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은 타작마당에서 보리를 털고 기쁜 마음에 먹고 마시고 잠이 든 보아스 곁에 살며시 누웠습니다. 한 밤 중에 잠이 깨어 일어난 보아스는 룻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룻은 그녀가 보아스에게 온 것은 기업 무를 자의 의무를 보아스가 감당해주기를 바란 의도에서 나온 행동임을 밝혔습니다. 룻이 보아스에게 청혼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보아스는 젊은 룻이 나이차가 상당히 많이 나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을 택하여 준 것에 대해서 놀라하며, 자신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있기에 그 친족에게 기업 무를 자로서의 권한이 있다고 이야기해주었습니다. 만일 그 친족이 기업 무를 자로서의 책임을 지겠다고 하면 어쩔 수 없겠으나, 만일 그 친족이 기업 무를 자로서의 책임을 이행하지 않겠다고 표시하면 자신이 그 책임을 다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사람들은 세상이 각박하다고들 말합니다. 왜냐하면 ‘자기 살 길은 자기가 찾아야 한다’는 것이 세상의 신념이기 때문입니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경제 위기 가운데 그 누구도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생존을 스스로 책임지는 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초조하게 만듭니다. 특히 나오미와 룻과 같이 가진 것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더 큰 어려움으로 찾아옵니다. 이런 각박한 세상 가운데 보아스와 같이 가난한 자들을 생각하고 인애를 베푸는 은인을 만난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각박한 세상 가운데 홀로 살아가는 자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교회 공동체를 주셨습니다. 성도 서로서로가 돌보는 곳이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보아스 되심을 기억하며, 우리들도 주님을 따라 각박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보아스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보아스는 타작마당에 남녀가 둘이 있는 것을 사람들이 보고 오해하지 않도록 룻에게 날이 가장 어두울 때까지 누워 있다가 사람들이 알아보기 어려울 때 떠나도록 조언했습니다. 룻은 미명에 일어나 자리를 떠났습니다. 룻이 가기 전 보아스는 룻의 겉옷에 보리를 여섯 번 되어 지어주었습니다. 이게 정확하게 어느 정도의 양인지 알 수 없습니다만, 젊은 여인인 룻이 어깨에 짊어지고 갔을 정도이니 많은 양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보아스는 계속해서 룻을 자상하게 보살펴 주었습니다. 룻이 집에 돌아오자 밤새도록 그녀를 기다린 시어머니 나오미가 궁금하여 물어보았습니다. “얘야, 어떻게 되었느냐?” 룻은 시어머니 룻에게 보아스가 한 일을 자세히 말했습니다.
1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룻 3:17) 이르되 그가 내게 이 보리를 여섯 번 되어 주며 이르기를 빈 손으로 네 시어머니에게 가지 말라 하더이다 하니라” 여기 ‘빈 손’이란 표현을 주목해 보십시오. 룻기 1장 21절 말씀을 보면, 나오미는 남편을 사별하고 두 아들을 잃어버린 자신의 삶을 보며 비관하며 여호와께서 자신을 빈털털이가 되게 만드셨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녀가 빈털털이라고 할 때 사용했던 히브리어가 ‘레캄’입니다. 그 단어가 룻기 3장 17절에 사용 되었습니다. 룻은 보아스가 어머니께 빈털털이로 돌아가면 안 된다고 말하면서 보리 여섯 되를 담아 주었다고 말했습니다. 나오미는 하나님께서 그녀를 빈털털이가 되게 하셨다고 슬퍼했으나, 하나님께서는 보아스를 통해 그녀의 빈 손에 곡식을 가득 안겨 주셨습니다. 사실 나오미는 그녀의 인생이 빈털털이라고 생각할만큼 많은 아픔이 있었습니다. 남편이 죽었죠, 두 아들이 죽었죠, 재산도 흉년 가운데 모압으로 이주했다가 돌아오면서 다 사라졌습니다. 그러니 나오미가 자신의 삶을 비관적으로 바라 본것도 이해가 갑니다. 우리들도 나오미처럼 우리 인생이 빈털털이처럼 느껴질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인생 앞에서 자신의 무력함과 무지함을 느끼며 좌절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가 계십니다. 보아스가 나오미가 빈손 되지 않도록 룻에게 보리를 여섯 되를 가지고 가도록 한 것처럼,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 인생이 빈 손 되지 않도록 우리를 위하여 지금도 역사하고 계십니다.
나오미는 보아스가 룻에게 준 보리를 통해 그가 룻과 결혼할 의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오미는 룻과 이제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지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보아스는 나오미의 죽은 남편 엘리멜렉과 가장 가까운 친족과 장로들을 성문에 불러 모았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성문은 중요한 재판과 결정이 일어지는 공적 장소였습니다. 보아스는 기업 무를 자로서의 우선 순위가 있는 가까운 친족에게 그가 엘리멜렉의 땅을 사서 나오미에게 돌려줄 것인지 물어봤습니다. 그러자 친족이 말했습니다. “내가 그 땅을 사서 돌려 주겠소.” 가까운 친족이 기업을 무르려 한 것은 나오미를 불쌍하게 여겨서가 아니라 나오미를 봉양하면 ‘땅’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보아스가 또 말합니다. “당신이 나오미의 땅을 사겠다면 죽은 사람의 아내인 모압 여자 룻을 아내로 맞아들여야 하오. 그렇게 해야 그 땅이 죽은 사람 집안의 땅으로 남게 되오.” 이 말은 들은 친족은 나오미의 땅을 사지 않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자신이 모압 여인 룻과 결혼하게 된다면 경제적 손실을 볼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이 가진 나오미의 기업 무를 자로서의 권한을 보아스에게 전달해 주었습니다. 이로써 보아스는 법적으로 나오미와 룻의 기업 무를 자가 되었습니다. 보아스는 나오미를 봉양하고 룻과 결혼함으로써 겪어야 하는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기업을 무를 책임을 지겠다고 자청했습니다. 보아스는 가난하고 어려운 형편에 빠진 나오미와 룻의 삶을 책임지려는 모습을 통해 인애의 정신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오미는 룻에게 보아스가 기업 무르는 일을 다 마치기 전까지는 쉬지 아니할 것이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보아스는 누구를 예표한다고 했습니까? 신약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는 일을 완성하기까지 쉬지 않으십니다.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쉬지 않고 기도하시며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 각박한 세상 속에서 혼자가 아닙니다. 빈털터리 같은 우리의 인생을 가득 채워 주시는 은혜의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 삶을 풍성하게 채워주시는 자비로우신 주님께 감사를 드리며, 우리들도 주님과 같이 형제와 이웃들에게 자비로운 삶을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