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19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시리즈 (25) 49-52문 십계명 제 2 계명

(신 4:15, 개정) 여호와께서 호렙 산 불길 중에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던 날에 너희가 어떤 형상도 보지 못하였은즉 너희는 깊이 삼가라 (신 4:16, 개정) 그리하여 스스로 부패하여 자기를 위해 어떤 형상대로든지 우상을 새겨 만들지 말라 남자의 형상이든지, 여자의 형상이든지, (신 4:17, 개정) 땅 위에 있는 어떤 짐승의 형상이든지, 하늘을 나는 날개 가진 어떤 새의 형상이든지, (신 4:18, 개정) 땅 위에 기는 어떤 곤충의 형상이든지,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어떤 어족의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라 (신 4:19, 개정) 또 그리하여 네가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해와 달과 별들, 하늘 위의 모든 천체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천하 만민을 위하여 배정하신 것을 보고 미혹하여 그것에 경배하며 섬기지 말라

우리는 지난 주 십계명의 1계명을 통해 우리가 사랑할 ‘대상’이 하나님이심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고, 그와 같이 살아갈 것을 원하십니다. 사랑은 내가 원하고 좋아하는 방식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원하고 좋아하는 방식대로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나는 삼겹살, 스테이크를 좋아하는데 상대방은 고기를 잘 소화하지 못하여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내가 좋아하는 것이 고기라 하여 상대방에게 값비싼 고기를 사준다면 어떨까요? 완벽한 예는 아니겠습니다만, 상대방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내 방식이 아니라 상대방의 방식에 맞추어야 한다는 점은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내 방식만을 고집하며 상대방을 사랑하겠다고 하는 것은 참 사랑이 아닙니다. 나 중심적인 행동은 오히려 상대방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때로는 화나게도 만듭니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사람과의 사랑은 같이 밥도 먹고, 선물도 사주고, 시간을 보내면 된다고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은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요? 십계명의 제2계명은 바로 이 부분에 대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식’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예배를 통해서 드려진다면, 지금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인지 아니면 단순히 내가 좋아서 드리는 예배인지 확인해야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하나님의 방식대로 행해야 합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식이 무엇인지 2계명을 함께 살펴봅시다. [문49. 2계명은 무엇입니까? 답49. 2계명은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상징하는 형상을 만들어 놓고 “이것이 하나님입니다.”하는 어리석음을 범치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바다에 있는 그 무엇으로도 하나님의 형상을 표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온 세계를 창조하신 창조주이십니다. 그 크신 하나님을 어찌 피조물인 자연의 형상으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무한하신 하나님을 유한한 형상에 담으려 하는 모든 시도가 다 하나님을 모욕하는 행위가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하나님이라고 생각되는 형상을 제작하는 것과 그 형상을 숭배하는 행위를 강력하게 금지하셨습니다. 제2계명은 우상제작과 우상숭배 두 가지 모두 철저하게 금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눈으로 볼 수 있도록 존재하시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하나님을 눈에 보이는 시각적인 대상으로 만들려고 끊임없이 시도해 왔습니다. 인간은 상상력을 동원하여 하나님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보기도 하고, 나무, 돌, 금속을 가지고 다양한 형상으로 조각해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영이신 하나님을 시각화 하려는 이 모든 시도들이 무한하신 하나님의 존재를 모욕하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 유치부에서 여름 수련회 때 어린 아이들에게 하나님을 설명하기 위해서 머리가 하얗고, 흰 수염을 기른 할아버지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은 대단히 잘못된 신앙교육입니다. 영이신 하나님을 피조물의 모습으로 형상화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어린 유치원 아이를 교육하기 위한 목적일지라도 하나님의 모습을 형상으로 대체하는 것은 하나님을 우상처럼 제작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하기에 이러한 것은 용납될 수 없습니다.

천주교의 성당에 가보면 하나님과 예수님의 형상을 세워 둔 동상들과 성화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돌로 새겨 만든 예수님 형상이나, 그림으로 만들어 놓은 하나님의 모습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바티칸에 있는 [시스티나 대성당] 예배당 천장에 그려진 벽화 천지창조에서 화가 [미킬란젤로]는 하나님을 아담을 향해 손을 뻗고 있는 수염 난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표현했습니다. 예술적으로는 가치가 상당히 높을지 모르지만, 사실 성경적으로 보면 하나님을 그와 같은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바로 제2계명을 위반하는 것입니다. 분명 하나님께서는 그 어떤 형상으로도 하나님을 표현하지 말라고 금지하셨습니다. 혹시 우리가 예배 드리며 머리 속으로 하나님의 형상이나 모습을 인자한 할아버지나 신비한 천사의 모습처럼 그리고 있다면, 그것 역시 제2계명을 어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눈에 보이는 그 어떤 것으로든 표현하는 행위 자체가 유한한 피조물 속에 무한하신 하나님을 가두려는 모욕과 비하이며, 하나님께 불명예스러운 것이 됩니다. 그래서 개신교에서는 하나님을 대체하려는 시도를 적극적으로 반대합니다. 천주교의 십자가를 보면 예수님의 형상이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개신교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모습까지도 조각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은 맞지만, 그의 모습을 조각하는 것이 그 조각을 우상화 할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예술가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인자한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예수님을 인자한 청년의 모습으로, 성령님을 비둘기의 모습으로 제작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제2계명에 따르면 그것이 우상 숭배일 수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인간이 이처럼 하나님을 형상화 하는 시도가 끊임없이 이어져 온 것은 사실 자기만족에서 시작됩니다. 신을 눈에 보이는 존재로 만드는 과정에서 오는 자기만족을 충족시키기 위한 시도입니다. 이는 하나님 사랑이 아닌 자기 사랑입니다. 출애굽기 20장 말씀을 보면 이와 같이 하나님을 형상화하고 우상으로 대체하는 경우,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에게 죄를 갚으시고, 아버지부터 삼사 대까지 징계하겠다고 엄히 경고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형상화하고, 우상으로 제작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싫어하시는 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 찬양, 예배를 드릴 때, 우리 생각과 마음 속에서 하나님을 특정한 형태로 이미지화 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면 그 역시 멈추어야 합니다. 우리 생각과 머리 속에서 만든 하나님의 이미지 역시 우상이 됩니다. 다시 한번 우리가 하나님을 올바른 방법으로 사랑하고 섬겨 온 것인지 점검해 봐야 합니다. 아무리 하나님을 열심으로 사랑해도 헛되고 거짓된 방법으로 사랑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모욕하는 죄가 됩니다. 내가 좋아하는 나만의 방식대로 하나님을 사랑해온 것은 아니었는지 자세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을 형상화 하여 우상처럼 섬기고 있었다면, 나의 방식을 버리고, 겸손하게 주님이 원하시는 방식대로 우상을 깨트리고 영이신 하나님을 사랑하며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제2계명은 인간이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우상을 제거할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내 눈에 좋아 보여도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은 제거하는 것,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것. 사랑은 마음도 중요하지만 방식도 중요합니다.

사람이 마음 속에서 “하나님을 형상화한다”는 것은 어떤 과정을 의미할까요?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가 믿고 싶은 자기만의 version으로 하나님을 편집하여 만드는 것입니다. 가장 최근에 전 세계 기독교 내에서도 가장 많은 분쟁을 일으킨 주제가 바로 ‘동성애’ 아니겠습니까? 바로 이 주제에 대해서 사람들은 자기가 믿고 싶은 version의 하나님을 만들어내지 않았습니까?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의 사랑은 차별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는 사랑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동성애자들도 사랑하십니다. 교회도 동성애를 품어야 합니다.” 맞습니까? 이것이 얼마나 위험한 발상인지 보이십니까? 만일 방금 위에서 말한 원리가 성경적 진리라면, 하나님은 살인자, 간음자, 도적질하나 자, 부모를 저주하는 자도 다 사랑하십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죄를 지은 자들을 혐오하시고 미워하십니다. 물론 비록 이러한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그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그 죄를 회개하고 돌아오면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언제든지 또 그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주님의 넓으신 품으로 품어 주십니다. 그러나 교회가 동성애자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받아들이는 것이 마치 사랑의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가르치는 자들은 분명 하나님을 자기가 믿고 싶은 version으로 형상화한 것입니다.

이미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것처럼 하나님을 마치 ‘도깨비 방망이’, ‘램프의 요정 지니’처럼 내가 가진 소원을 모두 들어주시는 분처럼 곡해하는 것도 우상화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정욕과 탐심을 채우기 위한 ATM 기계도 아니고, 자판기도 아니십니다. 몇 해 전 [긍정의 힘]이란 책을 써서 베스트셀러 작가에 오른 [조엘 오스틴]은 텍사스 휴스톤에 있는 레이크우드 교회의 담임 목사입니다. 이 사람을 정통교회에서 계속해서 이단으로 규정하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과연 그의 말처럼 하나님께서 내가 원하고 꿈꾸는 모든 것을 다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이실까요? 정말 우리가 간절히 바라고 원하는 것을 다 이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실까요? 오히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간적 야망을 내려놓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꿈을 꾸도록 우리 생각과 마음을 변화시켜 주시며,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살아가는 참된 기쁨과 만족을 누리게 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라고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까?

제2계명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소요리문답 50문을 함께 읽겠습니다. [문50. 2계명이 요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50. 2계명이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정하신 모든 예배와 규례를 받아들이고, 준수하며, 철저하고 순수하게 보존하는 것입니다.] [문51. 2계명이 금지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51. 2계명이 금지하는 것은 형상을 만들거나 하나님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정하지 않은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대부분의 종교들은 자신들이 섬기는 신의 형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만은 신의 형상을 조각이나 그림으로 갖고 있지 않습니다. 만일 지금 이곳이 성당이라면 제 뒤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조각이 걸려 있을 것입니다. 유리벽에는 예수님과 천사들의 모습이 스테인드 글라스로 새겨져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를 보십시오. 사방에 하나님을 상징하는 조각이나 그림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한 것을 제작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재정하신 예배의 규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하늘, 땅, 바다 그 어느 곳에 있는 형상으로 하나님의 모습이라고 규정하며 제작하지 말라고 금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4장 24절에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무한하신 주님은 물질의 형상으로 제한되거나 표현될 수 있는 유한한 존재가 아니십니다.

[문52. 2계명을 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답52. 2계명을 주신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를 주관하시며,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은 이에 합당한 예배 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복권을 사고 나서, “내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이 복권이 당첨되게 하실 거야!”라고 간절히 기도하는 기독교인이 있다고 한 번 생각해 봅시다. 그는 지금 잘못된 기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못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잠언 31장을 보면 일하지 않고 먹는 빵을 가리켜 [게으른 빵]이라고 부릅니다. 성도는 게으른 빵을 먹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건강한 몸을 가지고 땀 흘려 일하고 거기서 주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은혜의 빵, 정직한 빵을 먹고 사는 것이 옳습니다. 잠언을 읽어보면 갑자기 벼락 부자가 되는 것도 주님의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부자가 되려는 욕심을 버리고,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하루하루 성실하게 땀 흘려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해야 하는 삶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마음 속 자리 잡은 탐심과 정면으로 위배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편한 것을 원하고, 많은 재물을 갖기를 원하고, 그것을 빠른 시간 내에 혹은 당장 누리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려면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방식으로 섬겨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변형되고 조작된 하나님이 아니라, 성경이 가르치는 참 되신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형상화 하거나 우상을 만드는 경우는 100% 결국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입니다. 내가 믿고 싶은 하나님, 내가 원하는 하나님을 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온 세상을 만드신 창조주이시지, 결코 우리가 원하는 대로 조작하거나, 변형하거나, 내가 원하는 version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피조물이 아닙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 외쳤습니다 Let God be God!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라!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속에서는 하나님이 아닌 변형된, 만들어진 나만의 가짜 신을 섬기는 것이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 되게 하려면, 계속해서 말씀을 배움으로써 진짜 하나님의 모습을 끊임없이 배워가야 합니다. 그 과정을 통해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거나 오해하고 있었던 변형된 하나님의 모습을 제거하고, 참된 하나님의 모습으로 우리 생각과 마음을 채워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진리를 우리 생각과 마음에 채움으로써 비진리를 몰아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Let God be God.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십시오. 내가 믿고 싶은 하나님, 내가 원하는 하나님, 내가 조작한 하나님이 아니라, 성경이 계시하고 선포하는 참된 하나님을 믿고 섬기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