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23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시리즈 (30) 70-72문 십계명 제 7계명

(출 20:14) 간음하지 말라

오늘 본문에서 “간음하지 말지니라”는 이 말씀은 결혼한 사람이 불륜, 간통을 하는 것을 금지하는 명령일 뿐만 아니라, 아직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의 혼전 동거, 혼전 성관계에 대해서도 금지하는 말씀 입니다. 오늘 저는 죄를 고발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 설교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 삶에 연약함이 비춰질 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주의 긍휼과 자비로 회복되는 우리의 삶을 꿈꾸며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사실 성적인 문제라는 것이 매우 개인적이고, 은밀한 주제이기 때문에 아무리 강단에서라도 이처럼 공론화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꺼리는 것이 요즘 교회 분위기 입니다. 많은 목회자들도 강단에서 성적인 문제를 다루는 것을 어려워 하고, 사실 잘 다루지 않으려 하는 경향도 많습니다. 그러나 이 주제는 우리 삶의 현장 한 가운데서 나타나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입니다.

성경 잠언 6장 3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잠6:32)여인과 간음하는 자는 무지한 자라 이것을 행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망하게 하며” 결혼한 남자가 아내를 두고 다른 여인과 성적인 관계를 맺는 것은 자기의 영혼을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망하게 한다는 말은 ‘죽인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십계명 중 오늘 일곱 번 째 계명을 통해서 결혼 밖에서 행해지는 모든 성행위를 금지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행동이 사람의 영혼을 죽음으로 몰아가기 때문입니다. 간음은 부부 사이의 친밀함을 파괴하고, 곧 가정을 파괴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간음한 자의 영혼은 하나님 앞에서도 큰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간음이란 죄는 다른 죄와는 다른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짓는 죄들은 대부분 몸 밖에서 짓는 죄들 입니다. 그러나 간음죄는 몸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 어떤 죄보다도 간음죄를 경계 합니다.

 

1) 영혼을 파괴함

왜 성경은 간음죄를 반대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 몸이 하나님의 영이 함께 머물고 계신 성전이 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15-20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고전 6:15)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고전 6:16) 창기와 합하는 자는 저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고전 6:17)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고전 6:18)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 (고전 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고전 6: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신 구원자와 내 인생의 주인으로 맞아들일 때,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인 성령이 들어와 함께 거하시게 됩니다. 그로 인해 우리의 몸은 우리의 영혼을 담는 그릇이 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머무시는 성전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만일 간음을 통해 몸을 더럽히면, 그는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그의 거룩한 처소를 더럽히는 것이 됩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었습니다. 종교 개혁자 존 칼빈은 “간음이야 말로 우리가 다른 어떤 것보다도 경계해야 할 죄다”라고 까지 말했습니다. 우리가 간음 죄를 지을 때, 우리 몸은 거룩함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거룩함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우리의 영혼이 세상의 더러움에 빠지게 되고, 하나님의 영이 더 이상 우리의 영혼을 인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매우 심각한 상태 입니다. 간음은 단순히 육신의 문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영혼 즉 그의 모든 것에 치명적인 결함을 가져다 줍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삼손의 이야기 기억 나십니까? 그는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구별하신 나실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삼손이 여자와 놀아나는 영적 간음에 빠지자 결국 하나님의 영이 그를 떠났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능력도, 영광도 다 잃어버리고 두 눈이 뽑힌 채 적군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쇠사슬에 묶여 지하감옥에서 당나귀들이 돌려야 하는 맷돌을 삼손 자신이 돌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을 보고 비웃으며 얼마나 조롱 했는지 모릅니다. 사사 시대의 가장 많은 뛰어난 힘을 소유했던 삼손이지만, 간음 죄를 저지르자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비참한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죠.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간음 죄를 짓게 될 때 이는 몸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전반적인 것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되고, 성령이 더 이상 우리 삶을 인도하지 않으시고, 사단의 조롱을 받으며, 비참한 모습에 빠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자녀인 우리들이 이처럼 죄로 인해 고통스러운 삶을 살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간음하지 말라고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말씀하고 계신 것이죠.

 

2) 관계를 파괴함

하나님께서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을 주신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가정을 보호하기 위해서 입니다. 7 계명은 단순히 성적인 순결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신성한 결혼을 지키기 위한 명령 입니다. 간음죄를 짓는 사람은 부부 사이의 친밀함을 깨뜨려 버리고 가정을 무너뜨립니다. 간음하지 말라의 명령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성을 부부 관계 안에서만 허용하심으로 이러한 삶의 모습을 통하여 가정을 지키게 하신 것이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제도는 가정 입니다. 성경은 가정을 중요하게 다룹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가정이란 그릇을 통해 우리에게 축복해 주시고, 행복과 은혜를 담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가정이 흔들리면, 근간이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부부 사이의 관계를 파괴시키고, 가정을 깨뜨리는 간음죄를 강하게 경계하신 것입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간음죄에 대하여 아주 엄격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레위기 20장 10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레 20:10)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곧 그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그 사람이 결혼을 했거나 미혼이거나 상관없이 남편이 있는 여자와 관계를 맺는 것은 간음입니다. 마찬가지로 여인이 아내가 있는 남자와 관계를 맺는 것도 간음입니다. 간음죄를 지은 자는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고, 동시에 자신의 배우자에게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불륜의 상대와 그 사람의 배우자에게까지 죄를 범하는 것이죠. 이처럼 간음죄는 여러가지 관계를 깨뜨리고, 가정을 파괴하는 행위였고, 더 나아가 한 사회 전체를 무너뜨리는 행위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간음죄를 지은 자에 대해서 ‘반드시’ 죽이라는 강력한 처벌을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결혼한 남편과 아내가 서로 정절을 지키며 살아갈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부부 안에서만 성을 허락하셨습니다. 세상은 간음을 법적인 문제로 취급하고, 자신의 육적 욕망과 성적 범죄를 자꾸만 합리화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 시대에 7계명에 대한 강력한 거부 반응 중 한 가지가 바로 부부에 대한 정의 입니다. 결혼은 분명 한 사람의 남자와 한 사람의 여자 사이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창세기 2장 2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창 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이 본문을 보면 한 사람의 남자와 한 사람의 여자가 연합하는 것이 부부 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성경의 이러한 정의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남자와 남자 혹은 여자와 여자의 결혼을 인정합니다. 동성애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레위기 20장 13절 말씀 입니다. “(레 20:13) 누구든지 여인과 교합하둣 남자와 교합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부부의 정의는 오직 한 사람의 남자와 한 사람의 여자 밖에는 없습니다. 남자와 남자가 결혼하는 것도 안 되고, 여자가 여자와 결혼하는 것도 안 됩니다. 왜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셨을까요? 성적인 타락입니다. 동성애가 만연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일곱 족속을 정복하고 살려두지 말고 죽이라고 명령하셨습니까? 그들이 왜곡된 성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레위기 20장 23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레 20:23) 너희는 내가 너희 앞에서 쫓아내는 족속의 풍속을 좇지 말라 그들이 이 모든 일을 행하므로 내가 그들을 가증히 여기노라” 여기서 기록된 가나안 족속의 풍속은 무엇입니까? 근친상간, 동성애, 간통, 혼전 성관계 등등 성적인 타락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세상적인 문화를 향하여 가증한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이러한 것을 결단코 좇아가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인간의 개인적이고 자유로운 욕망을 너무 지나치게 억제한다고 항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간음하지 말라는 7 계명을 주신 목적은 인간이 성적 욕망에 사로 잡혀 살아갈수록 참 자유를 잃어버리고, 삶이 망가져 버리고, 더 그것에 매여 살아가게 되는 것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시기 위해서 이런 말씀을 주신 것이죠. 즉 간음하지 않는 삶이 오히려 우리에게 참 자유와 행복과 만족을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7계명 준수에 대한 기준을 분명히 제시해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 27-32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마 5:27)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마 5: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마 5:29)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마 5:30)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마 5:31)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마 5:3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다시 2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육신의 간음 문제만이 아니라 마음의 간음까지 이야기 하셨습니다. 마음에 음욕을 품는다는 것은, 어떤 대상을 향한 욕망에 사로잡힌 마음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다윗이 어느 날 밤 왕궁의 옥상을 거닐다가 한 여인이 목욕하는 장면을 지켜보는 모습이 나옵니다. 음욕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습니까?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무엇을 보고 사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보는 것이 곧 우리의 영혼을 지배합니다. 이 날 다윗의 눈으로부터 시작된 죄가 다윗 왕가를 끝없이 추락시켜 버렸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충신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와 간음을 저지르는 인생에 지울 수 없는 큰 오점을 남겼습니다. 29절 말씀을 보니까 우리 눈이 자꾸만 보지 말아야 되는 것을 보면, 눈을 빼어 버리라고 했어요. 심지어 30절에는 오른손이 범죄하면 그것도 찍어버리라고 했어요.

실제로 교회사 속에서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 지킨 사람들이 있었어요. 자신의 눈을 뽑아버린 사람도 있었고요. 교부 중에 오리겐이란 사람은 거세를 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사실 눈 뽑으면 음욕이 사라질까요? 손 자르면 죄 안 지을까요? 도박에 빠져 손 자른 사람이, 손목에다가 의수 붙여서 화투 처러 또 가더라고요. 죄는 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죠. 따라서 오늘 이 말씀은 문자적으로 해석 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주신 이유는 진짜 말 그대로 눈 뽑고 손 자르라는 것이 아니에요. 그러나 정말 눈을 빼어버리고 손을 잘라버리겠다 할 정도로 강력한 결단이 없으면 또 다시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연약함을 드러내고 계신 것이죠. 간음하지 말라는 명령은 단회적인 명령이 아닙니다. 즉 오늘 하루만 잘 지키면 되는 계명이 아닙니다. 평생에 걸쳐서 살아 숨쉬는 동안에 지켜야 할 계명입니다. 복싱으로 따지면 1라운드 잘 버텼다고 끝나는게 아니에요. 2라운드가 또 있습니다. 3라운드도 있어요. 축구 골키퍼가 전반전에 골 막았다고 안심하고 앉아 있으면 후반전에 역전패 당하게 됩니다. 오늘 이 말씀은 지속적으로 지켜가야 할 훈련이 필요합니다.

평소에 간음에 대한 훈련이 안되어 있으면, 유혹이 찾아오는 그 날 속수무책으로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유혹의 요소가 있으면 철저한 태도로 방어해야 합니다. 그럼 어떤 훈련을 해야합니까? 음행은 총이나 주먹으로 싸워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음행에 대해서 어떻게 대하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고린도전서 6장 18절 말씀 다시 보세요. 음행을 피하라…” 음행은 우리가 맞서서 싸우는 대상이 아닙니다. 음행은 피해야 할 대상입니다. 음행의 자리에서 참아봐야지. 참아봐야지 하고 인내해야 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넘어지게 되어 있어요. 왜요? 음행은 인내의 대상이 아니에요. 음행은 뭐해야 해요? 피해야 합니다. 나를 자꾸만 유혹하는 것들로부터 달아나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6장 18절에 사용된 ‘피하라’는 단어가 상대방으로부터 최대한 빨리 달아나라는 뜻이에요. 소극적으로 가만히 앉아서 유혹을 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유혹으로부터 도망가야 합니다. 창세기의 요셉을 기억하십시오. 저는 유혹을 어떻게 이겼습니까? 주인의 아내 보디발로부터 피했어요. 그 음녀의 손으로부터 멀리 달아났습니다. 음행은 맞서 싸우는 대상이 아니라 피해야 할 대상입니다. 성적 유혹은 유혹 중에서도 가장 위험하고 강렬합니다. 유혹에 한 순간 넘어가 버리면, 그 대가는 크고 혹독합니다. 짧은 한 순간의 실패가 긴 고통을 가져다 줍니다. 뒤늦은 후회는 아무 소용이 없어요. 그래서 사전방지 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목사님, 저는 그런 사람 아닙니다. 저는 그런 거에 유혹 받지 않습니다. 저 같은 나이에 그런 일 없습니다.” 아닙니다. 스스로 속는 것입니다. 유혹의 자리에 있지 마십시오. 피하십시오.

그러나 피하는 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평상시에 우리의 두 눈이 하나님의 은혜를 향해 있어야 합니다. 가능한 유혹의 자리가 아니라, 은혜의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예배 드리는 자리에 있는 사람 하고 친구들하고 어울리는 술자리에 있는 사람 중 어느 사람이 더 간음죄를 쉽게 짓겠습니까? 유혹의 자리를 피하고 은혜의 자리를 사모해야 합니다. 유비무환입니다. 평상시 영적인 충만함으로 우리의 마음을 채워 놓아야 유혹이 와도 이길 수 있습니다. 오늘 마지막으로 시편 119편 11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시 119:11)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유혹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평상시에 우리의 마음을 말씀으로 채워 놓아야 합니다. 기도에 깨어있는 사람, 말씀으로 채워져 있는 사람은 유혹에 쉽게 넘어가지 않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간음죄는 내 자신의 영혼을 죽입니다, 관계를 깨뜨립니다. 가정과 내가 속한 신앙의 공동체를 무너뜨립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중립지대, 안전지대에서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유혹은 찾아옵니다. 이 죄에 한 번 빠지면 그 대가는 혹독합니다. 쾌락은 짧지만 그 고통은 깁니다. 나 한 사람의 불행으로 끝나지 않고, 많은 이들의 불행으로 이어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죄악이 강물처럼 만연한 이 시대에, 마음 놓고 소극적으로 있지 마시고, 말씀으로 우리의 영혼을 채우시고, 기도로 깨어 있으십시오. “간음하지 말지니라”는 주님의 계명을 기억하셔서 거룩함과 순결함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