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11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시리즈 (9) 하나님의 섭리 (2)

“(창 2: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창 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첫째날은 빛을 만드시고, 둘째날은 궁창을 만드시고, 셋째날은 바다와 땅 그리고 식물을 창조하셨습니다. 넷째날은 해달별을, 다섯째날은 새와 물고기를, 여섯째 날은 짐승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창조 사역의 클라이막스에 마지막으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창조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피조물 중 오직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가진 특별한 위치는 ‘하나님의 창조’에서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를 통해서도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만물 중 오직 인간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두 당사자가 서로를 위해 어떤 일을 하기로 합의하여 이루어진 협약을 가리킬 때는 ‘contract’(계약)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하나님께서 인간과 맺으신 협약은 ‘covenant’(언약)이라고 부릅니다. 인간이 다른 사람과 맺는 ‘계약’, 하나님께서 인간과 맺으시는 ‘언약’, 이 두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점이 있습니다.

인간끼리 맺는 계약의 경우, 두 당사자가 서로가 원하는 바를 조율하며 계약 사항들을 검토합니다. 그리하여 두 당사자 모두가 원하는 방향으로 계약이 진행될 때 비로서 계약이 성립합니다. 다시 말하면, 만일 계약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두 당사자 모두 계약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쉽게 예를 들면, 집을 계약하는 모습을 생각해 봅시다. 집을 사러 온 사람의 입장에서는 집이 마음에 안 들면 사지 않아도 되고, 집 주인의 입장에서도 buyer가 제시한 금액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집을 팔지 않아도 됩니다. 두 사람 사이의 계약은 강제적인 것이 아니라 선택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간과 맺으신 ‘언약’의 경우는 다릅니다. 온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일방적으로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인간에게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거부할 수 있는 선택권이나 자유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인간의 입장에서 불합리하거나, 불공평한 것은 아닙니다. 그릇을 제작하는 토기장이가 어떤 모양의 그릇을 만들 것인가, 어떤 용도의 그릇을 만들 것인가를 결정하는 선택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그의 피조물인 인간과 언약을 맺으실 때,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대로 우리의 선택적 의지와 상관없이 언약을 맺으실 수 있는 권세를 갖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이 마음에 안 든다고 임의로 언약을 해지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 아래 놓여 있습니다.

다시 인간이 다른 인간과 맺는 계약에 대해서 이야기해 봅시다. 계약의 경우, 두 당사자가 계약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 계약의 내용을 얼마든지 변경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집을 사고 팔 때 buyer와 seller가 계약 내용을 조율해가며 서로가 원하는 지점에서 계약을 변동시키기도 합니다. 집을 팔 때 집주인은 가격을 낮춰 줄 수도 있고, 집을 사는 사람이 집주인의 요구에 따라 돈을 더 낼 수도 있습니다. 또는 집주인에게 페인트를 새롭게 칠해줄 것, 바닥을 마루로 바꿔 줄 것과 같은 추가적인 내용들을 요청할 수도 있습니다. 즉 계약은 당사자들이 서로의 이익에 따라 계약 내용을 얼마든지 수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간과 맺으신 언약의 경우는 다릅니다. 인간이 하나님께서 맺으신 언약의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임의로 그 언약을 파기하거나 언약의 내용을 수정할 수도 없습니다. 오직 언약의 주권자 되시는 하나님만이 언약의 내용을 결정하실 수 있습니다. 언약의 당사자가 누구인지, 어떤 내용들이 언약에 들어갈 것인지, 언약 위반시 어떤 형벌이 취해질 것인지 등 언약에 관련한 전반적인 내용을 오직 하나님께서 홀로 결정하실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하나님과 인간이 맺은 언약이 부당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언약을 파기할 선택권도 없고, 언약의 조건이나 내용을 수정할 권리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 하나님께서 인간과 맺으신 언약이야말로 인간에게 있어 가장 큰 축복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이 세상 우주 만물 모든 피조물 가운데 오직 인간만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과 언약을 맺으신 이유는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 하나님은 악덕업주와 같이 인간을 부려먹거나, 잔인한 범죄자와 같이 인간이 억울하거나 부당한 일로 고통 당하는 하는 모습을 기뻐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선하시고 정의로우신 분이십니다. 따라서 그 분은 인간이 가장 행복하고 기쁘고 복된 길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인간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인간과 맺으신 언약은 불합리하거나 불공정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엄청난 축복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인간과 언약을 맺으셨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축복 아닙니까? 우리가 개미나, 메뚜기 같은 곤충들과 언약을 맺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 곤충 입장에서는 엄청난 은혜 아닙니까? 하물며 온 천지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흙으로 빚어 만드신 유한한 인간과 언약을 맺으셨다는 것은 놀라운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최초의 인간 아담을 만드시고 그와 함께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창세기 2장 16-17절 말씀을 쉬운성경 번역으로 함께 보겠습니다. “(창 2:16) [쉬운성경 번역]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명령하셨습니다. “너는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를 마음대로 먹어라. (창 2:17) [쉬운성경 번역] 그러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지 마라. 만약 그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창조하시고 그를 에덴 동산에 두시고, 그 동산을 돌보고 지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한 가지 사항을 명령하셨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만일 아담이 선악과의 열매를 먹게 되면, 반드시 죽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맺으신 언약을 살펴보면, 이는 특정한 행위를 요구하는 조건적인 언약입니다. 즉 아담이 선악과를 먹지 않으면 살고, 먹으면 죽게 됩니다. 이 말씀을 논리적으로 풀어보면, 만일 아담이 선악과를 먹지 않으면 그는 죽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살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영원한 생명이란 선물을 주시기 전 아담의 순종이란 행위를 요구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처음 아담과 맺으신 언약은 아담의 행위에 따라 결정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담과 맺으신 언약을 가리켜 [행위 언약](covenant of work)이라고 부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을 것을 다 알고 계시지 않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에덴 동산에 두셨으니, 결국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원인 제공은 하나님께서 하신 것 아닙니까? 차라리 애초에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에덴동산에 두지 않으셨다면 아담이 죄를 짓지 않았을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원죄의 책임자로 보입니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며, 하나님을 죄의 창조자 혹은 죄의 근원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논리로 가면, 인류의 모든 죄악의 책임이 결국 하나님께 있게 됩니다. 물론 하나님을 악의 근원으로 보는 것은 비성경적인 생각입니다.

우리는 지난 주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서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 모든 것을 보존하시고 다스리고 계신다고 배웠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그의 영원하신 계획인 작정에 따라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고 계신 것은 분명한 진리입니다. 또한 전지하신 하나님께서 아담이 에덴 동산에 있는 선악과를 따먹을 것이란 것을 미리 알고 계셨을 것이란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결코 하나님을 죄의 원인 제공자로 가리키고 있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신비의 영역입니다. 그 누구도 이 모순되어 보이는 사실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성경이 가르치는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또한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악의 제공자는 아닙니다. 아담이 지은 죄악의 원인은 하나님께 있지 않습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느냐 먹지 않느냐의 행위에 따라 결정되는 행위언약은 아담에게 결코 불합리하거나 불공평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담은 그가 하나님의 언약을 순종하는데 필요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전도서 7장 29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이 많은 꾀들을 낸 것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아담에게는 선악과를 먹지 않도록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제외한 모든 과실들을 아담이 먹을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습니다. 아담이 에덴 동산의 그 많고 많은 과실 중에 선악과를 고집을 부려 구태여 따먹어야 했던 이유가 하나도 없었던 것이죠. 게다가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으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아담에게 두려운 경고를 주심으로 그가 선악과를 먹지 않을 수 있는 확실한 이유도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담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 있는 아담과 맺으신 행위 언약은 불공정하거나 부당한 내용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 시대의 가장 큰 영적 문제는 사람들이 창세기에 기록된 말씀을 역사적 사실로 믿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사람들은 창세기 2-3장에 기록된 에덴 동산에서 일어난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 사건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들어낸 허구나 구전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민족 설화나 전설 즈음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만일 아담이 역사적 실존 인물이라는 성경적 사실을 거부하게 되면, 결국에는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가 역사적 실존 인물이라고 주장하는 사실까지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태에 이르게 됩니다. 만일 우리가 아담과 하나님께서 그와 맺으신 행위 언약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다면, 우리는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가르치는 것과 그 분이 십자가 위에 달려 죽어야 했던 모든 사건에 대해서도 받아들일 수 없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창세기 2-3장에 기록된 아담과 에덴 동산에서 일어난 모든 사건들이 구체적인 시간과 구체적인 장소에서 발생한 역사적 사실임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행위언약을 맺으신 것은 분명 인간에게 복을 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고, 필요도 없으신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연약하고 유한한 인간과 언약을 맺으셨다는 사실 차제가 우리에게는 큰 은혜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최초의 사람인 아담에게 자발적인 순종을 요구하시고, 그에 따른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순종을 바라시며 맺으신 언약이야 말로, 인간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잘 나타내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신 선이십니다. 따라서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살아가는 것이 우리에게는 가장 좋은 것입니다. 그와 같은 복을 주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아담은 결국 행위언약 대로 살지 못하고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결국 그로 말미암아 모든 인류는 죄와 사망의 저주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지극히 크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이와 같이 언약을 배반한 악한 죄인들을 사랑하사 우리들을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하여 또 다른 언약을 예비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은혜 언약입니다. 우리들은 모두 행위언약을 지키지 못한 아담의 자손이 됨으로써 죄와 사망 아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롭게 주신 은혜언약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죄와 사망에서 구원 받아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받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사랑하사 인간과 함께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행위 언약에 불순종하여 죄와 사망의 저주에 빠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은혜언약의 중보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들을 사랑하십니다. 이처럼 아무런 보잘 것 없는 우리 사람들을 특별하게 여겨 주시고,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놀라운 사랑을 날마다 감사하고 찬양하며 살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