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의 진영 총군대장관 아브넬은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리더십으로는 전쟁에 승산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아브넬은 사울의 나라를 다윗에게 넘기기로 결심합니다. 그는 이 일을 위하여 각 지파 장로들을 불러 승낙을 받게 됩니다. 우리는 이 장면에서 놀라운 사실을 하나 알게 됩니다. 17절 말씀을 보니 이미 이스라엘 장로들은 이전부터 다윗을 그들의 임금으로 세우기를 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넬이 가로막고 있었던 것입니다. “(삼하 3:17, 개정) 아브넬이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가 여러 번 다윗을 너희의 임금으로 세우기를 구하였으니 (삼하 3:18, 개정) 이제 그대로 하라 여호와께서 이미 다윗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 종 다윗의 손으로 내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블레셋 사람의 손과 모든 대적의 손에서 벗어나게 하리라 하셨음이니라 하고” 아브넬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기름부으시고 그를 이스라엘 왕으로 택하셨음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의 임금 됨을 막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사울의 나라를 넘겨주겠다고 이미 오래전에 말씀하셨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 사실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대장관 아브넬은 마치 자신이 왕인 것처럼, 자신이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는 권력자인처럼 교만하게 행동했습니다. 교만한 아브넬은 후에 명예롭지 못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만일 우리가 아브넬처럼 하나님의 뜻을 알고도 그 길을 가로 막는다면, 우리의 삶이 어찌 되겠습니까? 아브넬처럼 좋지 못한 결과를 맛보게 될 것입다. 빠른 속도로 달리는 덤프트럭을 막겠다고 그 앞에 자기 몸을 던지는 자는 매우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어떻게 사람이 덤프트럭을 막겠습니까? 하물며 전능하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막아보겠다고, 그 앞을 가로 막는 사람은 얼마나 더 어리석은 사람이겠습니까? 사람은 결코 하나님의 뜻을 막을 수 없습니다. 아브넬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세우셨음을 알고도, 그 뜻을 가로 막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뜻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가로 막은 아브넬의 삶이 막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가로 막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 길은 망하는 길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에 우리 뜻을 일치시키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거룩한 길, 순종의 길을 걸어갈 때 하나님은 우리의 앞길을 열어 주시고, 우리에게 은혜와 평강을 부어 주십니다.
아브넬이 다윗에게 나라를 돌려주겠다고 제안하자, 다윗은 아브넬의 제안을 수용했습니다. 이는 다윗이 볼 때 전쟁의 폐해를 가장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는 좋은 길이었습니다. 전쟁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손자병법을 보면 [지피지기 백전불태]란 말이 있습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로울 것이 없습니다. 이 병법서에서 최고의 전략은 무엇일까요? 백번 싸워 백번 이기는 것보다 더 좋은 전략은 바로,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최고의 지혜고 전략입니다. 다윗의 생각도 같았습니다. 아브넬이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다스리는 이스라엘 나라를 다윗에게 전쟁 없이 넘겨주겠다고 제안했을 때, 다윗은 이것을 좋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이 일에 있어서 다윗이 하나님께 여쭈어 보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다윗은 아브넬의 속마음, 의도를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또한 이 일을 진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계획인지 분별하지 못했습니다. 아브넬이 제시한 조건이 너무 좋아 보이는 나머지 다윗은 아브넬의 제안을 곧바로 수락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사실 다윗은 이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 하나님께 물어보았어야 합니다.
우리가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하나님께 물어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인생이 너무 순조롭게 진행될 때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잘 물어보지 않습니다. 그 순조로운 길을 걸어가는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고, 주님의 뜻이라고 막연히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세상이 우리에게 너무 좋은 조건을 제시하고, 인생이 너무나도 순조롭게 진행될 때, 우리 스스로 제동을 걸고 바쁜 마음을 먼저 멈추어야 합니다. 그 다음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가?”, “하나님의 뜻과 계획과 일치된 길을 걸어가고 있는가?”하고 자기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순탄한 것이 항상 인생의 복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원수 사탄이 순탄함 뒤에 함정을 파 놓고 우리가 빠지기만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힘들고 어려운 날에도 기도하지만, 모든 것이 순탄하고 평화로울 때도 더욱 깨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 넘기는 상황을 보십시오. 매우 순탄합니다. 대제사장들은 예수님을 잡으라고 병력도 붙여주었습니다. 게다가 상금으로 은 30냥이란 큰 돈도 제시했습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께서 머물고 계실 것이라 예상했던 지점에 한 밤 중에 예수님이 머물고 계셨습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넘기는 상황은 얼마나 순탄합니까? 그러나 가룟 유다가 택한 길이 어찌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일치한 축복된 삶이겠습니까? 순탄한 것이 항상 인생의 복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힘들 때 기도하고, 순탄할 때 더욱 깨어 기도하자!” 이 말을 마음에 간직하시길 바랍니다.
아브넬은 다윗에게 나라의 통치권을 이임하겠다는 계약을 끝내고 별 탈 없이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이 소식을 다윗의 진영 군대장관을 맡은 요압이 듣게 됩니다. 그는 다윗에게 매우 서운했습니다. 아브넬이 누구입니까? 적장이자, 얼마전 자신의 동생 아사헬을 찔러 죽인 원수입니다. 아브넬이 자기 동생을 죽였다는 사실을 알고도 다윗이 그를 순순히 보내줄 수 있다는 사실에 요압은 화를 냈습니다. 그는 다윗에게 찾아가 강하게 항의하고 돌아섰습니다. 그리고 전쟁에서 군대장관이 해서는 안되는 죄악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그는 사적인 앙심을 해결하지 못하여, 이미 다윗 왕과 평화협정을 체결한 아브넬은 몰래 죽여버렸습니다. 요압은 군대장관으로서 적장 아브넬을 죽인 것이 아니라, 사사로운 원한 때문에 다윗이 세운 조약을 깨트려 버렸습니다. 이 일로 인해 다윗이 생각했던 최고의 계략 [싸우지 않고 이기는 방법]이 한 순간에 무너지게 됩니다. 요압의 아브넬을 죽인 결정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이스라엘 병사들이 죽어야 했는지 모릅니다. 다윗에게도 상당히 큰 피해를 입히게 되었습니다. 사사로운 원한과 분노 때문에 아브넬을 죽인 요압의 어리석은 결정 때문에 나라는 파국으로 치닫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