 자신이 믿어왔던 상대방이 배신한 일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 배신이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장기간 고의적으로 계속되어 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는 용서하기가 더욱 어렵습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 호세아는 이 주제에 있어서 아주 특별한 하나니의 명령을 받은 선지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호세아에게 결정할 여자를 지정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결혼하라고 콕 찍어 주신 아내이니 얼마나 좋은 사람을 붙여 주셨을까요? 그러나 놀랍게도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결혼 서약을 배반하고, 간음을 저지를 만한 여자와 결혼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창녀요 부정한 여인으로 소문난 고멜과 결혼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가장 거룩한 삶을 살아가려고 하는 선지자 호세아에게 부정한 여인과 결혼하라고 하셨을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서 그 이유를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호 1:1, 개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이어 유다 왕이 된 시대 곧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왕이 된 시대에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1절 말씀을 보면 호세아는 북이스라엘 왕국에서 여로보암 2세가 왕으로 다스리던 시대에 선지자로 활동했습니다. 이 때는 북이스라엘이 부강하고 군사적으로 막강한 힘을 자랑하던 시대였습니다.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강력한 경제로 인해 밝은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낙관적인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경제적 군사적으로는 형통한 시대인데 반대 영적으로는 매우 죄악이 넘치는 시대였습니다. 북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섬겼습니다. 금송아지 우상을 섬기고, 하늘의 해달별에게 절을 하며 복을 빌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금하신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일을 행했고, 무당에게 찾아가 점을 치고 주문을 외우는 등 이방 종교에 심취해 있었습니다. 이처럼 북이스라엘은 그들의 영적 신랑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을 섬김으로 영적인 간음죄를 짓고 있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선지자에게 간음한 여인과 결혼하라는 예언적 행동(Prophetic action)을 통해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주의 백성들에게 나타내고자 하셨습니다. [예언적 행동]이란 선지자들이 어떤 행동을 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어떤 행하실 일이나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언적 행동을 다른 말로 [상징적 행동](Symbolic action)이라고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호세아 선지자에게 주신 예언적 행동으로서의 결혼 명령이 2절에 있습니다. “(호 1:2, 개정) 여호와께서 처음 호세아에게 말씀하실 때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 하시니” “호세아야, 너는 가서 부정한 여자와 결혼해서 부정한 자식을 낳으라!” 얼마나 충격적인 말씀입니까? 결혼이 가벼운 일도 아니고 아이들 장난도 아니고, 일생에 가장 중요한 일인데 어찌 거룩한 하나님의 선지자가 부정한 여인과 결혼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 대로 이 명령은 앞으로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에 대해서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예언적 행동이었습니다. 남편 호세아는 하나님의 역할을 상징하고, 부정한 아내 고멜은 이스라엘의 역할을 상징합니다. 즉 먼저 호세아와 결혼한 그의 아내 고멜이 남편인 호세아를 두고 다른 남자들을 찾아가 음란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우상들을 찾아가 제사를 드리는 영적 간음의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남편들은 아내에게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 같은 기본적인 의식주를 공급하고 또한 그들이 몸을 꾸미고 마음을 기쁘게 할 수 있도록 기름과 포도주를 제공했습니다. 호세아도 그가 결혼한 아내 고멜에게 이와 같이 성실하게 의식주와 기름과 포도주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고멜은 그런 호세아의 호의와 사랑을 버리고 다른 남자를 찾아 떠나갔습니다. 이 모습은 마치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우리를 먹이시고 입히시고 보호해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눈코입의 모양은 있지만 아무것도 우리에게 주지 못하는 우상에게 가서 그에게 영광을 돌리며 예배 드리는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선지자 호세아는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여 부정한 여인 고멜을 아내로 취했습니다. 그리고 이 둘 사이에 세 명의 자녀들이 태어났습니다. 앞서 2절에서 호세아와 고멜 사이에 태어난 자식들은 부정한 자녀들이라고 했습니다. 성경 학자들은 이 표현이 고멜이 문란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호세아가 이 아이들의 생부가 아니란 뜻을 나타낸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고 우상을 섬김으로 얼마나 큰 음란죄를 지었는지 잘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호세아와 고멜 사이에 태어난 세 자녀들의 이름을 직접 지어 주셨습니다. 3-4절 말씀을 봅시다. “(호 1:3, 개정) 이에 그가 가서 디블라임의 딸 고멜을 맞이하였더니 고멜이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호 1:4, 개정)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이스르엘이라 하라 조금 후에 내가 이스라엘에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며 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 폐할 것임이니라” 호세아와 고멜 사이에 태어난 첫째는 아들이었으며 그의 이름을 ‘이스르엘’이라고 지었습니다. ‘이스르엘’이란 말의 뜻은 ‘하나님께서 뿌리신다’ 또는 ‘하나님께서 흩으신다’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호세아와 고멜의 첫째 아들 이름을 ‘이스르엘’이라고 짓게 하셨을까요? 앞서 살펴보았듯이 호세아 시대의 왕은 여로보암 2세입니다. 이 사람은 예후 왕조 사람입니다. 거듭 죄악을 행하고 우상숭배를 장려한 이 악한 왕조를 하나님께서 ‘이스르엘’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예후 집안을 심판하사 그들을 자취도 남기지 않고 흩어버리실 것입니다. 이 일이 언제 일어나냐 하면 여로보암 왕 2세가 죽고 그의 아들 스가랴가 왕위에 오른 지 6개월 후에 [살룸]이란 사람이 스가랴를 죽임으로써 예언이 성취됩니다.
아마 성경을 자주 보시는 분은 ‘이스르엘’이란 이름이 익숙하실 겁니다. 왜냐하면 성경을 보면 이스르엘이란 이름이 지명으로도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스르엘은 갈릴리와 사마리아 사이에 있는 도시의 이름이기도 하고, 이 두 지역 사이에 놓인 골짜기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예후 왕조 직전에 북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아합 계열을 하나님께서 멸하시던 지역이 바로 ‘이스르엘입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예후에게 분명 앞선 아합 왕조의 죄악의 길을 따라가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러에도 불구하고 예후 왕조는 우상을 섬기는 아합 왕조의 길을 결국 따라갔고, 호세아 시대의 여로보암 2세 시대까지 이어왔던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아합 왕조를 이스르엘이란 지역에서 심판하사 죽음에 이르게 하셨던 것처럼, 이번데도 예후 왕조 즉 예후의 집을 ‘이스르엘’ 심판하시고 멸망케 하여 흩어 버리실 것입니다. 앞으로 미래에 일어날 이 일을 상징하는 예언적인 행동으로서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선지자와 고멜의 첫째 아들의 이름을 ‘이스르엘’이라고 짓게 하셨습니다.
호세아 선지자와 고멜 사이에 낳은 두 번째 자녀는 딸이었습니다. “(호 1:6, 개정) 고멜이 또 임신하여 딸을 낳으매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루하마라 하라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여겨서 용서하지 않을 것임이니라” 둘째 딸의 이름은 [로루하마]입니다. 로루하마란 이름의 뜻은 ‘사랑하지 않는다’, ‘동정심을 주지 않는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와를 버리고 우상을 택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더 이상 긍휼히 여기거나 용서하지 않을 것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역시 이스라엘의 죄 때문에 그들을 심판하실 하나님의 모습을 상징하는 예언적 행동입니다. 6절 후반절 말씀 다시 보십시오.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여겨서 용서하지 않을 것임이니라” 이 얼마나 두려운 말씀입니까? 하나님은 북이스라엘이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올 기회를 충분히 주셨습니다. 많은 선지자들을 그들에게 보내주셨습니다. 그러나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북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이 끊어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더 이상 그들을 불쌍히 여기거나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실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실제로 이 예언 이후 북이스라엘은 앗수르 군대에 의해 멸망하고 맙니다. 북이스라엘 사람들은 전쟁 포로로 끌려가며 북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 됩니다.
호세아와 고멜이 낳은 셋째 자녀는 아들이었습니다. 8-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호 1:8, 개정) 고멜이 로루하마를 젖뗀 후에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호 1:9, 개정)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암미라 하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 셋째 아들의 이름은 ‘로암미’였습니다. 이름은 “내 백성이 아니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는 결혼할 때 부부로서 결혼서약을 맺습니다. 이 서약은 서로에게 충실할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부정한 아내 고멜이 호세아를 두고 다른 남자를 찾아가 음란한 삶을 살아감으로써 부부의 서약은 깨져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맺은 언약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여호와만을 섬기는 것이 언약의 골자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김으로서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트려버렸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도 더 이상 그들의 하나님이 되지 않을 것이며, 북이스라엘이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는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대한 예언적 행동으로서 셋째 자녀의 이름을 ‘로암미’라고 지은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호세아와 고멜 사이에 태어난 세 자녀들의 이름을 통해서 북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님의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이스르엘, 내가 너희를 흩어버리겠다. 로루하마, 내가 너희를 사랑하지 않겠다. 로암미,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다.
하나님은 분명 정의로우신 분이십니다. 악을 행하는 이스라엘을 가만히 두지 않으시고, 그들의 죄악에 합당한 벌을 주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또한 자비의 하나님이십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호세아의 세 자녀들의 이름을 통해서 북이스라엘을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셨으나, 하나님은 이후에 그들을 다시 회복하고 구원하실 것임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10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호 1:10, 개정)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할 것이라” 하나님은 10절 말씀에서 호세아의 세 자녀들의 이름을 통해서 내리실 심판에 대한 내용을 회복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첫째로, ‘이스르엘’ 그들을 심판하여 흩어버리겠다고 말씀 하셨으나, 이제 10절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그들을 능히 헤아릴 수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시 모아 주실 것입니다. 둘째로, ‘로루하마’, 그들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고 용서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으나, 이제 다시 그들을 용서해주십니다. 셋째로, ‘로암미’, 그들이 더 이상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고 말씀하셨으나, 이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라고 불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호세아의 부정하고 음탕한 아내 고멜은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섬김으로 영적 간음을 저지른 북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호세아의 아내 고멜은 심지어 호세아와 자녀를 셋이나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호세아를 떠나 그녀의 애인들 중 한명에게로 갔습니다. 이 얼마나 방탕한 여인입니까? 아마도 그녀는 자기 스스로 노예로 팔려갔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호세아 선지자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호세아야, 너 가서 노예 된 네 아내를 돈을 주고 자유케 하여 다시 데리고 와라” 호세아서 3장 1-2절 말씀의 내용이 바로 이 내용입니다. “(호 3:1, 개정)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과자를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그들을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서 타인의 사랑을 받아 음녀가 된 그 여자를 사랑하라 하시기로 (호 3:2, 개정) 내가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나를 위하여 그를 사고” 오늘 호세아 선지자의 행동은 모두 예언적 행동으로 호세아가 부정한 그의 아내 고멜을 대하는 행동은 이스라엘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상징합니다. 남편과 자식을 셋이나 낳았음에도 또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 남편을 버리고 도망쳐 스스로 노예가 된 고멜, 하나님께서는 호세아에게 그녀를 다시 돈을 주고 사오라 명하셨고, 음녀가 된 그녀를 다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우상을 섬김으로 하나님을 배신하고 떠나 죄악의 노예가 된 우리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해 주시고 다시 사랑해 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호세아는 노예가 되었던 그의 아내 고멜을 돈을 주고 다시 사왔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내 고멜에게 다시는 음행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호세아 3장 3절입니다. “(호 3:3, 개정)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많은 날 동안 나와 함께 지내고 음행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따르지 말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 하였노라” “당신은 여러 날 동안, 나를 기다려야 하오. 창녀가 되지 말고 다른 남자의 연인도 되지 말아야 하오. 나도 당신을 기다리겠소” 호세아는 고멜이 음탕함과 모든 음행 끊어내고 다시 순결한 아내로 살아갈 것을 명령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상을 섬기던 이스라엘을 향해 하시는 말씀입니다. 모든 우상들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와야 합니다. 호세아는 그 후에 이스라엘이 돌아와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4-5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호 3:4, 개정) 이스라엘 자손들이 많은 날 동안 왕도 없고 지도자도 없고 제사도 없고 주상도 없고 에봇도 없고 드라빔도 없이 지내다가 (호 3:5, 개정) 그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와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와 그들의 왕 다윗을 찾고 마지막 날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므로 여호와와 그의 은총으로 나아가리라”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앗수르에게 멸망한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많은 날 동안 포로로 지나게 될 것입니다. 왕도 없고, 지도자도 없고, 제사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후에 시간이 지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아와서 다시 여호와 하나님을 찾고 그를 경외하는 날이 이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호세아 선지자의 메시지입니다.
죄악으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나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고 회복하시며 구원하여 주십니다. 부정한 여인 고멜을 다시금 돈을 주고 사왔던 호세아처럼 하나님께서는 죄악으로 무너진 삶을 살아가던 우리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값을 지불하고 다시 주님의 소유로 삼아 주셨습니다. 호세아와 고멜의 관계가 고멜로부터 회복된 것이 아니라 호세아로부터 다시 시작된 것처럼, 죄인들의 회복은 죄인들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넓은 사랑으로 우리를 대하십니다. 오늘 호세아 3장 5절 말씀에 “그들이 마지막 날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므로 여호와와 그의 은총으로 나아가리라”고 했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 마지막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새로운 은총의 시대를 열어 주셨습니다. 우리의 치명적인 죄악과 결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지금까지 신실하게 우리들을 사랑해 주셨고, 지금도 우리들을 위한 구원의 문을 열어 놓고 계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죄와 사망의 노예 된 우리들을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 그 주님의 놀라운 품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하나님 안에서 용서와 회복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서서, 이제는 다른 우상들이 아니라 오직 우리의 유일한 신랑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만 섬기며 살아가는 순결한 고멜, 거룩한 주님의 신부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