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12:1)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가 살고 있는 땅과, 네가 난 곳과,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 (창 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주어서, 네가 크게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창 12:3) 너를 축복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복을 베풀고, 너를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릴 것이다. 땅에 사는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
모든 인간은 모험을 하려는 본능이 있습니다. 이는 특별히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며, 영원히 지속될 수 없는 것으로, 조직화라는 땨분함을 피하기 위해서는 계속 새로워져야만 하는 것이죠. 더 나아가서 모험에 대한 욕구를 하나의 본능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러한 충동은 본능의 특성인 보편성을 가지고 있으며 아울러 억누를 수 없는 힘이 있고, 또 이를 만족시키면 특별한 기쁨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이 모험본능은 감춰져 있거나 덮여 있거나 억제될지는 몰라도 절대로 인간의 본성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린 시절 ‘톰 소여의 모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80일간의 세계일주’, ‘천로역정’, ‘신밧드의 모험’과 같은 책들을 즐겨 있는 이유는 바로 이 책들이 모험의 요소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모험은 늘 새로우며 가끔은 위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모험이 주는 짜릿한 경험이 인간으로 하여금 새로운 여정을 떠나게 만드는 것 아닐까요?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산을 오른다는 산악인들의 삶 만이 모험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모두에게는 모험을 떠나고자 하는 본성이 있는 것이지요.
모험하면 가장 먼저 저에게 떠오르는 이야기는 다름 아닌 다윗의 모험입니다. 사무엘상 17장에 그는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 점심 도시락 배달을 나간 집안의 막내요, 아무에게도 관심 받지 못한 양치기였습니다. 심지어 그의 아버지는 선지자 사무엘이 왔을 때도 다윗을 집으로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 도시락 배달이라는 작은 모험을 나갔을 때 골리앗이란 거인을 만나게 됩니다. 그 이후 그의 삶은 전 인류가 기억하는 삶으로 변해버립니다. “모험”이라는 단어가 우리 가슴을 설레게 하는 이유는 모험을 통해 우리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여행을 가거나, 선교지를 떠날 때 가슴이 뛰는 이유도 바로 이 새로운 경험을 통해서 내 삶이 변화될 수 있고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무심코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험에 나서지 않는 사람은, 안정은 주어지겠지만, 정체되어 있는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일을 새롭게 시작하려 할 때, 인간 속에 있는 망설임이라는 감정이 찾아옵니다. 인간의 내부에 있는 이 망설임이라는 두려움이야말로 모험을 방해하는 가장 큰 적인 셈입니다. 따라서 모험적인 삶은 두려움이 없는 삶이 아니라 오히려 모험에 필요한 각종 어려움을 충분히 인지하는 가운데 앞으로 나아가는 삶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그분의 모험으로 초대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삶을 RESET 하는 것이 모험입니다.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것입니다. 해보지 않은 일들을 새롭게 시도하는 것입니다. 경험해 보지 않은 일을 시작해 보는 것입니다. 우리 삶을 RESET 하는 모험을 떠날 때 다음과 같은 원칙들을 지켜봅시다.
첫째, 모험의 두려움을 하나님께 맡기라. 오늘 우리는 이 모험의 초대장을 받은 한 사람의 이야기를 함께 살펴 보려고 합니다. 본문 12장 1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창 12:1)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가 살고 있는 땅과, 네가 난 곳과,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 오늘 이 창세기 12장 1절에 등장하는 내용이야말로 전 우주의 왕이시며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아브람이란 인물을 모험으로 초대하는 초대장입니다. 이 초대장의 주 내용이 무엇입니까? 두 동사가 핵심입니다. 무엇일까요? “떠나라” 와 “가라” 입니다. Leave and Go. 입니다. 그런데 아브람이 이 초대장을 받을 때 그가 몇살이었습니까? 우리 4절 말씀을 후반절에 보면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오 세였더라고 이야기 합니다. 여러분 사람의 나이가 일흔다섯 즘 되면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이미 은퇴한 나이입니다. 도전하는 나이가 아니라 순주들과 함께 안정적인 시간을 보내는 시기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속 하나님은 이삼십대 젊은 아브람이 아니라, 일흔 다섯의 할아버지 아브람을 불러 떠나라 가라.고 말씀하고 계신것이지요. 만약 여러분이 아브람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떠나라, 가라의 초대장을 받으신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내가 평생 쌓아올린 기득권. 내 평생 모아온 것들을 뒤로 하러 떠날 자신이 있으세요? 사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모험을 떠나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모험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왜 그럴까요? 가족과 친구들, 편하고 익숙한 땅을 떠나기에 망설여지는 것이지요. 언어와 문화 상황과 환경이 다른 낯선 땅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브람 역시 사람인데 왜 그런 두려움이 없었을까요? 일흔 다섯의 할아버지가 무슨 영광을 누리겠다고 자기 고향을 떠나겠습니까? 그런데 그가 받은 초대장은 또 하나의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1절 후반절을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되어있죠? 이것만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람이 가는 길 도중에 GPS 혹은 Google Map 처럼 자세히 아브람 이번 골목에서 좌회전 다음 길에서 직진 이렇게 가는 길을 다 지도해주신 것으로 쉽게 오해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8절 말씀을 한 번 찾아보겠습니다. [(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고, 장차 자기 몫으로 받을 땅을 향해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했지만, 떠난 것입니다.”] 이 구절의 마지막에 뭐라고 나와 있어요? 아브람이 가는 길을 알고 갔어요? 모르고 갔어요? When he left he had no idea where he was going. 그는 어디로 가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나아갔습니다. “아니, 하나님! ‘떠나라 가라”고 명령하셨으면 최소한 어디로 가야하는지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알려주셔야죠. 무작정 차에 짐 다 실어놓고 기름 가득 채우고 아내와 조카 데리고 떠나라니요?” 아브람이 느꼈을 황당함이 공감 되십니까? 사실 모험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내가 가는 이 길이 또 어느 길로 어떠한 곳으로 날 인도해가는지 전혀 예측할 수가 없지요. 그러나 일흔 다섯의 노인이며 지금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는 아브람의 위대함은 이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모험의 초대장을 받자, 그 모험에 믿음으로 뛰어듭니다. 히브리서 11장 8절에 기록된 첫 단어가 그것이었어요. “믿음으로”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나갔으며…” 하나님이 우리를 모험으로 초청하실 때, 그 분이 부르실 때 아브라함과 같이 믿음으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믿음을 가지고 모험의 두려움을 하나님께 맡기길 바랍니다. (시편 32:8)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네가 가야 할 길을 내가 너에게 지시하고 가르쳐 주마. 너를 눈여겨 보며 너의 조언자가 되어 주겠다.”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 인생의 모험을 이끌어 주시고 갈 길을 보여주시는 조언자가 되어 주실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과 더불어 모험을 착수하라.
믿음의 모험과 관련하여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먼저 ‘나의 작은 개인적인 모험이 하나님의 거대한 모험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가?’하는 질문입니다. 내가 떠나려는 이 모험이 진짜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험인가 먼저 물어봐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객기’나 ‘호기’나 ‘혈기’로 시작되는 모험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람이 고향 땅을 뒤로 한 채 가나안으로 긴 여정을 떠난 것은 객기를 부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승인하신 모험을 떠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과 더불어 모험에 착수한 것”입니다. 지금 내가 떠나려는 이 모험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험인가? 하나님의 뜻에 부합한 모험인가를 먼저 점검해야 합니다.
“(시 119:105) 주님의 말씀은 내 발의 등불이요, 내 길의 빛입니다.” 복음서에 보면 베드로가 물 위를 걷는 장면이 나오죠? 푹풍우가 몰아치는 바다 한 가운데서 배 밖으로 나가는 것은 말도 안 되는 모험입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배 밖으로 나가서 물 위를 걸은 것은 객기가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베드로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배 밖으로 나간 것입니다. 그는 평생 어부로 살았지만 단 한 번도 배 밖으로 나가볼 생각을 하거나 물 위를 걸어볼 시도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물 위를 걸어오신 예수님께서 그를 향해 “베드로야 오라!”하고 말씀하시자 베드로가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배 밖으로 나온 것입니다.
[찬양 주님 말씀하시면 가사]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다. 주님 뜻이 아니면 내가 멈춰서리다. 나의 가고 서는 것 주님 뜻에 있으니, 오 주님 나를 이끄소서. 뜻하신 그 곳에 나 있기 원합니다.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며 살리니, 연약한 내 영혼 통하여 일하소서. 주님 나라와 그 뜻을 위하여, 오 주님 나를 이끄소서
모험을 떠나라는 주님의 말씀을 들었습니까? 물 위를 걷고 싶으면 배 밖으로 나와야 합니다. “If you want to walk on water, you’ve got to get out of the boat” 우리 주님께서 베드로를 향하여 물 위로 걸어오라 말씀하심 같이 배 밖을 나올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만이 기적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람도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의 배 밖으로, 그의 comfort-zone 밖으로 나올 나오기로 결심을 하게 된 것입니다. 결코 객기나 호기로 떠나거나 시작된 여정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과 더불어 모험을 착수했습니다.
- 모험을 떠나는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모험을 떠날 때 다음과 같은 상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창세기 2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창 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주어서, 네가 크게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이 약속의 내용은 떠나라 가라는 명령의 내용만큼이나 황당합니다. 일흔다섯의 나이에 이르도록 자식이 없던 무자한 할아버지에게 너를 통해 큰 민족을 이루겠다고 약속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이름을 창대게 해주시겠다고 하였습니다. 시골 농부 할아버지를 데려다 놓고 너를 전 세계 모두가 아는 유명인물로 만들어 줄게”하고 약속하는 것입니다. 황당한 일이지요. 일흔 다섯의 자식 하나 없는 할아버지의 이름이 크게 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까운 약속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은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입니다. You will be blessing 너 자체가 복이 될 것이야. 이 약속의 세부 내용이 3절입니다. 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창 12:3) 너를 축복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복을 베풀고, 너를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릴 것이다. 땅에 사는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 큰 민족을 이루고, 네 이름을 크게하고, 네가 복의 근원이 된다. 사실 이 세 가지 약속만큼 믿기 어려운 조건도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계약하거나 거래할 때 조건이 너무 좋으면 간혹 믿기 어려울 때가 있죠? “이렇게 조건이 좋을리 가 없는데? 분명 뭔가 꿍꿍이가 있을탠데?”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아브람에게 약속하시는 분이 누구이신지 안다면 왜 아브람이 아무런 의심 없이 떠나 갔는지 알 수 있습니다. 12장 1절의 첫 번째 단어가 뭐에요? “여호와께서…”입니다. 누가 이 명령을 하셨고 누가 이 약속을 주셨습니까? “여호와께서…”하신 것이지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명령과 약속들이 성경에 가득합니다. 그러나 “주라 그리하면 줄 것이요. 곧 흔들어 넘치도록 너희에게 채워주리라.”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이 약속들이 사실 다 믿기에는 너무 좋은 약속들이거든요. 그런데 이 성경에 기록된 약속들을 누가 주신건가요? 아브람에게 명령하시고 약속하신 “여호와께서…” 바로 그 동일한 “여호와께서..”주신 명령이요 약속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의 약속을 신뢰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이 세상에 믿을 수 있는 유일한 보증수표가 있다면 그것은 결코 망하지 않고 쇠하지 않는 천국은행에서 발행된 하나님의 이름이 적힌 보증수표 즉 주님의 말씀인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창고는 결코 bankruptcy, 부도가 없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행하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주실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끊임없이 방황하고 슬퍼하던 지난 날의 삶을 멈춥시다. 말씀 속에서 우리를 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발견합시다. 주님의 말씀과 더불어 주님과 동행하는 가슴 설레는 새로운 모험을 시작합시다. Reset! 믿음의 모험을 주와 함께 떠나봅시다. 이전에 차마 두려워서 해보지 못했던 도전들을 주와 함께 시도해 봅시다. 주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나아갑시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붙들고 새로운 마음으로 전혀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우리 모든 코너스톤장로교회 가족들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