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80편의 표제를 보면 “소산님에돗에 맞춰 지휘자를 따라 부른 노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소산님에돗”이란 말은 ‘언약의 백합들’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이 이름이 당시 히브리인 대중에게 잘 알려진 곡조였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이 시편을 가사로 삼아, 소산님에돗의 곡조에 맞추어 시를 낭송했던 것이죠. 본 시가 언제 기록되었는지 표제에 나와 있지는 않습니다만, 시의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앗수르에 의해 북이스라엘이 멸망한 이후에 기록된 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절을 보면, “요셉을 양 떼 같이 인도하시는 이스라엘의 목자여” 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북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이름입니다. 2절을 보면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므낫세” 세 지파가 언급되었는데, 이 역시 북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지파들입니다 . 따라서 오늘 본문은 북이스라엘에 대한 내용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시인은 북이스라엘의 목자가 되신 주님께서, 속히 오셔서 그들을 구원해 주시고, 회복시켜 주시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목자”라고 불렀습니다. 목자는 양 떼를 먹이고, 보호하고, 인도해 줍니다. 특별히 목자는 사자나 늑대와 같은 맹수들로부터 양을 보호해 줍니다. 시인은 이스라엘의 목자 되시는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을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해 주시기를 간구했습니다. 또한 1절에 시인은 하나님을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자여”라고도 불렀습니다. 그룹은 천사를 가리킵니다. 지성소 안에 있는 언약궤의 뚜껑인 속죄소 위에는 그룹의 형상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셨습니다. 시인은 이처럼 성전에서 그의 백성 이스라엘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께서 다시금 이스라엘에게로 돌아오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시는 이여”하고 하나님을 불렀습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어둠과 절망에 처한 북이스라엘에게 빛을 비추사 대적들을 물리치고 다시 한 번 이스라엘을 보호하시고 회복시켜 주시기를 구했습니다.
4절에 시인은 하나님을 향하여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하고 불렀습니다. 이 표현은 ‘수많은 천사들의 수종을 받는 위대하신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시인은 이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속히 천군 천사를 통하여 자신들을 핍박하는 악인들을 심판하여 주시고, 주의 백성들을 구원하여 주실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미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의 공격에 의해 무너졌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원수들의 칼에 찔려 죽었습니다. 이런 끔찍하고 비참한 상황 속에서 시인은 하나님께서 그의 진노를 거둬 주실 것을 간구했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주님의 진노가 이스라엘에 임하니 눈물이 양식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진노로 인해 이스라엘은 눈물을 마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본래 성경에서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이시는 분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북이스라엘과 같이 우상을 숭배하며 주님을 떠나 살면, 하나님께서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여 주시는 것이 아니라, 고난의 눈물을 마시게 끔 하십니다. ‘적은 눈물’도 아니고 ‘많은 눈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님을 떠나 배신하고 배역한 길을 택한 이스라엘이 극심한 고난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6절을 보면 “우리를 우리 이웃에게 다툼 거리가 되게 하시니”라고 했는데, 이는 주변 나라들이 이스라엘과 맹렬하게 다투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자, 평화가 사라지고 주변국들과의 전쟁이 빈번하게 일어났습니다. 여기에서 시인이 언급하는 원수들은 이스라엘 주변에 있던 모압, 암몬, 에돔, 수리아와 같은 나라들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이 앗수르의 공격으로 멸망하자, 주변 국가들이 이스라엘을 비웃고 있습니다.
8절부터는 포도나무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비유로써 여기서 포도나무는 이스라엘을 의미합니다. 8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노예로 살아가던 포도나무 즉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고 그들을 가나안 땅에 심으셨습니다. 농부가 포도나무를 가꾸듯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친히 돌보셨습니다. 9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포도나무를 가꾸어 주시니, 포도나무가 땅 속 깊이 뿌리 내리고 온 땅에 퍼져 가득 찼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여호와꼐서 주신 복으로 말미암아 크게 번영하였음을 의미합니다. 10절을 보면, 포도나무 잎새가 큰 산들을 덮고 그 가지가 튼실한 백향목처럼 뻗었습니다. 11절을 보면, 그 뻗은 가지는 서쪽으로는 지중해에 이르고, 그 넝쿨은 동쪽에 있는 유프라테스 강까지 이르렀습니다. 이스라엘이 강성해져 감에 따라 영토가 확장되어 가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한참 무럭무럭 성장해 가던 포도나무에 대한 반전이 12절부터 일어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태까지 포도나무를 보호하던 담을 제거하셨습니다. 여기서 ‘담’은 이스라엘을 보호하시던 하나님의 손길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전에는 담이 있어 아무도 포도나무를 건들지 못했는데, 이제 담이 제거되니 지나가는 사람마다 모두 포도 열매를 따 먹습니다. 하나님께서 보호하실 때는 그 어떤 원수도 감히 이스라엘을 넘보지 못했는데, 이제 하나님께서 그 보호의 손길을 거두시니 열방이 이스라엘을 공격합니다. 13절을 보니 숲 속의 멧돼지들이 포도 덩굴을 짓밟고, 들짐승들이 그 열매를 먹어 치우고 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멧돼지와 들짐승들 모두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침략하는 이방 민족들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짓밟는 야생동물들 앞에 포도나무에게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담이 없는 포도나무는 야생동물들에게 속수무책으로 짓밟히고 열매를 따먹힐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을 보호해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가 떠나자, 이스라엘은 열방에게 아무런 힘없이 파멸 당해 버렸습니다.
14절에 시인은 이스라엘의 보호자 되시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어서 다시 돌아와 주실 것을 간구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라는 표현이 계속 반복됩니다. 시인은 의도적으로 이 표현을 반복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맹수들 앞에 서 있는 포도 덩굴처럼, 적들의 공격 앞에 무력합니다. 당시 북이스라엘을 공격하던 앗수르는 근동 최강의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북이스라엘을 앗수르의 손에서 건질 수 없었습니다.
15절에 시인은 지금 적군에 의해 불타 무너져 내리고 있는 북이스라엘과, 수많은 사람들이 칼에 찔려 죽어가는 저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친히 심으신 포도나무임을 언급하며 인자를 베풀어 주실 것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시 80:16) 그것이 불타고 베임을 당하며 주의 면책으로 말미암아 멸망하오니” 시인은 분명 북이스라엘이 불타고 원수에 손에 멸망한 것이 주님의 면책, 즉 북이스라엘의 죄악에 대한 주님의 꾸짖음 때문이라고 명확하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17절에 시인은 이스라엘을 힘 있게 만들어 주셨던 하나님의 구원의 손을 다시 한번 이스라엘에게 얹어 주실 것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주님의 구원하심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한번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주님을 찬양케 해달라고 간구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 면책을 받아 큰 고난을 당하고 있다 할지라도 여전히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기에 늦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며 시인처럼 주님의 얼굴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언제라도 주님께 돌아오면,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또 다시 우리의 목자가 되시고, 깊게 뿌리 내리고 많은 열매 맺는 포도나무처럼 우리 삶을 다시 한번 풍성케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주님을 떠난 자는 망하고, 주님께 돌아온 자는 은혜를 얻는다는 것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우리 모두 목자 되신 주님을 믿음으로 붙들고 살아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