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11 [야고보서- 삶으로 나타나는 믿음] 시리즈 (1) 어려울 때 나타나는 믿음 (야고보서 1장 1-12절)

 

 서론. 우크라이나의 전쟁 영웅이 된 대통령

오늘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발발한지 200일 되는 날입니다. 지난 2022년 2월 24일에 시작된 이 전쟁으로 현재까지 우크라이나 민간인 약 8,100명이 부상했고 약 5,700명이 죽었습니다. 전쟁 초반에만 해도 군사력이 막강한 러시아가 금세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를 점령할 것으로 예상했었습니다. 그러나 충돌 가운데 우크라이나가 보여준 대국민적 단합력과 끈질긴 군사적 저항으로 우크라이나 군대는 불리했던 전세를 조금씩 변화시켜 갔습니다. 이 중심에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은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의 리더십이 있습니다. 사실 비록 그가 한 나라의 대통령이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까지 세계에는 [젤렌스키]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습니다.

올해 마흔 네 살이 되는 젤렌스키 대통령은 원래 코미디언 겸 배우 출신으로 정치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입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전 우크라이나는 사실 그 동안 대통령들이 매우 부패하고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크게 떨어져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지난 2015년, 우크라이나의 한 방송국은 청렴하고 공정한 대통령을 다룬 우크라이나의 정치 풍자 드라마 “국민의 일꾼’(Servant of the people)을 방영했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우크라이나 대통령 역할로 출연한 사람이 바로 [볼라디미르 젤렌스키]입니다. 이 드라마의 인기가 얼마나 컸는지 회당 최다 시청자 수가 2천 만명에 달했고, 에스토이나,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등 주변의 여러 구소련 국가들에서도 방영될 정도였습니다. 현실 속에서 부패한 대통령에게 염증을 느끼던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TV 속 청렴하고 인간미 가득한 대통령에게 열광했습니다. 이러한 대중의 인기에 힘입어 이 드라마에서 대통령 역할을 했던 배우였던 젤렌스키는 드라마 제목과 같은 “국민의 일꾼”이란 정당을 창당하고 지난 2019년도에 대선에 출마하여 우크라이나 제6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정말 영화에서나 나올 것 같은 일이 실제로 벌어진 것이죠.

올해 2월 전쟁이 발발한 후 러시아군의 첫번째 표적이 바로 우크라이나 대통령 젤렌스키였습니다. 뛰어난 국제적 살인조직을 거느린 푸틴이 그의 죽음을 원하기에 전쟁에서 젤렌스키가 살아남을 가능성이 낮다는 평가가 우세했습니다. 분쟁 초기 3주 동안 그를 암살하려는 러시아의 시도가 최소 12번이나 있었습니다. 미국은 “러시아가 당신을 최우선 제거 대상으로 결정했다”고 경고하며 그의 해외 도피를 돕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전쟁의 위기에서 나라를 떠나 자신과 가족 모두를 구원할 기회가 주어졌으나, 젤렌스키는 미국의 제안을 거절하였습니다. 그는 단념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을 보여주었습니다. “지금 조국에서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나는 대피할 수단이 아니라 탄약이 필요하다” 이와 같은 사생결단으로 인해 우크라이나 국민은 많은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절박한 호소는 많은 것을 바꿔 놓았습니다. 전 세계 지도자들은 외교 전략을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한 것으로 수정했했습니다. 목숨을 걸고 조국을 지키겠다는 젤렌스키의 용기 있는 결단을 보고, 국내에 그를 반대하던 정치 세력들도 이제는 지지하며 대통령에 대한 전국민적 단합을 촉구했습니다. 구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줄곧 부패와 분열에 시달렸던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전쟁을 계기로 오히려 단결된 정체성을 갖게 되었고 그 구심점에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서 있습니다.

만일 러시아 전쟁이 2022년에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 지난 2019년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 때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 출마를 고려했을까요? 젤렌스키 본인 역시 2019년 대통령 당선 당시 3년 뒤 앞으로 자신에게 일어날 일을 알지 전혀 못했습니다. 우리 중 그 누구도 우리 앞에 어떤 시련과 고난들이 기다리고 있는 지 알지 못합니다. 중요한 사실은 soon or later 우리 삶에 반드시 예상치 못한 사건들, 어려운 인생의 도전들이 찾아온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인생의 시험은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들은 우리 삶에 시험과 고통이 찾아올 때, 남몰래 한 숨 짓고, 외로움과 두려움에 눈물 흘려야 할 때 어떠한 자세로 위기에 반응하고 계십니까? 어려운 시기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떠한 자세로 위기를 대처해야 할까요?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야고보서를 통해서 시험의 때에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먼저 말씀에 들어가기 전에 야고보서를 기록한 저자 [야고보]에 대해서 간단하게 알아봅시다.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을 낳은 이후 적어도 6명 이상의 자녀들을 더 낳았습니다. 예수님께는 남동생이 총 4명이 있었고, 여동생은 적어도 둘 이상 있었습니다. 마가복음 6장 3절을 보면 이러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함께 말씀을 읽겠습니다. “(막 6:3, 개정)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여기에 나오는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바로 ‘야고보서’를 기록한 바로 그 야고보입니다. 또한 여기 나오는 예수님의 동생 유다가 바로 ‘유다서’를 기록한 바로 그 유다입니다. 신약성경 27권 중 예수님의 친동생이 기록한 책이 2권이나 존재하는 것이죠. 어린 시절부터 예수님과 함께 한 지붕 아래서 유아시절, 청소년기를 함께 보낸 그의 형제들이 쓴 성경, 과연 어떤 내용이 기록했을 지 매우 흥미롭지 않습니까?

사실 성경의 기록을 보면 예수님의 동생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친동생들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믿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을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이후, 부활 사건을 통해 예수님의 형제들은 완전히 새사람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특별히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이 되어 초대 교회를 이끌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얼마나 미워하고 싫어했습니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으니, 예수님의 죽음 이후에도 그를 추종하는 교회를 가만 두지 않았습니다. 교회는 엄청난 핍박을 견뎌야만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인 야고보는 믿음의 시련을 당하고 있는 성도들을 격려하고 위로하고자 야고보서를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그는 믿음의 시련을 당하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세 가지 자세를 취할 것을 가르쳤습니다.

 

 

  1. 시련의 때에 믿음으로 기뻐하라

시련의 때를 지나고 있는 성도가 가져야 하는 자세는 첫째로, 믿음으로 기뻐하는 것입니다. 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약 1: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시험’이란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 살아갈 때 반드시 따르는 시련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믿음의 시련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비바람에 흔들리지 아니하고 피는 꽃이 없듯이 우리들의 마음도 어려움에 흔들리곤 합니다. 폭풍우에 젖지 아니하고 맺어지는 열매가 없듯이, 우리들도 찾아온 시험에 눈물을 흘리곤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시련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시험에 어떻게 대응할지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하늘에서 비가 오는 것은 막을 수 없지만 우산을 쓰거나, 우비를 입는 선택으로 비에 대하여 대비할 수 있는 것처럼, 시험을 당하는 일은 막을 수 없지만 시험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여전히 선택할 수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Dear brothers and sisters, when troubles come your way, consider it an opportunity for great joy.) 2절에서 말하는 “온전한 기쁨”이란, “큰 기쁨”,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을 의미합니다. 이 말씀은 듣는 이들로 하여금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듭니다. 어찌 시험을 당했는데 기뻐할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오늘 예배 후, 예수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누군가에게 주먹으로 한 데 맞고, 손바닥으로 뺨을 맞았다고 상상해 봅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어찌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아마도 우리가 현재 경험하고 있는 시험이란 드라마틱한 시험보다는 매우 일상적인 시험이 더 많을 것입니다. 가정의 경제적 상황은 어렵습니다. 통장 잔고는 비어만 갑니다. 미래는 불투명하고 내일은 불확실합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는 어렵고, 내 의지와는 정반대로 꼬여만 갑니다. 가게 일, 직장 일은 해도해도 한없이 싸여만 가고, 몸은 쉬어도 쉬어도 또 피곤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요구는 끝이 없습니다. 참 힘든 상황이고, 일상에서 겪는 시험의 모습이겠습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 기뻐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게다가 2절 말씀에는 “여러가지 시험을 당하거든”이라고 표현함으로써 이 고통이 한 번에 끝나는 사건이 아님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사용된 “당하거든”이란 말은 ‘넘어지다’, ‘에워싸이다’란 뜻을 갖고 있습니다. 느닷없이 예고도 없이 찾아온 여러 가지 시험들에 성도들이 넘어지고, 에워싸인 상태를 말합니다. 한 번 일어나고 끝나는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자꾸만 반복적으로 닥쳐오는 괴로운 시험을 당한 것입니다. 정말 이처럼 끝을 모르는 반복되는 시련 가운데서 기뻐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요? 이 가르침은 듣는 자들에게 매우 낯설고 납득하기 어려운 비상식적인 모습으로 보일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곧바로 3절에 우리가 믿음의 시험을 당할 때 기뻐해야 하는 이유, 기뻐할 수 있는 근거를 설명해주었습니다. “(약 1:3, 개정)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고난과 고통의 시험을 절망이 아니라 기쁨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 시험들이 우리에게 유익을 가져주기 때문입니다. 어떤 유익입니까? 시험은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고 성숙시켜 우리 속에서 인내의 성품을 만들어 갑니다.

Gym에서 Weight 운동하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을 떠올려 봅시다. 무거운 파운드의 무게를 올려 들었다가 내려 놓기를 반복하는 운동을 하는 모습을 자세히 보면 힘이 들어서 얼굴에 인상이 찌푸려져 있습니다. 땀나죠, 힘들죠, 괴롭죠, 그런데도 왜 그렇게 돈을 주고 시간을 투자해서 Gym에 가서 운동을 하는 것일까요? 그 운동이 자신에게 유익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방을 분해하고, 근육을 키워주고, 혈액순환을 돕고, 면역력을 높이고, 생활의 활력을 더해주는 등 운동의 효과는 이루다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운동할 때는 힘들지만, 운동을 포기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하는 자에게 찾아오는 유익을 알기에, 힘들어도 즐기면서 운동할 수 있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시험의 때에 아무나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내 삶 속에서 일어나는 이 고통스럽고 괴로운 모든 상황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여전히 그의 선하신 계획을 가지고 다스리고 계시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만이 기뻐할 수 있습니다.

해안에서 고기를 잡고 있던 젊은 어부가 있었습니다. 그는 고기를 잡는데 해초가 많아서 방해가 된다고 투덜거렸습니다. 그러자 이 말을 곁에서 듣고 있던 한 평생 어부로 살아온 그의 아버지가 아들을 보고 이야기합니다. 아들아, 그렇지만 해초가 없으면 물 속 작은 생물들이 사라진단다. 그리고 작은 생물들이 없으면 물고기도 있을 수 없단다.” 우리 삶 속에 찾아오는 여러가지 시험들은 해초 같습니다. 없으면 편하고 좋을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 이 시험들이야 말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도록 겸손하게 만들어 줍니다. 시험들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도록 만들어 줍니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기 위해서는 번데기가 되는 과정을 통과해야 하듯이, 성도가 온전한 믿음과 성품을 갖추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시험을 반드시 통과해야 합니다. 이러한 시험의 순기능을 인식하고, 하나님께서 시험 가운데도 모든 상황을 다스리고 계시며, 나의 유익을 위해서 시험을 사용하신다는 믿음이 있을 때 비로서 우리는 시험의 때에도 믿음으로 기뻐할 수 있습니다.

 

  1. 시련의 때를 믿음으로 인내하라

시련의 때를 지나고 있는 성도가 가져야 하는 두 번째 자세는 ‘믿음으로 인내하는 것’입니다. 3절에 사용된 ‘시련’이란 단어는 금이나 은을 가공하기 위해서 뜨거운 불 속에 놓고 녹여서 순도를 테스트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즉 “믿음의 시련”이란 우리의 믿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입증하고 시험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진위 여부를 알아보는 테스트가 우리 삶 속에서 한 번에 그치지 아니하고 여러 번 되풀이되는 것이 “시험”입니다. 야고보는 우리가 이 시험들을 통과할수록 우리 안에 “인내”가 열매 맺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인내란 “어떤 상황 아래 흔들림 없이 머물러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큰 시련과 모진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경건을 충실하게 지켜나가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여러가지 시험을 당할 때, 괴로움이 우리 삶을 짓누를 때, 비록 그것이 힘겨울지라도 결국 그것을 믿음으로 잘 인내하게 되면 그 과정이 우리에게 커다란 유익을 가져주는 것입니다. 뜨거운 불 속에 들어간 금과 은 안에 있던 불순물이 제거되고 순도가 높아질수록 금과 은의 가치가 올라갑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혼이 여러가지 시험을 인내함으로서 우리의 믿음은 확고부동해지고, 변함없는 순결한 믿음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이러한 결과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 그리고 주의 보호하심과 공급하심 등 차고 넘치는 복을 받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고난의 시험을 인내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참된 영적 기쁨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시험을 당할 때 기뻐하라는 이 가르침은 야고보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도 로마서에서 강조하고 있는 바입니다. 로마서 5장 3-4절 말씀을 [쉬운성경] 번역으로 읽어보겠습니다. “(롬 5:3, 쉬운성경) 이뿐만 아니라 우리는 환난을 당하더라도 즐거워합니다. 그것은 환난이 인내를 낳고, (롬 5:4, 쉬운성경) 또 인내는 연단된 인품을 낳고, 연단된 인품은 소망을 낳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시련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반응은 그 시련들이 성숙을 촉진할 수 있음을 기뻐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시험은 피할 수 없습니다. 다만 시험에 임하는 태도가 세상 사람들과 다를 뿐입니다. 시험을 만났을 때 우리는 어떻게 우리 삶을 해석하고 시험에 임해야 하겠습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본향인 저 천국을 향해 광야 같은 이 세상 길을 순례하는 자들입니다. 시험을 인내함으로써 우리는 점점 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해지는 금과 같은 성도들입니다. “(약 1:4, 개정)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많은 경우 우리는 시험을 빨리 통과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결과에만 치중합니다. 물론 시험 자체를 해결하고 문제가 되는 상황을 없애는 일도 중요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시험 과정을 통해서 우리들을 성숙하게 변화시키는 것을 원하고 계십니다. 그것이 바로 시험의 순기능이자 숨겨진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12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약 1:12, 개정)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 때문이라” 하나님께서는 시련을 인내하는 자가 복이 있다 말씀하셨습니다. 시험을 이긴 자에게 주께서 생명의 면류관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따라서 믿음의 시련이 찾아왔을 때, 이상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싫어하거나 미워해서 허락하신 시험이 아닙니다. 아브라함도, 야곱도, 요셉도, 모세도, 여호수아도, 다윗도 다 시험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 모두 믿음으로 시험을 인내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우리 삶에 찾아온 믿음의 시련들을 끝까지 인내해 나가야 합니다.

 

  1. 시련의 때에 믿음으로 지혜를 구하라

시련의 때를 통과하며 가져야 하는 세번째 자세는 믿음으로 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약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앞서 언급한대로 시험의 때에 믿음으로 기쁨하고, 인내할 수 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서 부족함이 없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시험을 이기는 지혜가 자신에게 부족하거나 없다고 느껴지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지혜”란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지식”을 의미합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지혜는 인간의 사색, 학습, 경험을 통해 얻어지는 문제 해결 능력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계시와 말씀으로부터 오는 영적 지혜를 의미합니다. 지혜는 그리스도인들이 시험을 이길 뿐 아니라, 시험을 통과하여 영적 유익을 얻기 이해 반드시 필요합니다.

시험을 통과하며 하나님께 지혜를 구할 때는 한 가지 주의 사항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 시험을 능히 해쳐 나갈 수 있는 충분한 지혜를 주실 것이란 분명한 믿음을 가지고 구해야 합니다. 그러한 믿음이 없으면 아무것도 주님으로부터 받지 못합니다. 6-8절 말씀입니다. “(약 1:6, 개정)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약 1:7, 개정)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약 1:8, 개정)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6절 상반절 말씀만 다시 저를 한 번 따라서 읽어봅시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여기 사용된 ‘의심하다’라는 말은 ‘저울질하다’는 말입니다. ‘이 힘든 상황에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정말 도움이 되려나?’, ‘기도한다고 이 문제가 크게 달라지려나?’ 이렇게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저울질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바람에 따라 밀물 되었다가 썰물 되는 바다 물결 같아서, 계속 믿음과 의심을 왔다 갔다 합니다. 7절 말씀처럼 이런 사람은 “주님께 무엇을 받을까?”하고 기대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그는 두 마음을 품어 자기가 하는 일에 방향을 못 잡고 헤매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구할 때는 믿음으로 구해야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주께서 반드시 도와 주실 줄 믿습니다!”, “여호와여, 힘없는 사람들이 강한 사람들에 대항할 때 도와줄 분은 주밖에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우리가 주를 의지하고 주의 이름으로 나왔습니다. 여호와여, 주께서는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십시오.”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지혜를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것도 조금 주시는 것이 아니라 “구하는 자마다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사용된 ‘후히’라는 말은 ‘성실하게’, ‘전심을 다해’라는 뜻이 있습니다.

한국은 어제가 명절 추석이었죠? 어린 시절 추석에 시골에 있는 할머니 댁에 내려가면 언제나 문자 그대로 상이 휠 듯이 음식이 풍성했습니다. 오래간만에 고향을 찾은 자녀들 손주들 먹이시려고 할머니께서는 반찬을 더 놓을 곳이 없을 정도로 음식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양지 가득 들어간 소고기무국, 불고기, 갈비, 가자미, 조기, 콩나물 시금치 등 갖가지 나물반찬, 다양한 종류의 전, 꿀떡, 절편, 배추김치, 총각김치, 물김치 등 명절을 맞이하여 찾은 20명이 넘는 대가족을 모두 먹이기 위해서 준비하신 반찬 수만 봐도 할머니가 명절 요리 준비하시느라 몇 주전부터 얼마나 고생하셨을 지 지금 생각하면 참 대단 하세요.

정겹게 만난 사촌들과 이야기 나누며, “시골에 갔다 오면 최소 3kg는 찌고 온다”고 농담 반 진담 반 말 할 정도로 할머니는 자녀들, 손주들 먹이는 일에 진심이셨습니다. 저는 어린시절 동그랑땡을 너무 좋아해서 할머니께서 거실에서 신문지 깔아 놓고 전 부치실 때 할머니 옆에 앉아서 따끈따끈한 동그랑땡만 주어 먹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거 아시니, 할머니는 다른 건 몰라도 동그랑땡은 많이 만들어 주시고, 집에 돌아갈 때도 몇일은 더 먹을 정도로 싸 주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그게 손자를 향한 할머니의 사랑 표현이었습니다. 이게 바로 후하게 주신다는 표현 아닐까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면 후하게 주십니다. 아낌없이 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후하게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시험을 통과할 때 홀로 두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를 돕기를 기뻐하십니다. 시험의 때에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넘치는 지혜와 은혜를 부어 주실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시험을 통과하는 우리들을 결코 홀로 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시험 가운데도 우리를 향한 선하신 주님의 계획을 이루어 가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에게 찾아온 이 여러가지 시험들이 우리에게 유익함을 알기에 믿음으로 기뻐할 수 있고 인내할 수 있습니다. 또한 시험을 이길 지혜를 구하면 후히 주실 것입니다. 혹시 요즘 어려운 시험을 통과하고 계십니까? 기쁨으로 시험을 인내하고, 지혜를 구함으로써 시험에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