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13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나라 (요한복음 18장 28-38절)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째 부인하자 곧이어 닭 울음소리가 울렸습니다.  이 닭 울음소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날이 밝았음을 알리는 울음소리였습니다. 간밤에 안나스에게 심문 받으신 예수님은 곧바로 대제사장 가야바가 있는 곳으로 끌려 가셨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의 저자 요한은 예수님께서 가야바에게 심문 받은 사건은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안나스의 심문과 가야바의 심문 둘 다 재판관만 바뀌었지 둘 다 예수님을 잡아 죽이기 위한 허위 재판에 불과했습니다.

28절 말씀을 보면, 지금 이 모든 일이 일어난 시간을 “새벽”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이른 아침을 의미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마태복음 27장을 보면 예수님은 안나스와 가야바에게 심문 받으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심문을 받기 전 산헤드린 공의회에게도 심문을 받으셨습니다. 본래 이 당시 법에 따르면 산헤드린 공의회는 밤에 소집될 수 없었고, 설령 소집되어 구형이나 다른 선고가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그 다음 날 재심을 열어야 한다는 공의회 법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야바와 산헤드린 회원들은 예수님을 사형시키기 위해 법적 절차를 완전히 무시하고, 한 밤중에 예수님을 체포하여 그를 심문하고, 밤이 새기도 전에 산헤드린 회의를 소집하여 예수님에 대한 사형을 결의하고, 서둘러 빌라도에게 보내어 결국 십자가형을 받도록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유대인 종교지도자들은 정해진 법적 절차를 위반해가면서까지 예수를 죽이려 했습니다.

이른 새벽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결박하여 로마 총독 빌라도가 머물고 있는 관정에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관정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기다렸습니다.  몇 일 후면 유대인 최고의 명절인 유월절입니다. 유대인이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는 것은 부정한 일이기에, 만일 유대인인이 이방인인 총독 빌라도의 관정에 들어가게 되면 부정하게 되어 유월절 때 음식을 먹을 수도 없게 되고, 유월절 절기 자체에 참여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됩니다. 그래서 본문 28절 말씀을 보면,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끌고 총독 빌라도가 있는 관정 앞까지는 갔으나, 더럽힘을 받지 않으려고 이방인인 빌라도의 관정 안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외골수적인 종교생활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였음으로 유대인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그는 수로를 건설하기 위해 성전의 창고에서 돈을 빼내어 사용했기에 유대인들이 매우 싫어했다고 합니다. 빌라도의 총독 재임 시절에 크고 작은 폭동들이 수차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로마 황제로부터 총독으로 임명 받고 파견된 빌라도의 입장에서 유다 지지역에서 폭동들이 자주 일어나는 것은 매우 골치 아픈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지금은 시기상으로 빌라도와 로마 군대가 일년 중 가장 예민한 유월절 시기입니다. 유월절이 어떤 절기입니까? 애굽에서 노예로 살아가던 유대인들이 애굽의 속박에서 자유케 된 것을 기념하는 중요한 명절입니다. 안 그래도 로마 제국을 미워하고 자유를 되찾기를 열망하는 유대인들이니,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수도 예루살렘에 모인 유월절에 또 다른 반란이 일어나지 않을까 염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른 새벽 수많은 유대인 무리가 예수님을 끌고 관정 앞에 모이자 총독 빌라도는 폭동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염려하며 직접 관정 밖으로 나가서 유대인들에게 어찌된 영문인지 질문했습니다. “너희는 이 사람을 무슨 일로 고소하려는 것이냐?” 통상적으로 유대인들은 아무리 동족 유대인이 싫어도 그들이 증오하는 로마 사람에게 동족을 넘겨주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주는 장면을 통해서 우리는 그들이 예수님을 얼마나 미워하고 제거하고 싶어했는지 볼 수 있습니다. 빌라도의 질문에 30절에 유대인들이 대답합니다. “이 사람이 범죄자가 아니라면 우리가 총독님께 그를 넘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구체적인 범죄가 무엇인지 말하지 않고, 단지 예수님을 범죄자라고 지칭하였습니다. 지금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죄인이라고 규정한 이유는 예수님이 그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여기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죄목은 로마법에 해당 사항이 없습니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예수가 로마 제국에 대하여 반역의 음모를 꾸미고 있는 범죄자라는 인식을 빌라도에게 심어주어 그가 예수를 죽이게 끔 만들려고 했습니다.

비록 유대인들은 로마의 속국이었으나, 앞에서 살펴보았던 대제사장 가야바의 재판이나 산헤드린 공의회의 재판이 있었습니다. 또한 이를 통해서 유대인들의 도덕적 삶과 사회 질서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빌라도는 유대인들이 예수를 대려다가 그들이 재판을 직접 열면 되지 않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31절을 봅시다. “(18:31)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그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나이다 하니” 빌라도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자극하지 않기를 원했고, 동시에 민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들이 자치적으로 예수님에 대한 재판을 열 것을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재판에는 피고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권한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종교 지도자들은 빌라도가 예수를 사형시켜 그를 자기들 대신 죽여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물론 우리가 성경을 계속해서 읽어가면 로마의 법에 호소하지 않고도 유대인들이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고 순교에 이르게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스데반 집사를 돌로 쳐 죽인 사건, 헤롯 왕이 사도 야고보를 재판 없이 칼로 목을 배어 죽인 사건이 가장 대표적입니다. 따라서 자신들에게는 피고에게 사형 선고를 내릴 권한이 없다고 말한 종교지도자들의 말은 핑계에 불과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빌라도에게 예수를 사형에 처할 것을 요청했을까요? 지금 백성들 중에는 예수가 메시아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그의 추종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따라서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를 직접 죽이면 그를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라고 믿는 유대인들의 큰 불만과 저항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방 사람인 총독 빌라도가 예수를 죽이면 그 누구도 종교 지도자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로마 사람들이 법적 절차를 통해 예수를 죽이게 되면 자신들은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를 죽인 피값을 직접 치르지 않아도됩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로마 제국에 대항했던 죄수들에게 주어졌던 십자가형에 죽게 된다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었던 사람들의 마음을 돌이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런 여러가지 정치적, 종교적, 상황적인 이유들로 인해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결박하여 빌라도에게 데리고 온 것입니다.

32절을 봅시다. “(18:32) 이는 예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이 말씀은 유대인들이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사형법인 돌에 맞아 죽는 것이 아니라, 로마인의 사형법인 십자가형에 처해 죽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지금 겉으로 보면 예수님의 죽음이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음모에 의한 피할 수 없는 강제적 죽음 같아 보이지만, 실상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유월절날 모인 유대인들의 민란과 폭동을 걱정한 빌라도는 하는 수 없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에 들어가 직접 주님을 심문했습니다. 33절을 봅시다. “(18:33) 이에 빌라도가 다시 관정에 들어가 예수를 불러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빌라도의 이 질문은 “당신이 정말 유대인의 왕이십니까?”하는 의미로 정중하게 묻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네 까짓 게, 너 같은 자가 어찌 유대인의 왕이라고 할 수 있느냐?”하는 조롱식의 질문이었습니다. 또한 이 물음을 통해 자신을 유대인이라고 주장하는 초라한 예수님을 위험한 반역자라고 간주하며 새벽 일찍부터 자신의 법정에까지 끌고 와서 고소한 유대인들을 동시에 조롱하는 것입니다. 빌라도의 조롱스러운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을 봅시다. 34절입니다. “(18: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냐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네게 한 말이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빌라도의 생각이나 의중을 주님께서 몰라서 물어보신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바르게 알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질문의 성격을 밝히셨습니다. 만일 빌라도가 예수님을 단순히 정치적, 군사적 왕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예수님의 대답은 ‘아니다’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빌라도가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아로서의 왕인가를 묻는 것이라면 예수님의 대답은 ‘그렇다’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답변에 대한 빌라도의 반응을 봅시다. 35절입니다. “(18:35)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먼저 빌라도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유대 사람이 아니다!” 먼저 빌라도는 자신이 유대인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며 자신은 예수님이 진짜 유대인의 왕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것을 나타냈습니다. 또한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종교에 대해서 일어난 복잡한 문제에 대해서는 간여할 의사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나타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빌라도는 예수님께 또 다시 물었습니다. “네 동족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다. 네가 저지른 일이 대체 무엇이냐?” 빌라도는 도대체 예수가 어떤 심각한 범죄 행위를 저질렀기에 저렇게 많은 유대인들과 심지어 대제사장들과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를 없애지 못해 안달이 났는지, 왜 예수님을 극도로 혐오하며 죽이려고 하는지 궁금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36절입니다. “(18: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예수님은 분명 그가 왕이시지만, 주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속한 것은 힘과 폭력으로 탐욕을 이루려 하는 세력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의 나라는 이러한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 뿌리내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의 백성을 이 죄와 어두움의 세상 나라에서 구원하시고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로 옮기십니다.

         이번에는 빌라도가 감탄하며 다시 한번 예수님께 질문했습니다. “그럼 네가 왕이구나?” 빌라도는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이 고소한 것처럼 지금 이 세상 유대나라의 왕이라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유대인들의 고소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내심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빌라도가 두 번째 질문한 것에 대하여 주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왕 되심을 밝히 선포하셨습니다. 37절을 봅시다. “(18:37)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예수님은 진실로 하나님 나라를 다스릴 왕이십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증언하러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친 핵심 사상이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 곧 구원자이심을 믿음으로 받아 들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살아가는 자가 곧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됩니다. 예수님은 이 진리의 음을 증거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결국 빌라도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진리”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한 후, 예수님은 십자가형에 처할 아무런 잘못도 없는 ‘무죄’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고소할 어떤 근거도 찾지 못했고, 유대인들의 고소가 잘못된 것임을 분명하게 밝혀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알다시피 이제 조금 있으면 총독 빌라도는 자신의 말을 뒤엎고 아무런 잘못과 죄가 없으신 예수님을 결박하여 채찍질하여 때리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도록 사형에 처하였습니다. 결국 아무런 죄가 없으신 의인이신 예수님께서 불의한 재판과 불의한 고통과 불의한 죽임을 당하신 것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이 모든 고난과 환난을 당하시고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 주님의 말씀대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왕 되십니다. 주님은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써 진리를 증거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해주신 진리의 가르침, 진리의 말씀을 듣고 살아가는 자들은 세상의 나라에서 하나님 나라로 옮겨가게 됩니다. 구원을 받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을 위하여 이 모든 모욕과 고통과 심지어 십자가 처형의 죽음까지도 대신 짊어지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 오늘 이 하루도 찬양과 감사를 드리며 살아가는 복된 하루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