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03 화목제 (레위기 3장 1-17절)

번제가 죄 사함 받는 것이 목적이라면, 화목제는 죄를 용서 받았음으로 하나님과 더 깊은 친교와 교제의 자리로 나아가기 위한 제사 입니다. 영어성경인 NIV 성경에는 화목제가 Fellowship Offering 즉 “친교의 제사”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화목제사는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데 그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죄를 지었을 때 우리들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게 되었고 교제를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RSV 성경 번역에는 화목제를 “Sacrifice of Peace” ‘평화의 제사’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자, 그렇다면 화목제는 어느 상황 속에서 드렸을까요? 화목제를 드리는 경우는 크게 3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세가지 경우에 따라서 우리는 화목제 속에 3가지 제사가 포함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첫번째는 ‘감사제’입니다. 감사할 때 드리는 제사입니다. 둘째는, ‘서원제’입니다. 서원을 하거나 서원한 것을 갚을 때 드리는 제사입니다. 셋째는 ‘자원제’입니다. 하나님께 더 드리고자 하는 자원하는 마음이 있을 때 자발적으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이처럼 화목제는 3가지 상황에 드려졌습니다. 그리고 화목제는 3가지 상황에 따라 ‘감사제’, ‘서원제’, ‘자원제’로 불려지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화목제를 드릴 때 나타나는 특징은 무엇일까요? 다섯 가지 제사 중 가장 기초가 되는 번제와 한 번 비교해 보겠습니다. 번제는 제물로 드릴 동물의 가죽을 제외한 나머지를 다 제단 불 위에 태워버립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이 나의 죄를 대신해서 죽는 것을 상징하기 때문에 하나도 남김없이 불에 타 태워버려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화목제는 다릅니다. 3-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레 3:3) 그는 또 그 화목제의 희생 중에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곧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레 3:4)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근방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취할 것이요 (레 3:5) 아론의 자손은 그것을 단 윗불 위에 있는 나무 위 번제물 위에 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복잡해 보입니다만 쉽게 정리하면 화목제는 기름과 간, 콩팥 같은 ‘내장’만 제단에서 태워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왜 하나님께 ‘기름’을 드렸을까요? 오늘날 현대인들이 성경을 읽으면 이 기름을 ‘지방’으로 이해하기 쉽습니다. ‘기름’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최고 값진 것’, ‘최고 좋은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기름은 가장 값진 것, 가장 좋은 것을 말합니다. 레위기 3장 9절에 보면 양으로 화목제사를 드릴 때도 하나님께 “기름진 꼬리”를 바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학자들 사이에서 이 부위는 가장 귀한 부위를 말한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레위기에서 하나님께 화목제를 드릴 때 “‘기름’ 혹은 ‘지방’을 불살라 드리라”는 이 말은 하나님께 가장 좋은 것을 드리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가장 좋은 것을 드려라.’ 너무나도 당연한 명령 같지만 정말 우리는 하나님께 가장 좋은 것 드리고 있습니까? 우리 삶에서 가장 값진 것을 하나님께 드리시길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화목제를 드릴 때 기름을 드렸다는 것은 가장 값지고 귀한 것을 드렸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화목제사를 드리는 자는 제물의 [콩팥]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람의 콩팥 즉 신장 안에 그의 깊은 감정과 마음 그리고 양심까지 담겨져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어로 마음이란 단어는 ‘콩팥’이란 단어로 쓰여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예레미야서 11장 20절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와 있습니다. “(렘 11:20)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만군의 여호와여” 그런데 이것을 한글 성경이 아닌 히브리어 원어로 보면 “사람의 마음 대신 사람의 콩팥을 감찰하시는 만군의 여호와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 제물의 간을 드린 것도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간은 장기 중에서도 무겁습니다. 인간이 겪는 깊은 기쁨과 기쁜 슬픔을 간이란 장기를 통해서 표현합니다. 따라서 화목제사를 드릴 때 하나님께 콩팥과 간을 드린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 우리의 중심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상징합니다.

이 새벽에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 드리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그러나 몸은 여기 있지만,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을 수 있습니다. 몸은 교회 안에 있지만, 마음은 세상에 가 있을 수 있습니다. 계속 돈 걱정하고 있고, 비즈니스 염려하고 있고, 세상의 쾌락과 즐거움에 마음을 빼앗긴 채 이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화목제사를 드릴 때 콩팥과 간을 드리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듯이, 이 자리에 우리가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릴 때,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으면 이 예배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 무엇보다도 우리의 마음, 우리의 중심을 원하십니다.

번제는 동물의 가죽을 제외한 나머지를 다 태워버렸습니다. 그러나 화목제는 이처럼 하나님께 기름, 콩팥, 간과 같은 내장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제물을 가지고 온 사람은 제사장에게 제물의 가슴 부위와 오른쪽 뒷다리를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분배해 주실 때 레위인과 제사장들은 땅을 기업으로 주시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기업에 참여하게 하셔서 제사를 통해 나오는 제물로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화목제사를 드릴 때 가슴부위와 오른쪽 뒷다리는 제사장의 몫으로 정해 주셨습니다.

 

3) 제사 드린 사람의 몫

자, 그 다음이 중요합니다. 화목제를 드릴 때 소를 드려도 되고, 양을 드려도 되고 염소를 드려도 됩니다. ‘기름’ 즉 가장 좋은 부위, 간, 콩팥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가슴부위와 오른쪽 뒷다리는 제사장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모든 것은 제사 드린 사람의 몫이 됩니다. 그런데 여기 화목제의 중요한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만약 화목제를 드린 사람이 감사제로 드린 것이면 그 고기를 이튼날 아침까지 다 먹어야 합니다. 레위기 7장 1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레 7:15) 감사함으로 드리는 화목제 희생의 고기는 드리는 그 날에 먹을 것이요 조금이라도 이튿날 아침까지 두지 말 것이니라” 이처럼 감사제로 드린 고기는 이튿날이 되기 전에 다 먹어야만 했습니다. 화목제를 드린 사람이 서원제 혹은 자원제로 드린 것이면 하루를 더 주어서 2틀에 걸쳐서 다 먹어야만 했습니다. 레위기 7장 16-1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레 7:16) 그러나 그 희생의 예물이 서원이나 자원의 예물이면 그 희생을 드린 날에 먹을 것이요 그 남은 것은 이튿날에도 먹되 (레 7:17) 그 희생의 고기가 제삼일까지 남았으면 불사를지니 (레 7:18) 만일 그 화목제 희생의 고기를 제삼일에 조금이라도 먹으면 그 제사는 열납되지 않을 것이라 드린 자에게도 예물답게 못되고 도리어 가증한 것이 될 것이며 그것을 먹는 자는 죄를 당하리라” 만일 화목제물로 바친 사람이 제물을 다 먹지 않고 남기면 어떻게 됩니까? 7장 18절에 보니 하나님께 드린 화목제가 도리어 가증한 것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 제사를 받지 않으십니다. 공들여 드린 자가 하나님께 정죄를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제사를 드린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 바친 제물을 정해진 시일 안에 남김없이 다 먹어야만 했습니다.

그럼 한 번 상상해 보시겠습니까? 화목제물로 어떤 동물들이 쓰인다고 했습니까? 소, 양, 염소 입니다. 예를 들어서 화목제로 소 한 마리를 바쳤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기름, 콩팥, 간과 같은 내장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가슴부위와 오른쪽 뒷다리는 화목제사를 집도한 제사장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소의 나머지 부분은 제사 드린 사람이 다 먹어야 합니다. 그러나 소 한 마리가 얼마나 큽니까? 웬만한 한우 한 마리 잡으면 먹을 수 있는 부위의 무게가 약 600kg 정도 됩니다. 그러니까 소 한 마리 잡으면 100명은 충분히 배부르게 먹습니다. 소 한 마리 잡으면 100명은 충분히 배부르게 먹습니다.

레위기 7장에 따르면  이 큰 소를 이튿날까지 다 먹지 못하고 남기면 화목제사는 부정한 것이 되고, 그 제사는 하나님께 열납 되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제사 드린 사람이 하루에 다 먹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합니까? 나누어 줘야 합니다. 가족들, 친지들, 친구들, 이웃들 다 초대해서 함께 나누어 먹어야 합니다. 그래서 화목제사는 늘 공동식사로 마무리가 됩니다. 함께 나누어 먹는 것으로 제사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화목제사의 특징은 봉헌자 뿐만 아니라, 봉헌자 주변의 사람들까지도 기쁨과 은혜의 혜택을 누리는 제사라는 데 있습니다.

화목제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예배의 참 모습을 보여줍니다. 신앙은 나만 하나님 잘 믿고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누리는 기쁨과 평화가 나에게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내 주변의 이웃들에게 전달되는 것이 예배의 완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너는 복이 될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을 누리는 것도 중요합니다만, 우리가 축복의 통로가 되어서 받은 복을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교회에서 나 혼자만 잘 사는 것, 나 혼자만 잘 믿는 것… 그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의 모습이 결코 아닙니다. 예배는 하나님과 함께 기쁨의 교제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되어, 형제와 함께 하나님께서 주신 기쁨과 즐거움을 나누는 것으로 완성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진정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가 되도록 가장 귀한 것을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우리 삶의 가장 값진 시간, 가장 귀한 소유물도 하나님께 아낌없이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예배의 시간 우리 몸만 주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무엇보다도 우리의 중심을 원하십니다 예배의 시작이 하나님과 함께 기쁨을 누리는 것이라면, 예배의 완성은 우리 주변의 형제 자매와 함께 주님 주신 기쁨과 즐거움을 함께 공유하고 나누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