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시어머니 나오미는 며느리 룻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1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를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여기 1절에 “안식할 곳”이란 말은 “가정”을 의미합니다. 자기 아들이 죽어버림으로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은 며느리 룻이 새로운 남편을 만나 안정된 생활을 누리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시어머니 나오미입니다. 나오미가 점찍어둔 룻의 새남편은 누구였을까요? 바로 룻에게 자비를 베풀었던 다름 아닌 [보아스]입니다. 2절에 나오미는 보아스가 ‘친족’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여기서 보아스가 친족이란 말은 그가 [기업 무를 자]임을 의미합니다. ‘기업 무를 자’란 무엇입니까? 고대 사회에서 여성은 상속권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죽으면 그의 땅은 아들에게 상속이 됩니다. 아들이 없는 경우에만 딸에게 상속이 됩니다. 나오미는 남편도 아들도 딸도 없음으로 기업 무를 자인 보아스가 땅을 되사주어도 땅을 물려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나오미가 그의 죽은 남편 엘리멜렉의 땅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며느리 룻이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죽은 남편의 대를 이어 땅을 상속 받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되면 룻의 시어머니인 나오미가 아이의 양육자로서 땅에 대한 권리를 갖게 됩니다.
우리는 왜 나오미가 며느리 룻을 다른 사람이 아닌 가까운 친족인 보아스에게 결혼시키려고 했는지 그 배경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보아스는 친족으로써 결혼할 의무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다 이 의무를 이행한 것은 아닙니다. 챙겨야 할 인원이 많아지면 책임져야 할 것이 많았기에, 자신의 경제적 손실을 고려하며 기업 무를 자의 의무를 행하지 않은 사람들도 상당히 많았습니다. 보아스는 기업 무를 자라는 책임은 가지고 있었으나, 룻과 결혼할지 말지는 전적으로 그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3절에 나오미는 룻에게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웃을 갈아입고 타작 마당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3절에 ‘기름’은 오늘날로 말하면 ‘향수’입니다. 룻이 평상시에는 밭에 나가서 땀 흘려 이삭줍기 할 때는 허름하게 입고, 하나도 단장하지 않았겠지요. 어찌 보면 지금 룻이 보아스에게 먼저 청혼하러 가는 셈입니다. 그러니 나오미는 목욕하고, 예쁜 옷 입고, 향내나는 기름을 뿌리고, 보아스를 만나러 가라고 했습니다. 나오미는 룻에게 바로 보아스에게 가지 말고, 그가 먹고 마시고 잠자리에 들었을 때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들어가서 누우라고 했습니다. 보아스가 잘 때 그의 발쪽에 가서 누워 있으라는 말입니다.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룻은 젊은 과부입니다. 그런데 그녀가 목욕하고 예쁘게 꾸미고 향수까지 뿌리고 유대인 남자가 잠자고 있는 곳에 가서 몰래 발치 이불을 덮고 눕는다? 일이 잘못되면 보아스에게 음란한 여인이라 오해받아 돌에 맞아 죽을 수 있는 위험한 일입니다. 그러나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의 말에 순종했습니다.
룻은 나오미의 말에 따라 타작 마당에 내려갔습니다. 추수를 끝낸 보아스는 먹고 마신 후 기분이 좋아져서 곡식 더미 곁에 누워 잠이 들었습니다. 룻은 조용히 그에게 다가가 이불을 들고 그의 발치에 누웠습니다. 한밤 중에 잠이 깬 보아스는 자신의 발치에 어떤 여자가 누워 있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룻 3:9) 이르되 네가 누구냐 하니 대답하되 나는 당신의 여종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이는 당신이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하니” 보아스가 묻습니다. “누구시오?” 룻이 대답합니다. “저는 어른의 종, 룻입니다. 어른의 이불로 제 몸을 덮어주십시오. 주인님은 저희 가족의 땅을 사서 돌려주실 분입니다.” 룻은 이와 같은 대답을 통해 시어머니 나오미의 죽은 남편 엘리멜렉의 땅을 돌려줄 친족, 즉 기업 무를 자인 보아스에게 자신이 이 밤에 찾아온 온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룻은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라는 말을 통해 자신이 보아스와 결혼할 의사가 있음을 표현했습니다. 이에 대한 보아스의 답변을 봅시다. 10절입니다. “(룻 3:10) 그가 이르되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가난하건 부하건 젊은 자를 따르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 룻의 설명을 다 듣고 난 후, 보아스는 룻이 자신에게 청혼한 동기가 시어머니 나오미가 잃어버린 기업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보아스는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를 모시기 위해서 그녀의 친족과 조국을 버리고 낯선 땅에 함께 찾아온 선한 여인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시어머니 나오미를 위해 룻이 자신에게 청혼까지 하는 것을 보며, 그녀가 시어머니에게 얼마나 큰 인애를 베풀고 있는지 깨닫고 보아스는 감격했습니다. 게다가 나오미의 친족 즉 기업 무를 자는 보아스 말고도 다른 젊은 남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여인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의 말에 순종하여 자기의 아버지뻘 되는 나이 많은 보아스를 선택했습니다. 보아스는 이러한 룻의 사랑을 보고 감격한 것입니다. 보아스는 두려워 떨고 있을 룻의 마음을 안심시켰습니다. 11절입니다. “(룻 3:11) 그리고 이제 내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 “이제는 걱정하지 마시오. 당신이 바라는 것을 다 해 주겠소. 당신이 착한 여자라는 것은 우리 마을 사람들이 다 알고 있소.” 보아스는 룻을 “현숙한 여인”이라고 불렀습니다. 잠언 31장에서 나오는 모든 남자들이 사모할 바로 그 ‘현숙한 여인’과 같은 단어입니다. ‘현숙한 여인’이란 유능한 여인, 힘이 센 여인입니다. 즉 성실하고 부지런한 여인을 가리킵니다. 보아스는 이미 룻이 그의 밭에서 쉬지 않고 열심히 땀 흘려 이삭줍기 하는 모습을 다 봤습니다. 게다가 룻이란 여인이 얼마나 현숙한 여인인지 이미 동네 사람들이 다 인정하는 바입니다. 보아스는 룻의 성실함에 대하여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라고 말했습니다. 이와 같은 말을 통해 보아스는 두려워하고 있을 룻을 안심시키며 그녀를 치켜 세워주었습니다.
보아스는 자신이 나오미의 친족 됨을 인정하면서도, 자신보다 나오미와 더 가까운 친족이 있음을 언급했습니다.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의무를 포기하지 않는 한, 법적으로 보아스가 도와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보아스는 룻에게 아침이 되면 자신 보다 가까운 친족이 땅을 사서 나오미에게 돌려줄 뜻이 있는지 알아보겠다고 말했습니다. 만일 그 사람이 나오미와 룻을 책임지겠다고 하면 그 사람의 뜻을 따르고, 만일 그가 책임지지 않겠다고 하면 자신이 나오미와 룻을 책임지겠다고 했습니다. 보아스에게는 기업 무를 자로서의 1차적 책임이 없었습니다. 그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이 의무를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아스는 자신이 나오미와 룻을 돌보겠다고 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나오미와 룻과 같이 아무도 책임지려고 하지 않은 소외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보아스와 같이 의무가 아니어도 이웃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책임지는 것이 참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셔야 되는 아무런 의무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입니다. 의무를 뛰어넘어 자발적인 마음으로 사랑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