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01 번제 (레위기 2장 1-12절)

본래 타락하고 범죄한 인간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과 단절된 삶을 사는 인간에게 남은 것은 죽음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 앞으로 나아올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 길이 바로 ‘제사’ 입니다. 따라서 제사란, 타락하고 범죄한 죄인이 거룩하신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는 아주 중요한 내용입니다.

레위기에 기록된 다섯 가지 제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입니다. 한 번 따라 해보시겠습니까?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오늘은 이 다섯 가지 제사 중 가장 기본이 되는 번제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제물을 가지고 감

다함께 본문 2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레 1:2)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생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지니라”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제물을 가지고 가야 했습니다. 2절 말씀을 보니 ‘소’ 혹은 ‘양’을 가지고 가야 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소’와 ‘양’이 다 제물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제물의 필수조건이 있습니다. 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레 1:3) 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회막문에서 여호와 앞에 열납하시도록 드릴지니라” 여기 제물이 될 수 있는 두 가지 특징이 나옵니다. 번제물은 첫째로 흠이 없어야 합니다. 둘째로 수컷이어야 합니다. 두 번째 이유부터 봅시다. 고대 사회는 농경 사회 입니다. 밭을 일구는데 소는 매우 중요한 동물이었습니다. 암컷은 새끼를 낳을 때 쓰였습니다. 수컷은 종자형으로 두었기 때문에 가격이 더 비쌌습니다. 게다가 암컷보다 힘이 센 수컷이 밭일 할 때 더 유용했기에 수컷이 암컷보다 가격도 더 많이 나갔습니다. 수컷을 드린다는 것은 값진 것을 주님께 드린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제물이 흠이 없어야 한다는 것은, 짐승이 눈이 멀거나, 다리를 절거나, 비루 먹거나, 병들었거나 상처 입은 것 등 흠이 있으면 제물이 될 수 없음을 말합니다. 왜 흠이 있는 짐승은 제물이 될 수 없을까요? 이 제물을 받으시는 분이 거룩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로부터 선물을 받았다고 생각해 봅시다. 선물 포장지를 뜯어보니까 깨진 컵, 구멍 난 옷, 먹다 남은 과일, 쓰다 남은 일상품을 나에게 주었다면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습니까? 반대로 우리도 높은 사람들 에게 선물 줄 때 가치 없는 것, 쓸모 없는 것, 불필요한 것을 들은 잘 안 줍니다. 그러한 선물들은 오히려 받는 사람의 기분을 나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존귀하신 하나님께 제물을 드릴 때 흠 없는 것, 가장 좋은 것을 드리는 것은 당연한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흠 있는 제물을 가지고 오는 백성들을 기쁘게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백성들이 하나님을 무시하고 경멸했다고 말씀하시며, 그들이 가지고 온 것 하나도 받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존귀하신 분이십니다. 따라서 완전하신 하나님께 제사로 드리는 제물은 흠이 없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 제사 드리기 위해서 제사 드리는 사람이 반드시 흠 없는 제물을 가지고 와야 한다면, 오늘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참된 예배를 드리기 위해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야 할 흠 없는 번제물을 가지고 오셨습니까? 혹시 오늘 교회 올 때 소나 양을 한 마리씩 들고 오신 분 계십니까? 하나님께 제사 드리러 가는데 흠 없는 번제물이 없습니다. 우리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번제물을 직접 준비해 주셨습니다. 그 흠 없고 완전한 제물이 바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시기 위해 우리를 위한 흠 없고 완전하신 번제물로 이 땅에 오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1. 제물을 가지고 간 사람이 제물에 안수 함. (제사장이 아니다.)

         자, 그럼 제사 드리는 사람이 회막에 번제물만 가지고 가면 됩니까? 아닙니다. 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레 1:4) 그가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리하면 열납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안수란, 짐승의 머리에 내 손을 얹는 것을 말합니다. 번제물을 가지고 간 사람이 직접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를 해야 합니다. 왜 번제물에 안수가 필요 했을까요? 신학자들은 여기에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말합니다. 첫째로, 사람이 짐승에 안수 할 때 그의 죄가 짐승에게 이동 됩니다. 이것을 신학적 용어로 ‘죄가 전가된다’라고 합니다. 둘째로, 사람이 짐승에 안수 할 때 이것은 ‘이 짐승이 곧 나다’, ‘이 짐승과 나는 하나다’라는 의미를 가져 줍니다. 안수를 통해 제물과 제물을 바치는 사람이 동일시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안수를 하지 않으면 이 짐승과 나랑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죄가 없으신 완전한 번제물로 이 세상에 오셨지만, 여전히 예수님과 내 죄가 씻음 받는 것이 전혀 무관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구약 백성들이 제물에 안수를 하여 제물과 자신을 동일시하였다면,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과 우리를 동일시 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이 내 죄를 씻김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이 바로 내 죄를 위한 죽으심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데, 우리를 예수님과 하나 되게 하십니다. 그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믿는 사람의 그 죄가 예수님께로 전가 됩니다. 믿는 사람의 죄가 예수님께로 이동하게 됩니다. 율법에 따르면, 죄 지은 내가 죽는 것이 아니라, 안수를 통해서 나와 하나가 되는 제물이 죽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는 주님과 하나가 되며, 그로 인해 예수님의 죽으심이 우리를 위한 놀라운 은혜로 역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물에게 손을 얹어 안수한 자가 제물에게 죄를 전가하듯이, 흠 없는 번제물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가 저에게 전가 되는 것입니다.

 

  1. 제물을 가지고 간 사람이 제물의 목을 따서 피 흘려 죽인다. (제사장이 아니다.)

그러나 제물만 가지고 와서 안수만 하면 되는 것은 아닙니다. 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레 1:5) 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가져다가 회막문 앞 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 짐승의 머리를 눌렀던 그 손에 이제는 예리하고 날카로운 칼을 들고 제물의 목을 따서 죽여야만 했습니다. 아무리 흠이 없는 제물을 가지고 갔고, 제물에 안수 했어도 제물을 반드시 죽여야만 했습니다. 짐승이 죽어야만 내 죄가 용서 받게 됩니다. 그런데 짐승이 죽는 이유는 피를 흘리기 위함입니다. 피가 짐승의 생명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짐승이 생명을 상징하는 피를 흘려야만 내 죄가 용서 받게 됩니다.

왜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리시며 죽으셔야만 했습니까? 예수님께서 생명의 피를 흘리셔야만 우리의 죄가 용서 받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피는 믿는 자의 죄를 사하여 주는 놀라운 능력의 피, 보배로운 피 입니다. 그런데 여기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짐승을 가지고 오는 것도 힘든데, 굳이 제사를 드리러 간 그 사람이 칼을 가지고 제물을 목을 따서 피 흘려 짐승을 죽여야만 했을까요? 그 피 비린내 나고, 피 튀기는 현장에 있어야만 했을까요? 쉽게 생각하면, 도축장에 가서 도살업자에게 맡기고 안수만 해도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제사법을 세우시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예물을 드리려거든 그가 그 제물을 가지고 가서, 그가 안수 하고, 그가 짐승을 죽여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여기에 깊은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제물을 드리는 사람이 직접 흠 없는 짐승을 잡아다가 안수하고 날카로운 칼로 짐승의 목을 따, 신음하며 피흘리며 죽어가는 짐승을 볼 때 어떤 마음이 들겠습니까? “아, 이 짐승이 나 때문에 죽어가고 있구나…”하고 실감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십자가를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 입니다. 누가 예수님을 죽였습니까?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했습니다. 유대의 대제사장들이 예수님을 심문하고 그를 재판장에 넘겼습니다. 본디오 빌라도가 그에게 사형을 선고 했습니다. 로마 군사들이 예수님의 손과 발에 못을 받고 그의 옆구리에 창을 찔렀습니다. 누가 예수님을 죽였습니까? 가룟 유다, 대제사장, 본디오 빌라도, 로마 군사들, 유대인들입니까? 아닙니다. 내 죄가 예수님을 죽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나를 위해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은 다른 누구의 죄 때문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추하고 더러운 죄 때문에 죽으셨습니다. 이 사실을 바로 깨닫게 될 때,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이 우리 영혼에 새롭게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죄는 내가 지었는데… 내가 죽었어야 했는데… 내가 피를 흘렸어야 했는데… 예수님이 대신 죽어주셨구나.. 내 대신 피를 흘려 주셨구나….” 흠 없는 제물이 나의 죄로 인해 피를 흘리며 죽게 되는 것처럼, 죄 없고 흠 없으신 예수님의 죽으심은 우리의 죄를 대신 속 해주시기 위한 대속의 죽으심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원 받는 길에는 자격이나 조건이 필요 없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녀노소, 빈부귀천에 상관없이…  흠 없는 번제물 되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누구든지” 하나님께서 그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그의 예배를 받아 주십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앞으로 예배를 드리며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 입니다. 흠 없는 번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용서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음을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은혜를 가슴에 새기며, 날마다 주님께 아름다운 예배를 드리며 살아가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