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223 백성을 위해 싸우시는 하나님 (시편 76편 1-12절)

 

한글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만, 아주 오래된 구약 성경의 헬라어 번역본인 70인경 성경을 보면 시편 76편 표제에는 ‘앗수르에 관하여’라는 말이 첨가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학자들은 본 시가 히스기야 왕 때 앗수르가 유다를 침공하여 예루살렘 포위했던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추정합니다. 우리가 어제 함께 살펴본 시편 75편이 바로 이 전쟁의 와중에 하나님의 도움으로 승리할 것을 내다보며 하나님을 찬양한 시였다면,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시편 76편은 승리를 경험한 이후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찬양하는 감사의 시입니다.

유다 왕국과 수도 예루살렘에는 막강한 앗수르의 군대를 이길 힘이 없었습니다. 적군은 예루살렘을 포위했고, 이제 성이 적군의 손에 함락 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룻밤 사이에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는 앗수르 군대 18만 5천명을 모두 몰살시키심으로 말미암아 앗수르 군대는 퇴각하고 맙니다. 바로 이러한 배경 가운데 하나님의 구원을 감사하며 드린 찬양시가 바로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시편 76편입니다.

이런 배경을 이해하면 1절에 왜 시인이 하나님께서 유다에 알려지셨고, 그의 이름이 이스라엘에서 크신지 알 수 있습니다. 위기에 처한 주님의 백성을 위하여 역사하신 하나님께서 원수 앗수르의 군대를 하룻밤 사이에 모두 진멸하셨습니다. 그러니 어찌 하나님의 이름이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았겠습니까? 물론 이 사건 이전에도 유다 사람들과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고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피상적 지식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놀라운 기적의 현장을 실제로 보고 나니, 하나님을 아는 수준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신앙의 초보 단계에서는 하나님을 지식으로만 압니다. 그러나 환난의 때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고, 주님의 구원하심을 맛보는 순간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체험적 수준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 때서 비로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살아 있는 지식이 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식이 됩니다. 시인은 2절에 하나님의 장막과 처소가 예루살렘에 있음을 이야기하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하심을 노래합니다. 3절을 보니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전쟁을 그치게 하셨습니다. 3절에 ‘화살, 방패, 칼, 전쟁’은 앗수르의 막강한 군사력을 상징합니다. 누가 보아도 앗수르가 이기는 전쟁이었습니다. 히스기야와 예루살렘 주민들은 무참한 살상과 전쟁의 노예가 되는 것밖에는 선택지가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유다 백성들의 손으로는 절대로 이길 수 없었던 적군을 하나님께서 한 순간에 물리치신 것입니다. 3절 뒤에 ‘셀라’가 있습니다. 바로 이와 같이 이스라엘을 큰 위기에서 구원하신 능력의 하나님을 묵상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에는 지금 어떤 어려움과 위기가 있습니까? 어떤 고통과 아픔이 우리 삶을 포위하고 있습니까? 우리 힘으로 이길 수 없는 화살과 방패와 칼과 전쟁이 우리를 어렵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큰 위기에서 능히 우리를 구원하시는 능력의 하나님께서 함께하고 계십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쳐들어올 것 같았던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던 앗수르 군사 18만 5천명이 하룻밤 사이에 송장으로 발견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우리는 위기를 벗어날 수 있고, 문제가 해결됩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서 대신하여 친히 싸워 주신 것과 같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오늘날도 구원받은 백성들을 위해서 친히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4절에 나오는 ‘약탈한 산’이란 구절은 살인과 약탈을 일삼은 원수 앗수르를 가리킵니다. 당시 앗수르 군대는 예루살렘을 포위하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듣도록 하나님을 욕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너희를 능히 구원하실 것이란 히스기야 왕의 말을 듣지 말아라! 그것은 거짓말이다! 열방의 그 어느 민족이 우리 앗수르의 군대에서 그들을 구원했느냐? 여호와도 별 수 없다. 너희의 신도 열방의 다른 신들처럼 너희를 구원하지 못할 것이다. 항복해라!” 이런 신으로 하나님을 열방의 거짓 우상과 같은 취급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약탈한 산’ 즉 앗수르를 밟으셨습니다. 주님은 앗수르보다 더 영화로우시고, 강하고 위대하십니다.

5절에 나오는 “마음이 강한 자”, “장사” 모두 자기 군사력만 믿고 교만해진 앗수르 군대를 상징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던 자들 다 “가진 것 빼앗기고 잠에 빠집니다.” 앗수르 군대가 예루살렘 백성들을 죽이고 약탈하러 쳐들어 왔는데, 도리어 하나님께서 그들이 가진 것을 빼앗기고, ‘잠에 빠진다’는 것은 죽음에 이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교만한 앗수르를 철저하게 심판하신 것이죠.

6절 보니 하나님께서 꾸짖으시니, 병거와 말이 다 깊이 잠듭니다. 고대 전쟁에서 말이 끄는 병거는 오늘날 ‘탱크’, ‘전투기’와 같은 최신식 무기입니다. 앗수르가 수많은 병거를 거느리고 와서 교만한 자세로 이스라엘을 무시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모욕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꾸짖으시니 그토록 자랑하던 앗수르의 군대가 한 순간에 전멸했습니다.

시인은 7절에 말합니다. “우리가 두려워할 분은 오직 여호와 한 분이시다!” 주님께서 이처럼 진노하시면 막강한 군사들도 하룻밤 사이에 다 송장이 되는 데, 어찌 이 위대하시고 능하신 주님을 경외하지 아니하겠습니까? 어찌 그 분 앞에 엎드리지 않겠습니까? 8절 말씀처럼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심판하실 때는 온 세상 백성들이 두려움에 떨며 아무 말 못하고 잠잠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의 때에 온유한 자들은 구원받습니다. 9절에서 말하는 ‘온유한 자’란 악인들에게 고통당하는 자를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이들을 구원하시고, 이들을 괴롭힌 원수들을 심판하십니다. 10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76:10) 진실로 사람의 노여움은 주를 찬송하게 될 것이요 그 남은 노여움은 주께서 금하시리이다” 여기서 “진실로 사람의 노여움은 주를 찬송하게 될 것이요”라는 말은, “장차 하나님께서 악을 행하는 자들을 심판하심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멸망하는 것을 목도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송하게 될 것이다”는 뜻입니다. 또한  “그 남은 노여움은 주께서 금하시리이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심판하심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철저하게 멸망하여 더 이상 악을 행할 수 없게 되는 금지된 상황에 이르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의 악인들에 대한 완전한 심판을 가리킵니다.

시인은 이제 결론으로 사방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마땅히 이 위대한 여호와 하나님께 나와 그분을 경외하며 주님을 섬길 것을 초대합니다. 아무리 이 세상에서 높다하는 고관들도 하나님 앞에서는 벌벌 떨게 됩니다. 크고 위대하다는 세상의 왕들도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 떱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앗수르의 군대가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자 하나님께서 위기 가운데 하나님을 찾은 유다 백성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의 백성을 구원하셨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앗수르 군대 18만 5천명이 전멸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주님의 백성을 위해 싸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주님의 도우심의 손길을 구하고, 구원의 은혜를 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주님의 백성들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우리를 위해 싸우시고 일하실 것입니다.