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26 하나님의 뜻은 거룩함이라 (살전 4장 1-12절)

바울은 편지를 마무리하며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신앙 교훈을 가르칩니다. 이미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사도 바울을 통해서 어떻게 행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인지 배웠습니다. 그리고 지금 배운 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 일에 더욱 많이 힘쓰라”고 권면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명령한 것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살아가야 하는 삶의 모습이 무엇인지

3절부터 그 내용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성도들에게 명령하신 삶의 핵심은 “거룩한 삶”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버려야 하는 것이 첫째로 음란입니다. 데살로니가 도시는 그리스-로마 제국의 문화의 영향으로 인해 매우 문란하고 타락한 성인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삶에 끊임없이 음란의 유혹을 불러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사실 성적인 문란함은 교인들이 회심하기 전에는 당연 시 되고, 익숙한 삶의 방식이었습니다. 당시 문란한 성문화는 일상과 교회 속으로 파고 들어왔고, 그들의 머리와 몸이 기억하는 생생한 경험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제 거듭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음란을 버리라!”고 말했습니다. 특별히 여기서 말하는 음란은 ‘간음’을 의미합니다. 결혼한 배우자 외에 다른 남녀와 갖는 성관계를 의미합니다. 바울은 이러한 문화를 따라가지 말라고 경계했습니다. 대신 4절 말씀처럼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를 대할 줄을 알아라”고 가르쳤습니다. 5절에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따르지 말라”고 강력하게 권고했습니다. 자기 몸을 스스로 제어하여 색욕을 따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육체의 욕망에 이끌려 사는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의 목적에 이끌려 사는 삶과 정면으로 대치합니다. 성도는 거룩한 삶을 위해서 부르심을 받았기에, 육체의 욕망은 끊어버리고 벗어버려야 합니다. 바울은 육체의 정욕을 따라 몸을 사용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6절 말씀처럼 음란한 일을 행하는 자 곧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형제를 속이고 그에게 해를 입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일들은 이미 경고대로 반드시 하나님께서 벌하십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부르신 목적이 그들을 더러움에 빠져 살게 하시려는 것이 아니며, 오직 거룩함에 이르게 하시려는 것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따라서 이 경고를 저버리고 음란을 행하며 살아가는 자는 사람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는 하나님을 버리는 것이 됩니다.

9절을 봅시다.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들 자신이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얼마나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를 이루었는지, 서로 사랑하라는 가르침에 대해서는 바울이 더 가르칠 것이 없었습니다. 10절에 나오는 마게도냐는 데살로니가 교회가 속한 지역 이름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형제 사랑이 모든 마게도냐 성도들에게까지 확장되었음을 칭찬하며 더욱 그렇게 행하라고 권면하였습니다.

11절을 봅시다. 여기 두 가지 권면이 나옵니다. “조용히 자기 일을 하라”,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입니다. 당시 데살로니가 교회에는 잘못된 종말론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곧 오시니까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이단에서 볼 수 있는 시한부 종말론입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께서 올해 2022년도 12월 말에 오시니까 직장에 사표 내고, 집 팔고, 땅 팔자.”이런 잘못된 주장처럼, 데살로니가 교회 안에서는 비성경적인 종말론적 관점을 가지고 일하지 않고 게으르게 사는 것이 믿음의 증표처럼 여겨지는 잘못된 일들이 비일비재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에 대해서 언급하며 게으르게 살지 말고,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묵묵히 해 나가고, “일하기를 힘쓰라”고 권면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교회 밖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거룩한 삶입니다.

12절 말씀처럼 이렇게 열심히 주어진 일에 묵묵히 최선을 다하며 사는 것은 외인들이 볼 때 단정히 행하는 것이며, 교인들이 다른 이들에게 신세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길이었습니다. 바울은 교회 내 성도들이 잘못된 종말론 때문에 궁핍하게 되는 것을 경고하며, 오히려 그들이 성실하게 살아감으로써 사회와 세상에서 모범이 되는 삶을 살아갈 것을 권면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