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18 일상에서 시작되는 거룩 (레위기 11장 24-47절)

레위기 11장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지 못하는 부정한 동물들이 나옵니다. 네 발 달린 육지 동물, 날개가 달린 조류, 그리고 곤충 가운데 먹을 수 있는 정한 동물과 먹지 못하는 부정한 동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29절에는 땅에 기어 다니는 길짐승 가운데 부정한 동물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두더쥐, 쥐, 도마뱀, 카멜레온 같은 것은 부정하여 먹을 수 없습니다. 심지어 이런 부정한 것들의 시체가 닿으면 그것도 부정해 집니다.

32절을 보면, 이런 부정한 동물의 주검이 나무 그릇에 닿거나 의복에 닿으면 저녁 때까지 물에 담그어 놓아야 합니다. 오늘날이야 웬만한 가정 집에 그릇은 여분이 있어서, 이 그릇이 없으면 저 그릇 쓰면 됩니다. 그러니까 한 그릇이 부정해지면 다른 그릇 사용하면 됩니다. 그러나 광야를 이동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뜩이나 짐도 많은데 많은 그릇을 가지고 다녔을 리 없지요. 그러니까 부정해진 그릇을 물에 담그어 놓는 것은 커다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그릇이란 음식을 담아 놓는 그릇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집에서 사용되는 여러가지 도구들과 가구들도 포함됩니다. 따라서 요긴한 도구나 가구들을 사용하지 못하고 저녁까지 물에 담그어 놓아야 한다는 것은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의복도 마찬가지 입니다. 오늘 우리가 옷장에 걸려 있는 여벌의 옷을 갈아 입듯이 의복이 많지 않습니다. 레위기는 지금부터 약 3천 5백년 전 이야기 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는 단 벌의 옷으로 생활하는 경우도 많았을 것입니다. 따라서 부정해진 옷을 하루 종일 물에 담그어 놓는 것도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룩하게 구별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부정해진 나무 그릇과 옷을 저녁까지 물에 담그어 놓았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기 위해 그 어떤 불편함도 그 어떤 희생도 감수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부정한 것이 그릇이나 의복에 닿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죄가 우리 삶에 나타나는 것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죄는 조금만 방심해도 어느 새 눈덩이처럼 불어나 우리 삶을 파괴시킬 만큼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일상 속에서 조금 불편할지 몰라도, 거룩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수고의 삶을 감수해야 합니다.

33절을 보면 만약 부정한 동물이 닿은 것이 질그릇이면 그것을 부정하게 여겨 그 그릇을 깨뜨려 버리라고 했습니다. 질그릇 즉 토기 그릇을 깨트리는 것은 얼마나 아깝습니까? 어떤 분들은 그릇 모퉁이 부분이 조금 깨졌거나 금이 가도 아까워서 버리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데 까지 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계속해서 이동하는 생활을 했다는 전제를 해 볼 때, 사기 그릇을 제작하거나 구매하기가 쉽지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따라서 사기 그릇은 깨트리기 아까운 것이죠.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부정한 짐승이 닿으면 부정한 것으로 여겨 반드시 깨트려버리라고 하셨습니다. 저녁까지 물에 담그어 놓으면 다시 사용한 나무 그릇과 다르게 질그릇은 다시 사용하지 못하도록 깨트려야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죄를 끊어 버림이 마치 이 질그릇을 깨트리는 것과 같아야 합니다. 우리의 영혼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들은 무엇이든지 아깝게 여기지 않고 깨트려 버려야 합니다. 그릇이 아까워서 깨트리지 못한 사람들이 있듯이, 오늘날 어떤 분들은 하나님께서 끊어내라고 말씀하시는 죄악 가운데서 돌아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죄들은 습관은 이제 과감하게 너의 삶에서 잘라내고 끊어내라”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죄 끊어 버리는 것이 너무 아까운 거에요. 죄가 주는 달콤함과 그 유혹에 넘어가서 죄를 끊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죠.

부정해진 질그릇을 깨트려 버리는 모습은 죄를 해결하기 위해 경제적 손해도 감수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때로는 하나님께 거룩하게 살기 위해서 경제적인 손해도 봐야합니다. 그러나 돈이 아깝다고 해서 죄를 버리지 못하면 결국 그 죄가 우리 영혼의 올무가 되어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방해합니다. 우리에게 어떠한 경제적, 시간적, 물질적 손해가 따르더라도 반드시 거룩함을 지키기 위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삶의 정결함을 회복하고 그 거룩함을 지켜 내는 것을 가장 큰 우선순위로 삼기를 원하십니다.

질그릇을 깨트리기가 아까워서 부정해진 질그릇을 아직도 갖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하나님께서 끊어내라고 말씀하고 계신 죄가 있음에도 죄를 끊음으로 인해 오는 정신적, 경제적, 물질적 손해를 생각하며 계속해서 죄와 함께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은 부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게 사는 것입니다. 부정해진 그릇을 깨트리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거룩함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어떤 손해도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하나님의 구별된 백성으로 살 수 있어야 합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44절과 45절에 두 번씩이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라는 말씀을 반복해서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 삼으시려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기 위해서 애굽의 노예로 살아가던 그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따라서 이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따라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할 의무가 주어졌습니다.

여기서 ‘거룩하다’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코데쉬’라고 합니다. ‘코데쉬’라는 단어는 ‘분리하다’, ‘구분짓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거룩하다’는 것은 세상의 더러운 것들 부정한 것들로부터 자기 자신을 깨끗하게 보전함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세상의 죄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고, 우리 영혼의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서 성결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을 벗 삼아 살아갈 때 성도들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우리가 거룩하게 구별되어 있을 때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 되어 주십니다. 그러나 성도가 죄를 지어 죄악에 오염되어 있을 때 하나님의 적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할 수 있는 대로 죄를 남겨두지 말고 끊어버려야 합니다. 죄를 짓고 에덴 동산을 떠나야 했던 아담과 하와는 그 이후 얼마나 후회 했을까요? 그들은 선악과를 따먹는 죄를 지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니 되돌아 갈 방법만 있었다면 다시 그 때로 돌아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누리며 행복하게 살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세상에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지은 죄를 안 지은 것처럼 만들 수는 없습니다. 모든 인류는 하나님과 원수가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는 죄로 인한 저주와 절망 속에서 죽음만 기다리는 인류를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죄 지은 사건에 대한 사함을 받습니다. 이는 단순한 용서가 아닙니다. 유죄 판결을 받고 사형에 처해야 하는 죄수가 무죄 판결을 받고 자유의 몸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은혜 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레위기 11장에 나오는 먹어서는 안 되는 부정한 동물들의 목록을 보며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이 가진 자유를 제한하고 속박하는 존재라고 잘못 이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거룩한 삶을 살라고 말씀하시는 이유는 우리가 가진 자유를 빼앗거나 생활을 억누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세속적인 삶을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과 구별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의 법이 없는 세상 사람들은 무질서한 삶을 삽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질서에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할 때 우리들은 거룩한 삶을 통해 새롭게 변화되고 구별된 하나님의 참 백성으로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어떤 물고기들은 깨끗한 상류에서만 생활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더러운 죄에 물들어 버리면 이미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은 죽게 됩니다. 우리의 영혼도 파괴되어 버리고 맙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우리가 생명을 얻고 더 풍성하게 누리기를 원하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들에게 거룩한 백성으로 살 것을 요구하고 계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거룩하신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거룩한 삶을 사는 것만이 유일한 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천국 백성으로 삼으시려는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오늘도 말씀으로 우리들을 거룩하게 훈련시키고 계십니다. 주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