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89편은 국가가 큰 재난을 겪게 됨으로 하나님 앞에 아뢰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을 이야기하며 하나님의 신실하심 가운데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도와 주실 것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시의 표제를 보니, [에스라인 에단의 마스길]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단’은 다윗 시대의 음악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마스길’이란 말은 ‘교훈을 주는 시’라는 뜻입니다. 이 시안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적인 내용이 많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2절에서 시인은 자신이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노래하며 주의 성실하심을 대대에 알릴 것이라 말합니다. 시인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주님의 선하심을 믿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며 찬송할 것을 다짐합니다. 또한 주께서 현재 역사 하시는 일들을 장래 세대들에게 가르칠 것이라 했습니다. 에단은 우리가 읽은 시편 89편처럼 그 내용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토록 변함없는 인자하심이야 말로 에단이 찬양하고자 하는 내용입니다.
3-4절에 에단은 하나님께서 다윗과 그 자손들과 맺으신 언약에 대하여 언급합니다. 나라가 위험하고 위기에 봉착하였어도 하나님께서 다윗 가문과 맺으신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원수들의 손으로부터 구원하시고 보호하실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다윗 언약을 언급했습니다. 4절 마지막에 ‘셀라’가 있습니다. 음악적인 장치로 여기까지 노래하거나 읽고 서두르지 말고 잠시 앞에 나온 언약의 말씀들을 다시금 묵상해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신실하신, 변치 않는 인자하심으로 다윗과 맺으신 언약을 지키시지 않았는가 묵상해 보라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한 번 묵상해 봅시다. 다윗의 죽음 이후에도 그의 왕조는 계속해서 이어져 갔습니다. 솔로몬 이후 나라가 2개로 쪼개졌으나, 남유다 다윗 왕조를 이어 갔습니다. 바벨론의 공격으로 인해 남유다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가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여고냐 왕을 통해서 다윗 왕조는 계속해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1장을 보면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으신 그 언약이 예수님께로 이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의 왕국은 영원토록 이어질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으신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셨음을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5절부터 14절까지는 시인이 하나님의 능력과 공의 그리고 자비에 근거하여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는 글들이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이 찬양의 핵심은 8절입니다. “여호와 만군의 하나님이여 주와 같이 능력 있는 이가 누구리이까?” 이 세상에 여호와 하나님과 비교하여 견줄 수 있는 존재가 없습니다. 하늘이 주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찬양합니다. 이 세상에 성난 파도를 잠재울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인간이 높은 아파트도 만들고, 전기 자동차, 핵무기를 만들었지만 아직도 할 수 없는 일이 자연현상을 다스리는 일입니다. 9절 보십시오. 인간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바다가 흉용하게 뛰놀고 파도가 일어날 때에 그것을 평화롭고 잠잠히 머물게 만드십니다. 10절을 봅시다. 여기 ‘라합’은 악어 혹은 바다 괴물입니다. 문맥에 따라서는 ‘라합’은 애굽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라합은 사람이 싸워서 이길 수 없는 존재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10절 보니 하나님께서는 라합을 어떻게 하셨습니까? 죽임을 당한 자 같이 깨트려 버리셨습니다. 하나님의 강하신 능력과 힘을 보여줍니다. 13절 봅시다. “(시 89:13) 주의 팔에 능력이 있사오며 주의 손은 강하고 주의 오른손은 높이 들리우셨나이다” 성난 파도도, 바다 속 괴물도 모두 주님 앞에서 깨갱하고 힘도 쓰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11-12절에 있습니다. 하늘도 주의 것이요, 땅도 주의 것이요, 세계와 그 중에 충만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니 피조물이 어찌 감히 창조주 하나님과 견주어 상대가 되겠습니까? 12절에 남북이 나오고 다볼과 헤르몬이 나오죠? 다볼은 요단강 서쪽에 있고, 헤르몬산은 요단강 동쪽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동서남북 사방에서 강하고 위대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찬송하는 모습입니다.
시인이 진짜 행복해하는 이유는 바로 이 놀라운 힘과 능력의 창조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친히 택하여 주셔서 그들의 영광과 울타리가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17-18절에 바로 이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시 89:17) 주는 그들의 힘의 영광이심이라 우리의 뿔이 주의 은총으로 높아지오리니 (시 89:18) 우리의 방패는 여호와께 속하였고 우리의 왕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에게 속하였기 때문이니이다” 왜 이스라엘이 행복합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의 영광이며 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힘과 은혜를 주시고 높여 주십니다. 여호와께서 친히 그들을 보호하고 지시키는 방배가 되어 주십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향해 외치고 있습니다. 15절로 올라가 봅시다. “즐겁게 소리칠 줄 아는 백성은 복이 있나니” 무슨 말입니까?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란 사실이 얼마나 큰 복인지 깨닫고 기쁘게 소리치며 주님을 찬양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16절 보십시오. 하루 종일 주의 이름을 부르며 즐거워합니다. 하나님께서 마침내 악을 갚으시고 완전한 의를 이 땅에 세우실 것을 생각하며 기뻐합니다.
오늘 시인은 하나님의 변함없는 인자하심을 노래하고 찬양했습니다. 영원토록 다하지 않을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은 그 위대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성난 파도도, 바다 괴물도 우리를 해치지 못합니다. 강하고 힘 있으신 여호와께서 우리의 방패가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오늘 이 하루 시인처럼 이 위대하시고 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 되심을 기억하며, 주님의 놀라운 사랑을 받고 살아가고 있음을 기뻐하며, 주님의 은혜를 풍성하게 찬송하는 행복한 하루가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