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11 특별새벽예배 [RESET YOUR LIFE] (3) 변화의 어려움 넘어서기

 

(엡 4:21) 여러분이 예수 안에 있는 진리대로 그분에 관해서 듣고, 또 그분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으면, (엡 4:22) 여러분은 지난날의 생활 방식대로 허망한 욕정을 따라 살다가 썩어 없어질 그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엡 4:23) 마음의 영을 새롭게 하여, (엡 4:24)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참 의로움과 참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십시오.

 

버섯이 자라는 데는 6시간이면 충분합니다. 그러나 참나무가 자라는 데는 대략 60년 정도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한 순간에 버섯이나 참나무 둘 다 자라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연의 섭리를 따라 역사하십니다. 그 결과 버섯은 6시간, 참나무는 60년 각각 이와 같이 다른 성장 기간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성숙하는 데는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요? 육체적인 성장은 이삼 십 대가 되면 완성이 됩니다. 그러나 인간의 내적 성숙은 평생 동안 계속되는 일련의 과정입니다. 우리는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만날 때마다 삶이 성숙해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게 조금씩 자라나는 참나무와 다르게 대나무의 경우는 키가 쑥쑥 자랍니다. 한창 봄비가 내린 뒤에는 하룻밤 사이에 대나무 키가 150cm 이상 자라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봄비와 같은 은혜를 부어 주실 때는 우리 삶이 하룻밤 사이에 놀랍게 변화하기도 합니다. 그와 같은 놀라운 성숙과 변화의 은혜를 받는 비결이 있습니다.

 

첫째, 변화를 위해서는 진리를 배우고 대면해야 합니다. 변화는 항상 진리로부터 시작됩니다. 변화는 항상 진리로부터 시작되지만, 진리를 배우고 진리를 대면하는 두 가지 중요한 부분이 있어야 합니다. 진리를 배운다는 말은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만, 진리를 대면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쉽게 말하면 진리를 받아들인다는 뜻이고, 진리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 진리를 알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기는 거부합니다. 말씀을 배우지만 그대로 살아가기를 거절합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되듯이, 알고 있는 진리가 서 말이 된다 하더라도, 그 말씀을 우리 삶에 적용하고 실천할 때 비로소 말씀이 변화를 일으키는 보배가 됩니다.

우리는 진리를 배우지만 대면하고 싶지 않아 합니다. 왜냐하면 진실과 진리는 종종 불편하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진리가 우리의 부족함과 더러운 모습들을 다 있는 모습 그대로 비춰줍니다. 치과에 가서 치과의사 선생님이 “아 벌리세요”할 때 평상시 이를 잘 관리하지 않아 충치가 생긴 사람들은 부끄러워서 이를 잘 못합니다. 살이 찐 사람들도 병원에서 “체중계 올라가세요.”하면 부끄러워서 잘 못 올라갑니다. 진실을 마주하기가 종종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치과 선생님이 아 벌리세요 할 때 안 벌리면 충치 치료 못합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체중계 올라가라고 할 때 올라가야지 올바른 진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진실은 당신을 자유롭게 하지만, 먼저 그것은 당신을 비참하게 만듭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를 자유케 하는 진리를 통해 우리 삶을 변화하기 위해서는 먼저 불편한 진실과 진리를 마주봐야 합니다. 우리 삶이 훌륭하지 않다는 것을, 내 삶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내 마음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어 뽑아 버려야 하는 죄와 나쁜 습관들이 있다는 사실을 직면해야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자신의 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 듣기를 싫어합니다. 이사야 30장 10절 말씀을 봅시다. “(사 30:10) 선견자들에게는 “더 이상 환상을 보지 마시오!” 하고 예언자들에게는 “더 이상 진실을 예언하지 말고 거짓말이라도 좋으니 듣기 좋은 말로 예언해 주시오!” “목사님 우리에게 진실을 말하지 마십시오. 죄에 대해서 회개하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우리를 기분 좋게 만드는 것, 우리가 듣고 싶은 것을 말해주십시오!” 우리는 반대 의견 듣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우리의 본성과 대치되는 가르침을 듣기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진리라는 거울 앞에서 서서 자신의 망가지고 상처 난 모습을 대면하는 것이야 말로 참된 용기입니다.

모든 실패 뒤에는 거짓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거짓 메시지, 내 자신에 대한 거짓 메시지, 성공과 행복에 대한 거짓 메시지들이 난무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중독되어 있고 감염되어 있는 거짓이 얼마나 많은 지 모릅니다. 따라서 변화의 첫 번째 요구 사항은 진리를 배우고 자기 자신에 대한 진리를 직면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에 대한 진리를 알아내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습니다. “(요 17:17) 진리로 그들을 거룩하게 하여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진리로 거룩하게 한다”는 말을 바꾸어 말하면 거짓과 죄악으로 물든 우리 삶을 Reset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진리인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으로 우리가 새롭게 변화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배우고, 배운 말씀으로 우리 내면과 삶을 대면할수록 우리 삶은 더욱 아름답게 변화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삶을 재설정하는데 큰 도움을 줍니다. “(딤후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으로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걸어가야 갈 길을 보여줍니다. 성경은 우리가 길에서 벗어났음을 알려줍니다. 성경은 우리가 올바른 길로 돌아오는 방법을 보여줍니다. 또한 성경은 그 올바른 길에 머무르는 법도 알려줍니다. 이로 말미암아 성경을 보고, 듣고, 배우고, 그 말씀과 대면하는 사람은 유능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해 갑니다. “(딤후 3:17)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을 유능하게 하고, 그에게 온갖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자로 준비시키고,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게 합니다.

우리 삶이 변화하기 위해서는 진리를 배우고 대면해야 한다고 했지요? 매일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조용한 시간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배우는 것이 우리 삶을 재설정하는 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합니다. 성경을 읽어가며 하나님의 진리를 배우고, 날마다 그 말씀 앞에 자신을 비춰보고 대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오늘 이 말씀에는 이런 내용이 기록되어 있군요. 이 말씀에 나 자신을 대입해 보니 나는 이런 부분이 모자라고 부족했군요. 하나님 말씀을 보니 저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 제가 잠시 길을 잃었었군요. 다시 주님을 향해 뻗어 있는 길로 돌아가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리를 배우고 대면하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지속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진리를 배우고 대면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지속적인 변화에는 공동체와 코칭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잘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 혼자서 건강해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함께 가야 합니다. 우리 인생에서 결코 혼자서 바꿀 수 없을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몇 가지 문제들은 홀로 감당하기에는 너무 커서 팀을 이루어 해결해야합니다. 축구를 생각해 보십시오. 선수 혼자 공격하고 수비하고 골키퍼까지 다 할 수 없습니다. 우리들 모두는 나 혼자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를 지원하고 도와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 문제를 도와줄 작은 그룹이 필요합니다. 20명, 30명으로 구성된 그룹이 아니라 4명에서 최대 10명으로 구성된 소그룹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고통과 아픔을 겪고 있는지 모든 사람에게 알릴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말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에 속하여 있습니다. 하나님의 가족의 도움 없이는 나 혼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갈 6:2) 여러분은 서로 남의 짐을 져 주십시오. 그렇게 하면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실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갈수록 개인화 되어 갑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공동체로 함께 살아가라고 말씀합니다. 서로 사랑하라. 서로 도와주라. 서로 봉사하라. 서로 기도하라. 서로 격려하라. 서로 경청하라. 서로의 짐을 짊어지라… 와 같이 공동체를 통해서 살아가는 길이 곧 그리스도인이 살아갈 길임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개인이 아닌 공동체를 통해서만 성장하고 변화할 수 있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여기서 말하는 공동체는 20명, 30명이 모이는 공동체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10명 이하의 작은 그룹, 소그룹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그 공동체 안에 여러분이 마음을 진솔하게 나눌 수 있는 친구 같은 이들이 있어야 합니다. 내 감정과 상황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공동체, 나를 판단하고 정죄하지 아니하고 내 연약함을 감싸줄 수 있는 공동체를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같이 부족한 내 모습을 기꺼이 용납해줄 수 있는, 우리가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로 구성된 그룹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그 공동체 안에 여러분을 믿음의 길로 올바르게 인도해 줄 수 있는 코치와 같은 사람을 찾으십시오. 세계적인 프로 스포츠 선수들도 여전히 코치가 있습니다. 올림픽 금메달을 딴 선수들도 여전히 코치가 있습니다. NBA 농구선수들, NFL 미식축구 선수들도 다 코치가 있습니다. 코치의 역할이 무엇입니까? 코치는 선수의 장점과 힘을 극대화하고, 약점을 최소화 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줍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사람들은 대부분 코치가 있었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에게 코칭을 받았습니다. 엘리사는 엘리야에게 코칭을 받았습니다. 솔로몬은 다윗에게 코칭을 받았습니다. 다윗은 사무엘에게 코칭을 받았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께 코칭을 받았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의 코칭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디모데가 필요했고, 디모데는 바울이 필요했습니다. 여러분의 코치는 누구입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격려하고, 이끌어주고, 힘들 때 일으켜 세워주는 사람이 있습니까?

오랜 세월 동안 우리의 무의식과 몸에 베어 버린 습관들을 자신 스스로 깨 버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나 혼자서 오랜 시간 형성된 나쁜 생각과 나쁜 행동들을 끊어 내기란 너무나도 어렵습니다. 그럴 때는 코치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코치가 꼭 완벽한 사람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사실 완벽한 코치도 없습니다. 그들은 우리보다 한 발 앞서 있으면 됩니다. 그리고 그 한 발작 앞선 상태에서 우리를 향해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사람이면 됩니다.

 

셋째, 지속적인 변화에는 성령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슥 4:6 하반절) … ‘힘으로도 되지 않고, 권력으로도 되지 않으며, 오직 나의 영으로만 될 것이다.’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 삶에서 진정한 변화를 일으키실 수 있습니다. 표범이 어찌 자신 몸에 그려진 무늬를 없앨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우리 안에 있는 상처들과 나쁜 습관들을 우리의 힘으로 어찌 다 제거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 삶 속에서 역사하실 때 우리의 변화는 시작됩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실 때 우리는 점점 더 예수님과 같이 닮아갑니다. 고린도후서 3장 18절을 봅시다. “(고후 3:18) 우리는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여, 점점 더 큰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은 영이신 주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주님의 영이 우리 안에서 역사할 때, 우리는 점점 더 주님의 모습을 닮아가도록 변화합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사실입니다.

버섯은 자라는 데 6시간이 걸리고, 참나무는 자라는 데 60년이 걸린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령께서 우리의 삶을 통해서 일으키시는 이 변화는 즉각적이기 보다는 점진적으로 일어납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변화는 평생의 과정입니다. 그러나 또한 특별한 변화가 일어날 때도 있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키가 150 cm 나 크는 대나무처럼 우리 영혼이 단시간에 놀랍게 변화하는 날들도 있습니다. 부디 날마다 진리를 배우고 대면하십시오. 우리의 변화를 격려하고 코칭 해 줄 소그룹을 찾으시고 적극적으로 활용하십시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의 변화를 이끌어 주실 것을 간구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