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11 도망자 다윗 (사무엘상 21장 1-15절)

 

어제까지만 해도 거인 골리앗을 죽인 민족의 영웅으로 추앙 받던 다윗이 하룻밤 사이에 도망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다윗을 잡아 죽이라는 사울 왕의 명령으로 인해 다윗의 도피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울의 눈을 피해 도망치던 다윗은 놉이란 도시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 당시 다윗은 몹시 지치고 굶주려 있었습니다. 초하루 저녁 식사자리를 피하기 위해서 무려 3일 동안이나 들판 바위 틈에 숨어서 지냈었기 때문입니다. 급하게 도망쳐야 했던 다윗은 무기도 먹을 거리도 하나 없이 놉까지 도망쳤습니다. 다윗은 놉에 있는 제사장 아히멜렉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히멜렉은 한나가 기도할 때 곁에 있었던 [엘리] 제사장의 후손입니다. 아히멜렉은 아직 사울이 다윗을 잡아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는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다윗이 거인 골리앗을 죽이고 무수히 많은 블레셋 군인들을 죽인 용맹한 장수임을 분명하게 알고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군대를 거느리고 왔을 장수 다윗이, 갑작스레 아무런 예고도 없이 혼자서 홀연히 나타났으니 무슨 큰 일이 난 줄로 생각하고 아히멜렉은 깜짝 놀랐던 것입니다. 아히멜렉은 다윗에게 물었습니다. “다윗은 당신은 왜 혼자왔습니까? 언제나 당신 곁을 따르던 부하 장수들은 다 어디 갔습니까?” 다윗은 사울 왕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숨긴 채, 숨발력을 발휘하여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왕께서 내게 임무를 주시며 ‘아무도 네 임무와 지시받은 사항을 알지 못하게 하여라’라고 하셨습니다. 군사들에게는 내가 말해 둔 곳에서 만나자고 말해 두었습니다. 그런데 혹시 무얼 가지신 것이 있습니까? 빵 다섯 덩이만 주십시오. 없으면 있는 것만이라도 좋습니다.” 다윗은 마치 자신이 왕이 맡겨진 중대한 비밀임무를 수행중인 것처럼 연기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군대를 대동하지 못한 채, 자기 혼자서 이곳까지 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왕의 비밀 명령을 수행 중이기에 부하들은 약속된 장소에서 다윗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몹시도 굶주렸던 다윗은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빵 다섯 덩이만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만일 가지고 있는 빵이 다섯 덩이가 안 된다면, 있는 것만이라도 달라고 사정했습니다.

이 때 제사장 아히멜렉은 진설병을 다윗에게 내주었습니다. 진설병은 무엇일까요? 성소에는 입구를 기준으로 들어가서 오른편에 상이 하나 준비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 상에다가 안식일마다 모두 열 두 개의 빵을 여섯 개씩 한 칸 씩 포개어 준비하여 올려놓았습니다. 이 열 두개의 빵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열 두 지파에게 주시는 일용한 양식을 상징하며, 동시에 영적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합니다. 진설병을 히브리어로 [레헴 하파님]이라고 하는데요, 이는 “얼굴의 빵”이란 뜻입니다. 진설병은 일상생활 속에서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고, 일상 속에서 경험하는 하나님의 얼굴, 즉 하나님의 현존을 상징합니다. 진설병은 거룩한 것으로 여겨지며, 안식일에 하나님께 드린 이 빵은 일주일간 성소에 놓았다가 다음 안식일에 새 빵과 교체가 되었습니다. 그럼 지난 인식일에 드렸던 빵은 어떻게 했을까요? 그 빵은 버려서도 안 되고, 밖으로 내어가서도 안 되고 반드시 아론과 그의 자손 제사장들이 성소에서 먹어야 했습니다. 율법에서 제사장 외에 먹기를 금지했던 빵을 제사장 아히멜렉이 다윗이 먹을 수 있도록 내준 것이죠. 아히멜렉은 비록 율법에서 제사장만이 먹을 수 있도록 되어 있으나, 다윗처럼 곤경에 처한 이에게 빵을 나눠주는 것이 율법의 정신이라고 해석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히멜렉은 빵을 내주기 전 다음과 같이 다윗에게 말했습니다. “그냥 먹는 보통 빵은 내가 가진 것이 없지만 여기 거룩한 빵은 있소. 군사들이 여인을 가까이하지 않았다면 줄 수 있소.” 아히멜렉은 다윗과 병사들이 율법에 따라 정결한 상태라면, 이 빵을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다윗이 대답했습니다. “출전할 때마다 늘 그랬듯이 우리는 3일 동안이나 여인들을 멀리했습니다. 평범한 임무일 때도 군사들의 그릇들이 거룩한데 하물며 오늘 같은 때야 얼마나 더 깨끗하겠습니까?” 다윗은 자신과 부하들이 평범한 임무를 수행할 때도 성결을 유지했으며,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 떠난 이 여정에는 더욱 성결을 유지하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다윗의 대답을 들은 제사장 아히멜렉은 그제서야 다윗에게 진설병 빵을 건내 주었습니다.

아히멜렉에게 음식을 받아낸 다윗은 이어서 혹시 이곳에 보관하고 있는 창이나 칼이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왕의 명령이 급하여서, 자기가 서둘러 나오는 바람에 칼과 다른 무기들을 가져오지 못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다윗의 이야기가 어딘가 신빙성이 떨어지게 들릴지 모르겠습니다만, 이 당시 다윗은 사울의 장수들 중 가장 유명하며 백성들에게 사랑받는 인물이었습니다. 게다가 거인 골리앗을 쓰러트린 이력이 있기에 아히멜렉은 다윗이 급하게 떠나느라 무기를 못 챙겼다는 말도 믿었을 것입니다. 제사장에게 무기가 있냐고 물어보는 것도 참 희한한 일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생각해 보면 이 당시에는 시도 때도 없이 블레셋과의 전쟁이 발발했기에 제사장의 집에도 무기가 있는 것이 이상할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당시 이스라엘은 아직 대장장이가 없어 사울과 요나단이 가진 칼을 제외하면 무기라고 말할 만한 것이 별로 없는 시대였습니다. 다윗은 큰 기대 없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히멜렉에게 무기가 있냐고 물어봤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히멜렉은 다윗이 이전에 엘라 골짜기에서 쓰러트린 거인 골리앗이 사용했던 칼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당신이 엘라 계곡에서 죽인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이 저기 천에 싸여 에봇 뒤에 있다오. 원한다면 가져가시오. 그것 말고는 여기에는 칼이 없소이다.” 그러자 다윗이 말했습니다. “그만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내게 주십시오.”

놉에서 음식과 무기를 확보한 다윗은 그곳에 머물지 않고 바로 그 날 도시를 떠났습니다. 다윗의 목적지는 [가드]라는 도시였습니다. 놉에서 남서쪽으로 약 45km 떨어진 도시입니다. 다윗이 사울 왕의 병사들을 피해 꽤 먼 거리를 도망친 것이죠. [가드]는 이스라엘에게 속한 땅이 아닙니다. 사실 가드는 다윗이 죽인 거인 골리앗의 고향 땅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의 칼을 들고 골리앗의 고향으로 들어간 셈입니다. 성경은 왜 다윗이 하필이면 가드로 들어갔는지 그 어떤 이유도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왜 다윗이 블레셋 도시로 도망쳤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 이유를 추측해 볼 뿐입니다. 블레셋은 이방인의 땅이기에 사울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입니다. 이스라엘 지역에 숨으면 아무래도 사울이 잡으러 오기 수월하지만, 블레셋 도시에 숨으면 사울이 자신을 잡으러 오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의 땅 가드에 숨은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윗이 가드에 들어갔을 때 그는 예기치 못한 위기를 겪게 됩니다. 가드에 있던 아기스 왕의 신하들이 다윗을 블레셋의 원수라고 규정하며 그를 죽이려 했기 때문입니다. “왕이시여 저 사람은 그 땅의 왕 다윗이 아닙니까? 백성들이 춤추고 노래하며 ‘사울이 죽인 사람은 수천 명이고 다윗은 수만 명이다’라고 말한 그 사람이 아닙니까?” 다윗은 아기스 왕의 신하들이 하는 말을 듣고 아기스 왕이 자신이 다윗인 것을 알게 되면 살아서 돌아가지 못할 것을 깨닫고는 크게 두려워 했습니다. 이에 다윗은 또 다시 기지를 발휘했습니다. 자신이 다윗이 아닌 척하기 위해서 아기스 왕과 그의 부하들 앞에서 미친 척 연기했습니다. 문짝을 손톱으로 박박 긁적거리고, 수염에 침도 질질 흘렸습니다. 이를 통해 다윗은 자신이 다윗이 아니라, 다윗인 척 행동한 미치광이처럼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다윗의 연기에 속은 아기스 왕이 자기 종들에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을 보아라. 이 사람은 미쳤다. 왜 이런 사람을 나에게 데리고 왔느냐? 어디 미친 사람이 부족해서 이런 사람까지 내 앞에서 이런 짓을 하게 하느냐. 이 사람을 내 집에서 쫓아 내어라.” 이렇게 하여 다윗은 또 한 번의 위기를 모면하게 되었습니다.

사무엘상 21장은 사울 왕을 피해 도망자의 삶을 시작하게 된 다윗의 모습을 그려주고 있습니다. 다윗이 얼마나 오랜 기간 동안 사울을 피해 도망자의 삶을 살았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만, 결코 짧은 기간은 아니었습니다. 다윗의 입장에서 보면 끝을 알 수 없는 도망자의 삶이었고, 내일이 보장되어 있지 않은 두려움과 불안함이 계속되는 나날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다윗의 삶을 보며 의아해합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기름을 부으시고 곧장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지 않으셨을까?”, “왜 하나님은 다윗을 사랑한다고 말하시며 그토록 오랫동안 도망자의 삶을 살게 하셨을까?” 앞으로 살펴보겠습니다만, 사무엘상 21장에 나타나는 다윗의 도망자의 초창기 삶을 보면 그가 하나님께 묻는 장면이 하나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제 뒤로 갈수록 다윗은 근거지를 옮길 때,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반드시 하나님께 묻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광야의 학교에 집어넣으셔서 그로 하여금 온전히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뜻에만 따르는 사람으로 훈련시키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원하지 않는 상황으로 우리의 인생을 이끄실 때가 종종 있습니다. 광야를 지나가는 듯이 괴롭고, 끝을 알 수 없는 고통의 터널을 통과하는 것처럼 마음이 무겁고 지치고 힘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도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우리가 이러한 고난을 통과하면서 더욱 온전히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붙들고 살아가도록 성숙하여 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왕으로 세우실 계획을 가지고 계셨지만, 먼저 다윗이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가 되도록 그를 단련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하여 좋은 계획을 가지고 계시지만, 먼저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가 되도록 우리를 단련하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난의 터널은 반드시 그 끝이 있습니다. 다윗처럼 우리 삶이 어려움에 처하고 위기의 순간을 맞이할수록 더더욱 하나님만을 믿음으로 붙잡고 주님만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