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21 믿음의 사람들(3) (히브리서 11장 23-31절)

 

이집트 왕 바로는 히브리인들에게 사내 아이가 태어나면 무조건 나일강에 버려 죽이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대권력을 소유한 바로의 명령을 어길 수 없었습니다. 또한 엉엉 우는 사내 아기를 바로의 군사들 몰래 숨길 방법이 없었습니다. 아기를 숨겼다가 적발되면 가족이 큰 벌에 처하게 됩니다. 얼마나 많은 이스라엘의 사내 아이들이 나일강에 던져졌을까요? 아기를 강가에 버려야 했던 슬픔에 쌓인 이스라엘 백성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땅과 하늘에 가득 울려 퍼졌습니다.

이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레위 지파인 남편 아므람과 아내 요게벳 사이에서 ‘모세’라는 이름의 사내 아이가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부모가 아이를 낳고 보니 인물이 좋고, 아기가 사랑스럽고 아름다웠습니다. 부부는 차마 모세를 나일강에 빠트려 죽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무려 석 달 동안이나 아이를 숨겼습니다. 그러나 약 100일 정도 지나자 이제 더 이상 자신들이 아이를 숨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었습니다. 이에 그들은 갈대로 상자를 만들어 그 안에 모세를 눕혔습니다. 갈대상자 위에 잠든 아기 모세를 눕혀 놓고, 상자를 나일강에 띄웠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 가운데 바로의 공주가 이 상자를 발견하였고, 모세를 그의 양자로 삼아 양육하게 됩니다. 모세는 40년간 이집트에서 왕자로 지내면서, 당대 최고의 왕실 교육을 받게 됩니다. 이러한 삶은 훗날 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고, 모세오경을 기록하는 데 특별하게 사용되게 됩니다.

모세는 얼마든지 평생 이집트의 왕자로서 호화스러운 삶과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집트의 왕자로 살며 공주의 아들이 칭함 받는 것을 거절했습니다. 24-25절입니다. “(히 11: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히 11: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왕궁과 광야 중 더 살기 좋은 곳은 물론 왕궁입니다. 모세는 이집트의 왕궁에 머물지 아니하고 오히려 광야로 나가 하나님의 백성을 이끄는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광야에서 고난 받는 길을 애굽에서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삶보다 더 좋아했습니다.

어떻게 모세가 그와 같은 삶을 선택할 수 있었을까요? 여기에는 모세의 믿음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26절을 봅시다. “(히 11: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성경학자들은 구약시대의 모세가 먼 미래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알았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26절 말씀은 그가 이집트의 보화를 소유하는 것보다 더 큰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고난 받는 쪽을 선택했다고 해석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늘 본향을 소망하고 살아간 것과 같이 모세 또한 이집트를 자신의 본향으로 여기지 아니하였고, 하나님이 주실 더 놀라운 상급, 영원한 집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분명 일시적인 쾌락을 약속하는 죄악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잠시 잠깐 뿐인 세상의 쾌락을 택하기 위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영원한 보상을 버려서는 안 됩니다. 만일 모세가 이집트의 부귀영화에 눈이 멀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왕궁에서 왕자로서 한 평생 잘 먹고 잘 살았을 지는 몰라도 그의 피폐해진 영혼은 지옥 불에 타 들어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모세가 이집트의 모든 보화를 뒤로하고 더 큰 상급을 받기 위해 부귀영화도 다 내려놓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하기 위해 광야 길로 나설 때 하나님은 그에게 더 크고 좋은 상급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히브리서 11장 6절에서 믿음의 내용을 정리하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그가 자기를 찾는 이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한다고 했지요? 하나님은 그의 길을 따라 가는 자들에게 반드시 상을 주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열심으로 섬긴 것 하나님은 잊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주를 위해 포기하고, 주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 것 주님은 다 마음에 새겨 놓으십니다. 그리고 세상이 주지 못할 만큼 더 크고 좋은 것들로 우리에게 갚아 주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일시적인 세상 쾌락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실 크고 좋은 영원한 보상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어서 히브리서 저자는 모세와 여호수아 시대에 믿음으로 일어난 기적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꺼내 올 때 바로 왕이 고집을 부리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어 주길 거부하자 10가지 재앙이 애굽에 임하게 됩니다. 그 중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이 바로 [장자의 죽음] 재앙입니다. 이 재앙을 피하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 문설주와 인방에 어린 양의 피를 바르는 것입니다. 그러면 죽음의 사자가 그 피를 보고 그 집 안에는 들어가지 않고 넘어 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문설주와 인방에 어린 양의 피를 바르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 결과 죽음의 사자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은 넘어 갔으나, 피가 발라 있지 않은 애굽 사람의 집은 바로 왕에서부터 맷돌을 돌리는 천한 종의 집까지 모든 장자가 다 죽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 바로 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 주었습니다. 그러나 변심한 바로 왕은 곧바로 광야로 나간 이스라엘을 뒤좇아 왔습니다. 홍해 앞에 선 이스라엘 백성들은 죽을 것 같았으나, 홍해가 갈라지고 마른 땅이 나와 육지 같이 바다를 건넜습니다. 애굽의 군대는 홍해를 건너려다 다시 원래대로 흘러오는 물에 수장되어 죽었습니다. 이 밖에도 히브리서 저자는 여호수아 시대에 여리고 성을 정탐하러 온 정탐꾼들을 살려준 기생 라합의 이야기, 칠 일 동안 여리고 성을 돌았을 때 성이 무너진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믿음으로 사는 것이 어리석어 보입니다. 어린 양을 잡아 문에 그 피를 바르는 것. 애굽 사람들이 보며 야만인들이라고 얼마나 놀렸을까요? 홍해 앞에 갇힌 것처럼 보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며 애굽 백성들은 궁지에 몰린 쥐라고 손뼉을 쳤습니다. 여리고 성을 빙글빙글 돌기만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며 여리고 성 주민들은 조롱하였습니다. 이처럼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이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매우 어리석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모세나 여호수아처럼 세상의 방식을 따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방식을 따라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이야 말로 우리 삶에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