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는 우리들의 영혼을 더럽히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깨뜨리고, 삶 전체를 오염시킵니다. 그래서 우리가 날마다 세수를 하고, 더러워진 옷을 빨래하듯이, 죄로 더러워진 우리 영혼을 깨끗하게 하고, 오염된 우리의 삶을 정결케 할 필요가 있습니다. 죄는 우리 스스로 씻어낼 수 없는 얼룩을 우리 영혼에 남깁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으로 우리들의 ‘죄’를 씻을 수 있을까요? 구약성경의 기록에 따르면 거의 모든 것이 ‘피’로 깨끗해집니다. 그래서 피 흘림이 없이는 ‘죄’를 용서 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갈보리 언덕에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며 피를 흘리신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흘리신 그 피가 우리들을 죄로부터 깨끗하게 씻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 죄를 씻어 주신 예수님의 피를 ‘보배로운 피’라고 말합니다. ‘속죄제’가 바로 “피를 통하여 죄를 속하여 주는 제사”, “피를 통해 죄를 용서해주는 제사” 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주님은 우리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 그 보배로운 피를 흘려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속죄 제물이 되어 십자가에서 흘리신 값진 피로 우리들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여기 한 가지 궁금점이 생깁니다. ‘번제’도 분명 죄를 사하여 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번제물이 되어 우리들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죄를 사하여 주는 ‘번제’를 드렸는데, 굳이 속죄제를 또 드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질문을 해결하지 못하면 레위기 전체가 꼬이게 됩니다. 그래서 레위기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려는 사람은 ‘번제’와 ‘속죄제’의 차이점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먼저, ‘번제’와 ‘속죄제’ 두 제사 모두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드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두 제사의 ‘목적’은 같습니다. 그러나 두 제사가 해결하고자 하는 ‘대상’이 다릅니다. 번제가 죄의 형벌인 ‘하나님의 진노’를 해결하기 위한 제사였다면, 속죄제는 죄의 결과인 ‘오염’을 해결하기 위한 제사입니다. 그래서 죄의 형벌로부터 구원받기 위한 ‘번제’가 필요하고, 죄의 결과인 ‘오염’으로부터 정결함을 얻기 위한 ‘속죄제’도 필요합니다.
만약 우리가 예수님 믿기 전에만 죄를 짓고, 예수님 믿은 이후에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는다면 우리는 더 이상 회개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그리스도인들도, 살면서 또 다시 죄를 짓기 때문에 날마다 영혼이 죄로 인해 ‘오염’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늘 밑에 다시 한 번 나아가 죄로 오염된 우리의 영혼을 깨끗하게 씻어내는 것입니다. 죄가 가진 파급효과는 생각보다 큽니다. 죄는 우리의 영혼 뿐만 아니라, 삶의 전반적인 요소들까지도 더럽히고 오염 시킵니다. 따라서 우리가 지저분한 방을 청소하듯이, 죄로 더러워진 우리의 삶 구석구석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하게 청소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신학자들 사이에서는 [속죄제]라는 단어보다는 깨끗하게 하는 제사, 정결하게 하는 제사, 즉 [정결제], [Purification Offering] 라고 더 많이 해석합니다.
레위기 4장에는 죄를 지은 사람의 신분에 따라서 하나님께 바치는 속죄제사의 제물이 다르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레위기 4장에는 총 4가지 다른 속죄 제사의 종류가 나와 있습니다. 첫째는 대제사장이 죄를 범한 경우, 두 번째는 이스라엘 온 회중이 죄를 범한 경우, 세 번째는 지파장이 죄를 범한 경우, 마지막 네번째는 평민이 죄를 범함 경우입니다.
우리는 특별히 대제사장이 죄를 범한 경우를 중점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레 4:3) 만일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범죄하여…” 여기서 기록된 기름 부음 받은 제사장이 누구입니까? 바로 대제사장입니다. 온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영적 리더인 대제사장이 죄를 범하였습니다. 공동체의 영적 리더 한 사람이 넘어지면 공동체 전체에 죄의 파급효과가 일어납니다. 레위기 4장 3절 말씀을 다시 봅시다. “(레 4:3) 만일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범죄하여 백성으로 죄얼을 입게 하였으면…” 여기서 “백성으로 죄얼을 입게 하였으면…”이란 이 표현은 다른 말로 하면 죄는 대제사장이 지었는데 그 책임은 백성이 진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참 중요한 구절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죄인이 지은 죄에 대한 책임이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도 주어지는 것으로 언급되는 유일한 제사이기 때문입니다. 리더 한 사람이 죄를 지으면 그 파급력이 공동체 전체로 흘러가게 됩니다. 이 원리가 교회에만 적용 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조직과 공동체가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가정도 마찬가지 입니다. 각 가정의 대제사장은 누구입니까? 가장입니다. 그래서 가장 한사람이 죄를 지으면 그 파급력이 배우자와 자녀들에게 까지 미치게 됩니다. 그래서 가장이 죄에 무너지지 않고 영적으로 똑바르게 서 있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영적 가장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스스로 넘어지지 않도록 기도하십시오.
3절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레 4:3) 만일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범죄하여 백성으로 죄얼을 입게 하였으면 그 범한 죄를 인하여 흠 없는 수송아지로 속죄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릴지니” 공동체를 대표하는 영적 리더인 대제사장이 범죄하면 하나님께 무엇을 드립니까? “흠 없는 수송아지”를 드립니다. 소 한 마리의 값은 매우 비쌉니다. 게다가 흠이 하나도 없는 수송아지는 구약의 제사 시스템 속에서 볼 때 가장 값비싼 제물이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대제사장이 범죄하면 가장 값비싼 제물을 가지고 오라고 하셨을까요? 하나님 앞에서 큰 책임을 가진 사람이 지은 죄이기에 그만큼 그 죄의 무게도 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 흥미로운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대제사장 한 사람이 죄를 지었을 때 드리는 제물은 ‘흠 없는 송아지’ 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회중 전체가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 무슨 제물을 드려야 할까요? 송아지보다 더 큰 거 드려야 하나요? 그 답이 13-14절 말씀에 있습니다. (레 4:13) 만일 이스라엘 온 회중이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그릇 범하여 허물이 있으나 스스로 깨닫지 못하다가 (레 4:14) 그 범한 죄를 깨달으면 회중은 수송아지를 속죄제로 드릴지니…” 이스라엘 전체 회중이 범죄하면 무엇 드립니까? 수송아지… 앞서 대제사장 한 사람이 범죄했을 때도 제물이 뭐였어요? 수송아지. 이스라엘 회중 전체가 범죄해도 무엇 드립니까? 수송아지 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대제사장 한 사람이 범죄하는 것을 이스라엘 회중 전체가 범죄한 것만큼 동일하게 간주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자, 속죄제는 죄로 인해 ‘오염’된 것을 정결케 하는 제사입니다. 비누 같은 것으로는 죄를 씻을 수 없고 오직 피로만 씻을 수 있습니다. 속죄제가 같는 독특한 특징은 피를 사용하는 표현이 여러가지 등장합니다. 한 번 5-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레 4:5)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은 그 수송아지의 피를 가지고 회막에 들어가서 (레 4:6) 그 제사장이 손가락에 그 피를 찍어 여호와 앞 곧 성소 장 앞에 일곱 번 뿌릴 것이며 (레 4:7) 제사장은 또 그 피를 여호와 앞 곧 회막 안 향단 뿔에 바르고 그 송아지의 피 전부를 회막문 앞 번제단 밑에 쏟을 것이며” 번제 같은 경우에는 피가 나오면 단순합니다. “피를 담아서 제단 사방에 뿌려라” 이게 다 입니다. 그런데 여기 5-7절 말씀을 보면 피를 다루는 다양한 동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피를 가지고 회막에 들어가라, 손가락에 피를 찍어라, 피를 일곱 번 뿌려라, 피를 향단 뿔에 바르라. 피를 번제단 밑에 쏟으라.” 왜 속죄제는 다른 제사들과 다르게 이렇게 제물의 피를 다루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까? 피가 닿아야 오염된 것이 깨끗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말씀을 자세히 보니까 지금 대제사장이 피를 어디에 뿌리고 있습니까? 죄를 지은 사람에게 뿌리는 것이 아니라 피를 성소에 뿌리고 있습니다. 성소와 지성소 사이를 구분하는 커튼인 휘장에 뿌리고, 그 앞에 놓인 향단 뿔에 바르고, 나머지 피를 제단 밑에 쏟았습니다. 왜 피를 성소에 뿌렸을까요? 성소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죄를 지으면 거룩하신 하나님이 계신 공간이 더러워지기 때문에, 죄로 오염된 성소에 제물의 피를 뿌리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기억해야 하는 사실은 제물의 피를 다름 아닌 성소에 뿌렸는데, 그 결과 성소 뿐만 아니라 제물을 하나님께 바친 죄인도 깨끗함을 받고 죄를 사함 받는다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 때 죄를 지은 자가 속죄 제물의 피를 성소에 뿌렸다면, 오늘날 신약 시대를 사는 우리가 죄를 용서 받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어디에 뿌려야 합니까? 우리 마음에 뿌려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를 성령이 거하시는 마음에 뿌릴 때 그 결과 우리 영혼이 정결케 되고, 우리가 죄의 오염으로부터 깨끗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지지 않으면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께 기도가 들려지지 않습니다. 앞서 5-7절 말씀을 보면 속죄제물의 피는 세 곳에 사용되었습니다. 첫째로 지성소로 나아가는 휘장에 뿌렸습니다. 즉 예수의 피 없이는 하나님 계신 지성소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그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어지지 않고는 하나님과 교제를 나눌 수 없습니다. 둘째로 피는 향단의 뿔에 발랐습니다. 향단의 연기는 성도들의 기도를 상징합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그 영혼에 발라져 있지 않으면 그의 기도는 가증한 것이 되어 하나님께 드려질 수 없습니다. 아무리 고래고래 간절하게 부르짖어도 마음의 향단에 예수의 피가 묻어 있지 않으면 그 하나님께서 보실 때 사람의 기도는 더럽고 의미없는 아우성일 뿐 입니다. 향단의 뿔에 피를 발랐다는 것은 거룩하신 하나님께 기도가 들려지도록 예수의 피가 우리의 기도에 뿌려져 있음을 상징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힘입어 기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 제 기도의 향단의 뿔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발랐습니다. 죄인인 저를 보지 마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보시고 제 기도를 받아주십시오.”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셋째로 피를 제단 밑에 부었습니다. 제단은 제사 지내는 제물를 태우는 곳입니다. 오늘 말로 하면 예배를 드리는 곳입니다. 따라서 예수의 피가 부어지지 않으면 그 예배는 하나님께서 보실 때 죄에 물든 더러운 예배 입니다. 따라서 예수의 피로 정결케 되어 있지 않은 자는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나 이 피를 마음에 뿌릴 수는 없습니다. 여기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죄를 용서 받기 위해서는 먼저 피를 뿌리기 전에 죄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한 번 볼까요? 레위기 4장 13-14절을 보겠습니다. “레 4:13) 만일 이스라엘 온 회중이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그릇 범하여 허물이 있으나 스스로 깨닫지 못하다가 (레 4:14) 그 범한 죄를 깨달으면…” 즉 피를 뿌리기 전에 먼저 우리 삶이 죄 때문에 죽어가고 있고, 우리가 죄로 인해 더러워진 사람임을 인지해야 합니다. 피만 뿌린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무엇을 해야 합니까? 내 자신이 죄를 사함 받아야 하는 필요가 있는 죄인임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