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제는 매일 아침과 저녁 이렇게 두 번 드립니다. 하나님은 번제를 드리는 제단의 불은 꺼지지 않도록 잘 관리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9절 말씀을 보십시오. “(레 6:9) 아론과 그 자손에게 명하여 이르라 번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번제물은 단 위 석쇠 위에 아침까지 두고 단의 불로 그 위에서 꺼지지 않게 할 것이요” 제사장들은 365일 제단의 불은 꺼지지 않도록 지켜야 했습니다. 구약 시대 때 번제단 위에 타오르는 불이 꺼지지 않도록 하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신약을 사는 성도들은 우리 마음 속에 계신 성령의 불이 꺼지지 않고 계속 타오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제단의 불이 꺼지면 제사를 드릴 수 없어 결국 죄를 사함 받지 못하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었던 것처럼, 우리 마음 속 성령의 불이 꺼지면 하나님과의 교제가 희미 해지며,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사명을 감당할 수 없게 됩니다. 제단은 불이 꺼지지 않고 계속 타오를 때 그 본연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듯이, 교회도 성령의 불이 꺼지지 않고 계속 타오를 때 하나님의 일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매일 아침 저녁으로 제사를 드린 것 같이, 우리들도 매일 아침 저녁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이는 공예배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예배를 포함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하루의 시작을 주님께 예배를 드림으로 시작하고, 하루의 끝을 주님께 예배 드림으로 마무리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는 예배의 가치가 많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예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보다는 예배를 소홀히 여기는 이들이 더 많이 있습니다. 결국 예배를 소홀이 여기는 자세는 우리가 누릴 수 있는 많은 영적 축복들을 빼앗아 가고 있습니다. 혹시 기도에 응답이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은혜 없이 메마른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예배에 대한 우리의 자세를 한 번 살펴보기 바랍니다. 예배가 바르지 못하면 반드시 이런 현상이 나타납니다. 예배가 회복되지 않으면 기도 응답도, 하나님의 은혜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무너진 예배가 회복될 수 있도록 바른 자세를 갖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예배의 회복이 곧 내 영이 회복되는 길이며, 가정이 회복되고, 교회가 회복되는 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리는 번제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날마다 드리는 번제였기에 상번제라고 불렀습니다. 이들이 매일 번제를 드렸다는 것은 매일 빠지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의 표현을 나타내고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헌신과 변함없는 충성을 드렸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감사한 마음과 우리가 가진 온전한 헌신과 변함없는 충성이 바로 예배를 통해 나타납니다. 그러한 예배가 드려질 때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삶에 충만하게 임하게 됩니다. 언제나 우리의 영혼이 성령의 불로 타오를 수 있도록 하십시오.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십시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놀라운 은혜를 부어 주실 것입니다.
14절부터 기록된 소제는 곡식을 가루로 빻아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입니다. 소제는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그에 대한 감사의 표현으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찌 소제를 드리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애굽에서 노예로 살아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광야를 지나갈 때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 기둥으로 지켜 주셨습니다. 먹을 것이 없을 때는 만나를 주시고, 마실 것이 없을 때는 반석에서 물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이 모든 축복이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임을 인정하며 감사의 제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감사의 소제를 드렸던 것처럼 우리들도 감사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지금 우리들이 누리고 있는 이 모든 것은 어디서 온 것입니까? 단순히 우리가 열심히 노력하고 땀 흘린 결과만은 아닙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건강과 매일 먹는 양식, 필요한 모든 물질 가운데 하나님으로부터 받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살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고 있지 않다면, 예배의 중요한 요소를 잊어버린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모든 복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고 하나님께 감사드릴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길 바랍니다.
1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레 6:15) 그 소제의 고운 기름 가루 한 움큼과 소제물 위의 유향을 다 취하여 기념물로 단 위에 불살라 여호와 앞에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고” 여기 보면 소제를 드릴 때 고운 가루로 드릴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소제는 곡식 제사 입니다. 그런데 왜 곡식을 가루로 빻아서 하나님께 드릴까요? 하나님께서 이가 아프셔서 씹지 못하셔서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제사를 드릴 때 제물은 드리는 사람을 대신해서 드려지는 것입니다.
곡식을 가루로 만든다는 것은 우리 자아를 완전히 부시고 철저하게 하나님께 헌신된 상태로 드리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소제는 곡식을 으깨어 가루가 되야 드릴 수 있듯이, 세상을 향한 우리의 정욕과 탐심이 완전히 깨지지 않으면 하나님을 위한 삶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는 죄로 가득한 옛 사람을 곡식을 가루로 빻듯이 죽이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이처럼 고운 가루로 드려지는 제사는 하나님을 향한 성도의 철저한 헌신을 의미합니다. 또한 15절 말씀을 보면 소제에 들어가야 하는 두 가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로 ‘기름’과 ‘유향’ 입니다. 성경에서 기름은 [성령]을 상징합니다. 소제에 기름을 넣는다는 것은 성령으로 충만한 영적 생활을 하나님께 예배로 드려야 함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또한 ‘유향’은 향기로운 향을 의미하며, 이는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행실]과 [헌신된 삶]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소제에 ‘기름’과 ‘유향’ 이 두가지가 첨가된 것은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삶은 성령 충만하여 선한 행실을 행하며 살아가는 삶임을 가르쳐줍니다. 만일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으며 행동하고, 사람들로부터 욕먹는 일들을 하고 있다면 어떻게 하나님께서 기뻐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은, 일상에서도 향기롭고 아름다운 행실을 갖춘 사람입니다.
번제는 동물의 가죽을 제외한 채 제단 위에서 하나도 남김 없이 태워 버립니다. 그러나 소제는 다릅니다. 오늘 본문 16-18절을 보겠습니다. “(레 6:16) 그 나머지는 아론과 그 자손이 먹되 누룩을 넣지 말고 거룩한 곳 회막 뜰에서 먹을지니라 (레 6:17) 그것에 누룩을 넣어 굽지 말라 이는 나의 화제 중에서 내가 그들에게 주어 그 소득이 되게 하는 것이라 속죄제와 속건제 같이 지극히 거룩한즉 (레 6:18) 무릇 아론 자손의 남자는 이를 먹을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에서 그들의 대대로 영원한 소득이 됨이라 이를 만지는 자마다 거룩하니라” 소제는 번제와 같이 제단에 다 태우지 않습니다. 대신 한 주먹만 제단에 태우고 나머지는 하나님을 위해 헌신한 아론의 자손들을 위해 주도록 했습니다. 아론의 자손들이 성막에서 제사 직분을 수행하기 때문에 따로 생업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론의 자손들을 위해 소제, 화목제, 속죄제의 제물의 일부분을 그들에게 주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주님의 일을 위해 헌신하는 자들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일만 시키고 나중에는 나몰라라 하는 악덕 업주가 아니십니다. 주님을 위해 헌신하는 자들을 주님께서 끝까지 책임져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자들을 버리시지 않고, 외면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안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며 헌신하는 삶이 얼마나 축복 된 일인지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일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일하십니다.
사실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이 공짜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일을 하다 보면, 여러가지 희생해야 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시간적으로도, 물질적으로도 많은 희생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일을 위해 헌신하므로 손해 보는 것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위해 자원하여 헌신한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친히 그들의 필요를 채워 주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헌신하게 될 때 물질이나 상황 때문에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때를 따라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기를 두려워하거나, 하나님을 위해 희생하기를 주저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고, 주님을 위하여 헌신하는 삶을 우리의 즐거움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헌신한 자들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소제 때 제물로 드리는 곡식은 가루로 빻아서 드려야 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세상을 사랑하는 자기 자아를 빻은 고운 가루가 되어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헌신하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자를 주님께서 책임져 주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께 헌신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책임져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