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은 충신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와 간음을 저질렀습니다. 그는 자신이 저지른 불륜을 덮기 위해 아람과의 전쟁을 위해 최전선에 나간 우리야를 수도 예루살렘으로 불러들였습니다. 다윗은 우리야에게 집에 가서 쉬라고 종용하며 그에게 맛있는 음식을 하사했습니다. 그러나 충신 우리야는 언약궤와 상관 요압이 전쟁터에 있는데, 자기 혼자만 편안한 집에 가서 발 씻고 잘 수 없다고 말하며 집에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우리야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게 하여 그게 취하게 만든 뒤 그를 집으로 보내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충신 우리야는 술에 취했어도 여전히 그의 집으로 가지는 않았습니다. 이대로 가면 임신한 밧세바의 배가 불러오게 되어 결국 다윗의 불륜행각이 발각되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우리야를 집으로 보내어 아내 밧세바와 동침하게 하여 자기의 간음죄를 덮으려 했던 다윗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에 다윗은 자신의 죄악을 덮기 위해 더욱 무서운 꾀를 짜냅니다. 그것은 바로 충신 우리야를 전쟁터에서 죽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14절을 보니, 다윗은 총사령관 요압에게 보내는 전갈을 써서 우리야의 손에 들려 전송케 하였습니다. 15절에 우리야가 요압에게 전해준 전갈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아를 싸움이 가장 치열한 최전선으로 내보내고 너희는 뒤로 물러가 그가 맞아 죽게 하여라.” 다윗은 이스라엘을 위하여 목숨을 걸고 적군과 싸우고 있는 충신 우리야를 전쟁터에서 죽게 만들 속셈이었습니다. 여기서 한 번 다윗의 죄악을 곱씹어 봅시다. 그가 지금 왜 우리야를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까? 우리야가 전쟁터에서 죽으면 임신한 밧세바는 과부가 됩니다. 그럼 그 때 과부가 된 밧세바를 자기 아내로 들여오게 되면, 불륜으로 밧세바가 임신한 것이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습니다. 다윗이 얼마나 사악하고 간사한 꾀를 내었는지 모릅니다. 자신의 불륜행각을 덮기 위해서 사람을 죽이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입니까?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사람의 목숨을 죽이는 일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비인간적인 다윗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이 죄의 유혹에 넘어가 죄악의 길에 살게 되면 비인간화 됩니다. “사람이 어찌 저렇게 할 수 있지?”하는 탄성을 일으키는 일들을 하게 만듭니다.
1996년에 서울 포이동 주택가에서 귀가중이던 40대 여성이 갑자기 달려온 승용차에 납치당해 금품을 빼았겼습니다. 이후 여자는 구덩이에 산채로 밀어넣어져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 유명한 막가파 사건입니다. 이들은 ‘막 나가는 인생’이란 뜻으로 조직 이름을 막가파로 지었습니다. 두목 최정수가 조직원 8명을 가입시켜서 만든 살인 범죄조직입니다. 이 조직원들의 나이가 몇 살이었을까요? 모두 20대 젊은 청년들이었습니다! 막가파는 사람을 죽일 때 땅을 파서 사람을 생매장하는 방식으로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생매장 한 이유는, 손에 피를 묻히기 싫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조직의 목표는 부유층을 막무가내 잡아서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죄에 빠지면 비인간화 됩니다. “어떻게 사람이 저린 악한 일을 할 수 있지?”하는 모습이 죄악에 빠진 인간에게 나타나는 비인간화된 모습입니다. 시편을 지어 하나님을 찬양하고, 언약궤를 옮길 때 하나님 앞에서 그처럼 순수하게 춤을 추며 예배하던 다윗도 이처럼 죄악의 유혹에 빠지니 비인간화 된 흉악한 살인자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우리들도 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자꾸만 죄에 빠지면 우리들도 얼마든지 비인간화 되어 갈수 있습니다. “아, 내 안에도 이처럼 흉악한 마음이 자리 잡고 있었구나?”하고 자기 자신에게도 흠칫 놀랄 만큼 우리 마음 속 자리 잡고 있는 죄성은 사악하고 끔찍합니다.
결국 다윗의 사악한 꾀대로 요압은 성을 포위하고는 적진의 가장 강한 용사들이 있는 곳을 알아내어 우리아를 그곳에 보냈습니다. 그 성 사람들이 나와 요압과 싸울 때 다윗의 군대에서 몇몇이 쓰러졌고 그때 헷 사람 우리아도 죽었습니다. 요압은 다윗에게 심부름꾼을 보내서 싸움의 상황을 보고했습니다. 그리고 심부름꾼에게 이렇게 일러 두었습니다. “왕께 전쟁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다 보고하고 났을 때 왕께서 불같이 화를 내시며 ‘왜 그렇게 성 가까이 가서 싸웠느냐? 성벽에서 화살을 쏘아 댈 것을 몰랐느냐? 왜 그렇게 성 가까이로 갔느냐?’ 하고 네게 물으시면 ‘왕의 종 헷 사람 우리아도 죽었습니다’라고 대답하여라.” 우리야의 죽음은 결국 다윗이 죽인 것입니다. 불륜의 죄악을 감추려 한 다윗은 결국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죄를 숨기면 또 다른 죄로 이어집니다. 내가 죄악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죄악을 단칼에 끊어버려야 합니다.
22-24절에 요압이 보낸 심부름꾼이 다윗에게 보고합니다. “저들이 우리를 몰아내려고 들판으로 나왔지만 우리가 그들을 쳐서 성문 쪽으로 몰아갔습니다. 그러자 활 쏘는 사람들이 성벽에서 왕의 종들에게 화살을 쏘아 댔고 왕의 군사들 몇몇이 죽었습니다. 또 왕의 종 헷 사람 우리아도 죽었습니다.” 그러자 25절에 다윗이 심부름꾼에게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요압에게 ‘이 일로 괴로워할 것 없다. 전쟁을 하다 보면 누구나 죽이고 죽을 수가 있다. 성을 맹렬히 공격하여 점령하도록 하여라.’ 이 말을 전하여 요압에게 용기를 주어라.” 다윗의 마음이 얼마나 사악합니까? 자신이 우리야를 죽여 놓고서는, 표정 하나 안 바뀌고 우리야의 죽음과 자신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마음은 죄악으로 점점 더 굳어져 갔습니다.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는 그 남편이 전쟁터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소리내어 울었습니다. 우리야의 장례식이 끝나자, 다윗은 곧바로 사람을 보내어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밧세바를 데려와 자기 아내로 삼았습니다. 이 모든 일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를 봅시다. 27절 마지막 부분입니다.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
다윗은 자신의 죄를 은폐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죄를 감추려고 하면, 죄는 또 다른 죄를 낳습니다. 죄가 더욱 커져만 갑니다. 다윗이 그러했습니다. 여자를 보고 품은 음욕이 그로 하여금 간음죄를 낳게 만들었습니다. 간음죄를 감추려고 하니, 그의 양심은 깨어져 갔고, 회개하려는 기회를 계속해서 놓쳤으며, 결국에는 살인죄로 이어졌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은폐하기 위하여 충신 우리야의 목숨을 죽였습니다. 죄의 은폐와 우리야의 목숨을 바꾼 것입니다. 밧세바는 남편 우리야가 죽어 슬퍼하고 있는데, 다윗은 우리야가 죽어 속으로 안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죄악에 빠진 다윗은 비인간화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습니다.
죄 은폐는 결국 우리의 영혼을 망하게 합니다. 우리 주변 사람을 죽이고, 슬픔에 빠지게 만듭니다. 죄를 은폐하려는 시도를 멈추어야 합니다. 시편 32편 1-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 32:1, 개정)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시 32:2, 개정)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나님께 죄를 용서받고 잘못을 용서받은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여호와께서 더 이상 죄를 묻지 않는 사람과 그 마음에 거짓이 없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죄를 고백하지 않고 입을 다물고 있을 때, 뼛속 깊이 사무치는 아픔을 느끼고 온종일 괴로워 신음할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를 덮어 두지 않고 주님께 숨김없이 털어 놓을 때, 주님은 우리 죄와 우리 잘못을 용서해 주십니다. 죄를 은폐하지 말고, 하나님의 한없는 은혜 앞에 죄를 가지고 나가 용서받고 구원받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