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24 유모처럼 아비처럼 (살전 2장1-16절)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은 여러 지역들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 과정 가운데 그와 그의 동역자들은 많은 박해와 고난 모욕을 당했습니다. 2절을 보시면 바울이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했다 했습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로 그는 로마 병사들에게 붙잡혔습니다. 사람들은 바울의 옷을 찢어 버렸고, 그를 매로 때렸습니다. 바울은 발에 쇠고랑을 차고 깊숙한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바울과 그의 동료들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들은 빌립보에서 나왔고, 데살로니가에 와서도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1절을 보면 바울은 그와 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데살로니가에 찾아가 복음을 전한 것이 헛되지 않은 일이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데살로니가에 전한 복음이 열매를 맺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어떤 속임수로 복음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4절 말씀처럼 오직 하나님께서 그에게 위탁하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마음의 동기는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5절의 기록처럼 사람을 얻기 위해서 아첨하는 말을 한 적도 없고, 복음을 통하여 무언가 재물이나 명예를 얻기 위한 탐심의 탈을 쓴 적도 없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한 열심 하나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도입니다. 그에게는 남들에게는 주어지지 않은 큰 영적인 권위가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대할 때 권위적으로 또는 강압적으로 그들을 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유모가 어린 아기를 다루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또한 부드럽게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양육했습니다. 7절을 봅시다. “(살전 2:7, 개정)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 도리어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바울은 자신과 성도들의 관계를 유모와 자녀의 관계로 비유합니다. 어머니가 어린 자녀들을 어떻게 다룹니까? 아기들은 아직 어리고 모르니까 어르고, 달래고, 인내하며 가르치지 않습니까? 바울이 자신이 가진 사도의 권위를 내세우지 아니하고, 유모처럼 온유한 자세로 성도들을 섬긴 이유는 그가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8절을 보십시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사모하였는지 그들에게 하나님의 복음 뿐 아니라, 자신의 목숨까지도 기쁨으로 줄 수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세상에 그 어느 누가 남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쁨으로 내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바울은 그 자신이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목숨을 걸고 사랑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진심으로 데살로니가 교회 모든 성도들이 구원에 이르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바울은 이를 위하여 수고와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당시 빌립보 교회가 사도 바울의 선교를 금전적으로 돕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빌립보 교회는 신생 교회이며, 작은 규모였기에 바울 일행이 오롯이 사역에 전념할 수 있는 만큼 충분한 지원은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그가 전하는 복음을 전하는 일이 막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 데살로니가 교회 그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 밤낮으로 일했습니다. 9절에 ‘폐’라는 단어는 경제적 부담과 짐을 의미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지금 믿음이 어리고 약하기 때문에 만일 바울이 이들에게 자신의 선교사역을 금전적으로 도우라고 부탁한다면 시험에 들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에 바울은 성도들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하고, 그들에게 복음이 들어가는 역사가 막히지 않을 수 있도록 자신이 직접 육체적 수고를 통해서 자급자족의 삶을 살았습니다. 9절을 봅시다. “(살전 2:9, 개정)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 여기에서 바울은 자신이 밤낮으로 일하면서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당시 로마 군사들이 사용하던 텐트를 제작하는 일을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처럼 기계가 있던 시절이 아니라 다 손으로 작업해야 했기에 피곤한 육체 노동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선교하는 일에 드는 비용을 자신이 직접 충당하기 위해서 밤낮으로 일했습니다.

이와 동시에 바울은 성도들에게 모범적인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10절을 봅시다. “(살전 2:10, 개정)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하였는지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 바울은 거룩하게 살았고, 옳고 흠이 없이 행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그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 뿐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바울이 거룩한 삶의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쏟았는지 아는 증인이라고 말했습니다.

앞서 바울은 자신이 아직 신앙이 어린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유모처럼 대했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바울은 어긋난 길로 가는 자녀를 권면하고 위로하는 아버지처럼 성도들을 대했다고 말했습니다. 11절을 봅시다. “(살전 2:11, 개정)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 부모가 자녀를 사랑해서 나쁜 짓을 해도 오나오냐 하고 키우면 자녀는 버릇이 없고, 다른 사람 배려할 줄 모르는 이기적이고, 괴팍한 성격으로 자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래서 자녀들을 진짜 사랑하는 부모는 자녀가 나쁜 길로 가려고 하면 좋은 말로 권면하기도 하고, 그대로 말을 안 들으면 무섭게 혼내기도 합니다. 이게 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해서 그렇습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유모가 자녀들에게 하듯이 부드러운 말, 듣기 좋은 말만 한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엄한 아버지처럼 성도들이 죄악의 길로 나아갈 때면 그들을 혼내기도 하고, 꾸짖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다시 올바른 길로 돌아올 수 있도록 그들을 권면했습니다. 사실 상대방에게 쓴 소리 하는 것을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때로는 상대방과의 관계가 어색해지기도 하고, 본인도 마음이 어려워집니다. 그러나 바울이 이처럼 한 이유가 12절에 나와 있습니다. “(살전 2:12, 개정)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 나라 백성이기에 그 나라의 영광에 이르게 하실 하나님께 합당하게 살아가도록 성도들을 올바르게 가르치고 싶어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떠난 후 혹시 성도들이 핍박이나 다른 이유들 때문에 믿음을 떠난 것은 아닐지 염려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그의 편지는 감사로 가득합니다. 그 이유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3절을 봅시다. “(살전 2:13, 개정)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자신이 떠난 이후에도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며 열심으로 믿음생활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 감사했습니다. 심지어 데살로니가 교회는 고난을 받았음에도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 모진 고난과 온갖 핍박의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아니하고 복음을 전했는데,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이처럼 아름답게 주 안에서 믿음생활을 하는 모습을 본 사도 바울은 얼마나 기뻤을까요? 때로는 유모처럼 때로는 아버지처럼 성도들을 대하던 그의 모습 속에서 성도들을 사랑하는 진실한 섬김이 느껴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이 한 영혼을 얻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땀과 수고가 필요하겠습니까? 바울은 자신의 권위와 특권을 모두 내려놓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섬겼습니다. 바울처럼 우리들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우리가 가진 것들을 내려놓고 때로는 어머니처럼, 때로는 아버지처럼 사랑으로 섬기며 살아갈 수 있는 복음의 증거자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