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16 전신갑주를 입으라 (엡 6장 10-24절)

 

사도 바울이 본문에서 악한 마귀들과의 싸움을 하기 위하여 “강하여지라!”하고 말하고 있는 사람들은 에베소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었습니다. “(엡 6:10)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에베소 교회 성도들아, 너희는 지금 영적 전쟁 중이다! 이 사실을 잊지 말아라! 거짓 평화에 속지 말아라. 사탄에게 지지 않도록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의 강력한 군사가 되어라!” 우리가 강건해지는 비결은 첫째로 주 안에서 있는 것이고, 둘째로 주님의 능력 안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 중에도 힘이 세신 분들이 있습니다. 무거운 것도 번쩍 들고, 체력도 좋은 분들도 계십니다. 그러나 본문은 우리가 영적으로 강건해지기 위해서 사람의 힘과 세상에 속한 능력에는 하나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대신에 사도 바울은 “주의 힘의 능력 안에서 강건하여지라”고 말했습니다. 에베소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세상 지식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경험이나 세상적으로 뛰어난 재능도 아니었습니다. 에베소 교회가 필요했던 것이 바로 영적 군사로서 영적 전쟁을 수행할 힘, 바로 주님께서 주시는 힘의 능력이었습니다. 신앙생활은 체력도 학식도 인격의 고상함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합니다. 주님의 능력을 구하십시오.

         11절 말씀에 나오는 두 단어 ‘마귀’, ‘간계’에 주목해 보십시오. 이는 영적 전쟁에서 매우 중요한 진리를 보여주는 단어 입니다. 먼저 우리는 영적 전쟁의 전범이 ‘마귀’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전쟁을 하기에 앞서 군인은 자신의 적군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주적은 바로 사탄 입니다. 그리고 12절에는 우리를 대적하는 명단이 더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엡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여기서 정사는 동그라미 치시고 옆에 ‘통치자들’이라고 써 두십시오. 권세들. 이 세상 주관자들,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 이 표현들은 마귀라고 불리는 사탄의 앞잡이들 입니다. 우리의 주적이 바로 이 ‘사탄과 그의 졸개들’ 입니다. 우리가 이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지 못하는 한 우리에게 참된 평강은 없는 셈 입니다. 11절을 보시면 우리는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간계란 단어는 ‘많은 꾀’를 의미합니다. 사단은 거짓말의 전문가 입니다. 어떻게든 거짓말로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꾀고 멀어지게 만들고, 사람과 사람들 사이를 꾀어 서로 미워하고 다투고 싸우게 만듭니다. 그것이 사단의 전략 입니다.

에베소서 6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보면 총 여섯 가지가 등장 합니다. 각각 허리띠, 흉배, 신발, 방패, 투구, 칼 입니다. 이 중에 적을 공격하기 위해 쓰이는 무기는 오직 ‘성령의 검’ 하나 밖에는 없습니다. 나머지 허리띠, 흉배, 신발, 방패, 투구 이 다섯 가지는 적을 공격하기 위한 무기가 아니라, 자신을 지키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전투를 위한 여섯 가지의 무장 중, 공격용 성령의 검 한 가지를 제외하고는 다 방어용 장비 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줍니까? 마귀에서 공격하는 것보다 자신을 지키는 일이 더 어렵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마귀를 공격하는 것은 무기 하나면 됩니다. 그러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다섯 개의 군장이 필요합니다. 영적 전쟁에서 마귀를 상대로 승리하는 방법은 오직 하나 성령의 검으로 찌르면 됩니다. 그러나 마귀에게 패배하는 길은 다양합니다. 그래서 영적 전쟁에서 중요한 것은 공격도 중요합니다만, 공격 후에 쓰러지지 않도록 방어를 잘 해야합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하나씩 살펴봅시다. 14절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이 바로 ‘진리의 허리띠’ 입니다. 지금도 군대가면 허리띠를 줍니다. 허리띠는 왜 필요하죠? 사람들의 복장을 묶어 줌으로써 병사가 지체하지 않고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도와 줍니다. 진리의 허리띠가 군인의 복장을 묶어 주어, 그로 하여금 싸움에서 날렵하게 만들어 준다면, 의의 흉배는 적에게 공격당하면 치명적인 부위인 가슴을 보호해주는 호신용 장비 입니다. 성경 번역본에 따라서 의의 흉배, 혹은 의의 호심경이라고 되어 있는데, 다 같은 말 입니다. 심장을 보호해 주는 갑옷 입니다. 이 흉배는 당시 1세기 로마 군인들이 가슴에 차고 다니던 갑옷이었습니다. 적들의 칼과 창 그리고 화살로부터 가슴과 심장을 보호해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15절 말씀을 보십시오. “(엡 6:15)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신발이란 파트에 집중하기 전에 먼저 복음이란 파트를 주목해 봅시다. 바울은 우리가 신어야 하는 신발이 그냥 복음이 아니라, 평안의 복음 혹은 평강의 복음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라고 말했을 때, 그는 복음 전파를 위해 부름 받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반역 세력을 제압하고, 영토를 확장하기 위하여 천리길을 행군하는 로마 병사들처럼,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를 위해서 행진 하는 영적 군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전신갑주로 무장하며 복음으로 신발을 신어야 하는 이유는, 이 전쟁이 가만히 앉아서 제자리에서 하는 전쟁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온 천하에 다니는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나온 장비들은 그 이름만 나온 것과는 다르게 믿음의 방패는 부연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진리의 허리띠, 의의 흉배, 복음의 신발 이렇게 나와 있는 것과는 다르게 16절을 보십시오. “(엡 6: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우리는 사도 바울이 ‘믿음의 방패’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힌트는 16절에 그가 사용한 “모든 것 위에…”라는 표현 입니다. 진리의 허리띠, 의의 흉배, 복음의 신발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믿음의 방패’이 없이 전쟁에서 완전한 유익을 줄 수 없습니다. 사실 그러합니다. 군인이 아무리 허리띠를 단단히 매고, 가슴에 커다란 흉배를 붙이고, 단단한 군화를 신었다 한들 방패의 도움이 없다면 그가 어찌 완전한 무장을 한 군인이라고 말하겠습니까? 사탄이 쏘는 불화살이 얼마나 무서운지요… 우리 중 이 화살에 맞아보지 않은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의심과 유혹의 불화살은 한 발이 아니라 하늘에서 비 오듯이 끊임없이 날라 옵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이런 마음의 의심과 육체의 유혹을 막아내야 합니다.

군인의 신체 중 적의 공격으로부터 가장 치명적인 부위가 바로 머리 부분 입니다. 팔이나 다리는 부러지거나 칼에 찔리거나 총을 맞아도 치료하면 어느 정도 나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머리는 어떻습니까? 머리는 적에게 한 번 공격 당하면 그냥 그 자리에서 죽게 됩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구원의 투구를 쓰라고 말한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머리는 모든 생각과 사고가 시작되는 장소 입니다. 구원이 투구를 쓰고 머리를 보호하라는 것은 사탄의 공격으로부터 우리의 생각을 잘 보호하라는 것이죠. 실제로 우리가 하는 생각 가운데는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는 생각이 있는가 하면, 영적 삶에 해가 될 수 있는 생각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악한 생각들에 사로 잡히는 어리석음에 떨어져서는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이 이 장비를 ‘구원의 투구’라고 부른 점을 기억하십시오. 사탄은 할 수 있는 대로 우리의 구원을 흔들어 놓으려 합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을 의심하도록 만듭니다. 전에는 분명 구원 받은 확신이 있었는데, 지금은 구원을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천국에 갈 자신이 없어요. 매우 불안해하도록 만듭니다. 특별히 우리가 범죄했을 때, 사탄은 우리의 생각과 사고에 침투하여 옵니다. “너가 지은 죄는 너무 크다. 이 죄는 용서 받지 못한다. 하나님이 다른 건 몰라도 이 죄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너는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 사탄은 우리가 이런 절망적인 생각으로 빠지게 만듭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는 것으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진리 안에서 우리 마음이 머물도록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들이 우리에게서 떠나지 않도록 하는 것, 이것이 바로 구원의 투구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을 공경하는 사탄의 속임수로부터 보호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구원의 투구를 쓰고 있어야 합니다.

여섯 번째 전투 장비가 바로 성령의 검 입니다. 이 성령의 검은 모든 전신갑주 중 유일한 공격용 무기 입니다. 허리에 띠를 두르고, 가슴에 호심경을 두르고, 군화를 신고, 불화살을 막을 방패를 들고, 적의 치명적인 공격을 막아 줄 투구를 쓰고 있음으로서 군의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장비들은 사탄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는 있지만, 적을 공격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적인 전쟁터로 부르신 소원은 우리가 이 싸움에서 안 죽고 살아 남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군사로 부르신 목적은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무찌르고 싸워 이기도록 부르셨습니다. 이 영적 싸움 가운데 악한 적들의 가슴에 칼을 꽂아 승리하여 우리가 가는 방방곳곳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깃발이 나부끼는 것을 주님은 원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선한 싸움을 다 마치고 달려갈 길을 다 끝낸 이후에 하나님 앞에서 개선 행진곡이 울려줄 수 있기를 하나님은 소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맨 이유는 무엇입니까? 단지 살아남기 위함이 아닙니다. 적군의 공격으로부터 버티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싸움에 군사로 부르신 이유는 ‘생존’이 목적이 아니라, 악한 무리들의 가슴에 칼을 꽂아 더 이상 하나님의 영광을 방해하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승리’를 목적으로 하고 계신 것입니다. 실로 이 영적 전쟁에 참여하는 우리들의 소망은 싸움에서 견디는 것이 아니라, 승리하는 것입니다. 이 긴박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느냐 못하느냐는 우리가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고 있는가, 그렇지 못하는가에 따라 판가름 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이 말씀은 누구의 말씀 입니까? “하나님의 말씀” 입니다. 악한 영들과 싸워 이길 수 있는 무기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 밖에는 없습니다. 칼이 날카롭고 예리 할수록 좋습니다. 그처럼 우리가 붙들고 있는 말씀이 순전한 하나님의 말씀일수록 그 칼 끝은 예리하고 튼튼하여 적을 무찌를 수 있습니다. 마귀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려 사는 그리스도인, 그것은 마귀가 가장 두려워하는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