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의 핵심 표현은 [기업 무를 자]입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전쟁, 기근, 흉년 등 자연재해와 다양한 이유로 가난해진 사람이 빚 때문에 종으로 팔려가게 되는 경우가 빈번하게 일어났습니다. 레위기 25장 말씀을 보면, 가난한 형제가 빚 때문에 종으로 팔려가게 되면 그의 가까운 친척이 그 빚을 갚음으로써 그를 종의 굴레에서 해방시켜 주어야 했습니다. 또한 가난한 형제가 토지를 팔았을 경우데도 가까운 친척이 그 값을 대신 치름으로써 팔았던 토지를 가난한 형제에게 돌려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기업 무를 자] 제도를 통해서 이스라엘 공동체가 존속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또한 [기업 무를 자]는 형제가 자식이 없이 죽었을 경우, 공동체를 존속 시키기 위하여 가까운 형제 순으로 남겨진 미망인에게 기업을 이을 자를 낳게 해주는 계대 결혼 제도가 포함 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기업 무를 자]는 노예된 자를 해방케 하는 자요, 빼앗긴 땅을 되찾아 주는 자요, 끊긴 계보를 다시금 이어주는 자입니다.
[기업 무를 자]를 히브리어로 [고엘]이라고 부릅니다. 바로 이 [고엘]이 룻기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누가 룻의 [고엘]입니까? 바로 ‘보아스’입니다.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의 권면에 순종하여 보아스에게 자신의 기업 무를 자가 되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자비로운 보아스는 현숙한 여인 룻의 청혼을 받아들였습니다. 룻기 4장은 보아스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이행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보아스는 기업 무를 자로서 룻의 청혼을 받아들였지만 그보다 나오미 가족과 더 가까운 친족이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에게 기업 무를 자의 권리와 책임이 있습니다. 따라서 만일 그 가까운 친족이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이행하겠다고 나선다면, 보아스는 룻과 결혼할 수 없습니다. 그 친족이 룻과 결혼해야 합니다.
날이 밝자마자, 보아스는 자신보다 더 가까운 친족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법적으로 처리하기 위해서 장로 열 사람도 현장에 불렀습니다. 보아스는 가까운 친족이 나오미의 죽은 남편 엘리멜렉의 땅을 되찾아 줄 기업 무를 자의 역할을 할 것인지 의향을 물어보았습니다. 가까운 친족은 죽은 엘리멜렉의 소유였던 땅을 되찾아 주면, 그 땅이 결국에는 자신의 것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자신이 기업 무르는 일을 하겠노라고 선뜻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보아스는 기업 무를 자의 역할은 단지 땅을 되찾아 주는 것 뿐만 아니라, 계대 결혼의 역할도 포함되어 있음을 밝히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즉 땅만 되찾아주면 되는 상황이 아니라, 끊어진 엘리멜렉 가문의 계보를 이어주기 위해서 모압 여인이자 나오미의 며느리인 룻과 결혼해야 함을 추가로 설명했습니다. 그제서야 가까운 친족은 자신이 룻과 결혼하여 아들을 낳게 된 경우, 그 아들이 결국 나오미의 죽은 남편 엘리멜렉의 이름과 기업을 잇게 됨으로써 막상 자신이 갖게 될 기업이 없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결국 가까운 친족은 자신의 기업에 손해가 있을 것을 염려하며 기업 무를 자의 권리와 책임을 보아스에게 양도하였습니다. 자신의 기업에 해가 끼칠까봐 나오미와 룻의 기업 무를 자가 되어 줄 것을 거부한 가까운 친족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그가 처음부터 나오미와 룻을 도와줄 생각이 전혀 없었고, 죽은 엘리멜렉의 소유였던 땅을 탐했을 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신명기 25장을 보면 본래 가난하고 힘들어진 형제의 기업 무를 자가 되기를 거부하는 행위는 얼굴에 침 뱉음을 당할 정도로 공동체에게 모욕을 당할 일이었습니다. 어려움에 빠진 가난한 형제를 보고도 돕지 않고 그의 환난을 외면했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25장 8-10절 말씀을 찾아봅시다. “(신 25:8) 그 성읍 장로들은 그를 불러다가 말할 것이며 그가 이미 정한 뜻대로 말하기를 내가 그 여자를 맞이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노라 하면 (신 25:9) 그의 형제의 아내가 장로들 앞에서 그에게 나아가서 그의 발에서 신을 벗기고 그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이르기를 그의 형제의 집을 세우기를 즐겨 아니하는 자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고 (신 25:10) 이스라엘 중에서 그의 이름을 신 벗김 받은 자의 집이라 부를 것이니라” 만일 어떤 이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거부하는 경우 그의 발에서 신을 벗기고, 그의 얼굴에 침을 뱉고, 그의 이름을 ‘신 벗김 받은 자의 집’이라 부르라고 했습니다. 이는 어려운 형편에 놓인 형제를 돕기 거부한 사람을 경멸하는 뜻에서 하는 행위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환난에 처한 가까운 형제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외면하고 자기 잇속만 챙기는 자들이 수치를 당하게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나오미와 룻의 어려움을 외면한 가까운 친족은 그 이름도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만일 이 사람이 가난한 나오미와 룻을 위해 자비를 베풀었다면 적어도 그의 이름은 기억되었을 것입니다. 형제의 어려움을 외면한 자는 결국 하나님 앞에서 별 볼일 없는 인생으로 남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반대로 하나님께서는 어려움에 처한 형제들을 돌아보고,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형제를 돕고 구원하는 일에 헌신하는 자비로운 자들을 기뻐하십니다. 자비로우신 우리 하나님은 자비롭게 살아가는 자들을 기뻐하시고, 그들에게 풍성한 복을 주십니다. 오늘 본문의 보아스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이 당시에는 법률적 문제를 변개함 없이 확정 짓는다는 의미로 사람이 그 신을 벗어 이웃에게 주곤 했습니다. 신 한 짝을 벗어서 상대방에게 줌으로써 권리 양도를 공식적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또한 신명기 25장에서도 가까운 친족은 자신이 기업 무를 자의 권리를 이행하지 않았기에 신을 벗어야 했습니다. 결국 친족이 벗은 신은 보아스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고, 이제 그는 공식적으로 나오미와 룻의 기업 무를 자가 되었습니다. 이제 보아스는 장로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이 기업 무를 자가 되어 나오미의 죽은 남편 엘리멜렉이 잃어버린 땅을 되찾아 주고, 끊어진 계보를 그들의 이름으로 세워 줄 것을 법적으로 공포하였습니다. 9-10절 말씀을 함꼐 읽겠습니다. “(룻 4:9) 보아스가 장로들과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내가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있던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산 일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고 (룻 4:10) 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맞이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 그의 이름이 그의 형제 중과 그 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아니하게 함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느니라 하니” 지금 보아스가 하는 기업 무를 자의 책무는 그에게 유익한 것이 아닙니다. 나오미와 룻에게 땅을 되찾아 주고, 그들의 가정을 이어갈 생명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보아스와 룻 사이에 태어난 아들은 엘리멜렉 가문의 이름으로 기업을 잇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아스는 하나님의 율법에 기록한 정신대로 자비를 실천하였습니다. 이처럼 자신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경제적 손실을 떠맡으면서까지도 죽은 형제 일레멜렉의 가문을 책임지고 자비를 베푼 보아스를 보며 모든 백성들과 장로들이 함께 모여 크게 칭찬하고 축복했습니다. 11-1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룻 4:11) 성문에 있는 모든 백성과 장로들이 이르되 우리가 증인이 되나니 여호와께서 네 집에 들어가는 여인으로 이스라엘의 집을 세운 라헬과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고 네가 에브랏에서 유력하고 베들레헴에서 유명하게 하시기를 원하며 (룻 4:12) 여호와께서 이 젊은 여자로 말미암아 네게 상속자를 주사 네 집이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베들레헴 사람들은 룻을 가리켜 야곱의 두 아내 라헬과 레와와 같게 되기를 축복했습니다. 이 두 여인으로부터 12지파의 시조인 12아들이 태어났습니다. 룻도 이와 같이 아들들을 낳는 복된 여인이 되기를 축복한 것이며, 동시에 보아스의 가문이 위대한 이름으로 남기를 축복한 것입니다. 11절에 나온 ‘에브랏’이란 이름은 ‘베들레헴’의 옛 이름입니다. 에브랏, 베들레헴은 동의어인 셈입니다. 이처럼 같은 뜻을 가진 단어를 반복함으로써 복이 이 가정 가운데 더욱 풍성하게 넘쳐 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12절을 보면, 이 젊은 여자 즉 룻으로 상속자를 주어 그 집이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축복했습니다. 원래 다말은 유다의 며느리입니다. 다말의 남편이 죽었을 때 유다는 계대 결혼 규례를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다말은 유다로부터 쌍둥이 아들을 나았는데, 그 중 한 명의 이름이 베레스입니다. 베레스는 다말이 계대 결혼을 통해 낳은 아들인 셈입니다. 그리고 베레스는 보아스의 직계 조상이기도 합니다. 12절의 축복은 조상 유다로부터 시작된 베레스의 족보가 보아스 가문을 통해서 계속해서 이어지기를 축복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 축복은 성취되어 보아스의 가문으로부터 다윗이 나오고, 그리고 유다 지파의 사자 곧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게 됩니다. 베들레헴 사람들의 축복의 말대로 보아스와 룻이 결혼하여 유다와 베레스의 족보를 잇게 된 것입니다. 룻기는 독자들에게 이 놀라운 사실을 알리기 위하여 마지막에 다윗의 족보를 기록하였습니다.
베들레험의 흉년, 남편의 죽음, 두 아들의 죽음, 모든 재산을 잃어버림, 빈털털이가 됨. 이처럼 나오미의 눈물, 고통, 아픔으로 시작된 룻기는 이제 나오미의 기쁨가 환희로 그 이야기를 끝 맺게 됩니다. 베들레헴의 여인들은 나오미에게 기업 무를 자를 주신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또한 보아스와 룻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기원했습니다. 룻이 낳은 아들은 나오미에게 생명의 회복자고, 그 노년의 봉양자입니다. 보아스와 룻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의 이름이 오벳입니다. 그가 바로 그 유명한 다윗 왕의 할아버지입니다. 환난에 처한 시어머니 나오미를 외면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사랑으로 돌보았던 여인 룻, 환난에 처한 모압 여인 룻을 외며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사랑으로 돌보았던 멋진 사나이 보아스, 이 두 사람의 기가 막힌 만남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꼐서는 모든 인류가 처한 환난을 외면하지 아니하고, 구원해줄 진정한 기업 무를 자, 인류의 고엘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가운데 보내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환난에 처한 룻을 돌봐 준 보아스가 있었던 것처럼 우리에게는 인생의 환난에 처한 우리에게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그 분이 우리의 잃어버린 슬픔을 회복시켜 주시고, 우리의 끊어진 생명을 다시 소생시켜 주십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와 함께하고 계신 우리의 기업 무를 자, 우리의 고엘 예수 그리스도를 주신 하나님 아버지를 찬양하며, 오늘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따뜻한 사랑의 품 안에서 기쁨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