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1절 말씀을 보니,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이고 참 형상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율법은 후에 가능하게 될 일을 보여주는 예표입니다.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보신적이 있으십니까? 화가가 최종 작품을 완성하기 전에 예비 단계로 연필을 가지고 스케치나 윤곽을 그립니다. 스케치는 최종 완성 그림이 아니라 어떻게 구도를 잡을 지, 어떠한 배치로 그림을 그려 나갈지 보여주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나중에 실제로 물감을 가지고 색칠을 하게 되면 스케치나 윤곽은 보이지 않고 사라지게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율법은 하나님의 최종적인 계획이 아니었습니다. 옛 언약인 율법은 미래에 올 새로운 언약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그림자에 불과했습니다. 옛 언약에서 드리는 희생 제사는 완전하지 않았기에 동일한 제사들이 끊임없이 반복되어야 했습니다. 월요일에 제사 드리고, 화요일에 제사 드리고, 수목금… 이런 식으로 끝없이 계속해서 제사가 이어졌습니다. 게다가 옛 언약은 그 효력이 완전하지 않아, 제사 드리는 자들을 온전하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신약 시대에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해마다 반복해서 대속죄일에 드려진 제사는 불완전 했습니다.
만일 구약에서 드리는 희생 제사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완전하게 될 수 있었다면, 사람들은 제사를 수차례 드릴 필요 없이, 단번에 정결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랬더라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끝없이 되풀이 되어진 구약의 희생 제사는 본질적으로 제사 드리는 사람들의 영혼을 정결하게 하거나, 그들의 죄의식을 제거하거나, 하나님과의 막혀진 관계를 열어 주는 그 기능이나 역할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황소나 염소의 피로 드리는 제사는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수 천 마리의 소의 피가 필요하거나 수만 마리의 양의 기름을 원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런 것들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8-9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제사, 예물, 전체로 번제함, 속죄제를 원치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깨끗해진 사람들의 양심과 죄가 없는 정결한 마음을 원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인간의 망가진 양심과 죄로 인해 더러워진 영혼을 정결하게 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율법과 동물 제사로 대표되는 옛 언약을 폐하시고, 새 언약을 세우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자기 몸을 희생 제물로 드려 최종적인 희생 제사를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다른 제사를 드릴 필요성이 사라지게 됩니다. 10절 말씀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 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입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말미암은 희생제사만이 죄책감을 해결할 수 있고, 다시 온전하게 깨끗하여진 양심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11-12절을 읽겠습니다. “(히 10:11)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히 10: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옛 언약의 제사장들은 매일 반복적으로 같은 제사를 자주 드렸으나 이 제사는 죄를 없애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단 한 번 영원히 효력이 지속되는 완벽한 제사를 드리셨습니다. 이와 같이 속죄 제사를 완성하신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사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 제사가 우리들의 죄를 완전히 해결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사의 효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14절을 보면, “(히 10:14)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속죄 제사의 효력 기한은 영원합니다. 그 속죄 제사의 효력의 정도는 온전함입니다. 죄를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완전히 깨끗하게 씻어 버린다는 의미이며, 죄로 망가진 모든 것을 완전히 회복한다는 의미입니다. 13절을 보면, “(히 10:13)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발등상은 발을 올려 놓는 발판입니다. “원수들이 예수님의 발판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신다”는 말입니다. 즉 원수들이 굴복하게 될 최후의 날까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속해서 그 날을 기다리고 계실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속죄 제사의 결과를 봅시다. 17-18절 말씀입니다. “(히 10:17)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히 10:18)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들이 저지른 죄와 불법을 기억하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하셨음으로 다시 죄를 용서 받기 위해 제사 드릴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1-10장까지 계속해서 같은 말을 반복해 왔습니다. 새 언약의 중보다 죄시는 예수님이 우리의 대제사장 되십니다.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이 희생 제물이 되셔서 드리신 속죄 제사는 그 효력이 완전하고 영원합니다. 그 속죄 제사는 죽은 양심을 고치고, 모든 죄를 다 사하기에 충분합니다. 따라서 이제 더 이상 우리에게 다른 대제사장, 다른 희생 제물, 다른 속죄 제사가 필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다만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죄를 속하실 대제사장으로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오직 새 언약에서 주어진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만이 단 번에 죄인들을 깨끗하게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